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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인 (벧전1:1-2)

본문

우리들은 이 복음 시대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부정적인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떤 엄숙한 성격의 메시지를 주고 계신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세상의 여러 두려운 사건들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면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모든 일을 흘려 넘길 것이 아니라 신중한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베드로도 이와 동일한 이유에서 그의 첫 서신을 집필하였습니다. 앞 장에서 우리는 베드로전서의 저자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본 서신의 수신인들을 어떻게 서술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 베드로는 그의 수신인들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유대 나라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신명기 7:7-8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택하신 까닭은 그들의 인구가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많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만민 중에서 가장 적은 소수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구출하심으로써 그들의 조상들과 맺었던 맹세를 지키셨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 서신의 수신자들은 이 유대인들이었을까요 그 수신자들 가운데에는 유대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들에 대해 서술한 방식으로 보아 모두가 유대인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수신자들이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1:18)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조상들은 망령된 생활을 하던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백성들이었습니다. 또 4: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유대인이 같은 동족을 놓고 이런 식으로 이교와 우상숭배를 운운할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베드로 서신의 수신인들 중에는 비유대인들이 상당수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만약 베드로 서신의 수신자들이 유대인들이 아니었다면 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겠습니까 베드로가 이렇게 쓴 까닭은 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택하심을 입은 자들”(1:2)이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유대인인 베드로는 삼키기 어려운 한 교훈을 익혀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에 있는 고넬료의 집에 방문했을 때 ‘코셔’(Kosher)가 아닌 온갖 음식들을 먹으라는 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코셔’란 레위기 11장에서 유대인들에게 허용된 음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날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매우 중요한 진리를 한 가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한 모든 축복들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누구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선민이 됩니다. 우리들이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엡1:4) 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구원이 인간의 의지(결정)에 달렸다고 강조하는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해 오신 분들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자기 백성들을 이미 선택하셨다는 말씀을 쉽게 납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유의해서 보면 이 진리가 반복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교만하기 때문에 이 진리에 저항하며 싸웁니다. 그렇지만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택하셨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우연에 맡기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권적인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희생 제물이 되려고 “창세 전부터”(1:20) 택하심을 받으셨듯이 우리들도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그분의 목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선택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선택할 것을 미리 아셨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들의 구원을 오래 전부터 계획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지나온 생애의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간여하시고 인도해 오셨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로보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는 옳은 일을 행해야 할 의무가 지워져 있습니다. 우리들은 자의적으로 어리석은 짓을 해 놓고 그 책임을 마귀에게 전가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부르십니다. 그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응답을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자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하나님이나를 이끄시면 따라가야 하며, 하나님의 신령하신 음성이 들리면 그 음성을 따라야 합니다. 베드로가 말한 하나님이 미리 아심(예지)이라는 것은 누가 하나님을 따르기로 할 것인지를 하나님이 사전에 아셨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께서 구원해 주려고 선택하신 사람이 누구인지를 이미 아신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를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예지와 예정은 유사한 뜻을 가진 낱말들입니다.(엡1:4-5). 이 세상의 나그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집도 있고 가정도 있으며 직장도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자녀를 기르며 장래를 준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들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은 그들의 진정한 고향이 아닙니다. 이곳은 그들이 영원히 살게 될 땅이 아닙니다. 아무도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시90:10)입니다. 어떤이는 이보다 더 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덜 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고향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매우 아름답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는 인간의 파괴의 탐욕으로 인해 더럽혀지고 일그러진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상 이 지구는 불로써 파멸될 것입니다(벧후3:10). 히브리서의 저자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습니다. (히13:14)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순례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 순례자들을 위한 여행 안내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신자들의 소망이 그들의 본향에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신자들은 나그네의 설움을 견뎌야 하고 하늘 시민의 신분의 미래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임시 거주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것들에 너무 지나친 애착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지상의 삶을 즐기면서 사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의 주된 관심사라면 문제가 됩니다. 