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할 수 없는 세 가지 삶 (약4:13-14)
본문
최근들어 대형사고가 잇달았습니다. 열차전복사건 비행기추락사건,배 침몰사건 이런 일련에 사건들은 생각하기 조차 끔찍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를 당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그것은 우리 인생들은 예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세가지의 예견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1. 물질에 대하여 알 수 없는 삶입니다. 본문에서 어떤 사람이 장사를 해서 많은 이를 얻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이란 내가 원한 다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아침에 날벼락부 자가 될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아침에 L
A.폭동때 잿더미가된 상점 앞에서 통곡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5.6공화국을 지나 오면서 재벌이 하루아침에 망하는 것을 우리는 보 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떠나서 어떤 좋은 것을 얻어보 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짓입니까 설사 그것이 이루어졌다해 도부서지기 쉽고 그 순간은 너무 짧으며 불확실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아야 합니다.
2. 미래에 대하여 알 수 없는 삶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미래에 대하여 알고 있는듯한 짐승들의 모습을 봅니다. 한예로 제비가 논바닥이나 한데나 집을 지으면 그해는 가물겠다고 합니다. 날파리가 극성을 부리면 비가 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생 의 미래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번은 버스 토 큰이 바뀔때 미리 1000개이고 10000개 사났드라면 해 보지만 그게 뭣 니까 이렇게 미래를 알고 산다면 우리는 벼락부자도 얼마든지 될 수 있지만 우리는 한날에도 무슨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미 래에 대한 보장이 없는 인생에게 그 누구가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전히 하나님께 미래를 맡겨더라면 당황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므로 미래에 보다 좀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생명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삶입니다. 우리 인생은 언제 어느때 이 땅을 떠나야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명예라는 끈으로 묶어놓고 별수 없고 부귀라는 끈으로 묶어놓고 별 수 없고 행복이라는 끈으로 묶어놓아도 별 수 없습니다. 진시왕같 이 불노초를 구해 먹어도 별수 없습니다. 안개는 해가 뜨면 곧 사라 지듯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이 땅위에서 성공하면 천년 만년 살것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가 우리성도들 은 끊임없이 창조주 천년만년 살것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끊임없이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며 본향을 그 리워합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주인이시요 권능한 하나님을 의존할 때 생명이 보존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것이 하늘의 기업으로 누리는비결입니다. 우리도 구약의 시인같이 우리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그만 의지하며 여호와께서 이루심을 믿고 (시37:5)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성경
본문:시 12:1-6 오늘 말씀은 다윗이 주관적인 경험과 고백을 담은 시이다. 내가 겪은 사건과 내가 받은 은혜를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축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본문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죽은 내 심령을 다시 소생시 켜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내 목자로 믿을 때에 하나님은 내 영혼 을 다시 살려주셔서 삶에 활기가 없고 피곤하고 만사에 의욕이 없던 사람이 이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이십니다고 고백할때 하나님이 나를 새로운 심령으로 소생 시켜주셔서 긍정적이고 생명적이 며 활발한 삶을 사시게 하는 것이다. 영국의 에드워드 바크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환자의 부정적인 상태를 고쳐야지만 병도 고 칠 수 있고 예방도 할 수 있는 것이다고 했다.그리고 병을 고쳐지려면 그 영혼이 먼저 고쳐져야 한다. 바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인 감정을 일곱개로 분류를 했다.
첫째, 공포심의 경우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 겁내 고 두려워하는 공포심도 다 없어지는 것이다. 믿는자에게는 공포심으 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둘째, 불확실성이다. 이것은 영혼의 적이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불확실성이 없다. 사는 목적이 확실하고 천국에 갈것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 축복받 고 불순정했을때는 실패할것도 확실하다. 이러한 명확한 확실성을 가 지고 있으면서도 불확실한 미로를 헤맨다면 그 영혼은 믿음이 없는 것 이고 병든 영혼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현재에 대한 무관심이다. 기독교 신앙은 미래지향적이다. 그래서 오늘 받은 복보다 후일의 복 이 더 크고 지금의 행복보다 영원한 행복이 더 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신앙이 현재를 외면하고 삶을 등져서는 안된다고 기독교인 일수록 현실의 삶에 철저해야 한다.
