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참 지혜와 거짓 지혜 (약3:13-18)

본문

지혜는 훌륭하고도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요, 좋은 것입니다. 힘 이 있어도 지혜가 없으면 그 힘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가져야할 참 지혜와 가지지 말아야 할 악한 지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참된 지혜를 가져야 훌륭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본론'
1.참 지혜는 그 지혜로 선행을 나타냅니다(13) 지혜가 있는 자는 그것을 자랑하지 말고 선행으로서 그 증거를 보일 것이며, 지혜 가 있다고 하면서도 다른 이들과 불화하고 싸운다면 이는 지혜가 아니라 이 세상의 정욕과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으로 지혜자와 총명한 자 들이 있는 곳에서는 결코 다툼이나 시기 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이 원래 의도하는 바는 당시 초대 교회 안에 있던 유대교 선생들, 즉 랍비 라 불림받기를 좋아했던 자들로서 이들은 그들의 율법적 지식과 학문을 내세워서 교회를 교리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어수선하게 하고 신자들 간에 분파와 불화를 일으 켰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만일 그들의 지혜가 바른 것이라면 선행으로서 그것을 증명해야지 말과 지식적인 변론으로만 자신들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에서도 신학에 대해서 좀 지식이 있다고 하는 이들이 교회나 성직자의 목 회에 사사건건 비판과 비방을 일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아무것 도 모르는 새신자들이나 귀가 가려운 이들을 마치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가장 바 른 것인 양 가르칠 뿐 아니라 그에 따라서 다른 이들의 신앙을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공격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들로 인해서 분파가 생기고 갈등과 대립이 생기게 되는데, 본문은 분명히 참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자라면 절대로 교회 내에 다툼을 일으키지 않고 선행과 온유함으로 그 자신의 지혜를 보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혹은 이 세상적인 학문과 지식이 많다 고 하여도 그 자신의 삶을 통하여 그것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 은 다 잘못된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자는 더욱 그 행동에 유의해서 보는 이들의 신앙에 유익을 끼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2.교회 안에서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는 지혜는 세상적이며,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 입니다(14-15). 사9:6절에 보면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평강의 왕이라고 묘사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평화를 이루시는 왕이란 뜻입니다(엡2:14). 다시말해 주님이 계씬 곳에는 싸움과 다툼이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 15절에서는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는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온 탐지혜가 아 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자기의 주장이나 견해를 내세우기 위하여 상대 방과 다툼을 일으키든가 상대방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비방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기가 믿고 있는 바를 묵묵히 행동으로써 나타냄으로 사람들의 존경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꼭 싸움이나 비방, 중상 등을 통해서 자신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이런것이 잠시는 그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모르나 결코 오 래 갈 수 없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기 스스로 고립되어 사람들로부터 무시당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자신으로 인해 다툼이나 시기가 있다면 자신 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즉시 인정하고 고쳐 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 으면 자신도 모르게 사탄의 수하에 있게 되어 교회를 깨뜨리는 역할에 서고 마는 것 입니다.
3.시기와 다툼이 있게 되면 건설적이기 보다는 파괴적인 결과만 있게 됩니다(16). 본문 16절에서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남보다 많이 안아고 하는 자랑이나 교만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이것이 시기와 다툼으로 변하고 결국은 요란, 무질서와 타락으로 변질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시기와 다툼을 즐기는 자는 처음에는 교회의 어떤 정책이나 실행이 그릇되었다고 반발하다가 점차 그 일과는 무관한 목사나 특정한 교인들의 인격과 생활을 트집잡고 나중에는 교인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까지 하게 되며, 결국 그것이 교회를 비방하고 세상의 방탕한 생활로 빠지는 자리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모두가 자기가 아는 만큼 행동으로 생활하려는 의지가 없이 남에게 자신이 더 인정받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마음에서 오는 결과들입니다. 신앙은 결코 지식일 수 없는 전인적인 삶이란 것을 알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성도는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하기 위해서 부름받았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4.위로부터 난 지혜(17-18) 세상에서 난 지혜는 독한 시기와 다툼과 진리를 거스리는 속임이 있는 반면에 위 로부터 난 지혜는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참 지 혜를 얻도록 힘써야 합니다.
1)참 지혜는 성결합니다(17) 본문 17절에서 말하는 성결이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에 충분히 깨끗하다는 의 미입니다. 참 지혜는 겉으로 드러내기 위한 지혜가 아닙니다. 참지혜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한 지혜인 것입니다.
2)참 지혜는 화평을 추구합니다(17). 참 지혜는 하나님과 인간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화목한 관계를 갖도록 하는 지혜입니다. 즉, 이 지혜는 올바른 질서를 자아내는 지혜입니다. 거짓 지혜는 하나님과 인간 관계를 불화하게 하고 갈라 놓습니다. 또한 거짓 지혜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파괴적인 관계로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결국 거짓 지혜에는 화평이 없습니다.
3)참지혜는 관대합니다(17) 참지혜는 거친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 지혜입니다. 참지혜는 자기 자신의 의견에 반대되는 의견에 대해서도 그 의의나 중요성을 무시한 채 무조 건 자신의 의견만을 맹렬히 주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무례하거나 오만하지 아니하고 무정한 행위도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감싸주며 포용할 줄도 알며 인내합니다.
4)참지혜는 양순합니다(17) 하늘에서 난 참지혜는 양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순은 선한 일을 권면 받거나 악에서 떠나라는 권면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불의와 악 에 대해서 연약한 양순이 아닙니다. 5)참지혜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17). 긍휼을 일반적으로는 외부로부터 고통받는 자에게 베푸는 동정으로 생각합니다만 여기서 말하는 긍휼이란 하나님의 긍휼까지 포함하는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외적 고통뿐 아니라, 죄악과 과실에 대한 고통까지 불쌍히 여기는 자세를 말합니다.
6)참지혜는 편벽됨이 없습니다(17) 편벽이란 여러사람 중에 특별히 한 사람을 지목하여 의심하거나 판단하여 엉뚱 하게 그릇된 추측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지혜는 이러한 편파적인 것이 없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참지혜까 있는 사람은 분파적인 행동이나 자기만의 유익을 위하는 행동을 하지 아니하며, 자기와 남의 주장이 다르다고 해서 남을 비판하거나 깍아내 리지 않습니다. 7)참지혜는 거짓이 없습니다(17) 참지혜는 어떠한 것을 위장하거나 속이지 않습니다. 이 지혜는 교활하거나 간사 하지 않고 세상에서 현명하다고 말하는 어떤 술책에 빠져들지도 않습니다. 참지혜는 오직 신실하고 개방적이고 꾸준하게 변동되지 않고 다함이 없습니다. 목 적 달성을 위하여 속이고 연기하듯 위장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결론' 참지혜와 거짓 지혜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땅에서 난 거짓 지혜에 매이 지 말고 위로부터 난 참지혜를 따라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1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