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합2:4-11,약1:12-15)
본문
하박국서 2장 5절 이하를 다른 번역으로 보겠습니다. "도둑에게, 무엄한 폭군에게 '저주 있으라.' 그는 결코 취하지 않는 자로다! 그는 자기 목구멍을 저승처럼 크게 벌리고 죽은 자처럼 먹어도 먹어도 성에 차지 않는도다! " 2:5 "제 이익을 위해 남을 등쳐먹는 자에게 저주 있으라. 그는 재앙의 손 길을 피하기 위해 자기 집에 악을 뿌리는도다. 자기 둥지를 높은 곳에 트는도다! 너는 네 집에 수치를 불러왔다. 네가 뭇 민족들을 멸망시켰 고 네 영혼이 죄를 받게 되었도다." 2:10 또 오바댜서 1장 3절 이하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바위틈에 둥지를 틀고, 높은 곳에 집을 지어 놓고는, '누가 나 를 땅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으랴'하고 마음 속으로 말하지만, 너의 교만이 너를 속이고 있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꾸민 다 하여도, 네가 별들 사이에 둥지를 튼다 하여도, 내가 너를 거기에서 ' 끌어내리고야 말겠다. 나 주의 말이다." 오바댜 1:3-4 이 말씀들에서 보는 대로 끝없는 욕망으로 남을 등쳐먹는 자에게 저주를 선포하며, 별들 사이에 둥지를 틀어 교만하게 거하는 자를 거기에서 끌어 내리고야 말겠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결국 욕망으로 자 신의 배를 불리면서,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는 그를 끌어내리어 추락(墜落)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결국 깊은 나락(奈落)으로 추락하게 하셔서 그의 공의로운 심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것은 이문열의 소설 제목입니다. 저는 아직 이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두 남녀 주인공의 무절제한 사랑과 파 멸의 과정을 그린 통속적인 소설이라고 합니다. 이 제목의 뜻은, 사람이 추락하지 않을 날개가 있음에도 추락하는 것은 인간이 타락하였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 소설 제목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그 것은 "무절제"와 "추락"은 필연적인 관계임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날개 가 없다"는 것은 절제할 줄 모름을 뜻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의 뜻이라고 봅니다. 날개를 잃어버린 사회 전직 대통령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중 뇌물을 받았 다는 죄목으로 구속 수감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이 소설 제목이 여기에 꼭 맞는 격언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런 제동장치도 없이 끝없이 추락하는 한 인간의 초라한 말로를 보면 서 무절제한 탐욕의 결과를 새삼 실감케 됩니다." 우리는 우리 나라의 최근세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무절제함으로 추 락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이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모 든 민족을 사로잡으려고" 끝없는 침략전을 펼쳤지만, 결국 원폭 세례를 받 으면서 추락하는 것을 보았고,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이 끝없는 정권 욕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았으며,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며 세워진 전두 환 정권 역시 볼품없게 추락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았으며, 이제 우리로 무절제한 욕망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나게 깨닫게 하면서 추락한 노태우씨 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추락하는 것은, 노태우씨만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추락 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대선 자금을 한푼도 안 받았다는 김영삼 대통령 이나 적에게서 20억을 받았다는 김대중씨나 그리고 그 판에서 서로 치고 받는 정당들 모두가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을 균형 잡아 줄 '날개' 가 없기에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정치권 뿐이겠습니까 균형 감각을 잃기는 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니 겠습니까 도대체 절제할 줄 모르고 먹어대고, 마구 사 들이고, 겁없이 쓰 고, 마구 버리고, 마구 놀아 대는 우리의 사회가 전체적으로 날개가 떨어 져 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날개가 없으면 균형 감각을 잃고 떨어지게 마 련입니다. 비행기가 떨어지고, 기차가 전복되고, 배가 뒤집어지며,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화려한 백화점 건물이 폭삭 주저앉으며, 난데없이 가스가 폭발하는 일이 모두 날개가 없어 추락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요 한국일보 11월 17일자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캘빈 클라인 청바지에 구치 핸드백을 맨 앳된 소녀 5명이 서울 특급호텔의 디스코텍에 들어선다. 아직 미성년자로 보이는 이들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발렌타인 2
1' 위스키와 과일 한 접시를 주문한다. 아버지가 전자부품업체 사장이라고 밝힌 한 소녀는 불과 3시간 만에 술값 50여만원을 쓰고도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온 웨이터에게 팁 2만원을 아무렇지 않게 쥐어 준다."
