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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목표 (벧후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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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막내가 금년에 대학을 갔는데, 그 아이가 네 살 때의 일인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희 가족은 미국의 노스 인디아나라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은 아주 작고 아름다운 지방이었습니다. 너무 동네가 작으니까 특별한 문화 행사 같은 것이 전혀 없 었습니다. 또 세종 문화 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같은 건물들도 전 혀 없었습니다. 그 동네에서 제일 큰 문화 행사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합창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시카고에서 한국의 바이얼리니스트가 그 지방에 온다고 하길 래 얼마나 반가운지, 일찌감치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 장소에 가서 맨 앞줄에 쭉 앉았습니다. 바이얼린 연주하는 것도 보여 주고 한국 사람들도 보여 줄 겸 해서였습니다. 그때까지 저희 아 이들은 한국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키가 작은 두 명의 어린아이가 무대 위로 올라 왔습니다. 그들은 남매였는데, 여자 아이가 네 살이고 남자 아이 가일곱 살이었습니다. 오빠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여동생이 바이얼 린을 연주했습니다. 이 두 아이가 뭘 하겠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여자 아이가 인사를 하고 바이얼린을 갖다 대더니 나비야라는 동요를 연주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아이고, 한국 망신 다 시켰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미국 사람들도 많이 참석했는 데, 그들은 그 연주를 듣고도 박수를 쳤습니다. 미국인들의 순박 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들이 늘 배우는 기초적인 곡을 연주했습니다. 조금 낫습니다. 박수를 쳤 습니다. 그 다음에 조금 더 어려운 곡을 연주했는데 그만하면 괜 찮았습니다. 점점 나아졌습니다. 마지막에는 바이얼린 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신 없이 연주를 했습니다. 그 곡은 오스트리아에 가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주한 곡인데, 청중들은 넋을 다 잃은 것 같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고 발을 구르고 야단이 났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홀딱 반해 버렸습니다. 연주가 훌륭해서 아이들을 데려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막내가 아빠, 나도 바이얼 린 하나 사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막내가 감동을 받 아서 자기도 배우고 싶다니 기뻤습니다. 그래서 바이얼린을 사러 갔습니다. 이 아이가 재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해서, 초보 학생용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그리고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음악 레슨을 받게 하지만, 특별히 바이 얼린 레슨을 받고 있는 아이의 부모는 참으로 인내심이 많아야 합니다. 피아노나 키타는 키가 있고 금이 있지만, 바이얼린은 금이 없습니다. 조금만 손가락을 잘못 누르고 활이 조금만 잘못되도 영 듣기 싫은 소리가 납니다. 악기 가운데 제일 배우기 어려운 것이 바이얼린 같습니다. 막내 아이가 바이얼린을 처음 배울 때 듣기가 거북해서 당장 그만 두라고 하고 싶었지만 잘한다. 아주 잘해! 훌륭해!라고 격려 하면서 가르쳤습니다. 한참 가르치니까 아주 잘하지는 못하지만 곧 잘 했습니다.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됐습니다. 바이얼린을 가르치 던 선생님이 저에게 이젠 이 아이를 데리고 더 좋은 선생님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개를 받은 더 좋은 선생님을 찾아 가서 바이얼린을 키니까, 그 선생님은 아이가 가진 이 바이얼린으 로는 안 되겠으니 딴 것을 하나 사라고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바이얼린 가게에 갔는데, 여러 종류의 바이얼린이 있 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가 시험적으로 한 바이얼린을 켜 보았더니 집에서 연주할 때와 소리가 아예 달랐습니다. 아이도 똑같은 아 이이고 실력도 똑같고 곡도 똑같은데, 소리가 달랐습니다. 왜 그 렇습니까 악기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비싸도 소리를 들어 보니 안 살 수가 없었습니다. 똑같은 아이가 똑같은 실력으로 똑같은 음악을 가지고 바이얼린을 켜는데 아주 돋보였습니다. 더 좋게 들립니다. 악기가 중요합니다. 성가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사람들이요 같은 곡이요 같은 실 력인데, 나라고 하는 성가대원이 어떤 소리를 내느냐에 따라서 전체 소리가 달라집니다. 성가대원, 지휘자,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모두 음악적으로 잘 개발되고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성숙해 진 사람들일 때 거기에서 나오는 찬양은 같은 음악인데도 딴 소리 가 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앙 적으로 성숙해져서 좋은 악기가 될 때, 그 악기가 모여서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악기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잘 조율한 악기 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삶의 찬양은 굉 장할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으로서의 악기가 잘 개발될 때, 이 악기 소리가 교회에서부터 울려퍼질 때 하나님께 얼마나 귀한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리는 것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성숙한 신 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장의 목표가 무엇인가 베드로후서 1장 1절부터 11절 사이에 성장의 목표가 나타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성품을 계발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 하면,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어떤 사람들 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 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우리는 전에 마귀의 성품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성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 의 성품을 소유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옛날 아브라함의 가정과 같습니다. 