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당신은 종말의 비밀을 아십니까? (창6:1-22)

본문

당신의 종말은 준비되었습니까 역사는 사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으나 생명과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세속사관과 구속사관으로 나누어집니다. 세속사관은 죄로 오염된 죽음의 역사이고(창세기5장), 구속역사는 영생으로 나아가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세인들이 말하는 세속역사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시무종의 윤회성을 주장하나 믿음의 사람들이 보는 구속역사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창조와 종말이 있는 역사입니다. 세속사관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인간이멸망으로 가는 어두움의 역사인데 이 어두움의 역사를 밝히기 위해서 역사(history)의 주인(He is story)되신 주님(Lord = Jesus christ)이 이 땅에 오셨는데 이것이 구원역사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구원사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계시의 책입니다. 성경에는 세가지 유형의 종말론이 나와 있습니다. 인간 개개인이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개인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또한 노아시대나 소돔 고모라 같이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가 몰락하는 시대적인 종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 최후에 재림의 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우주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당신의 종말은 준비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노아의 세대를 통해 우리의 세대가 어떠함을 깨닫아야 합니다. 노아가 그 시대에 감당한 사명이 이 시대를 사는 성도가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노아가 만든 방주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지상교회입니다. 방주 밖에서 멸망을 받았던 것처럼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면 노아 홍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비밀한 계시가 무엇인가 오늘은 그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노아의 시대가 바로 우리의 시대입니다. 노아의 시대는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세기 6:2)고 했습니다. 노아의 시대가 병들게 된 것은 인간의 중심축인 하나님을 떠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인간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정욕대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신의 욕망에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된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는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내피림의 시대입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세기6:4절)고 했습니다. 네피림이란 “떨어지다”란 의미를 가진 말로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사단의 지배 아래 들어간 자들을 말합니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과 재능이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악한 사단의 지배 아래 있으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예수를 모시고 하나님 중심으로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노아의 시대는 죄악이 관영한 시대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5절)고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사단이 그를 지배하므로 자연히 세상풍습을 좇게 되고 금수와 버러지 형상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로 타락하게 됩니다(로마서1:21-23) 노아의 세대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사단은 오늘도 우리 중에 역사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합니다(에베소서2:1-2) 우리가 고장난 제품을 수리할 때는 만든 공장의 써비스센타로 가야합니다. 현대자동차가 고장난 것은 현대 정비공장으로 가야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된 인간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세운 영적인 정비공장인 교회로 나오셔야 치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빛 되신 하나님을 등진 인생은 자연히 어두움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목자의 지팡이를 벗어난 양은 이리의 밥이 되고, 주인의 장중에서 떨어진 드라크마는 어두움에서 녹슬게 되고,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는 돼지 인생으로 주려 죽게 됩니다. 당신은 지금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마태복음11;28-30).이 땅 위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은 하나님 품을 떠난 인간입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는 당신을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고린도전서5:17).
둘째:노아의 사명이 곧 성도의 사명입니다. 노아는 그 시대의 사명자였습니다. “라멕은 일백팔십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창세기 5:28-29)고 했습니다. 노아란 말의 뜻이 위로와 안식이란 말입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그 시대를 구원할 사명자였습니다. 그가 120년간 방주를 지으면서 전도했으나 자기 가족 외는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노아는 전도의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를 말씀의 준행한 자라고 합니다(창세기 6:22). 우리의 사명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요 그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세기6:8)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고 했습니다. 은혜의 자루 안에는 영적인 아름다운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음 같이 성도는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노아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9절)고 했습니다. 이 땅 위에 의인이나 완전한 자나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자가 있는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노아는 그러한 삶을 살았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스가랴 4:6)고 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4:13)고 했습니다. 4세기 중엽 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어느 주교가 황제의 명을 거역하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황제가 “이를 아무도 없는 독수공방에 가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신하가 “폐하 아무도 없으면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에 그 보다 좋은 특혜가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그러면 죄수들이 있는 감옥에 가두라”고 했습니다. 이번엔 신하가 “폐하 그가 전도를 하기 때문에 옥중 죄수가 전부가 크리스찬이 됩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화가 나서 “그러면 목을 쳐라”고 했습니다. 그때 신하는 “폐하 순교는 기독교인에게 최고의 상급이고 영광입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세상이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고 했습니다.
셋째:노아방주는 오늘날 지상교회입니다. 노아가 지은 방주는 오실 메시야의 표상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세기 6:13)고 했습니다.방주가 아니고는 홍수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예수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요한복음14:6, 사도행전 4:12). 노아가 만든 방주의 제도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입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간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세기6:14-16)고 했습니다. 방주의 재료인 잣나무는 상록수 교목으로 곧고, 푸르고, 생명력이 강한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특히 물에 강해 심판을 이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고린도전서 15:57). 방주 내부에 간들을 막은 것은 서로 다른 종류의 생활양식을 인정하는 교회 안의 여러 사역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3:33). 역청은 물이 들어옴을 막는 진흙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상징입니다(출애굽기2:3, 히브리서 9:21-22). 장,광,고의 엄격한 규격과 제도는 더하고 덜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의 상징입니다(창세기 6:22, 7:5).창은 방주 안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칠 날만 바라보도록 위에 두신 것입니다. 나그네 같은 성도의 소망은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천국뿐입니다. 그러면 방주를 지으신 목적이 무엇인가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쌍식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창세기 6:19)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방주를 통해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방주는 창조질서를 보호하고 새생명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호하고 그 생명을 보존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질서를 훼손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그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는 영적인 보류입니다. 하나님은 부패하고 타락한 무리들 가운데서도 시대 시대마다 거룩한 그루터기를 붙들고 역사하신 것입니다. 노아와 그 여덟 식구는 타락한 세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세대를 여는 영적인 그루터기입니다. 밀알제단은 이 시대를 열어가는 영적인 그루터기이며 당신은 이 시대의 사명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성도에게 주신 영적인 거울입니다. 성경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지 못하는 자는 영적인 소경인 것입니다. 주님의 지상최후 명령은 당신의 최초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립보서 1:20-21)고 했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