미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위크'는 최근호(20일자)에서 서울의 고 급 유흥업소와 압구정동의 로데오 거리에서 벌어지는 과소비 실태를 소개하고 이같은 행태가 세대간 괴리뿐 아니라 정부 당국자들의 우 려를 낳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에 보니까, 11월 1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최근의 민간소비 행태 변화 분석'에 따르면, 지난 71년부터 88년까지 연평균 민간 소비 증 가율은 6.9%로 연평균 국민총생산 성장률 8.6%를 밑돌았는데, 89년부터 95 년(2/4분기)까지는 민간 소비 증가율이 8.5%로 국민총생산 증가율 7.7%를 크게 웃돌았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80년대 들어 계속 하락세를 보였던 민 간소비율(국민총생산 대비 민간 소비)도 89년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88년 51.7%에서 94년에는 54.6%로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가계의 소비행태에도 `고급화'의 바람이 불어, 소득 수준이 낮았을 때는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육류, 침구, 광열수도, 보건의료용품 등 선택적 소 비 품목들이 소득 수준 향상과 함께 필수 소비 품목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서는 도시 근로자의 주요 소비 품목 44개 가운데 80년대 초 반에는 필수 소비 품목이 20개에 불과했으나 90년대 들어 31개로 늘어났다 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식생활 수준 향상과 함께 외식비가 식료품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년 4.1%에서 94년에는 30.5%로 크게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흥오락 서비스 가운데 경마장 매출액은 올 상반기 에 1조6백61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25.9%(2천1백92억원)가 늘어났고, 골 프장 입장객수는 3백27만2천명으로 12.7%(36만8천명)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은 승용차의 경우 올 상반기 중에 1억1천9백만 달 러로 작년 동기보다 196%(7천9백만 달러), 음료 및 주류는 7천5백만 달러 로 81.3%(3천4백만 달러)가 각각 늘어나 증가세가 두드러졌습니다. 모피 의류도 1천1백만 달러 어치가 수입돼 작년 동기보다 76.6%(5백만 달러), 화장품은 1억9백만 달러로 68.0%(4천4백만 달러), 의류는 3억9천만 달러로 67.1%(1억5천7백만 달러)가 각각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 수치는 우리 사회가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무절제하게 소비 하고 사치하며 향락에 몰입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날개를 잃어버리 고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 야고보서에 이미 일찍이 인간의 욕심에 대해 좋은 경고가 실려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인간의 절제할 줄 모르는 끝없는 욕망으로 죄가 시작되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한 구절은 인간의 타락의 역사를 집약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의 역사는 탐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던 아담과 하와가 왜 하필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을까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유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을 텐데,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유를 탐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을 뛰어넘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탐 욕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요, 하나님을 적대하는 행위입니다. 탐욕이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한계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결국 인간은 탐욕의 노 예가 되어 버려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저들은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탐욕스러운 추구에 방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은 한계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떠나므로 그 제 한을 깨어 버린 것입니다. 가져도 가져도 끝이 없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자기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지고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이 욕망의 속성입니다. 결국 그것은 필연적으로 파멸을 자초하게 마련입니다. 인간이 제한적인 존재임을 잊어버리고 무제한적으로 욕망을 채운다는 것은 고무풍선에 끝없이 바람을 불어넣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는 터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면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말씀 은, 하나님이 벌(罰)로써 죽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자초할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사실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인간은 끝없이 욕망 을 추구하다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 시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달아 주시는 날개 하나님은 이렇게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인간의 삶 을 시작하도록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시내 산에서 계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던 것입니다. 율법이란 인간의 탐 욕의 정체를 밝히면서 거기에 제동을 거는 장치입니다.