처음에 이스마엘이 태어났는데, 그는 약속의 자손이 아니었습니다. 죄로 태어난 아이입니다. 14년 정도가 흘러서 그 아이가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죄로 물든 아이요 죄의 씨로 난 아이이기 때문에, 아이가 망나니였습니다. 사나운 당나귀 같다고 했습니다. 그 가정에 이 불량 소년 아 이밖에 없었으므로 그 가정이 얼마나 불행했겠습니까 그때에 이삭 이 출생했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열댓 살 차이가 났습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자손이었습니다. 기업을 받을 자 손입니다. 두 아이가 한 집에서 자라나는데, 하나는 악의 성품을 받은 아이요 하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받은 아이입니다. 하나는 멸망의 자손이요 하나는 약속의 자손입니다. 이 둘이 한 집에서 자라나는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가슴에도 이스마 엘과 이삭이 있습니다. 둘이 함께 집에서 자라나는데, 이스마엘이 어린 이삭에게 여러 가 지 행패를 부렸습니다. 자신은 불법의 자손이요 이삭은 약속의 자 손이니,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두 살짜리 이삭이 열일곱 살짜리 형에게 배겨 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처음 믿을 때의 모습입니다. 오랫동안 이 죄성이 나를 통제하고, 나를 괴 롭히고, 나를 죄와 세상으로 끌어가고, 나를 욕정대로 지배해 갔 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예수를 믿어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계속 둘이 충돌하니까 이 집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이삭이 이스마엘의 멸시와 천대를 안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이삭이 빨리 성장하면 됩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 과 사라와 하갈과 이스마엘과 이삭 때문에 그 집안에 불화가 끊임 없이 일어납니다. 사라도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하갈을 불러다가 심하게 학대했습니다. 사라가 너무 하갈을 학대하니까 ,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하갈이 도망갔습니다. 이스마엘과 하갈 을 쫓아내어 버리니까, 그때에야 비로소 아브라함의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성, 우리 속에 있는 미성숙한 것들,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습관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그것들을 제거해야 제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도망갔다가 또다시 들어왔습니다. 우리 신앙의 성장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마귀와 죄의 성품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삭이 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내 가슴 속에서 커 가고 있으니까, 이제는 이스마엘을 굶겨 죽여야 합니다. 쫓 아 버려야 합니다. 이스마엘을 먹이고 끌어안아주고 이스마엘을 가 슴에 안고 안 내놓으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그 랬습니다. 이스마엘도 내 자식인데 하면서 끌어안고 안 내놓으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사라의 말이 옳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아브라함 의 삶에 평화가 있었고 이삭도 이제는 원만하게 자랄 수 있게 되 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랍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랍 사람들은 지금 도 이스라엘을 미워합니다. 4,000년 전에 아브라함이 범죄함으 로 아랍 사람들은 오늘까지도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이라 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아랍 사람 아닙니까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이스마엘이 이스라엘을 지금도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언제나 이스라엘과 이스마엘의 전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을 억제하고 내 안에서 이삭을 자꾸 먹이고, 운동시키 고 또 잘 계발시키고, 열심을 다해서 잘 길러 놓으면, 점차적으 로 그가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 얼마든지 이스마엘과 경쟁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300만의 이스라엘이 수천만의 아랍 사람들과 함께 당당하게 겨루어서, 아랍이 꼼짝을 못하고 있지 않습 니까 이스라엘은 서울 인구의 3분의 1도 안 됩니다. 이스라엘 이 장성하니까,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아랍 민족과 겨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예수 믿으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생깁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성장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 더욱 힘써(Be deligent)는 열심이 있고 적극적이 라는 의미입니다.
