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성장의 단계 (잠1:7,벧후1:1-11)
본문
신앙인이 이 험악한 세파를 헤쳐나가기 위한 더욱 성숙한 신앙인격 으로 갖춰가야 할 것을 본문은 강조한다. 특별히 베드로는 신앙덕목의 실천을 통해 더욱 성숙한 신앙단계로 접어 들것을 가르친다. '보배로 운 믿음'과 '온전한 지식(앎)'을 역설한 베드로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바른 믿음과 바른 지식(앎)을 가진 자들이 이 험악한 세상을 승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신앙성장이 요구됨을 역설한다. 다시말하면 정적인 신앙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는 동적인 신앙이 필요하며 여러 신앙적 덕목을 생활속에 실천해 가는 일 이 필요함을 피력하였다. 신앙 성숙을 위해 권면한 실천덕목이 무엇인가 이는 곧 신앙 성장 의 단계로 보아 우리의 현 신앙 상태를 알아보자.
5절에 믿음에 덕을 더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에 첫 발은 바로 믿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물론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 물로서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가지는 것을 가르킨다. 인간은 하나님과 이러한 생명적 관계를 이름으로서 비로서 진정한 의미의 살아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살아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도덕적 반응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믿음은 이후에 소개되는 덕, 지 식, 절제, 인내, 경건, 우애, 사랑의 덕목들을 떠 받쳐주고 힘있게 해 주는 든든한 기초석이라 할 수 있다. 실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으 로 거듭남으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애 전체를 통해 계속 완성을 향해 달려나가는 미완성의 삶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지 하나님과의 내면적 관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계속 활동하며 삶 속에서 역사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참 믿음을 소유한 자는 반다시 그 삶에 덕을 갖추어 가야 한다. 덕이란 훌륭한 인격으로 만드는 힘이요, 그리스도인을 신앙으로 움 직이게 하는 참된 용기와 탁월한 품격을 가르킨다. 사람을 온전케 하 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활동(봉사)하게 하고 또 경우에서든 자신의 신앙을 증거할 만한 용기를 가지게 해준다. 5절에 덕에 지식을 더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 지식(그노시스)이라함 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힘(지혜)이다. 사물을 정확히 통찰케하며 선악을 판별케 하여 악을 피하고 선을 취하게 하는 실제적인 지식을 가르킨다. 사실 아무리 아름다운 '덕'을 추구하는 자라 할지라도 바른 것을 취하게 하고 지식을 갖추지 못할때 그는 분명 크나큰 과오를 범 하게 된다. 고로 우리는 선한 덕을 추구하는 더운 가슴과 올바른 것을 판별하고 취할 수 있는 냉철한 머리를 가질때 우리의 인간적인 오류를 최소화 할 수 있다. 6절에 지식에 절제를 더할것을 말한다. 여기서 '절제(엥크라테리 아)'란 '자기자신을 꽉 붙잡아 매둔다'는 뜻으로 주로 식욕이나 성욕 을 자제하고 극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타락하고 부패해 있기 때문에 매사에 그 본성을 억제하고 극기해 가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타락해 갈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절제는 인간 속에 내재 된 모든 열정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고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죄악된 의지를 철저히 제어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온전한 지식으로 인도함 받고 선한 덕이 그 마음과 감정을 조절 할 때에 우리는 저급하 고 타락한 욕망들을 절제하고 올바른 삶을 유기해 갈 수 있다. 절제치 못한 인간은 천박하다. 6절에 절제에 인내를 더할것을 말한다. 여기서 인내(휘포모네)란 힘 에 겨운 외부의 압력에는 굴하지 않고 굳세게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을 가리킨다. 인내란 바로 그 어깨에는 비록 무거운 짐이 내리누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앞을내다 봄으로서 마침내 바라는 바 를 이뤄내고야마는 일종의 수동적인 적극성을 가리킨다. 이같은 인내 의 삶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6절에 인내에 경건을 더할것을 말한다. 여기서 경건(유세베이야)이 라함은 종교라는 뉘앙스를 깊이 내포한 단어이다. 경건이란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고 그 분에게 합당한 존경과 영광을 바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실정으로 이웃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이웃을 존중하고 섬기는 정중한 자세를 가리킨다. 당시 로마인들은 경건한 사람이라 할때 '이기심과 정욕에 휩싸이 지 않고 자기 책무에 충실한 자로서 먼저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책 임을 다하고 다음으로 부친과 가족과 친척과 민족에 대한 책임을 성실 히 다하는 자'로 보았다. 7절에 경건에 형제우애를 더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 '형제우애(필라 델피아)'란 자연적이고 인격적인 친화력에 의해 이루어진 사랑으로서 누구나 마치 혈육처럼 진하게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한 주로 섬기는 교회는 모두가 한 형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그 무엇보다 이 '형제우애'가 요구된다. 그러기에 사도요한은 '누구든 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 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7절에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 사랑(아가페)이 란 형제우애보다 좀더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사랑을 말한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 가운데 하나로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 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를 반영해 주는 것이다. 이같은 사랑을 소유한 자만이 모든 사람을 제 몸 처럼 사랑할 수 있다. 심지어 자기를 헤치려는 원수까지도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햇빛과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골고 루 내리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사랑을 닮은 그런 넓 고 큰 사랑의 차원에까지 성숙해가야 한다. 믿음으로 충만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 노력은 바로 이 사랑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중생한 때로부터 끊임없이 성장해 가야할 의무가 주어 진다.