인간이 탐욕을 벗 어나려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율법은 규 정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자기 한계를 깨닫게 되 고, 욕망의 추구를 멈추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남에 서 비로소 진정으로 그들이 추구하여야 할 것이 하나님 안에만 있다는 사 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은 우리 에게 날개를 달아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의 날개를 달아 주시어, 균형 있는 삶을, 절제할 줄 아는 삶을 이루어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정신없이 추락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향하여 경고를 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 무절제하게 탐욕을 좇아 생활 할 때가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절제하며 절약하며 검소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여야 할 때임을 알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이 먼저 절제의 생활의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자체가 너무 낭비가 심하고 절제할 줄 모르는 삶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장로님의 생활신조 즉 필요 이상의 것을 쓰지 않으며, 사치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 에 절제한다는 신조를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이제부터라도 모든 일에 절제할 줄 아는 삶을 시작하여야 하겠습니다. 사회의 탐욕은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유행에 민감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더욱 확장할 것인가를 생각하여 나갈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검소한 생활과 바른 신앙의 자세를 심어 주어야 하 겠습니다. 젊은이들의 삶이 절제할 줄 모르고 본능대로 행동하며, 유행을 좇아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도 결국 이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교육하였 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 자녀들을 무절제하게 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의 자녀들에게 균형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절제의 날개를 달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필수적인 삶의 덕목으로서의 절제 절제하는 신앙은 하나의 막연한 관념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 로 우리의 삶에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청교도적인 경건과 절제 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는 우리 교회가 이 사회의 무절제한 행진을 제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절제하는 생활은 생명 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브레이크와 같은 것입니다. 브 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찬가 지로 절제는 이 사회의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 이 사회는 죽음으로 치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우리 믿는 이들에게 있 어서 절제의 생활은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해도 좋고 아니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절제 생활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셨는데, 우리 자신이 이 땅의 것에 얽 매어 절제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모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라고 하였 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죽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 서 사도 바울은 돈을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경고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 악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6:11)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일에 대해서는 절제 하면서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할 사람들입니다. 의와 경건과 절제와 인내 로 무장을 하고, 오늘 이 탐욕으로 끝간데 없이 치닫고 있는 이 사회를 바 로 잡고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켜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역사를 통하여 교훈하고 경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늘 꼭대기에 오른 것 같이 착각하였던 전직 대통령 을 차디찬 감방까지 추락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제의 삶이야말로 생명에 이르는 길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고 교훈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이요, 경고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잃어버린 날개를 다시 찾아 달고, 균형을 잡고 날아올라야 하겠습니다. 지저분한 이 땅의 삶에서 벗어나 진실과 사랑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절제하는 생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실현시켜 나갑시다. 경건한 삶을 통해 이 사회에 본을 보입시다. 우리가 거창한 구호를 외치는 대신에 지극 히 작은 일에서부터 검소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보이므로 오늘 우리의 신앙 의 열매들을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절제하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더욱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의 뜻이라고 봅니다. 날개를 잃어버린 사회 전직 대통령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중 뇌물을 받았 다는 죄목으로 구속 수감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이 소설 제목이 여기에 꼭 맞는 격언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런 제동장치도 없이 끝없이 추락하는 한 인간의 초라한 말로를 보면 서 무절제한 탐욕의 결과를 새삼 실감케 됩니다." 우리는 우리 나라의 최근세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무절제함으로 추 락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군국주의 일본이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모 든 민족을 사로잡으려고" 끝없는 침략전을 펼쳤지만, 결국 원폭 세례를 받 으면서 추락하는 것을 보았고,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이 끝없는 정권 욕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았으며,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며 세워진 전두 환 정권 역시 볼품없게 추락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았으며, 이제 우리로 무절제한 욕망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나게 깨닫게 하면서 추락한 노태우씨 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추락하는 것은, 노태우씨만이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추락 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대선 자금을 한푼도 안 받았다는 김영삼 대통령 이나 적에게서 20억을 받았다는 김대중씨나 그리고 그 판에서 서로 치고 받는 정당들 모두가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들을 균형 잡아 줄 '날개' 가 없기에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정치권 뿐이겠습니까 균형 감각을 잃기는 우리들도 마찬가지 아니 겠습니까 도대체 절제할 줄 모르고 먹어대고, 마구 사 들이고, 겁없이 쓰 고, 마구 버리고, 마구 놀아 대는 우리의 사회가 전체적으로 날개가 떨어 져 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날개가 없으면 균형 감각을 잃고 떨어지게 마 련입니다. 