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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신앙생활 (벧전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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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는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들이 기독교의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가르침과 맞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베드로가 그의 첫 서신의 서두에서 준 가르침을 고찰하였습니다. 이 교훈들은 다음에 나올 내용의 근간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1:1-12절까지의 교리로부터 나머지 서신의 실제적인 교훈들이 파생되어 나온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가중되는 핍박 속에 놓여 있던 북부터어키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서신을 보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잘 견디도록 준비시켰습니다. 그는 그의 독자들에게 신자들이 이 세상을 나그네로 지나간다고 말하고 본향이 하늘에 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들은 영광스런 유산을 받을 자들이므로 설혹 곧 죽게 된다 하더라도 주님과 영광 중에 함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어떤 일이 생기든지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마지막 날 구원의 도래가 실현될 때까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될 것이었습니다(1:5). 준비하라 베드로 서신의 수신자인 북부터어키의 그리스도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책임있는 신자들로서 처신해야 했습니다. 구원의 종국적인 목적은 인간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실천할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잠자는 성도들의 기숙사가 아니고 전투를 고대하는 영적 군인들로 가득 찬 병영입니다”(웨인 테출러).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출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전장터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은 적들을 알아야 하고 정신 무장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생각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여기서 ‘마음’이라고 번역된 말은 ‘정신’이라고 해야 더 정확합니다. 당시에는 긴 옷을 입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옷이 발에 걸리거나 몸에 끌려서 활동하기에 불편하였습니다. 긴 옷을 입은 자는 거추장스런 부분을 말아 올리거나 묶어야만 활동에 지장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예시를 사고(思考)활동에 연결시켰습니다. 올바른 생활을 하려면 올바른 사고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힘든 활동을 감당하고 지적인 믿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에게 “근신”으로 또한 준비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근신’이라는 말은 깨어 있다는 개념을 반영합니다. 술취한 자의 행동에는 자제가 없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걸음이 고르지 못하며 자신이 하는 짓을 잘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항상 자신의 기능들을 온전히 할용해야 합니다. 술이나 약물에 중독되어 정신이 혼미해진 자들은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살지만, 신자들은 주의 인자하심을 이미 맛보았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의 소망을 지니고 삽니다. 베드로는 4:7절에서도 동일한 의미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맑은 정신으로 개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결혼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에 대해서 비유로 가르쳤습니다.(눅12:35-48). 베드로가 자기 독자들에게 기도를 바르게 하려면 모든 생활 영역에서 근신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가르친 것은 결국 예수님의 교훈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5:8절에도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만약 우리들이 어떤 교리나 실천 부분에서 졸고 있다면 마귀가 달려들 것입니다. 마귀는 조는 법이 없으며 조는 성도들을 항상 삼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행동을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야하며 근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게 될 은혜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이 소망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산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새롭고 생동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이라고 말할 때, 막연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소망은 전혀 모호하지 않습니다. (벧전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찌어다 우리들은 지금 악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신실한 교인으로 살거나 정신적인 무장을 하고서 신앙 생활을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을 풀고 해이해진 정신으로 적당히 살기가 쉽습니다. 반면에 근신하거나 자제하면서 사는 일은 퍽 어렵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우리들을 중독시키는 악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악한 영향들을 막아내는 최선의 방책은 올바른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깨어 있으면서 신앙 생활을 위한 영적 단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께 솔려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죄와 불의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순종하라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늘 “내 말을 들어라.”고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순종을 기대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보다 인생의 경험이 더 많기 때문에 자녀들의 처신에 대해 가르칩니다. 따라서 저녀들이 부모들을 모방하고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독자들에게 복종을 거듭 권면합니다. 그는 서두에서 우리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도록 선택되었다고 전제하고(1:2) 이어서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1:22)하였다고 다시 강조합니다. 그는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벧전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해야 한다고 예시 하였습니다. 그는 또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될 심판과 관련해서도 순종ㅇㄹ 언급하였습니다. (벧전4: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우리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보이려면 하늘 아버지께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하기 전의 악한 욕심들에 끌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 이전에는 대체로 무지와 거룩하지 못한 생각과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새로운 경영주 밑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수준에 맞추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즉 우리들은 세상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것들을 분별하고 나쁜 것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보실 나의 모습이 이래도 좋은가” 어떤 사람이 정말 거듭났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회개 이전의 생활과 비교할 때 달라진 것이 있는 것입니다. 거듭난 신자는 무엇보다도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싶어합니다. 거듭난 자는 과거에 자신이 아무리 똑똑했더라도 현재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같은 눈으로 봅니다. 중생 이전에는 우리들의 정신이 몽매한 상태에 있었고 그리스도의 진리와 복음의 축복들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알고난 이후에는 관점에 커다란 변화가 생깁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2:9)한 것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거룩하라. 우리들은 거룩한 삶을 살려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범죄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본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벧전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하나님의 거룩은 그분의 존재 전반에 걸친 절대적인 순결을 표출합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거룩이 다른 어떤 하나님의 속성보다도 더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의 독자들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했을 때, 그가 그들에게 기대한 것은 하나님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속성에 기반을 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눅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베드로의 권면은 결국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예수님의 교훈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성경에 따온 ‘기록되었으되’ 라는 말씀으로 마귀의 무장을 해제시키셨습니다. (마4:4, 7, 10)
베드로가 거룩한 생활에 대해 권면하기 위해 레위기 본문은 11:44-45절에 나옵니다. 여기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라는 명령이 두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의 최고 표준은 하나님 안에서만 찾아져야 하며 신자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를 빌려서 강대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설교를 끝내신 후에 어부들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5:4) 고 말씀하셨습니다. (눅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눅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리스도인이 되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씻겨졌다고 간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신자의 의무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자신의 중생을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활의 출발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이 구원을 받으면 죄에 대항하는 적극적인 활동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며 그런 삶을 통해서 ‘거룩’이라는 의미를 드러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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