어떠한 희생이 있다 하더라도 이삭을 키워야겠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마귀의 권세와 세상의 힘과 내 속에 있는 죄의 성품이라는 세 가지 적이 있는데, 이들이 얼마 나 강한지 어떤 때는 내가 아무리 싸우려 해도 이것들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나의 죄성(罪性)이라는 적과 이 죄성을 부추기는 세상이라는 적과 또 세상의 주관자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마귀의 세계라는 것은 우리들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속에 성령께서 임재하신 것을 알아야 비로 소 우리는 세 가지 큰 적과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 숙해지고 강해질 수 있으려면 우리 안에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열심 있는 자가 결국은 얻는 것입니다. 열심 있는 자가 결국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여기서도 더욱 힘쓰라고 반복합니다. 저는 당신이 하나님의 나라에 겨우 들어가 문간에 앉아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자체만을 감사하거나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좀더 열심을 낼 걸 하며 후 회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11절에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당당하게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11절에 이같이 하면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까 10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하리라. 우리가 부르심과 택하심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27절부터 29절까지도 보면,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다(before knew)고 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창세 전부터,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또 미리 아신 그 사람들을 예정하 셨다고 했는데, 그것은 선택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신앙 성장의 마지막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 전부터 사랑하셨고 또 택해 주셨고, 불러 주셨 고, 죄없다고 인정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성화(聖化)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변화되어 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닮게 되고,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 예수님을 닮아 가는 과정 속에 있는 우리에게, 우리를 부르 심과 우리를 택하심을 굳게 하라(make certain)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것은 무슨 뜻 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신 것은 확실하니까, 여 기서는 객관적인 확실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확실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관적인 확실성이란, 내가 나 자신에게 확실하 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쪽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확실합니다 . 그러나 예수 믿다 보면, 우리 자신 안에서 확신이 왔다갔다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어느 분과 대화하는 도중에, 그 분이 어떤 때는 신앙 생활 에 확신이 없어진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을 영 접한 것이 사실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분이 사실입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현상인가 하면, 하나님이 손을 내밀어 서 내가 그 손을 잡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내가 피곤 하고 내가 의심이 나고 내가 문제가 있어서 나 자신이 손을 놓는 때도 있습니다. 내가 손을 놓았을 때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손을 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불확실 하게 되고 끊어져 버리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오른 팔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나를 영원히 붙들고 계십니다. 내가 꼭 붙잡았을 때에는 내 가슴 속에서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놓았을 때에는 불확실해집니다. 그러나 내가 놓았다고 부 르심과 택하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실 때 나도 하나님을 붙들면, 훨씬 더 마음에 확신이 생기고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까 10절에서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들 어떻게 해야 내가 확실한 신앙, 넉넉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신앙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앞에서는 자신을 성장시키고 , 천국에 들어가기에 확실하고 넉넉한 신앙을 가지려면 우리 안에 열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 열심을 내야 할까요 5절부터 7절까지를 보 십시오. 이러므로 너희가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첫째/믿음 믿음부터 출발합니다. 믿음이 기초입니다. 믿음은 크게 구원의 믿음 과 생활의 믿음 으로 나뉩니다. 구원의 믿음은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있든가 없든가 둘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면, 구원에 대한 믿음은 있는 것이고 구원받은 것입니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어차 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여서 믿 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믿음으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생활의 믿음은 사사건건이 우리 삶에서 주님을 의존하는 삶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의존하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살아 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아직도 죄성이 있는 인간이지만, 부족한 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믿음이 출발인 것입니다. 구원의 믿음이 없이는 신앙의 성숙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서 부끄 럽고 떨리고 창피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땅에 있을 때 좀더 주(主)를 위해서 나 자신을 개발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좀더 훌륭하게 개발할 걸 하면서 부끄럽게 천국에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믿음이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당당하게 들어가려면 믿음에다가 한 층의 집을 더 올려 지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 니까 바로 덕입니다.