비행기가 떨어지고, 기차가 전복되고, 배가 뒤집어지며,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화려한 백화점 건물이 폭삭 주저앉으며, 난데없이 가스가 폭발하는 일이 모두 날개가 없어 추락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요 한국일보 11월 17일자 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캘빈 클라인 청바지에 구치 핸드백을 맨 앳된 소녀 5명이 서울 특급호텔의 디스코텍에 들어선다. 아직 미성년자로 보이는 이들은 테이블에 앉자마자 '발렌타인 2
1' 위스키와 과일 한 접시를 주문한다. 아버지가 전자부품업체 사장이라고 밝힌 한 소녀는 불과 3시간 만에 술값 50여만원을 쓰고도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온 웨이터에게 팁 2만원을 아무렇지 않게 쥐어 준다."
미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위크'는 최근호(20일자)에서 서울의 고 급 유흥업소와 압구정동의 로데오 거리에서 벌어지는 과소비 실태를 소개하고 이같은 행태가 세대간 괴리뿐 아니라 정부 당국자들의 우 려를 낳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신문'에 보니까, 11월 1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최근의 민간소비 행태 변화 분석'에 따르면, 지난 71년부터 88년까지 연평균 민간 소비 증 가율은 6.9%로 연평균 국민총생산 성장률 8.6%를 밑돌았는데, 89년부터 95 년(2/4분기)까지는 민간 소비 증가율이 8.5%로 국민총생산 증가율 7.7%를 크게 웃돌았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80년대 들어 계속 하락세를 보였던 민 간소비율(국민총생산 대비 민간 소비)도 89년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88년 51.7%에서 94년에는 54.6%로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가계의 소비행태에도 `고급화'의 바람이 불어, 소득 수준이 낮았을 때는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육류, 침구, 광열수도, 보건의료용품 등 선택적 소 비 품목들이 소득 수준 향상과 함께 필수 소비 품목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서는 도시 근로자의 주요 소비 품목 44개 가운데 80년대 초 반에는 필수 소비 품목이 20개에 불과했으나 90년대 들어 31개로 늘어났다 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식생활 수준 향상과 함께 외식비가 식료품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년 4.1%에서 94년에는 30.5%로 크게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유흥오락 서비스 가운데 경마장 매출액은 올 상반기 에 1조6백61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25.9%(2천1백92억원)가 늘어났고, 골 프장 입장객수는 3백27만2천명으로 12.7%(36만8천명)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은 승용차의 경우 올 상반기 중에 1억1천9백만 달 러로 작년 동기보다 196%(7천9백만 달러), 음료 및 주류는 7천5백만 달러 로 81.3%(3천4백만 달러)가 각각 늘어나 증가세가 두드러졌습니다. 모피 의류도 1천1백만 달러 어치가 수입돼 작년 동기보다 76.6%(5백만 달러), 화장품은 1억9백만 달러로 68.0%(4천4백만 달러), 의류는 3억9천만 달러로 67.1%(1억5천7백만 달러)가 각각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 수치는 우리 사회가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무절제하게 소비 하고 사치하며 향락에 몰입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날개를 잃어버리 고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 야고보서에 이미 일찍이 인간의 욕심에 대해 좋은 경고가 실려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인간의 절제할 줄 모르는 끝없는 욕망으로 죄가 시작되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한 구절은 인간의 타락의 역사를 집약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의 역사는 탐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던 아담과 하와가 왜 하필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을까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자유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을 텐데,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유를 탐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을 뛰어넘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탐 욕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요, 하나님을 적대하는 행위입니다. 탐욕이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한계를 넘어서는 일입니다. 결국 인간은 탐욕의 노 예가 되어 버려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저들은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탐욕스러운 추구에 방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은 한계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떠나므로 그 제 한을 깨어 버린 것입니다. 가져도 가져도 끝이 없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자기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지고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이 욕망의 속성입니다. 결국 그것은 필연적으로 파멸을 자초하게 마련입니다. 인간이 제한적인 존재임을 잊어버리고 무제한적으로 욕망을 채운다는 것은 고무풍선에 끝없이 바람을 불어넣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는 터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으면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말씀 은, 하나님이 벌(罰)로써 죽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자초할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사실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인간은 끝없이 욕망 을 추구하다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 시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달아 주시는 날개 하나님은 이렇게 욕망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인간의 삶 을 시작하도록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시내 산에서 계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던 것입니다. 율법이란 인간의 탐 욕의 정체를 밝히면서 거기에 제동을 거는 장치입니다.