넷째 권세에 이념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이나 목적을 성취하고 어떤 이념 사 사상에 목숨을 거는 것은 영혼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다섯째, 낙담과 절망 믿음이 있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할 수 없다. 모르겠다고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모든 일들이 잘되지 않 지만 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의 사람이 많으면 안되는 일도 되는 것이다. 낙담과 절망은 삶도 비폐하게 만들고 신앙도 오염시키는 병균이 되는 것이다. 여섯째, 외로움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외로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언약을 믿는 관심 오늘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잘되면 시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형제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할 줄을 알아야 한다. 기뻐하는 자와 같이 기뻐하라 이것이 성경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나는 죽어도 다시 살 것이다. 마귀가 나를 해 하지 못하며 원수들이 나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이 바뀐다 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해를 받지 않는 믿음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를 당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그것은 우리 인생들은 예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세가지의 예견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1. 물질에 대하여 알 수 없는 삶입니다. 본문에서 어떤 사람이 장사를 해서 많은 이를 얻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이란 내가 원한 다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아침에 날벼락부 자가 될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아침에 L
A.폭동때 잿더미가된 상점 앞에서 통곡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5.6공화국을 지나 오면서 재벌이 하루아침에 망하는 것을 우리는 보 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떠나서 어떤 좋은 것을 얻어보 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짓입니까 설사 그것이 이루어졌다해 도부서지기 쉽고 그 순간은 너무 짧으며 불확실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아야 합니다.
2. 미래에 대하여 알 수 없는 삶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미래에 대하여 알고 있는듯한 짐승들의 모습을 봅니다. 한예로 제비가 논바닥이나 한데나 집을 지으면 그해는 가물겠다고 합니다. 날파리가 극성을 부리면 비가 오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생 의 미래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번은 버스 토 큰이 바뀔때 미리 1000개이고 10000개 사났드라면 해 보지만 그게 뭣 니까 이렇게 미래를 알고 산다면 우리는 벼락부자도 얼마든지 될 수 있지만 우리는 한날에도 무슨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미 래에 대한 보장이 없는 인생에게 그 누구가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전히 하나님께 미래를 맡겨더라면 당황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므로 미래에 보다 좀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생명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삶입니다. 우리 인생은 언제 어느때 이 땅을 떠나야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명예라는 끈으로 묶어놓고 별수 없고 부귀라는 끈으로 묶어놓고 별 수 없고 행복이라는 끈으로 묶어놓아도 별 수 없습니다. 진시왕같 이 불노초를 구해 먹어도 별수 없습니다. 안개는 해가 뜨면 곧 사라 지듯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이 땅위에서 성공하면 천년 만년 살것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가 우리성도들 은 끊임없이 창조주 천년만년 살것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끊임없이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며 본향을 그 리워합니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주인이시요 권능한 하나님을 의존할 때 생명이 보존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것이 하늘의 기업으로 누리는비결입니다. 우리도 구약의 시인같이 우리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그만 의지하며 여호와께서 이루심을 믿고 (시37:5)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성경
본문:시 12:1-6 오늘 말씀은 다윗이 주관적인 경험과 고백을 담은 시이다. 내가 겪은 사건과 내가 받은 은혜를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축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본문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켜 주시고 죽은 내 심령을 다시 소생시 켜 주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내 목자로 믿을 때에 하나님은 내 영혼 을 다시 살려주셔서 삶에 활기가 없고 피곤하고 만사에 의욕이 없던 사람이 이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이십니다고 고백할때 하나님이 나를 새로운 심령으로 소생 시켜주셔서 긍정적이고 생명적이 며 활발한 삶을 사시게 하는 것이다. 영국의 에드워드 바크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환자의 부정적인 상태를 고쳐야지만 병도 고 칠 수 있고 예방도 할 수 있는 것이다고 했다.그리고 병을 고쳐지려면 그 영혼이 먼저 고쳐져야 한다. 바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인 감정을 일곱개로 분류를 했다.
첫째, 공포심의 경우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 겁내 고 두려워하는 공포심도 다 없어지는 것이다. 믿는자에게는 공포심으 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둘째, 불확실성이다. 이것은 영혼의 적이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불확실성이 없다. 사는 목적이 확실하고 천국에 갈것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 축복받 고 불순정했을때는 실패할것도 확실하다. 이러한 명확한 확실성을 가 지고 있으면서도 불확실한 미로를 헤맨다면 그 영혼은 믿음이 없는 것 이고 병든 영혼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현재에 대한 무관심이다. 기독교 신앙은 미래지향적이다. 그래서 오늘 받은 복보다 후일의 복 이 더 크고 지금의 행복보다 영원한 행복이 더 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신앙이 현재를 외면하고 삶을 등져서는 안된다고 기독교인 일수록 현실의 삶에 철저해야 한다.
넷째 권세에 이념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이나 목적을 성취하고 어떤 이념 사 사상에 목숨을 거는 것은 영혼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다섯째, 낙담과 절망 믿음이 있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라고 하면 할 수 없다. 모르겠다고 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이 많으면 모든 일들이 잘되지 않 지만 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의 사람이 많으면 안되는 일도 되는 것이다. 낙담과 절망은 삶도 비폐하게 만들고 신앙도 오염시키는 병균이 되는 것이다. 여섯째, 외로움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외로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언약을 믿는 관심 오늘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잘되면 시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형제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할 줄을 알아야 한다. 기뻐하는 자와 같이 기뻐하라 이것이 성경의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나는 죽어도 다시 살 것이다. 마귀가 나를 해 하지 못하며 원수들이 나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이 바뀐다 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해를 받지 않는 믿음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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