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의 모습 (약1:19-27)
본문
며칠 전에 문집사님 부친 이장예배가 있었다.육신은 다 썩어 없어졌고 오직 뼈만 앙 상하게 남아 있었다.그리고 그 앞에서 과거의 모습을 그려보며 눈물흘리는 유족들의 모습을 보았다.이것이 사람의 정이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대부분 부모님이 돌 아가신 후에야 철들어서 효도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다.그래도 한국은 백년전아니 50년전만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빨리 늙기를 원하고 빨리 노인되기를 희망했던 유 일한 나라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종황제의 밀사노릇까지 했던 미국인 헐버트는 `이 세상에서 관습적인 노인복지가 가장 완벽하게 된 나라가 조선'이라 했고, 최초의 선 교사인 알렌도 `노인과 망인사이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즐거운 노인천국'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노인 천국의 증거로서 내 외국인이 써남긴 많은 문헌 가운데 몇가지만 제한해서 추려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문성이라 하여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에 잠들때 아들 며느리들로부터 문안 을 받는다.
둘째 햇과일이 나거나 별식이 새기면 반드시 노부모가 먼저 드신후에 입을댄다.
셋째 주부권을 상징하는 뒤주열쇠와 안방차지는 늙어 죽을 때까지 맏며느리에게 이양하지 않는다.
넷째 문중사람은 물론이요, 한 마을에 사는 남들일지라도 출타를 하거나 출타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마을 노인에게 인사를 드린다. 다섯째 길가다 노인을 만나면 말에서 내리거나 말을 타지 않았으면 걸음을 멎고 , 지나갈 때까지 두손들어 읍을 한다. 여섯째 마을에서 잔치가 있으면 아무 연고가 없더라도 반드시 마을 노인들을 모셔 다 상석에 앉혀 대접을 한다. 일곱째 마을에서 추렴해서 돼지나 소를 잡으면 배장이라 하여 그 내장을 마을의 노 인들에게 등분하여 보내드린다. 여덟째 부모가 늙으면 벼슬을 고향 가까이 옮겨주어 봉양케 하고 보다 늙으면 봉양 을 위해 유급휴직을 시켰다. 아홉째 회갑이 지나면 그 고을 현감이,고희가 지나면 감사가,백수가 지나면 임금님 이 춘추를 가려 주식과 옷을 내려 연치를 치하하였다. 동서고금에 이렇게 노인을 우대한 나라가 어디 또 있었는가 그 노인천국이 노인지옥으로 타락하고 만 것이다. 노부모 모시기가 힘겹다 하여 관광지에 유기하고 훌쩍 이민 떠나버리는 자식들이 있는가 하면, 병도 없는 노부모를 병원에 강제로입원시켜 몇달간이고 유기하는 신판 고려장이 예사로 자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이러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에게 주님은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르며 부탁하고 있다.
1. 사랑하는 형제들아 !(19-20).
1)듣기는 속히 하라(19):'듣는다'(헬=akouw:순종한다,깨닫는다)는 뜻으로 신자들이 듣는 귀는 있어 말씀을 듣기는 잘 하지만 순종하는 것은 더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가 의미하려는 것은 듣는 그 행위 자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들은 후에 깨닫고 순종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다.다윗은 겉으로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하는 사울왕에게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 이다"(삼상15:22-23).말씀을 들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다. 오죽하면 '한국은 기독교의 천국'이란 말이 나오는가.그러나 우리의 실생활에서 나는 얼마나 행동으로 말씀의 삶을 보이고 있는가 전주간 어떤 전도사님으로부터 이 층 교육관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그래서 유심히 살폈다.그러나 그때 뿐 여전하다. 문제는 이러한 기본기(인격적습관)가 습관으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말하기는 더디하라(19):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더디하라는 뜻이며 교회라는 공동의 연합체에서 자기의 어떤 사사로운 감정이나 뜻을 지나치게 주장하 지 말라는 뜻이다.특히 이 말씀은 교회의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모든 자들은 항상 말과 행동에 조심하라는 것이다(약3: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상대의 말을 바로 벧지말고 되새김하며 음 미하라는 것이다.
