생명의 종교 (요일5:1-12)
본문
12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 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임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실 뿐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면 아멘하 시기 바랍니다. 페르시아의 유명한 대왕이요 장군이던 다리오스 황제가 구라파 침략을 하면서 첫 번째 치렀던 전쟁이 알렉산더 대제가 거느리는 군대와의 대전이었습니다. 그때 다 리오스는 알렉산더 대제에게 병사 하나를 시켜 선물 하나를 보냈습니다. 선전포고 를 하면서 보낸 그것은 참깨가 잔뜩들어 있는 부대였습니다. 이 자루에 깨들이 얼 마나 엄청나게 들어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다리오스가 "우리의 군대는 이렇게 많다. 그러니 손들고 항복하라. 너희들은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깨가 가득 들어 있는 부대를 받은 다음에 알렉산더 대제는 답장으로 작은 봉 투에다 씨 하나를 넣어서 다리오스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겨자씨였습니다. 그것은 이런 뜻이 담겨져 있었습다. "우리가 작다고 무시하지 말라. 우리는 무섭다 우리는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거칠다. 우리는 너희들을 맞이할 준 비가 되어 있다" 결국 생명력을 가진 알렉산더가 승리했습니다. 생명의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생명은 가장 귀한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더구나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생명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다른것 다 잃어 버려도 생명은 잃으면 다 잃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의 목숨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인형은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옷도 입힙니다. 화장도 합니다. 눈도 깜 박거리게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비슷하다고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슷한것은 틀리는 것입니다. 많은 종교들이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내가 느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생명은 구체적입니다. 추상적인 개 념이 아닙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지는 것입니다.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관념으로. 지식으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전통과 교리에 얽메인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생명을 소유하며. 생명을 느끼 며, 생명을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이것은 교리가 우리에게 생명을 가르치기 이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니 사람이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의 가치는 흙에서온 육적인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생기 곧 영적인 생명이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만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짐승들과 다를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잃어 버리고 육적인 생명 만 소유하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나 하나님이 보실때는 죽은것 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겉을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을 해도 그속에 생명이 없으 면 죽은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해도, 도덕 군자라 해도 그속에 예수의 생명이 없으면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성경66권의 핵심적인 구절이 "하나님이 새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멸망할 수박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의 생명의 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에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새생명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영적인 생명을 얻는 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교리만도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 인 동시에 명확한 체험이요,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에배당은 열심히 다니지만 예수의 생명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종교는 있지만 체험의 확신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생명이라는 말과 믿음이라는 말과 증거라는 말과 사랑이 라는 말과 이김이라는 말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한 모든 말들은 생명이라는 말 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참 생명을 가졌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생명을 소유했 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게 되고, 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생명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10절에 하나님을 믿는자에게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 증거는 생명을 말합니다. 찬송가186장에 그피가 맘속에 큰 증거됩니다. 다같이 불러 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예수의 피가 여러분의 마음에 큰 증거가 됩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된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피가 맘속에 큰 증거가 된 순간에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은 나 의 구주가 되고 천당은 나의 고향이 되는 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합니다. 곧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합니다. 그것은 물과 피와 성령입니다. 물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로 증거하셨는데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흘림심으로서 세상죄를 담 당하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구세주라는 것을 증거하신 것 입니다. 더나아가서 성령께서 증거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신 것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성령은 지금도 증거하신는데 신자들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마음으로,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들의 증거를 가질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피의 증거를 가질때, 하나님께서도 증거하십니다. 믿는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께서 생명 이 있다고 하시면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기독교는 이론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증거하시기를 아들을 믿는 믿음의 사람에게 증거가 있는데 그 것은 영생이라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이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그 심령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 아들이 그 심령속에 들어와서 주장하고 있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 주예수 그리스도가 그 심령속에 역사하여서 예수의 생명의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예수의 생명이 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예수의 생명 이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이며 행동하는 것 을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게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죽은믿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론이거나 관념적인 것이아 니라 살아있는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살아있는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가 무엇이겠습니까
1. 내적인 증거입니다. 1절에 보면 내신이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곧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다시나게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마22:37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절에 성도들 간의 사랑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동일하게 하나님에게서 난자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3절에 하나님의 계명은 무것운 것이 아닙니다. 외그럴까요 사랑으로 지기 때문 입니다. 억지로 게명에 순종하면 무거운 것이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으로 하는 것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2. 외적인 증거입니다. 예수 생명은 외적으로 능력입니다. 권능입니다. 4절에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사을 이기나니"라고 했습니다. 이긴다는 것은 니 카라는 말로 현재형으로 쓰여진 말입니다. 그러니 이기고 또 이기고 계속적으로 이 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요16:33).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골2:15).
