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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적인 성장 (벧전2:1-3)

본문

성장은 모든 동식물들에게 필요불가결한 요소입니다. 특히 성장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들이 신자로서 산다고 하면서 전혀 자라지 못하고 어린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다면 견고한 신앙 생활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생각과 행위에 있어서 미숙하고 유치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성숙하지 못하면 기독교의 참 길에서 이탈하여 거짓된 가르침과 생활 자세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바울은 신자들이 성숙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자주 역설하였습니다. (엡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베드로는 북부터어키의 신자들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는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2:1-3에서 그의 수신자들에게 구원에 이르도록 계속 자라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계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불건전한 행습들을 버리야 합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려면 우선 건강한 생활 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몸에 해로운 나쁜 습관들을 먼저 제거시켜야만 건강이 좋아지는 법입니다. 우리들은 흡연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타르와 니코틴이 담배 속에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폐애 쉽게 농축됩니다. 흡연으로 기곤지 염이나 암이 생긴다는 것은 의학 연구를 통해 드러난 사실입니다. 그래서 심장계 질환이 있는 자들이 병원에 입원하면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지시를 받습니다. 과도한 음주도 건강을 해칩니다. 과음하는 자들은 간경화증으로 죽을 위험이 많습니다. 연구 발표에 의하면 한 주에 맥주를 서너 잔 이상 마시는 자들 가운데 인후암이 매우 흔하다고 합니다. 식단이 고르지 못한 음식도 늘 먹으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지방질이 많은 음식은 체중을 늘려 심자오가 다리 및 다른 부위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초래합니다. 단백질이 너무 적은 음식을 먹으면 우리 체내에 모이는 나쁜 폐기물들이 잘 배설되지 않습니다. 또한 운동 부족도 건강에 매우 나쁜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운동량이 적으면 몸이 늘어지고 초과된 칼로리가 소모되지 않아 살만 찌고 둔해집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영적 건강을 위해 우선 제거해야 할 나쁜 요소들을 지적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발전되려면 옛날에 걸치고 다녔던 헌옷에 해당하는 것들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습니다.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베드로도 자기 독자들에게 비유적으로 악의 , 속임, 위선, 시기, 중상의 겉옷들을 벗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죄들에 저항하거나 맞서 싸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신자들이 이런 것들로 짠 의복들을 입고 있으므로 아예 벗어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1절에서 ‘모든’ 이라는 말을 3회나 사용하였습니다. 다음 성경 구절들에는 본문에 나온 벗어벼려야 할 악의 목록들이 비슷하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롬1:29) 곧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살인,분쟁, 사기,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롬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롬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고후12:20)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엡4: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골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딤전1:9)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딤전1: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딤전1: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악독”은 이웃에게 고통이나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바울은 “궤휼”이라는 말을 구브로 섬의 엘루마라는 마술사를 꾸짖을 때 사용하였습니다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행13:10). “외식”과 “시기”는 원문에 복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위선(외식)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고대 헬라어인데 자시느이 실재 모습과 전혀 다른 역활을 하는 배우를 가리킵니다. “시기”는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조악한 욕망입니다. “비방하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의 등 뒤에서 비뚤어진 혀로 내뱉는 말입니다. 그러네 여기에 나온 죄악들은 마치 독물과 같아서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목적을 가진 것들입니다. 1세기 교인들이 이같은 해악들을 없애야 할 필요가 있었다면, 오늘날의 성도들은 더욱 자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우리의 언행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지 혹은 해치는지를 자문하고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가 지적하는 해악들은 마귀의 감화를 받은 것들이며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을 저해합니다. 영적인 젓을 사모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1절에서 부정법을 사용했다가 2절에서 긍정법으로 바꾸면서 영적 진보를 위한 조언을 합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젖이 발육에 필수적인 영양분입니다. 갓난 아기들은 배가 고프면 웁니다. 이것은 영양분을 갈망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갓난 아기의 울음은 건강의 한 표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들이 영적으로 자라려면 갓난 아이들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매우 강한 표현입니다. 악의와 속임수와 위선과 시기와 비방을 하는 자들은 순수한 영적 젖을 갈망할 수 없습니다. 시편 42편에는 하나님을 몹시 사모하는 사람의 모범이 적혀 있습니다.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절에 언급된 젖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베드로는 1장 끝에서 성경 말씀에 대해 거론했기 때문에 본장에서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1:25)있으며, “사랑 있고 항상 있는 말씀”(1:23)입니다. 본문의 젖에는 조미료가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떤 첨가물도 필요치 않습니다. 방부제도 불필요하며 희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파렴치한 상인들은 포도주에 물을 타서 팔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영적 자양분이 되려면 첨가물이 없는 순수한 상태로 보존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젖은 순전(純全)해야 그래서 건전하고 희석되지 않아 사람들에게 유익합니다. 이 젖에는 기만의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시고 (요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이 이와 같습니다. 성경에는 불건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거나 신화적이라는 그릇된 가르침을 단연코 물리쳐야 합니다. 말씀의 젖은 영적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로고스’(말씀=그리스도)와 관련된 어휘입니다. 신약에서 이 말은 로마서 12:1절에서 ‘영적 예배’라는 표현에서 한번 더 사용되었습니다. 말씀의 젖은 우리들의 영혼을 보양(保養)해 줍니다. 말씀으로 양육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성숙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젖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항상 갓난 아기로 머물러 있어야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약의 다른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젖을 떼고 단단한 고기를 먹도록 성장해야 한다고 가르친 곳이 있습니다.(고전3:2, 히5:12-14) 그러나 베드로가 말하는 본문의 요점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들의 정규적인 영적 식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루에 두 세 번씩, 하는 일을 멈추고 식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병이 듭니다. 만일 식사 때마다 스낵으로만 간단히 먹고 계속 일만 한다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뻔한 이치입니다. 물론 과식하는 것도 나쁘지만 , 정기적인 식사를 빠뜨리는 것도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규적으로 먹고 자라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들의 영적 음식입니다. 밥과 반찬과 물이 우리 몸의 건강을 유지하듯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해야 우리 영혼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식사를 합니다. 그 때마다 영적 양식인 성경 말씀은 읽고 소화시켰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마 거의 대부분이 하루에 한 번쯤은 식사를 가족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가족 혹은 다른 교우들과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함께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들의 영적 건강에 큰 유익이 됩니다. 특히 모든 가족이 참석하는 가정 예배는 즐겁고 복된 시간입니다.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3절에 반영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고 하였는데 아마 그들은 주님을 한동안 알고 있었던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갓난 아기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일단 엄나의 젖을 맛보고 나면 그 맛을 쉽게 잊지 않습니다. 갓난 아기들은 그들에게 무엇이 좋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배가 부를 때까지 엄마의 젖을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일단 맛보면 계속해서 이를 원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이 없으면 영적으로 병이 들어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그의 주님에게 그대로 적용시켰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한 분이십니다. 본 항목은 ‘인자하심’이라는 말로 끝납니다. 이 말은 선하다는 뜻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성경을 읽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많은 축복을 체험하고 또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깨달아 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성경 말씀을 정기적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이같은 성경읽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쁨으로 외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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