3)성내기를 더디하라(20):이 말은 단순한 화가 아니라 시기하고 미워하며 원수 갚 으려는 분노를 말한다.이것은 '복음의 의''사랑의 의'를,다시말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가로막는 방해가 되는 것이다.사람이 흔희 실수하는 경우는 감정이 표출되 었을 때(기분이 나쁠 때나 아주 기분이 좋을 때)이며 지적인 격차(만족도가 높을 때에나 가장 낮을 때)가 생겼을 때에 열등감이나 이를 감추기 위한 우월감으로 나 타난다.
그러므로 감정을 자신의 중심에 두지말고 예수 밑에 두라.마치 남이 나의 장난감을 부수면 곧장 아버지에게 달려가듯이 주님께 달려가라.만일 당신이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여 준다고 생각하는 이웃을 향해 달려간다면 당신을 웅덩이에 던지는 격이 되는 것임을 알라.
왜냐하면 좋은 것이나,나쁜 것이나 감정은 곧잘 전염하 기 때문이다.''집안에서 한 사람이 불쾌한 얼굴을 짓고, 양양 잔소리를 하게 되면, 집안 모두가 불쾌해져, 나중에는 마음에도 없는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 사람이 언제나 히쭉 웃으며, 여러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자 노력하면, 아무리 살림이 기울어져도, 그 집안은 언제나 봄처럼 화창한 곳이 되는 것이다. 더딘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다(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시145:8').
그런데 '더디다'라고 생각하는 하나님 의 성품은 사실 더딘 것이 아니다.왜나하면 하나님의 시간과 때는 정해져 있기 때문 이요 단지 그 시간대에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 하시기 때문이다(벧후3:9).그래서 잠14:29,15:18에서는 각각 말씀하시기를, "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어리석음을 나타내 느니라.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2.
그러므로(21).
1)모든 더러운 것을 버리라:'흐뤼포스'=더러운 것들,귀지란 뜻이다.다시말해 하나님 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귀에 막혀 있는 때를 말한다.이것이 있으면 바른 소리 를 듣지 못하게 한다.그러니까 오해와 시비가 계속되며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도 분노하는 것이다.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세상에서 베운 방 법을 쓰게 된다.이런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옷을 벗으라,귀를 청소하라'는 것이다
2)넘치는 악을 버리라:'카키아스'='위선,고집불통,타락',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근 본적인 불신과 타락의 욕망에 충만해진 상태이다.본문에서는 분노를 근거한다.한번 의 짜증,불순종,원망이 또다른 죄악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3)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으라:친절과 겸손함으로 실천하고 수행하라는 뜻이다.Plat-on은 분노에 의해 일어난 영혼의 동요를 조정하는 것으로 정의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하신 주님을 닮아야 하는 것이다.
3.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하면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1)자기를 속이는 자이다(22):사람이 어떤 일을 오랫동안 계속하면 그 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고 살피는 일에 게으르게 된다.그리고 결국은 습관적인 사람이 되어 자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맹인이 되고 자아를 속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 실조차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과 행동의 삶을 통해 자신을 도전받게 하라.도전이 없는 삶은 그 자체가 무의미하며 공허와 교만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게 된다.
2)자기 자신을 잃어 버린다(23-24):'잃어 버린다'는 말은 성경에서 '소홀리한다,간 과한다,무관심한다'등의 상태를 말한다.마치 거울을 보고난 후에는 자신을 잊어 버 리는 삶을 말한다.현대인들이 가진 특징이다.복잡하고 부담스럽고 책임감이 주어지는 것,나 아닌 다른 것으로 인한 피해는 보기도 싫어하고 또 주기도 싫어하는 극단 적인 이기주의를 말한다.설교를 들어도 부담스러운 죄나 시험,연단,두려움등을 싫 어한다.간단하고 쉽고 재미있으며 부담이 없는 설교를 원한다.그러니까 오늘 일부 강단 설교가 만담이나 쇼와 같이 전락되고 자기 과시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
'결론''
1)자신을 속이지 말라.
