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믿음, 산 믿음 (약2:14-26)
본문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서의 정경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확신이 구원이란 믿음 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라는데 있었는데 야고보는 행위를 강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평가절하(평가절하)시켰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 보면 야고보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라고 말하여 마치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이신 득의)과 상반된 "이행득의 (이행득의)"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고보서를 볼 때 교리의 차원 혹은 구원론의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야고보서는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얻는가"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가르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스스로 믿음이 있노라 자위하면서 참된 삶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사람들은 스스로 믿음이 있노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아노라 주장했지만 말씀을 실천하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참 믿음이 있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 들을 향해 한 말씀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야고보는 본문을 통해서 말합니다. "너희에게 참 믿음이 있다면 왜 그 믿음의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너희 삶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실천이 없으니 결국 너희 믿음은 가짜 믿음이란 증거아닌가" 야고보의 말씀에 의하면 참 믿음이란 반드시 참 행동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 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야고보는 그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 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참 믿음의 증거 가 있어야 하는데 그 증거란 "바른 삶"이라고 야고보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메아리를 통해서 나의 신앙생활을 점검하게 됩니다.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 만 바른 삶이 없는 나 자신이 이 말씀을 대할 때 회개하게 되고 다시 정상궤도에 올라서 말씀에 순 종하고,실천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1.죽은 믿음 (14-17절)
1) 믿음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누구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히11:1-2,6절을 보시고 믿음에 대해 정의해 보십시요.
2)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을 지적하기 위해 어떤 예를 들고 있는지 관찰해 보십시요 (15-16절)
3) 살아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을 진단하고 판정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17절) 4)
그렇다면 당신의 믿음은 어느 믿음에 속합니까 산 믿음입니까 죽은 믿음입니까 참고:바울의 행함과 야고보의 행함의 차이점은 행함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율법의 행함과 믿음의 행함입니다. 바울이 "율법으로 구원을 얻 지 못한다."라고 할 때는 바로 이 율법적 행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서가 아니라 구약에 제시된 여러가지 제사법과 의식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 했습니다.즉, 어떤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얻어내려 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사상을 일축시키기 위하여 스스로의 노력,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이나,어떠한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바울이 행위라는 말을 썼을 때 구원론의 차원에서 사용한 것입니다.(엡2:9) 그러나 야고보가 말하는 구원은 좀 다릅니다. 야고보가 "행함"이라는 말을 썼을 때는 믿음의 결 과로써 반드시 있어야 하는 행함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을 영접하고 옳바로 살고자하는 마음이 생겨 어떤 선한 행동를 했을 때 그 "행함"을 말합니다. 즉, 바울의 행함은 믿음과 상반되는 의미의 행함이고,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믿음의 결과로서 의 행함인 것입니다. 5) "행함은 믿음의 시금석","행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 "행함은 믿음의 결과"라고 깨닫게 해주는 구절은 몇절입니까
2.귀신의 믿음(19절) 여기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거짓 믿음의 허위성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 귀신의 믿음에 관해 언 급하고 있습니다. 거짓된 믿음, 헛된 믿음은 귀신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귀신조차 그들 나름 대로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귀신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행함이 없는 형식 적인 믿음도 헛된 것이고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것이 야고보가 19절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입니다.