둘째/덕(德) 어떤 사람은 믿음은 좋은데 덕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본 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덕은 우리들이 보통 말하는 그런 덕이 아니라 Moral excellence(도덕적으로 뛰어남)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의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볼 때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삶이 도덕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어서 그 사람 괜찮아요. 그 사람 틀림없어요.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이죠 하는 것입니다. 다 른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보고 의심하는 그런 종류의 인격이 아 니라 어느 누가 봐도 괜찮은 깨끗한 가슴과 깨끗한 삶을 사는 것 입니다. 도덕적으로 깨끗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제거시켜서 깨끗하게 만들 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은 사람이지만 자신이 없고 확신이 없습니다. 넉넉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확실한 신앙을 가지려면, 믿음에 덕을, 도덕적 순수성을 계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지식 여기에서의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절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 은 성경을 많이 공부해서 지적(知的)으로 그분에 대해 많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지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매일 만나고 매일 이야기하고 매일 같이 다 니는 사람이 친하지 않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교우가 오면, 모임에 받아들이고 자기 집에 초청하기도 하고 그 사람 집에 가기도 하고 쇼핑도 같이 하면서 그 사람과 빨리 친숙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과 날 마다 날마다 교제함으로 친해지고 또 그분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지식이 없이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균형이 안 맞아서 엉 뚱한 일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으면 큰 일을 해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약하고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약하니까 균형이 안 맞아서 교회에 덕이 안 됩니다. 믿음에 덕을 , 덕에 지식을 더해야 합니다.
넷째/절제 제 생각에는, 이 절제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절제(self-control)는 자기 자신을 통 제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제일 어려운 것이 자기 입니다. 자기보다 더 큰 문제는 세상에 없습니다. 좋지 않은 말을 안 하려고 입을 깨물다가 한 번만 더 깨물면 되는데, 그만 말이 나와서 상대방의 가슴에 못을 박아 상처를 입힙니다. 먹어도 한 숟가락만 덜 먹었으면 되는데, 절제하지 못해서 배탈이 납니다. 말도 그렇고 먹는 것도 그렇고 조금만 절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앙 생활에서도 왜 극단적이고 광 적으로 되어 버립니까 절제가 없어서 빨려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처음 믿으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래서 전도하고 싶 습니다. 처음 예수 믿은 사람들이 얼마나 전도를 잘 합니까 그 사람들이 처음 들어와서 전도를 열심히 하는데, 오래 믿었다는 사람들이 전도를 안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분통이 터집니다. 집사님들과 장로님들은 왜 전도 안 합니까 목사님들은 왜 전도 안 합니까 그 분에게는 처음 일 년이나 일 년 반 동안은 성경이 66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3장 16절만 있습니다. 그 한 절밖 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당신만 예수 믿는 줄 알우,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 하면서 기를 죽이면 안 되고 잘 인도해서 균형 을 맞춰 주어야 합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는 초신자한테 잘못 이야기하면, 그 다음에는 분통이 터지고 이 교회는 못 다니겠어. 오래 믿은 사람이 냉냉해서 전도하러 가자고 해도 안 가겠다고 하니… 하면서 극단적이 됩니다. 그 사람도 자제력이 없어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이 교회는 기도가 없어 . 교인들이 기도하지 않다니…라고 말합니다. 타인의 기도 생활 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어디서 기도하는지 어떻게 압니까 언제 기도하는지 누가 압니까 기도는 가장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절대로 남의 신앙 생활을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에다 가 말씀도 보태고 덕도 보태고 절제도 보탰으면 되는데, 그 분은 혼자서 너무 기도만 많이 하다 보니까 자기만 기도하고 아무도 기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한 것이 그 교회에 시험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또 성경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이 교회 교인 들은 아무 것도 몰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야라고 말합니다. 누가 조금 맞서면 그것도 모르느냐고 합니다. 이것도 문제입니다. 절제가 없습니다. 극단적이 되어 버립니다. 골고루 성숙하게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길러 나간 사람들은 기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차분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성경 5천 번 읽었어 하지 않는데, 말씀을 한 토막 한 토막 씹어서 익힙니다. 신앙은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이다음에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날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입니다. 팔팔 뛰던 사람이 부끄러움을 당할 수도 있고, 열심히 믿는 것 같지 않던 사람이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길러서 탄탄하고 확실하고 넉넉한 믿음으로 당당하게 설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내가 공연히 그 사람을 야단쳤구나 ! 할 것입니다. 믿음은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골고루 쌓아 가야 합니다.
