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험 (벧전4:12-19)
본문
베드로전서는 고난과 핍박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지는 서신 처 럼 전체 주제가 고난을 당할 때에 성도가 취해야 할 요건에 대해서 말씀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작고 하신 김 경래 장로님은 희극은 비극에 믿음 을 프러스 한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 괴로움과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치 선원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광풍입니다. 그러나 물결이 없으면 항해를 할수 없는 것 같이 예수 믿는 성도가 아무 근심과 걱정없이 살았다는 것은 큰 거짓말이거나 믿음이 죽었거나 둘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 전서를 통하여 성도의 고난을 송두 리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6-8절은 고난의 전체를 이야기 하고 있는 총론이라면 여러가지 시험에 대해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11-4:6절 까지는 여러가지 고난에 대하여 구체적 상황을 말하는 고난의 각론입니다.나라의 고난,주인이 주는 곤난,불신 배우자의 핍박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하는 것은 새로운 주제를 시작 할 때 흔히들 쓰는 서두 입니다. 그러나 주제가 고난에 대 해서 또 다루고 있는 재론입니다. 왜 지금 왜 지금 까지 장황하게 고난 에 대해서 설명했음에도 불구 하고 다시 언급을 할까요 그것은 신앙에서 고난을 극복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 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할때 가장 중요 한 것이 무엇입니까 안전입니다. 그렇기 ' 때문에 안전 운행을 하라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당부하고 다시 당부하는 것은 안전입니다. 그와 같이 신앙생활도 고난을 극복하는 문제가 신 앙의 성패를 좌우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변함없이 우리에게 대답합니다. 시대가 변 해도 하나님의 대답은 동일 합니다. 성경의 대답은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 세상의 유행은 어떠 합니까 하루가 멀다하고 변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원 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총 론에서도 말씀하셨듯이 다시금 말하는 내용은 고난을 즐거워 하라는 것 이 고난에 관한 기본 태도는 변 하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때에 그러한 것 같이 지금도 예수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는 것 입니다. 아니 진정 우리가 예수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하면 성령께서 우리들을 그냥 고통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감당할 능력을 주실것이요 고난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 으로 버틸수 있는 힘을 주실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불과 같은 시련 이 닥쳐올때 성도들이 어떤 태도로 대해야 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1.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닥치는데 즐거워 하다니요 그러나 성경은 거짓말 같은 진리입니다. 이론은 불가능 할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도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실천 하므로 진리인 것을 증명 해보이는 것이 성도입니다.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여러가지 시련을 만나거든 즐거워 하고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더우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을 기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천천히 13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기쁨이 오지 않고 즐겁지가 않고 짜증이 난다면 지금 나의 심령이 성령 의 완전히 장악 당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 올시다. 대체로 불과 같은 시 련이 닥칠 때에 대개 어떤 생각이 우리를 사로 잡습니까
1)불시험 당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견디기어려운 시험이 닥치면 의혹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 셨는가 하나님은 지금 과연 살아 게셔서 나의 이 고난을 보고 계실까 이상히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나의 불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 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이면 접니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 할수는 없습니까 많고 많은 사람중에 하필이면 나만은 하나님의 관심이 특별하시기 때문에 범죄 하는 것을 그냥보고 넘기시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시련을 허락 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련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인생 훈련이라고 생각 하십시요. 만일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다고 생각 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메달리 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 성도들에게는 성도에게 합당한 시련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 임금의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 시험 을 만났습니다. 다니엘은 불시험당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아니하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칠즈음에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어 이렇게 응답 했 습니다. 단 9:23절에 말씀하시기를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 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 다 듣고 계십니다. 시험 당할 때에 낙심하고 포기 하지 마십시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립십시요. 장교 훈련은 사병훈련과 다릅니다. 훈련 뒤에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장교훈련을 받은 사람은 장교가 되고 사병훈련을 받은 사람은 사병으로 복무하기 마련입니다. 장교 훈련받은 사람이 사병훈련보다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성도의 시련이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십시오. 모두다 이 믿음의 시련을 너끈히 이겨냈습니다.
2'장차 우리를 그의 영광의 날에 기뻐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군천사와 함께 호령소리와 함께 오실때 우리가 영광중에 주를 영접하기 위한 이 땅에서 훈련이 시련이 올시다. 저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13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이땅에서도 고난은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고린도 교회에 바울은 이렇 게 권면 하고 있습니다. 고후 1:5-7절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넘치는도다'6'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 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 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이상하게 고난뒤에 위로가 남아 있습디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잘모르겠 습니다만 저는 고난뒤에 하나님의 위로 따른다고 복음이 전파 되는 곳에 이 사실을 함께 전하렵니다.
2.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입니다. 욕먹고 손가질을 당하는 사람을 복있는 자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 먹으면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분의 인격을 말합니다. 예수의 인격으로 욕 을 먹는 것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완전히 장악하는 인격 이 되어서 고난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 이름으로 고난받으면 복이 됩니까
1'하나님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자위에 함께 하시 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어떻게 고난을 견뎠을까 의문이 갑니다. 바울도, 스태반 도, 길선주 목사님도, 다 하나님의 영이 위에서 지켜 주셨기 때문에 담대 하게 예수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신 것입니다. 본문 14절 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성령이 영광의 영으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14절말씀에 서 성령이 영광의 영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그는 성령입니다. 성령은 반드시 그 영이 충만한 사람을 영광의 온통 둘러 살것입니다.