그러므로 그를 믿는 사람또한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정과거형으로 결정적으로 이긴 사 실을 말합니다. 결정적으로 이긴 사건이 무엇이겠습니까 십자가의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세상의 임금인 사탄과 세상을 이기셨 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결정적으로 이기는 역사가나타 나서 계속적으로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십자가의 승리의 사건을 토대로 세상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이기고 저주를 이기고, 악한 영들을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가난을 이 기고 고난을 이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그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속에 계신이는 세상보다 크십니다(4:4).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불의와 비진리를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은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짝믿음가 정에는 근심거리가 제사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피할려고 하지 말고 믿음으로 도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으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다른 우상의 종교에서 이생명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 참이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성도로 당당 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타협하지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 한주간도 승리하 며 보내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의 목숨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인형은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옷도 입힙니다. 화장도 합니다. 눈도 깜 박거리게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비슷하다고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슷한것은 틀리는 것입니다. 많은 종교들이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내가 느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생명은 구체적입니다. 추상적인 개 념이 아닙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지는 것입니다.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입니다. 관념으로. 지식으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전통과 교리에 얽메인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생명을 소유하며. 생명을 느끼 며, 생명을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이것은 교리가 우리에게 생명을 가르치기 이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코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니 사람이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의 가치는 흙에서온 육적인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생기 곧 영적인 생명이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만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짐승들과 다를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잃어 버리고 육적인 생명 만 소유하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나 하나님이 보실때는 죽은것 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겉을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을 해도 그속에 생명이 없으 면 죽은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해도, 도덕 군자라 해도 그속에 예수의 생명이 없으면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성경66권의 핵심적인 구절이 "하나님이 새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멸망할 수박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죄와 허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의 생명의 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에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새생명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영적인 생명을 얻는 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교리만도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 인 동시에 명확한 체험이요,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에배당은 열심히 다니지만 예수의 생명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종교는 있지만 체험의 확신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생명이라는 말과 믿음이라는 말과 증거라는 말과 사랑이 라는 말과 이김이라는 말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한 모든 말들은 생명이라는 말 과 관계되는 것입니다. 참 생명을 가졌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생명을 소유했 기 때문에 세상을 이기게 되고, 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생명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 10절에 하나님을 믿는자에게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 증거는 생명을 말합니다. 찬송가186장에 그피가 맘속에 큰 증거됩니다. 다같이 불러 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예수의 피가 여러분의 마음에 큰 증거가 됩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된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피가 맘속에 큰 증거가 된 순간에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은 나 의 구주가 되고 천당은 나의 고향이 되는 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증거합니다. 곧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증거합니다. 그것은 물과 피와 성령입니다. 물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로 증거하셨는데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흘림심으로서 세상죄를 담 당하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구세주라는 것을 증거하신 것 입니다. 더나아가서 성령께서 증거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신 것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성령은 지금도 증거하신는데 신자들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마음으로, 우리의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들의 증거를 가질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피의 증거를 가질때, 하나님께서도 증거하십니다. 믿는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께서 생명 이 있다고 하시면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기독교는 이론이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증거하시기를 아들을 믿는 믿음의 사람에게 증거가 있는데 그 것은 영생이라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이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그 심령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 아들이 그 심령속에 들어와서 주장하고 있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 주예수 그리스도가 그 심령속에 역사하여서 예수의 생명의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예수의 생명이 그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예수의 생명 이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움직이며 행동하는 것 을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게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죽은믿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이론이거나 관념적인 것이아 니라 살아있는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살아있는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가 무엇이겠습니까
1. 내적인 증거입니다. 1절에 보면 내신이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곧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다시나게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마22:37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절에 성도들 간의 사랑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동일하게 하나님에게서 난자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3절에 하나님의 계명은 무것운 것이 아닙니다. 외그럴까요 사랑으로 지기 때문 입니다. 억지로 게명에 순종하면 무거운 것이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으로 하는 것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2. 외적인 증거입니다. 예수 생명은 외적으로 능력입니다. 권능입니다. 4절에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사을 이기나니"라고 했습니다. 이긴다는 것은 니 카라는 말로 현재형으로 쓰여진 말입니다. 그러니 이기고 또 이기고 계속적으로 이 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요16:33).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골2:15).
그러므로 그를 믿는 사람또한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정과거형으로 결정적으로 이긴 사 실을 말합니다. 결정적으로 이긴 사건이 무엇이겠습니까 십자가의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세상의 임금인 사탄과 세상을 이기셨 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결정적으로 이기는 역사가나타 나서 계속적으로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십자가의 승리의 사건을 토대로 세상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이기고 저주를 이기고, 악한 영들을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가난을 이 기고 고난을 이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그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속에 계신이는 세상보다 크십니다(4:4).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불의와 비진리를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은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짝믿음가 정에는 근심거리가 제사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피할려고 하지 말고 믿음으로 도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으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다른 우상의 종교에서 이생명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 참이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성도로 당당 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타협하지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 한주간도 승리하 며 보내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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