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교회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공동체 (요일1:3-7)

본문

인간이 형성하는 모든 집단에는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납니다. 어느 집단은 구성원들이 개별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허용합니다. 반면, 어느 집단은 모든 구성원이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사회 학과 윤리학(철학)에서는,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이러한 경향을 대체로 개 인주의와 전체주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주의나, 전체주의나, 각기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활동이 철저하게 민족 또는 국가와 같은 집단의 이익에 기여해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칫, 과거에 우리가 경험한 파시즘과 같이, 개 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반면, "개인주의 "가 개인의 권위와 자유를 존중하는 것으로 인정되지만, 그러나, 개인주의 에도 전혀 맹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주의적인 사회에서는 스스로 책임진다는 미명 아래,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배타적인 경쟁을 유도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에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우 정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성원 개개인 사이에 우정을 바탕으로 하는 협력이 없다면, 어떤 개인도 사회 속에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회와 개인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사이의 협력이, 다른 어떤 사회적 가치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교회 공동체 역시 기타 사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 로 우리가 집단을 형성하고 있을 때, 우리의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할 것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입니다. 만일 교회 공동체가 성도들 사이의 자기 과시 적이고 과열된 경쟁을 방치, 내지는 조장한다면, 이것은 공동체에는 물론, 성도 개인, 어느 쪽에도 유익할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느 누구도 "혼자서" 경건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도들 사이에 개인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 인 교제와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서 로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 규범을 제시합니다.
골로새서 3 장 12절로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 게 매는 띠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위에 사랑을 더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 에서, 한 지체된 형제, 자매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오늘도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 사이에서, 주 안 에서 누리는 교제의 기쁨이 큰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예배를 통해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시 95편 처음에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으며, 떡을 떼며 친교의 식사를 함께 나누었습니다(행 2:46/ 5:42). 성경 학자들은, 성도들이 주의 만찬을 축하하기 위해, 예배를 통해 함께 떡을 나누어 먹기 시작했을 것으 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떡을 떼는 행위가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상징적인 행위로 굳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예배란 "존경을 나타 내다" 또는 "가치를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돌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학자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인간의 심성은 지극히 종교적 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어떤 존재를 예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부터, 인간은 예 배하도록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경배 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세속적인 휴머니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자기 자신을 경배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어떤 존재를 향한 예배 행위는 인간의 모든 문화권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아주 오래 전 부터, 자신의 예배를 받을 대상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웅변적 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인간의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한 분 뿐이십니다. 그분은 우주를 지으시고, 만유를 주관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의 예배는 오직 주님께만 돌려지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예배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예배는 곧, 영적인 훈련의 장(場)이었습니다. 처음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초대 교회 성도들은, 믿는 이들의 예배를 통 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처음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이 어떤 것인 지 잘 압니다. 시편 기자는 그 기쁨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편 95편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 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의 삶에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 앞에 합당한 경배를 돌려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던 도마가, 주님을 경험 하고 나서, 주님을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던 것처럼(요 20:28), 지금 주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그분을 예배하도록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기쁨과, 주님을 찬양하는 기쁨을 생생하게 누리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시 5:1-3 열 명의 그리스도인에게 "당신의 영적 생활 가운데 가장 약한 부분은 어디 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다고 합시다. 아마, 적어도 아홉 명은 기도 생활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어느 신 학자는 "현대 기독교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기도 하지 않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독단적인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목사님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지 모르십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우리와 대화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 위해 필요합니다. 기도는 그분을 사랑 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 데 넘쳐 나는 평안을 경험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 을 더 깊이 알 수 없고, 그분을 더 깊이 사랑 할 수 없으며, 그분으로부터 오는 평안을 누릴 수 없다면, 그것은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기도한다구요
그렇다면 열심히 기도하는 백성을 통해, 주님이 계획하신 일이 이루어 져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주 님이 계획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는 아마, 한국을 통해 일본과 중국과 러시 아 및 극동 아시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 이 만족할만큼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솔직히 지금 우리는, 주께서 한국의 그리스도인을 위해, 그리고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해 예비하신 주님 의 약속된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기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을 보십시오. "모든 기도와 간구 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 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열어주시도록 성도의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 리 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 하였노라." 그렇습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 항 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과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에서 가장 중 요한 일입니다. 영적인 게으름에 빠지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교제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과 교제 하시고,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사람을 변 화시키는 일도, 사물을 변화시키는 일도 오직 기도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뜻을 구하는 바른 기도를 드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건강한 영혼의 기초입니다.
시 119:97-104 아주 가끔씩이기는 하지만, 짧은 기간에 영적으로 급성장하는 성도들 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을 몇 사람 알고 있습니다만, 다른 사람보다 영적 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 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속도가 빠른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 로 받 아들이기 때문에,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에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이들에게는 앞에서 공부한 성경 말씀이 단순히 말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경험 되고 확인되어 살아있는 말씀이 됩니다. 결국 이들은, 주일에 교회에 나와 서 목사의 설교를 들어도, 그 말씀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적 용할 수 있는 힘이 있는(역동적인)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사실, 성경은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해서,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구속자 (救贖者)이심을 중심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 안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답이 들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 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삶과 참된 생명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성경을 주 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를 영감으로 기록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 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21절은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 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 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분 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영적인 건강의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통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1) 자연 을 통해,
(2) 양심을 통해, 그리고
(3)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그분 자신에 대해서 온전히 보여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성도들을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온전케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가르침 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0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