요한은 우리들에게 엄숙하게 경고하였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이 말씀은 특별히 수도원에 있는 자들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속함을 받은 모든 신자들을 향해 준 권면입니다. 임시 거주자들은 현세의 연락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것이 전부라는 인상을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사악한 세상 체제의 즐거움에 탐닉되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그들은 다가올 하늘 본향에 비추어 현세를 살아가며 이 세상에 “흩어진 나그네”로 머문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흩어져 사는 사람들 베드로는 어떤 특정한 마을이나 도시에 있는 교회가 아닌 (소)아시아(현제의 터어키)의 넓은 지역에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한편 에베소의 동편 지역도 아시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지방은 산맥에 의해서 남북으로 양분되었는데 바울의 갈라디아서는 남부 지역의 교인들에게 보낸 것이었고 베드로의 서신은 북부 지역의 교인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으로 왔던 사람들 중에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행2:9) 이들이 복음을 듣고 자기들의 지역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세웠을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이들에 대한 정보는 매우 희박해서 우리가 잘 모르지만 바울은 이들을 방문하려다가 성령의 제재를 받아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행16:7-8). 하나님은 바울의 걸음을 유럽으로 인도하셨는데 그 당시 유럽에는 복음이 거의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베드로는 이 사건이 있은 지 약 10여년이 지난 후, 이 지역들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을 지키고 진실된 복음의 증인들이 되라는 격려의 편지를 띄우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성삼위의 사역입니다. 베드로는 구원을 언급할 때 성삼위를 모두 포함시켰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선택되었다고 말하고 이어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았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소아시아의 로마 속령 등에 흩어져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성삼위에 의해서 구원의 관계에 들어가게 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들을 선택하셨고, 성령님은 그들을 따로 세워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셨으며,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를 뿌려 그들의 삶이 거룩해지도록 하셨습니다”(클라우니). 바울도 우리들의 구원에 성삼위가 협력한다는 사실을 에베소서 1장에서 언급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성부)는 우리의 구원을 “창세 전에”(엡1:3-5) 계획하셨고, 하나님 아들(성자)은 우리의 구원을 “그의 피로 말미암아”(엡1:6-10) 이루셨으며, 하나님 성령(성신)은 이 복음을 우리들에게 적용시켰습니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 심을 받았으니 하나님 아버지는 자기를 믿는 백성들을 각각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된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백성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을 따로 세우셨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거룩해지도록 작정된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은 불신자들과 달라야 합니다. 성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성전은 하나의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하나님의 특별한 용도를 위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일반 건물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성전에서는 동물들을 제물로 바쳤는데, 이것도 보통 동물들과 다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받아 주시는 희생 제물로 따로 떼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즉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중생 되지 못한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하시기 위해서 따로 떼어놓은,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은 우리가 불신자들보다 더 잘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킨 자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들이 성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란 어떤 기적을 행하거나 성자로서 시성식을 올린 자들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도란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일반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신약의 서신들은 “…에 있는 성도들에게”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이 성령의 사역으로 거룩해진다는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뜻임과 동시에 하나님을 향해 분리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의 목표와 목적은 하나님의 명예여야 합니다. 즉,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기 위해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들이 순종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돌릴 때 시작됩니다. 우리들이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주를 바라볼 때 신자의 삶이 시작됩니다. 우리들이 복음에 순종할 때,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선택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인도해 줍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언급함으로써 그의 수신인들에게 십자가를 지목해 줍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씻기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출애굽 이후 시내산 아래에서 있었던 장면도 연상시켜 줍니다. 모세는 그 때 12개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24:5,8)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들은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 연합되었다. 이제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 언약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소의 피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써 뿌림을 받았다”(클라우니) 베드로는 자기 서신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문안에서 새 언약이 옛 언약을 성취시켰다는 것과 이스라엘의 모든 축복들이 하나님께 속한 세 이스라엘에게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는 나중에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2:10)라고 언급하였습니다. 2절 끝 부분을 보십시오.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찌어다 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은혜는 옛 언약의 특징이었는데 새 언약의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옛 언약에서 은혜는 안녕의 의미로 자주 쓰여졌으며 새 언약에서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베드로전서는 약 2천 년 전 터어키의 북부 지방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귀중한 교훈을 던져 줍니다. 지금도 이 세상은 복음의 진리에 반대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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