왜냐하면 거듭나는 것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을 완전한 인격, 거 룩한 성품, 온전한 삶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영적으로 지속적인 훈련과 성장을 하 지 않으면 다시 옛 죄악된 삶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이 제시한 신앙의 8가지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오르는 자 곧 신앙성장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는 기필코 오는 세상에서 영광과 복락 이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인격의 형성과정을 안다. 즉 행위는 습관을 낳고 습관은 성 질이 되고 성질은 의지를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의지가 인 격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습관을 기르도록 할 것이다.
5절에 믿음에 덕을 더할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에 첫 발은 바로 믿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물론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 물로서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가지는 것을 가르킨다. 인간은 하나님과 이러한 생명적 관계를 이름으로서 비로서 진정한 의미의 살아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살아 있기에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도덕적 반응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믿음은 이후에 소개되는 덕, 지 식, 절제, 인내, 경건, 우애, 사랑의 덕목들을 떠 받쳐주고 힘있게 해 주는 든든한 기초석이라 할 수 있다. 실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으 로 거듭남으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애 전체를 통해 계속 완성을 향해 달려나가는 미완성의 삶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지 하나님과의 내면적 관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고 계속 활동하며 삶 속에서 역사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참 믿음을 소유한 자는 반다시 그 삶에 덕을 갖추어 가야 한다. 덕이란 훌륭한 인격으로 만드는 힘이요, 그리스도인을 신앙으로 움 직이게 하는 참된 용기와 탁월한 품격을 가르킨다. 사람을 온전케 하 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활동(봉사)하게 하고 또 경우에서든 자신의 신앙을 증거할 만한 용기를 가지게 해준다. 5절에 덕에 지식을 더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 지식(그노시스)이라함 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힘(지혜)이다. 사물을 정확히 통찰케하며 선악을 판별케 하여 악을 피하고 선을 취하게 하는 실제적인 지식을 가르킨다. 사실 아무리 아름다운 '덕'을 추구하는 자라 할지라도 바른 것을 취하게 하고 지식을 갖추지 못할때 그는 분명 크나큰 과오를 범 하게 된다. 고로 우리는 선한 덕을 추구하는 더운 가슴과 올바른 것을 판별하고 취할 수 있는 냉철한 머리를 가질때 우리의 인간적인 오류를 최소화 할 수 있다. 6절에 지식에 절제를 더할것을 말한다. 여기서 '절제(엥크라테리 아)'란 '자기자신을 꽉 붙잡아 매둔다'는 뜻으로 주로 식욕이나 성욕 을 자제하고 극기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타락하고 부패해 있기 때문에 매사에 그 본성을 억제하고 극기해 가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타락해 갈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절제는 인간 속에 내재 된 모든 열정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고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죄악된 의지를 철저히 제어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온전한 지식으로 인도함 받고 선한 덕이 그 마음과 감정을 조절 할 때에 우리는 저급하 고 타락한 욕망들을 절제하고 올바른 삶을 유기해 갈 수 있다. 절제치 못한 인간은 천박하다. 6절에 절제에 인내를 더할것을 말한다. 여기서 인내(휘포모네)란 힘 에 겨운 외부의 압력에는 굴하지 않고 굳세게 그 자리에 서있는 것을 가리킨다. 인내란 바로 그 어깨에는 비록 무거운 짐이 내리누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앞을내다 봄으로서 마침내 바라는 바 를 이뤄내고야마는 일종의 수동적인 적극성을 가리킨다. 이같은 인내 의 삶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6절에 인내에 경건을 더할것을 말한다. 여기서 경건(유세베이야)이 라함은 종교라는 뉘앙스를 깊이 내포한 단어이다. 경건이란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고 그 분에게 합당한 존경과 영광을 바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실정으로 이웃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이웃을 존중하고 섬기는 정중한 자세를 가리킨다. 당시 로마인들은 경건한 사람이라 할때 '이기심과 정욕에 휩싸이 지 않고 자기 책무에 충실한 자로서 먼저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책 임을 다하고 다음으로 부친과 가족과 친척과 민족에 대한 책임을 성실 히 다하는 자'로 보았다. 7절에 경건에 형제우애를 더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 '형제우애(필라 델피아)'란 자연적이고 인격적인 친화력에 의해 이루어진 사랑으로서 누구나 마치 혈육처럼 진하게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를 한 주로 섬기는 교회는 모두가 한 형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그 무엇보다 이 '형제우애'가 요구된다. 그러기에 사도요한은 '누구든 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 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7절에 형제우애에 사랑을 더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 사랑(아가페)이 란 형제우애보다 좀더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사랑을 말한다. 이 사랑은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 가운데 하나로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 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의지를 반영해 주는 것이다. 이같은 사랑을 소유한 자만이 모든 사람을 제 몸 처럼 사랑할 수 있다. 심지어 자기를 헤치려는 원수까지도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햇빛과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골고 루 내리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인 사랑을 닮은 그런 넓 고 큰 사랑의 차원에까지 성숙해가야 한다. 믿음으로 충만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 노력은 바로 이 사랑에서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중생한 때로부터 끊임없이 성장해 가야할 의무가 주어 진다.
왜냐하면 거듭나는 것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을 완전한 인격, 거 룩한 성품, 온전한 삶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영적으로 지속적인 훈련과 성장을 하 지 않으면 다시 옛 죄악된 삶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이 제시한 신앙의 8가지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오르는 자 곧 신앙성장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는 기필코 오는 세상에서 영광과 복락 이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인격의 형성과정을 안다. 즉 행위는 습관을 낳고 습관은 성 질이 되고 성질은 의지를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의지가 인 격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습관을 기르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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