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의 말씀 (히1:10-12)
본문
성경을 읽다보면 사랑과 이해와 포용력이 넓기가 한이 없으신 우리 주님께서 단 한 가지 요소에 대해서 만큼은 전혀 융통성과 예외를 허용치 않고 완고하심을 발견케 되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의 이용에 대한 문제입니다. 열처녀 비유를 통해서도 기름을 준비치 못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올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을 시간의 유예를 간청했지만 신랑되시는 주님의 대답은 단호한 ‘모른다’는 한마디 뿐이었습니다. 시간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예수님께 융통성을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절망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하여 인생에 성공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본문을 중심해서 함께 생각하며 은혜나누기로 합시다.
본론
1대지:위엣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라져 가는 시간에 최대한도의 가치를 부여하는 비결을 성경은 땅엣 것을 생각지 않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눅12:16-22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의 말씀은 땅에 연연한 인생에게 갑자기 임하게 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긴박성과 함께 후회와 회개의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는 냉정함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시간은 우리의 욕심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양심이 있다면 병아리가 물을 마실 때 하늘과 땅을 교대로 바라보며 마시듯 위엣 것과 땅의 것을 적당히 배분하며 우리 인생은 시간을 이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2대지:시간은 창조적으로 써야 가치가 발휘됩니다. 마25장의 달란트 비유는 창조적 시간의 활용에 대한 교훈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은 시간을 땅에 묻어둔 자입니다. 따라서 그는 죽은 시간을 껴안고 살던 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맡은 바 사명 앞에 충실하지 못하고 당을 지으면서 중상과 모략의 비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한 자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들이라 하겠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시간을 땅에 묻고 산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들은 곧 갔습니다. 가서 시간이 살아 움직여 열매를 맺고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시간은 쓸수록 빛이 납니다. 쓰면 쓸수록 길어지는 것이 시간입니다. 사라진 시간은 후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겨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창조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마음의 결심이 중요합니다. 이 결정의 순간이 시간의 가치를 바꾸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결심하시길 바랍니다.
3대지:나의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시간은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평안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성경은 두가지 종류의 시간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계신데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바로 그것입니다. 크로노스는 시계나 카렌더에서 읽을 수 있는 우리들이 보통으로 쓰고 있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 곧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에 구애받지 않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측량하거나 얘기할 수 없는 시간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써 크로노스 곧 인간의 시간대를 넘으셨습니다. 이를 우리는 죽음을 이겼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구속적 죽음과 인간의 시간을 뛰어 넘는 부활 사건을 믿는 자는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용서받고 그와 더불어 인간의 시간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시간속에 흘러가는 삶을 사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과 영생은 육신의 죽음 뒤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을 확신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요5:24-25) 요17:3에서 성경은 영생은 곧 이것이니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나의 시간인 크로노스를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자만이 언약의 땅, 축복의 땅 가나안을 밟을 수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쉬움을 안고 이 사라져 가는 시간을 바라만 보고 있지만 믿는 자는 영원에 접붙임을 당한 자들이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또 하나의 창조와 생산을 찾아 땀을 흘립니다.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킵시다. 패당 짓지 않습니다. 남의 시간마저 빼앗아 하나님의 시간으로 바꾸려 힘을 다합니다. 시간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알기에 주인의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주인의식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이 많이 있을 때 시간은 더욱 창조적인 생명의 빛을 강렬하게 발할 수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주의 교훈을 오늘도 우리의 귓가에 담고 영원한 시간속에서 평안으로 호흡하며, 시간 속에서 생명을 엮어내는 성도 모두가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본론
1대지:위엣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라져 가는 시간에 최대한도의 가치를 부여하는 비결을 성경은 땅엣 것을 생각지 않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눅12:16-22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의 말씀은 땅에 연연한 인생에게 갑자기 임하게 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긴박성과 함께 후회와 회개의 시간마저 허락되지 않는 냉정함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시간은 우리의 욕심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양심이 있다면 병아리가 물을 마실 때 하늘과 땅을 교대로 바라보며 마시듯 위엣 것과 땅의 것을 적당히 배분하며 우리 인생은 시간을 이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2대지:시간은 창조적으로 써야 가치가 발휘됩니다. 마25장의 달란트 비유는 창조적 시간의 활용에 대한 교훈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은 시간을 땅에 묻어둔 자입니다. 따라서 그는 죽은 시간을 껴안고 살던 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맡은 바 사명 앞에 충실하지 못하고 당을 지으면서 중상과 모략의 비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한 자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들이라 하겠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시간을 땅에 묻고 산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들은 곧 갔습니다. 가서 시간이 살아 움직여 열매를 맺고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시간은 쓸수록 빛이 납니다. 쓰면 쓸수록 길어지는 것이 시간입니다. 사라진 시간은 후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남은 시간을 소중히 여겨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창조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마음의 결심이 중요합니다. 이 결정의 순간이 시간의 가치를 바꾸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결심하시길 바랍니다.
3대지:나의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시간은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평안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성경은 두가지 종류의 시간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계신데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바로 그것입니다. 크로노스는 시계나 카렌더에서 읽을 수 있는 우리들이 보통으로 쓰고 있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 곧 지구의 자전이나 공전에 구애받지 않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측량하거나 얘기할 수 없는 시간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써 크로노스 곧 인간의 시간대를 넘으셨습니다. 이를 우리는 죽음을 이겼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구속적 죽음과 인간의 시간을 뛰어 넘는 부활 사건을 믿는 자는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용서받고 그와 더불어 인간의 시간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시간속에 흘러가는 삶을 사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원과 영생은 육신의 죽음 뒤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을 확신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요5:24-25) 요17:3에서 성경은 영생은 곧 이것이니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나의 시간인 크로노스를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로 바꾸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자만이 언약의 땅, 축복의 땅 가나안을 밟을 수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쉬움을 안고 이 사라져 가는 시간을 바라만 보고 있지만 믿는 자는 영원에 접붙임을 당한 자들이기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또 하나의 창조와 생산을 찾아 땀을 흘립니다.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킵시다. 패당 짓지 않습니다. 남의 시간마저 빼앗아 하나님의 시간으로 바꾸려 힘을 다합니다. 시간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알기에 주인의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주인의식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이 많이 있을 때 시간은 더욱 창조적인 생명의 빛을 강렬하게 발할 수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주의 교훈을 오늘도 우리의 귓가에 담고 영원한 시간속에서 평안으로 호흡하며, 시간 속에서 생명을 엮어내는 성도 모두가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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