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야 할 진리 (벧후1:12-15)
본문
인간은 갈대와 같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고 했던 파스칼의 말처럼 인간은 귿임없이 생각한다. 독재자들이 그의 정적을 한평짜리 독방에 가두어 놓을 수는 있으나 그의 생각은 가두어 놓을수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의 생각까지 완전히 공산주의적 생각으로 바꾸어 놓으려고 했었으나 그 속에서도 자유정신을 품은 소수 의 사람들로 인해 공산주의는 자체 안에서 붕괴되고 말았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했기 때문에 신약성경의 13권을 기록했고,공산 루마니아때 17년간 지하 독실감방에 갇혀 있었던 리차드 범 브란트는 아무도 없는 감옥에서도 주님과 천사들이 자기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깨 닫고 그들앞에서 설교를 했다.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생각할 수 있고, 또 생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생각이 없는 인간은 노예이거나, 식물인간이거나, 아니면 로버트일 것이다. 생각은 마치 바람처럼 구름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며 흘러 다닌다. 주부가 집안에서 빨래를 하면서도 쇼핑할 일을 생각하고, 남자들은 회사일을 보는 중에도 친구 장 가가는 생각을 하고,차를 타고 가면서도 까마득한 십년전에 실수했던 경험이나 상 받은 일이 생각난다든지 혹은 먼 미래에 관해 상상하기도 한다. 생각은 마치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처럼 창조적이고도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란 무서운 위력을 갖고 있다. 생각의 결과는 한 사람의 삶의 내용과 질과 방향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한 소년의 미래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 혹은 그에게 어떤 생각을 하도록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릴 때,특히 청소년기에 그가 무엇을 많이 듣고 무슨 책을 읽느냐는 그의 생애에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나의 생각에 따라 경건하고 능력있는 하나님의 종이 될 수도 있고, 더럽 고 비열한 방탕아가 될수도 있습니다. 나의 생각에 따라 관대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업가가 될 수도 있고 옹졸하고 인색 한 구두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에 따라 적극적이고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잇고, 소극적이고 절망적인 사람이 될수도 있습니다. 성전에 살면서도 돈과 색을 탐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성전에서 도적질하고 간음 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성전에 살면서 하나님만 생각했던 사무 엘은 평생 뇌물을 받지않고 하나님과 민족을 위해 일한 대 선지자요 정치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과 함게 지냈으나 그의 생각은 늘 돈궤에 가있더니 결국 은 30 냥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팔아먹고 말았습니다. 나다나엘은 조용한 나무 아래 앉아 메시야를 묵상했으므로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참이스라엘이요 그 속에 간 사한 것이 없구나!"라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스탈린은 14살 때 티플리스 신학교에 입학해서 6년동안이나 다녔으나 항상 막스 주의 책만 읽고 막스이론을 생각하고 막스주의자들과 만나더니 결국 세계에서 가 장 악랄한 공산주의 지도자가 되어 수백만명을 학살하는 악마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반대로 고르바초프와 엘친은 폐쇄된 사회속에 살았지만 청년시절부터 자유와 신앙정신을 추구하더니 결국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고 자유의 나라로 만드는 주역들 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생각의 방향을 올바로 설정하고 생각의 내용을 잘 결정해야 합니다. 생각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1시간동안에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 내는 작곡가가 있고, 같은 한 시간에 비관적 생각에 몰입하여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에 사도 베드로는 3번이나 생각하게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12절에 "항상 생각하라" 13절에 "일깨워 생각하라" 15절에 "필요할 때마다 생각하라"이다. 무엇을 이토록 생각하라고 베드로가 당부합니까 12절-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이미 있는 진리에 그들이 섰다고 합니다. 진리는 전에 없던 새로 만들어지는 어떤 사상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진리"위에 서야 하고 "이미 있는 진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단자들은 늘 새로운 진리를 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전에 없던 새로운 어떤 것이 결코 아니라, 과거부터 이미 있는 것이요,현재에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을 영원 한 것입니다. 무엇이 진리인가 진리는첫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는 진리입니다. 요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6절에, "아 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와 양 심의 억압과 정죄,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케 해 주시는 진리이십니다.둘째,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119: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 의 말씀,아버지의 숨,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이 66권 성경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이 말씀을 듣지 않고 읽지 않고 이 말씀을 생각하지 않고는 아무도 거룩하게 될수 없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리입니다. 갈2:5,14에 "복음의 진리"라고 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것이 곧 복음이요 진리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진리입니다. 