인간이 탐욕을 벗 어나려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율법은 규 정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소 자기 한계를 깨닫게 되 고, 욕망의 추구를 멈추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남에 서 비로소 진정으로 그들이 추구하여야 할 것이 하나님 안에만 있다는 사 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은 우리 에게 날개를 달아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의 날개를 달아 주시어, 균형 있는 삶을, 절제할 줄 아는 삶을 이루어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정신없이 추락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향하여 경고를 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 무절제하게 탐욕을 좇아 생활 할 때가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절제하며 절약하며 검소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여야 할 때임을 알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들이 먼저 절제의 생활의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자체가 너무 낭비가 심하고 절제할 줄 모르는 삶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장로님의 생활신조 즉 필요 이상의 것을 쓰지 않으며, 사치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 에 절제한다는 신조를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고 이제부터라도 모든 일에 절제할 줄 아는 삶을 시작하여야 하겠습니다. 사회의 탐욕은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유행에 민감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더욱 확장할 것인가를 생각하여 나갈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검소한 생활과 바른 신앙의 자세를 심어 주어야 하 겠습니다. 젊은이들의 삶이 절제할 줄 모르고 본능대로 행동하며, 유행을 좇아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도 결국 이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교육하였 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 자녀들을 무절제하게 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의 자녀들에게 균형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절제의 날개를 달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필수적인 삶의 덕목으로서의 절제 절제하는 신앙은 하나의 막연한 관념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 로 우리의 삶에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청교도적인 경건과 절제 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는 우리 교회가 이 사회의 무절제한 행진을 제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절제하는 생활은 생명 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브레이크와 같은 것입니다. 브 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찬가 지로 절제는 이 사회의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 이 사회는 죽음으로 치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우리 믿는 이들에게 있 어서 절제의 생활은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해도 좋고 아니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절제 생활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셨는데, 우리 자신이 이 땅의 것에 얽 매어 절제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모든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라고 하였 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죽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 서 사도 바울은 돈을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경고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이여, 그대는 이 악한 것들을 피하십시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6:11)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일에 대해서는 절제 하면서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할 사람들입니다. 의와 경건과 절제와 인내 로 무장을 하고, 오늘 이 탐욕으로 끝간데 없이 치닫고 있는 이 사회를 바 로 잡고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켜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역사를 통하여 교훈하고 경고 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늘 꼭대기에 오른 것 같이 착각하였던 전직 대통령 을 차디찬 감방까지 추락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제의 삶이야말로 생명에 이르는 길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고 교훈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이요, 경고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잃어버린 날개를 다시 찾아 달고, 균형을 잡고 날아올라야 하겠습니다. 지저분한 이 땅의 삶에서 벗어나 진실과 사랑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절제하는 생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실현시켜 나갑시다. 경건한 삶을 통해 이 사회에 본을 보입시다. 우리가 거창한 구호를 외치는 대신에 지극 히 작은 일에서부터 검소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보이므로 오늘 우리의 신앙 의 열매들을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절제하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더욱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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