다섯째/인내 인내는 참는 것입니다. 참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pat ience와 perseverance입니다. patienc e는 그냥 참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의 인내는 perseve rance인데, 이것은 마지막의 승리가 나의 것임을 확실히 알 기 때문에 당당하게 참는 것입니다. 올림픽의 마라톤에 나가서 일등 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일등 하는 것이 확실하지만 끝까지 뛰어야 일등 하는 것입니다. 마라톤 하는 사람 보면, 두 시간 십 분 만에 백 리를 뛰는데 그쯤 뛰다 보면 런닝셔츠마저도 무겁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뜁니다. 절반쯤 뛰면 온몸이 마비가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기계적으로 뜁니다. 받은 훈련 때문에 손과 발이 기계적으로 돌 아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자신 있게 참고 나가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인내입니다. 당신과 저는 충분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로 약속받은 사람들이 요, 들어가기로 확인된 사람입니다. 저 하늘나라는 우리들의 것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더 라도 우리는 넉넉히 이기고 참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승리의 확 신입니다. 참는 자들이 발전이 있습니다. 음악하는 사람들도 참다가 참다가 기권하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하다가 힘드니까 기권합니다. 최후까지 참는 사람들이 결국은 발전하고 성숙하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어 느 목사님이 15년간 목회를 잘 하셨는데, 미국에 이민을 와서 목회를 할 때 제직들이 너무 속을 썩이니까 제직회를 하다가 너 이리 나와 하고 제직 한 사람을 칠려고 했습니다. 유도 2단 의 실력으로…. 그것으로 그 분의 목회는 끝났습니다. 그때 참았 으면 우리 목사님 훌륭하구나! 했을 텐데…. 정 못 참겠다고 생각될 때, 바로 그때 참아야 합니다. 그때가 내가 성장하느냐, 퇴보하느냐 결정나는 순간입니다. 도저히 못 참 겠으면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도우심 으로 열매가 나타납니다. 못 참겠을 때 참는 그 사람이 크는 것 입니다. 거기에서 인격의 성장과 퇴보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마지 막까지 참는 사람, 여기에 신앙인의 멋이 있는 것입니다. 공부를 해도 그렇고 사업을 해도 그렇고 한 번 두드려서 안 된다 고 포기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신이 어떤 사람과 계약을 맺 고자 할 때, 그 사람이 안 하겠다고 하더라도 안 하겠으면 할 수 없어! 하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정말 안 하겠다고 할 때 ,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또 찾아가야 합니다. 구하라는 것은 한 번 구하고 그만두고 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응답될 때까지 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도중에 다 기권해도, 그 사람은 끝까지 추구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될 때에 틀립없이 성숙해지지 않겠습니까 마지막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아야지, 참 다가 참다가 마지막에 부인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평야에서 여덟 살부터 예수 믿는다고 3년 동안 학교 선생님 에게서 두들겨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열두 명의 친구가 예수 믿는 다고 버티기 시작했지만 시간의 지남에 따라 점점 떨어져 나갔습니다. 3년 후에는 목사의 아들인 송해용이와 저와 둘만 남았습니다 . 마지막에 가니까 제 친구는 토요일날 학교에 안 옵니다. 그리고 월요일날 학교에 왔을 때, 왜 주일날 안 왔느냐고 하면 토요 일날 아파서 학교에 못 나왔기 때문에 주일날 학교에 나오라는 이 야기를 못 들었다는 것입니다. 몇 번 그렇게 하는 걸 보니 저도 이 친구처럼 토요일에 학교에 안 올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팠다고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토요일에 학교에 갑니다. 학교 를 가니까 주일날 학교에 나오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주 일날에 학교에 안 나가니까 월요일날 또 매를 맞습니다. 저는 그 때 거짓말을 좀 할 수 있으면, 토요일에 좀 아플 걸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거짓말 안 하고 매맞 으면서도 참고 지낸 것이 잘한 것 같습니다. 정 못 참겠을 때 참아야 합니다. 그때 참으면 가정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때부터 뭔가 됩니다. 그러나 그때 못 참았으면 다른 사람과 똑같습니다. 당신에게 시련과 어려움과 단련함이 와서 정 못 참을 순간이 와도, 그때 성령의 힘으로 참으십시오. 이렇게 신앙을 길러 나갈 때 당신은 성숙해집니다.