요14:17에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성령께서 저희와 함께 거하시며 저희 안에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성령님은 영원하신 진리입니다. 그 하나님 의 말씀,복음의 말씀이 또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가 새로 생긴다거나 변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또 이 진리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말못하는 어떤 비인격체가 아닙니다. 이미 있는 진리라고 해서 옛날에 있다가 지금은 골동품이 된 어떤 철학이론이라는게 아닙니다. 이 진리는 예부터 계셨고,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계실 영원히 살아있는 진리입니다. 우리속에 역사하고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우리를 살리는 살아 있는 진리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를 사랑하세요. 예수의 말씀을 따 르세요. 그렇게 하시면 여러분은 심판에서 자유를 얻으며, 죄로부터 거룩하게 되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동행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이 진리위에 굳게 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이제 순교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 이 잇습니다. 말하자면 유언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것을 말할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있는 진리,그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3장
1,2절에도). 왜 이 진리를 항상 생각하고,일깨워 생각하고 필요할 때마다 생각하고 기억하라는 것입니까 2:1절-민간에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이제 계속하여 거짓선생들이 있 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태선의 전도관,문선명의 통일교,조셉 스미스의 몰몬교,럿 셀의 여호와 증인,엘렌 지 화잇트의 안식교,정명석의 장막교회 저들은 어떻게 합니까 1절하,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합니다. 진리이신 주님을 부인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2절,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이단들이 들끌으면 진리의 도가 얼마 나 훼방을 받습니까 저 태산금고 옆에 어떤 가게 주인에게 전도했더니 좀 받아들 이는가 싶더니 도무지 생떼를 씁니다. 알고보니 통일교에 예날에 몇달동안 다니며 원리강론을 들었다는 얘기. 그 원리강론의 입장에서 창세기를 보니 창세기에서 말 하는 죄가 눈에 않보이고 성경이 말하는 죄로부터 인생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눈에 않보이게 됩니다. 진리의 도가 방해를 받습니다. 살후2:12에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와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개가 똥을 좋와하듯이 멸망하는 자들은 진리다,하나님이다,예수님이다 하면 인상을 지푸리나, 불의는 매우 좋와합니다. 딤후 4:4 "진리에서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기성교회보다는 무언가 새로운 말을 하는것같은 이단자들에게로 가는 심령들 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 보면 대개 열심입니다. 그래서 많이 배웁니다.
그러나 배운 결과가 어떻습니까 딤후3:7에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진리를 듣고 진리를 믿고 진리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위에 서기 바랍니다. 나아가 이 진리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생각하되 깊이 생각하는 것을 바로 묵상이 라 합니다. 우리 신앙선배들은 다 진리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 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그 율 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항상 생각하고 깊이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못있는지 모릅니다. 그 건강 미넘치는 근육을 한 사나이가 깊은 고독속에 잠긴 모습은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그런데 어떤 세상일 고민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윗이 그런 분이었습니다. 양떼를 치면서 험준한 길을 지나 기름진 꼴이 잇는 푸 른 언덕으로 양떼를 인도하고 사나운 맹수들로 부터 양떼를 지키는일을 하던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묵상하던 중 바로 여호와게서 그 자신의 목자이심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시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노래 했습니다. 그는 깊은 밤중에도 하나님을 묵상햇습니다.시63:5,6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 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 음이라" 그는 깜감한 밤중에 침상에서 주님의 도움,주님의 사랑을 곰곰히 생각하며 음미했 습니다. 그랫더니 가슴이 뜨거워 집니다. 나같은 미련하고 부족한 것 사랑해 주시 고 구원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은헤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찬송이 그 입술에서 감사나옵니다." 지금가지 지내 온것 주의 크신은혜라." 어떤 목사님은 하루 일과를 마칠 때마다 5분간씩 예수님의 일생을 목상 하시는데 그 시간이야 말로 가장 축복된 시간이라 합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위로를 얻습니다.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얻게 됩니다. 거룩한 심령이 됩니다. 좋은 생각은 좋은 정신을 가져오고 좋은 정신은 좋은 삶을 가져오게 합니다. 가장 좋은 생각은 곧 진리,이미 있는 진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생각하고 잊어졌 을 때는 다시 일깨워 생각하십시오. 어려운 일 만났을 때, 시험을 당할 때, 유혹을 만났을 때 이 진리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숨질 때 이 진리를 생각하시 기 바랍니다.