2'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개 고난 당하면 매우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 받으면 부끄러워 말고 당당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을 읽어 봅 시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를 당하다가 챙피를 부끄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26 읽어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쉬운 말로 하면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서 숨기면 예수님도 하나님 아 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워하겠다는 말입니다. 빌립보 1:20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 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그리스도인의 각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 나타내기를 부끄러하지 않고 그분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점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 실수 허물로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주는 고난까지도 주를 위 한 고난으로 오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악행으로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고난 받는다고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돌아 가셨다 아는 것은 아무른 힘이 없습니다. 알고 믿는 행동이 따를 때에 힘이 생기고 기적과 표적이 나타 납니다. 요한 복음 9장에 소경과 예수의 관계가 점차로 진전 되어 갑니다. 유명한 선생으로 알고 메시야로 말고 나의 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출교가 두려워서 과감히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경이 예수는 나의 메시야 그리스도로 믿었을 때에 그 소경은 담대히 유대의 출교 따위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쫒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당하는 고통이 예수 이름으로 당하는 내 몫의 십자가의 무게입니까 아니면 잘못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입니 까 징계라면 하루 속히 잘못을 회개하고 주께로 늦기 전에 돌아 갑시다.왜 우리가 빨리 주께로 더돌아 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합니까예수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욕을 먹 고 살면는 분명히 師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구원과 함께 이미 시작 되었다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심판 할 때가 이미 시작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이 마지막 때인것을 알려 주면서 두 가지를 경고 하고 있습니다.
1'순종치 않은 자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깨어서 알지 못해서, 알기는 알지만 이상하게 믿기지지않는 영혼 들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 할 때 입니다.그저 안일 하게 어떻게 되 겠지 하면서 설마 설마 하는 동안 심판의 때가 옵니다. 지금은 심판의 때가 도래 했지만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돌아 설수 있지만 하나님 의 백보좌 심판이 이루어 지면 왕래가 불가능 합니다. 또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만 영혼 구원이 가능합니다.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면 불가능합니다. 저 죽어 있는 영혼을 지금 기도하고 안타까워 하며 구속주인 예수 께 부탁하지않으렵니까 성령이 잠자는 내 영혼을 깨워달라고 메달리시 기 바랍니다.
2'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는 다면 경건치 않는 자의 최후의 구원의 모 습이 어떠 할까요 18절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 요" 베드로는 잠언 11:31절을 인용하여 우리에게 경고 하고 있습니다.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 요"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한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뜨오릅니다. 바라기는 제발 여기에 있는 식구들을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빠져 드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0:31절에"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 울진저"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주일 낮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되고 하나님의 자녀된것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아니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의 좁은 길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걸어가신길을 우리는 내 좀 불편하다고 벗어 버리지는 않았 습니까 로마서 9:6절에는 바울이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 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교회에 등록 교인 되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자만 하지마십시 요 경건 하고 의롭게 산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은 아닙니다.
결론으로 베드로는 오늘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본문 1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 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지금 까지 잠들었던 우리 영혼을 성령님께 부탁하고 맡기는 여러분이 되 시기를 바랍니다.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간절히 속삭이고 있습니다. 시편31:5절에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오늘 이 시간 다윗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닥치는데 즐거워 하다니요 그러나 성경은 거짓말 같은 진리입니다. 이론은 불가능 할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도라고 하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실천 하므로 진리인 것을 증명 해보이는 것이 성도입니다.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여러가지 시련을 만나거든 즐거워 하고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더우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을 기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천천히 13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기쁨이 오지 않고 즐겁지가 않고 짜증이 난다면 지금 나의 심령이 성령 의 완전히 장악 당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 올시다. 대체로 불과 같은 시 련이 닥칠 때에 대개 어떤 생각이 우리를 사로 잡습니까
1)불시험 당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견디기어려운 시험이 닥치면 의혹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 셨는가 하나님은 지금 과연 살아 게셔서 나의 이 고난을 보고 계실까 이상히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나의 불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 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이면 접니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 할수는 없습니까 많고 많은 사람중에 하필이면 나만은 하나님의 관심이 특별하시기 때문에 범죄 하는 것을 그냥보고 넘기시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시련을 허락 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련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인생 훈련이라고 생각 하십시요. 만일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다고 생각 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메달리 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 성도들에게는 성도에게 합당한 시련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 임금의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 시험 을 만났습니다. 다니엘은 불시험당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아니하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칠즈음에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어 이렇게 응답 했 습니다. 단 9:23절에 말씀하시기를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 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찌니라" 다 듣고 계십니다. 시험 당할 때에 낙심하고 포기 하지 마십시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립십시요. 장교 훈련은 사병훈련과 다릅니다. 훈련 뒤에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장교훈련을 받은 사람은 장교가 되고 사병훈련을 받은 사람은 사병으로 복무하기 마련입니다. 장교 훈련받은 사람이 사병훈련보다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성도의 시련이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십시오. 모두다 이 믿음의 시련을 너끈히 이겨냈습니다.