2)고독한 이웃을 돌아보라.
3)자기를 지키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경건의 삶인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대부분 부모님이 돌 아가신 후에야 철들어서 효도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다.그래도 한국은 백년전아니 50년전만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빨리 늙기를 원하고 빨리 노인되기를 희망했던 유 일한 나라가 아니었을까 싶다. 고종황제의 밀사노릇까지 했던 미국인 헐버트는 `이 세상에서 관습적인 노인복지가 가장 완벽하게 된 나라가 조선'이라 했고, 최초의 선 교사인 알렌도 `노인과 망인사이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즐거운 노인천국'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노인 천국의 증거로서 내 외국인이 써남긴 많은 문헌 가운데 몇가지만 제한해서 추려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문성이라 하여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에 잠들때 아들 며느리들로부터 문안 을 받는다.
둘째 햇과일이 나거나 별식이 새기면 반드시 노부모가 먼저 드신후에 입을댄다.
셋째 주부권을 상징하는 뒤주열쇠와 안방차지는 늙어 죽을 때까지 맏며느리에게 이양하지 않는다.
넷째 문중사람은 물론이요, 한 마을에 사는 남들일지라도 출타를 하거나 출타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마을 노인에게 인사를 드린다. 다섯째 길가다 노인을 만나면 말에서 내리거나 말을 타지 않았으면 걸음을 멎고 , 지나갈 때까지 두손들어 읍을 한다. 여섯째 마을에서 잔치가 있으면 아무 연고가 없더라도 반드시 마을 노인들을 모셔 다 상석에 앉혀 대접을 한다. 일곱째 마을에서 추렴해서 돼지나 소를 잡으면 배장이라 하여 그 내장을 마을의 노 인들에게 등분하여 보내드린다. 여덟째 부모가 늙으면 벼슬을 고향 가까이 옮겨주어 봉양케 하고 보다 늙으면 봉양 을 위해 유급휴직을 시켰다. 아홉째 회갑이 지나면 그 고을 현감이,고희가 지나면 감사가,백수가 지나면 임금님 이 춘추를 가려 주식과 옷을 내려 연치를 치하하였다. 동서고금에 이렇게 노인을 우대한 나라가 어디 또 있었는가 그 노인천국이 노인지옥으로 타락하고 만 것이다. 노부모 모시기가 힘겹다 하여 관광지에 유기하고 훌쩍 이민 떠나버리는 자식들이 있는가 하면, 병도 없는 노부모를 병원에 강제로입원시켜 몇달간이고 유기하는 신판 고려장이 예사로 자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이러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에게 주님은 "사랑하는 형제"라고 부르며 부탁하고 있다.
1. 사랑하는 형제들아 !(19-20).
1)듣기는 속히 하라(19):'듣는다'(헬=akouw:순종한다,깨닫는다)는 뜻으로 신자들이 듣는 귀는 있어 말씀을 듣기는 잘 하지만 순종하는 것은 더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가 의미하려는 것은 듣는 그 행위 자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들은 후에 깨닫고 순종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었다.다윗은 겉으로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하는 사울왕에게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 이다"(삼상15:22-23).말씀을 들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우리에게는 주어져 있다. 오죽하면 '한국은 기독교의 천국'이란 말이 나오는가.그러나 우리의 실생활에서 나는 얼마나 행동으로 말씀의 삶을 보이고 있는가 전주간 어떤 전도사님으로부터 이 층 교육관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그래서 유심히 살폈다.그러나 그때 뿐 여전하다. 문제는 이러한 기본기(인격적습관)가 습관으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말하기는 더디하라(19):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더디하라는 뜻이며 교회라는 공동의 연합체에서 자기의 어떤 사사로운 감정이나 뜻을 지나치게 주장하 지 말라는 뜻이다.특히 이 말씀은 교회의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모든 자들은 항상 말과 행동에 조심하라는 것이다(약3: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상대의 말을 바로 벧지말고 되새김하며 음 미하라는 것이다.