스탈린은 14살 때 티플리스 신학교에 입학해서 6년동안이나 다녔으나 항상 막스 주의 책만 읽고 막스이론을 생각하고 막스주의자들과 만나더니 결국 세계에서 가 장 악랄한 공산주의 지도자가 되어 수백만명을 학살하는 악마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반대로 고르바초프와 엘친은 폐쇄된 사회속에 살았지만 청년시절부터 자유와 신앙정신을 추구하더니 결국 공산주의를 무너뜨리고 자유의 나라로 만드는 주역들 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생각의 방향을 올바로 설정하고 생각의 내용을 잘 결정해야 합니다. 생각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이 결정됩니다. 1시간동안에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 내는 작곡가가 있고, 같은 한 시간에 비관적 생각에 몰입하여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에 사도 베드로는 3번이나 생각하게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12절에 "항상 생각하라" 13절에 "일깨워 생각하라" 15절에 "필요할 때마다 생각하라"이다. 무엇을 이토록 생각하라고 베드로가 당부합니까 12절-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이미 있는 진리에 그들이 섰다고 합니다. 진리는 전에 없던 새로 만들어지는 어떤 사상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진리"위에 서야 하고 "이미 있는 진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단자들은 늘 새로운 진리를 말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전에 없던 새로운 어떤 것이 결코 아니라, 과거부터 이미 있는 것이요,현재에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을 영원 한 것입니다. 무엇이 진리인가 진리는첫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는 진리입니다. 요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6절에, "아 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와 양 심의 억압과 정죄,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케 해 주시는 진리이십니다.둘째,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119: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 의 말씀,아버지의 숨,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이 66권 성경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이 말씀을 듣지 않고 읽지 않고 이 말씀을 생각하지 않고는 아무도 거룩하게 될수 없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리입니다. 갈2:5,14에 "복음의 진리"라고 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것이 곧 복음이요 진리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진리입니다. 요14:17에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성령께서 저희와 함께 거하시며 저희 안에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성령님은 영원하신 진리입니다. 그 하나님 의 말씀,복음의 말씀이 또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가 새로 생긴다거나 변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또 이 진리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말못하는 어떤 비인격체가 아닙니다. 이미 있는 진리라고 해서 옛날에 있다가 지금은 골동품이 된 어떤 철학이론이라는게 아닙니다. 이 진리는 예부터 계셨고,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계실 영원히 살아있는 진리입니다. 우리속에 역사하고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우리를 살리는 살아 있는 진리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를 사랑하세요. 예수의 말씀을 따 르세요. 그렇게 하시면 여러분은 심판에서 자유를 얻으며, 죄로부터 거룩하게 되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동행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이 진리위에 굳게 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이제 순교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말 이 잇습니다. 말하자면 유언입니다. 베드로는 다른 것을 말할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있는 진리,그 진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쓴다는 것입니다. (3장
1,2절에도). 왜 이 진리를 항상 생각하고,일깨워 생각하고 필요할 때마다 생각하고 기억하라는 것입니까 2:1절-민간에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이제 계속하여 거짓선생들이 있 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태선의 전도관,문선명의 통일교,조셉 스미스의 몰몬교,럿 셀의 여호와 증인,엘렌 지 화잇트의 안식교,정명석의 장막교회 저들은 어떻게 합니까 1절하,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합니다. 진리이신 주님을 부인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2절,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이단들이 들끌으면 진리의 도가 얼마 나 훼방을 받습니까 저 태산금고 옆에 어떤 가게 주인에게 전도했더니 좀 받아들 이는가 싶더니 도무지 생떼를 씁니다. 알고보니 통일교에 예날에 몇달동안 다니며 원리강론을 들었다는 얘기. 그 원리강론의 입장에서 창세기를 보니 창세기에서 말 하는 죄가 눈에 않보이고 성경이 말하는 죄로부터 인생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눈에 않보이게 됩니다. 진리의 도가 방해를 받습니다. 살후2:12에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와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개가 똥을 좋와하듯이 멸망하는 자들은 진리다,하나님이다,예수님이다 하면 인상을 지푸리나, 불의는 매우 좋와합니다. 딤후 4:4 "진리에서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을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기성교회보다는 무언가 새로운 말을 하는것같은 이단자들에게로 가는 심령들 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 보면 대개 열심입니다. 그래서 많이 배웁니다.
그러나 배운 결과가 어떻습니까 딤후3:7에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진리를 듣고 진리를 믿고 진리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위에 서기 바랍니다. 나아가 이 진리를 생각하기 바랍니다. 생각하되 깊이 생각하는 것을 바로 묵상이 라 합니다. 우리 신앙선배들은 다 진리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 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그 율 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항상 생각하고 깊이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못있는지 모릅니다. 그 건강 미넘치는 근육을 한 사나이가 깊은 고독속에 잠긴 모습은 참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그런데 어떤 세상일 고민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윗이 그런 분이었습니다. 양떼를 치면서 험준한 길을 지나 기름진 꼴이 잇는 푸 른 언덕으로 양떼를 인도하고 사나운 맹수들로 부터 양떼를 지키는일을 하던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묵상하던 중 바로 여호와게서 그 자신의 목자이심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시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노래 했습니다. 그는 깊은 밤중에도 하나님을 묵상햇습니다.시63:5,6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 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 음이라" 그는 깜감한 밤중에 침상에서 주님의 도움,주님의 사랑을 곰곰히 생각하며 음미했 습니다. 그랫더니 가슴이 뜨거워 집니다. 나같은 미련하고 부족한 것 사랑해 주시 고 구원해 주시고 인도해 주신 은헤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찬송이 그 입술에서 감사나옵니다." 지금가지 지내 온것 주의 크신은혜라." 어떤 목사님은 하루 일과를 마칠 때마다 5분간씩 예수님의 일생을 목상 하시는데 그 시간이야 말로 가장 축복된 시간이라 합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위로를 얻습니다.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얻게 됩니다. 거룩한 심령이 됩니다. 좋은 생각은 좋은 정신을 가져오고 좋은 정신은 좋은 삶을 가져오게 합니다. 가장 좋은 생각은 곧 진리,이미 있는 진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생각하고 잊어졌 을 때는 다시 일깨워 생각하십시오. 어려운 일 만났을 때, 시험을 당할 때, 유혹을 만났을 때 이 진리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숨질 때 이 진리를 생각하시 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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