2'장차 우리를 그의 영광의 날에 기뻐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군천사와 함께 호령소리와 함께 오실때 우리가 영광중에 주를 영접하기 위한 이 땅에서 훈련이 시련이 올시다. 저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13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이땅에서도 고난은 이상하게 위로가 됩니다. 고린도 교회에 바울은 이렇 게 권면 하고 있습니다. 고후 1:5-7절에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넘치는도다'6'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 이요 혹 위로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 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7'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이상하게 고난뒤에 위로가 남아 있습디다. 다른 사람의 경우는 잘모르겠 습니다만 저는 고난뒤에 하나님의 위로 따른다고 복음이 전파 되는 곳에 이 사실을 함께 전하렵니다.
2.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입니다. 욕먹고 손가질을 당하는 사람을 복있는 자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 먹으면 복있는 사람입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분의 인격을 말합니다. 예수의 인격으로 욕 을 먹는 것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완전히 장악하는 인격 이 되어서 고난을 받는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 이름으로 고난받으면 복이 됩니까
1'하나님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자위에 함께 하시 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어떻게 고난을 견뎠을까 의문이 갑니다. 바울도, 스태반 도, 길선주 목사님도, 다 하나님의 영이 위에서 지켜 주셨기 때문에 담대 하게 예수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신 것입니다. 본문 14절 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성령이 영광의 영으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14절말씀에 서 성령이 영광의 영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그는 성령입니다. 성령은 반드시 그 영이 충만한 사람을 영광의 온통 둘러 살것입니다.
2'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 받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개 고난 당하면 매우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 받으면 부끄러워 말고 당당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을 읽어 봅 시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를 당하다가 챙피를 부끄러워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26 읽어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쉬운 말로 하면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서 숨기면 예수님도 하나님 아 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워하겠다는 말입니다. 빌립보 1:20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 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그리스도인의 각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 나타내기를 부끄러하지 않고 그분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점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 실수 허물로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부끄러움을 주는 고난까지도 주를 위 한 고난으로 오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악행으로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 이름으로 고난 받는다고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하여 돌아 가셨다 아는 것은 아무른 힘이 없습니다. 알고 믿는 행동이 따를 때에 힘이 생기고 기적과 표적이 나타 납니다. 요한 복음 9장에 소경과 예수의 관계가 점차로 진전 되어 갑니다. 유명한 선생으로 알고 메시야로 말고 나의 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출교가 두려워서 과감히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경이 예수는 나의 메시야 그리스도로 믿었을 때에 그 소경은 담대히 유대의 출교 따위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쫒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당하는 고통이 예수 이름으로 당하는 내 몫의 십자가의 무게입니까 아니면 잘못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입니 까 징계라면 하루 속히 잘못을 회개하고 주께로 늦기 전에 돌아 갑시다.왜 우리가 빨리 주께로 더돌아 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합니까예수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욕을 먹 고 살면는 분명히 師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구원과 함께 이미 시작 되었다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심판 할 때가 이미 시작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이 마지막 때인것을 알려 주면서 두 가지를 경고 하고 있습니다.
1'순종치 않은 자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깨어서 알지 못해서, 알기는 알지만 이상하게 믿기지지않는 영혼 들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 할 때 입니다.그저 안일 하게 어떻게 되 겠지 하면서 설마 설마 하는 동안 심판의 때가 옵니다. 지금은 심판의 때가 도래 했지만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돌아 설수 있지만 하나님 의 백보좌 심판이 이루어 지면 왕래가 불가능 합니다. 또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만 영혼 구원이 가능합니다. 영혼이 육신을 벗어나면 불가능합니다. 저 죽어 있는 영혼을 지금 기도하고 안타까워 하며 구속주인 예수 께 부탁하지않으렵니까 성령이 잠자는 내 영혼을 깨워달라고 메달리시 기 바랍니다.
2'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는 다면 경건치 않는 자의 최후의 구원의 모 습이 어떠 할까요 18절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 요" 베드로는 잠언 11:31절을 인용하여 우리에게 경고 하고 있습니다.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 요"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한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뜨오릅니다. 바라기는 제발 여기에 있는 식구들을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빠져 드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0:31절에"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 울진저"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주일 낮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되고 하나님의 자녀된것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요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아니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의 좁은 길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걸어가신길을 우리는 내 좀 불편하다고 벗어 버리지는 않았 습니까 로마서 9:6절에는 바울이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 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교회에 등록 교인 되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자만 하지마십시 요 경건 하고 의롭게 산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은 아닙니다.
결론으로 베드로는 오늘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본문 1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 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지금 까지 잠들었던 우리 영혼을 성령님께 부탁하고 맡기는 여러분이 되 시기를 바랍니다.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간절히 속삭이고 있습니다. 시편31:5절에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오늘 이 시간 다윗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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