3)성내기를 더디하라(20):이 말은 단순한 화가 아니라 시기하고 미워하며 원수 갚 으려는 분노를 말한다.이것은 '복음의 의''사랑의 의'를,다시말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가로막는 방해가 되는 것이다.사람이 흔희 실수하는 경우는 감정이 표출되 었을 때(기분이 나쁠 때나 아주 기분이 좋을 때)이며 지적인 격차(만족도가 높을 때에나 가장 낮을 때)가 생겼을 때에 열등감이나 이를 감추기 위한 우월감으로 나 타난다.
그러므로 감정을 자신의 중심에 두지말고 예수 밑에 두라.마치 남이 나의 장난감을 부수면 곧장 아버지에게 달려가듯이 주님께 달려가라.만일 당신이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여 준다고 생각하는 이웃을 향해 달려간다면 당신을 웅덩이에 던지는 격이 되는 것임을 알라.
왜냐하면 좋은 것이나,나쁜 것이나 감정은 곧잘 전염하 기 때문이다.''집안에서 한 사람이 불쾌한 얼굴을 짓고, 양양 잔소리를 하게 되면, 집안 모두가 불쾌해져, 나중에는 마음에도 없는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한 사람이 언제나 히쭉 웃으며, 여러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자 노력하면, 아무리 살림이 기울어져도, 그 집안은 언제나 봄처럼 화창한 곳이 되는 것이다. 더딘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다(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시145:8').
그런데 '더디다'라고 생각하는 하나님 의 성품은 사실 더딘 것이 아니다.왜나하면 하나님의 시간과 때는 정해져 있기 때문 이요 단지 그 시간대에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 하시기 때문이다(벧후3:9).그래서 잠14:29,15:18에서는 각각 말씀하시기를, "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어리석음을 나타내 느니라.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2.
그러므로(21).
1)모든 더러운 것을 버리라:'흐뤼포스'=더러운 것들,귀지란 뜻이다.다시말해 하나님 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귀에 막혀 있는 때를 말한다.이것이 있으면 바른 소리 를 듣지 못하게 한다.그러니까 오해와 시비가 계속되며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도 분노하는 것이다.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세상에서 베운 방 법을 쓰게 된다.이런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옷을 벗으라,귀를 청소하라'는 것이다
2)넘치는 악을 버리라:'카키아스'='위선,고집불통,타락',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근 본적인 불신과 타락의 욕망에 충만해진 상태이다.본문에서는 분노를 근거한다.한번 의 짜증,불순종,원망이 또다른 죄악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3)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으라:친절과 겸손함으로 실천하고 수행하라는 뜻이다.Plat-on은 분노에 의해 일어난 영혼의 동요를 조정하는 것으로 정의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하신 주님을 닮아야 하는 것이다.
3.말씀을 듣고 행치 아니하면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1)자기를 속이는 자이다(22):사람이 어떤 일을 오랫동안 계속하면 그 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고 살피는 일에 게으르게 된다.그리고 결국은 습관적인 사람이 되어 자 신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맹인이 되고 자아를 속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 실조차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과 행동의 삶을 통해 자신을 도전받게 하라.도전이 없는 삶은 그 자체가 무의미하며 공허와 교만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게 된다.
2)자기 자신을 잃어 버린다(23-24):'잃어 버린다'는 말은 성경에서 '소홀리한다,간 과한다,무관심한다'등의 상태를 말한다.마치 거울을 보고난 후에는 자신을 잊어 버 리는 삶을 말한다.현대인들이 가진 특징이다.복잡하고 부담스럽고 책임감이 주어지는 것,나 아닌 다른 것으로 인한 피해는 보기도 싫어하고 또 주기도 싫어하는 극단 적인 이기주의를 말한다.설교를 들어도 부담스러운 죄나 시험,연단,두려움등을 싫 어한다.간단하고 쉽고 재미있으며 부담이 없는 설교를 원한다.그러니까 오늘 일부 강단 설교가 만담이나 쇼와 같이 전락되고 자기 과시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
'결론''
1)자신을 속이지 말라.
2)고독한 이웃을 돌아보라.
3)자기를 지키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경건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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