여섯째/경건 경건(godliness)은 하나님으로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누워도 하나님이요, 일어나도 하나님이요, 앉 아도 하나님이요, 먹어도 하나님이요, 서도 하나님이요, 걸어도 하나님이요, 뛰어도 하나님이요, 넘어져도 하나님입니다. 그는 목 에까지 하나님으로 가득 차서, 조금만 배를 누르면 하나님이 입에 서 툭 튀어나옵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입니다. 다윗은 시를 쓰기 위해 붓을 들면 그 첫마디가 여호와는…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요… 라고 합니다. 그저 붓만 들면 여호와입니다. 이것이 경건(敬虔)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제가 시편 23편을 썼으면 이렇게 썼을 것입니다. 내 목자는 여호와시니…. 나를 맨 앞에 넣습니다. 나로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로 가득 찼기 때문에 여호와는…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우선주의, 우리 하나님 우선주의, 자나깨나 하나님 우선 주의, 무엇을 하든 하나님 제일주의, 이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일곱째/형제 우애 이것은 형제간에 친절한 것처럼, 하나님의 식구들을 내 형제와 내 누이와 내 가족으로 생각하면서 한 집의 형제처럼 친숙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친절하다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인데, 상대방이 미 처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 사람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당신이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개 선생님, 평 안하세요라고 저쪽에서 문안해 옵니다. 네, 누구신데요 네, 아무게 집사입니다. 어떻게 전화하셨어요 그냥 평안하신가 해서 전화했습니다. 모두 무고하시지요 아이들 은 어떻습니까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를 돌보아주는 것, 이런 것이 친절입니다. 제가 미국에 막 갔을 때, 돈이 부족해서 타자기를 구입하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50불만 달랑 가지고 갔 기 때문에 타자기를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미국 교회 에서 설교를 마치고 나니까 한 분이 나에게 와서 당신이 하는 설교를 십 년 전에는 듣곤 했는데 그 후 십 년 동안 이런 설교 를 못 들어 봤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고맙다고 악수를 하는데, 손이 따끔따끔해서 봤더니 어떤 종이를 조그맣게 접어서 제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내 손을 놓으면서, 집에 가 서 펴 보라고 했습니다. 집에 가서 펴 보니까 50불짜리 수표였 습니다. 마침 그때 제일 싼 타자기가 50불이었습니다. 꼭 필요 한 것이었기에 그 돈으로 샀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선을 베푸는 것이 친절입니다. 지금까지도 그 일을 잊지 못합니다. 기대한 사람에게 기대하고 있는 선(善)을 행하는 것은 친절이 아닙니다. 생각도 안 했는데 날 찾아 주고, 생각도 안 했는데 전화해 주고, 생각도 안 했는데 선물을 주고 하는 것이 친절입니다. 성도들 간에 이와 같은 친절을 길러야 합니다.
여덟째/사랑 사랑은 모든 것을 덮습니다. 성숙한 사람들은 집을 짓는 데 믿음 을 그 토대로 삼고 사랑을 그 지붕으로 삼습니다. 그 사이에 6 층을 지어서 여덟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여덟 가지를 골고루 길러 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이 여덟 가지가 내 삶에서 증가할 때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이 나 에게 확실해집니다. 이렇게 확실한 신앙이 성숙한 인격 위에 세워 진 사람은 넉넉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확실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출발해서 그 위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의 지붕을 덮어서 당신과 제가 마음 속에 확실한 믿음을 갖고 당당하게 주님의 나라로 행 군해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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