6) 막 3:11절을 보고 마귀가 가졌던 믿음의 성격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핵심:마귀의 믿음은 지식적인 믿음일 뿐이었다) 7) 당신은 성경지식의 무게와 성경행함의 무게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량이 많이 나갑 니까 예화:나이아가랴폭포에서 줄타는 묘기를 부린 사람의 이야기
3.산 믿음 (20-26절) 야고보는 여기서 참된 믿음 곧 산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8) 아브라함은 무엇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까 (21절) 그의 믿음이 무엇으로 온전케 증명이 되었습니까(22절) 9) 믿음과 행함은 어떤 관계입니까 (주의) 이 문제를 구원론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면 안됩니다. 10) 라합은 기생이면서 어떻게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까(25절, 히11:31) 11) 기생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서 조상중의 한 명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처럼 귀하 신 분의 족보에 천한 기생 라합이 등장한 것 자체가 어떤 메세지를 담고 있습 니까 결론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볼때 율법적 행함으로는 절대로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믿음은 숨어 있을 수 없습니다. 저절로 자연적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행함으로 그 믿음의 정당성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의로운 행동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을 때 말로만 믿은 것이 아닌 것이 그가 이삭을 바치기까지 한 순종, 곧 그 믿음에 부합된 행함이 있 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께 대한 내적 증거요, 행위는 그 믿음에서 흘러 나오는 외적인 활동입니다. 따라서 행위는 믿음안에 내포 되어 있는 것입니다. 행위로 표현되는 믿음과 행위로 표현되지 않는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불완전 한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는 규정하였습니다. 반대로 행위로 실행되는 믿음이야 말로 참된 믿음이요 산 믿음이라고 그는 본문에서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산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된다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인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확신이 구원이란 믿음 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라는데 있었는데 야고보는 행위를 강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평가절하(평가절하)시켰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 보면 야고보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라고 말하여 마치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 (이신 득의)과 상반된 "이행득의 (이행득의)"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고보서를 볼 때 교리의 차원 혹은 구원론의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야고보서는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얻는가"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가르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스스로 믿음이 있노라 자위하면서 참된 삶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사람들은 스스로 믿음이 있노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아노라 주장했지만 말씀을 실천하는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참 믿음이 있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 들을 향해 한 말씀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야고보는 본문을 통해서 말합니다. "너희에게 참 믿음이 있다면 왜 그 믿음의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가 너희 삶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실천이 없으니 결국 너희 믿음은 가짜 믿음이란 증거아닌가" 야고보의 말씀에 의하면 참 믿음이란 반드시 참 행동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 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야고보는 그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 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참 믿음의 증거 가 있어야 하는데 그 증거란 "바른 삶"이라고 야고보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메아리를 통해서 나의 신앙생활을 점검하게 됩니다.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 만 바른 삶이 없는 나 자신이 이 말씀을 대할 때 회개하게 되고 다시 정상궤도에 올라서 말씀에 순 종하고,실천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1.죽은 믿음 (14-17절)
1) 믿음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누구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히11:1-2,6절을 보시고 믿음에 대해 정의해 보십시요.
2)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을 지적하기 위해 어떤 예를 들고 있는지 관찰해 보십시요 (15-16절)
3) 살아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을 진단하고 판정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17절) 4)
그렇다면 당신의 믿음은 어느 믿음에 속합니까 산 믿음입니까 죽은 믿음입니까 참고:바울의 행함과 야고보의 행함의 차이점은 행함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율법의 행함과 믿음의 행함입니다. 바울이 "율법으로 구원을 얻 지 못한다."라고 할 때는 바로 이 율법적 행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서가 아니라 구약에 제시된 여러가지 제사법과 의식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 했습니다.즉, 어떤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얻어내려 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사상을 일축시키기 위하여 스스로의 노력,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이나,어떠한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바울이 행위라는 말을 썼을 때 구원론의 차원에서 사용한 것입니다.(엡2:9) 그러나 야고보가 말하는 구원은 좀 다릅니다. 야고보가 "행함"이라는 말을 썼을 때는 믿음의 결 과로써 반드시 있어야 하는 행함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을 영접하고 옳바로 살고자하는 마음이 생겨 어떤 선한 행동를 했을 때 그 "행함"을 말합니다. 즉, 바울의 행함은 믿음과 상반되는 의미의 행함이고,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믿음의 결과로서 의 행함인 것입니다. 5) "행함은 믿음의 시금석","행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 "행함은 믿음의 결과"라고 깨닫게 해주는 구절은 몇절입니까
2.귀신의 믿음(19절) 여기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거짓 믿음의 허위성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 귀신의 믿음에 관해 언 급하고 있습니다. 거짓된 믿음, 헛된 믿음은 귀신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귀신조차 그들 나름 대로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귀신의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행함이 없는 형식 적인 믿음도 헛된 것이고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것이 야고보가 19절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입니다.
6) 막 3:11절을 보고 마귀가 가졌던 믿음의 성격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핵심:마귀의 믿음은 지식적인 믿음일 뿐이었다) 7) 당신은 성경지식의 무게와 성경행함의 무게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량이 많이 나갑 니까 예화:나이아가랴폭포에서 줄타는 묘기를 부린 사람의 이야기
3.산 믿음 (20-26절) 야고보는 여기서 참된 믿음 곧 산 믿음을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8) 아브라함은 무엇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까 (21절) 그의 믿음이 무엇으로 온전케 증명이 되었습니까(22절) 9) 믿음과 행함은 어떤 관계입니까 (주의) 이 문제를 구원론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면 안됩니다. 10) 라합은 기생이면서 어떻게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까(25절, 히11:31) 11) 기생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에서 조상중의 한 명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처럼 귀하 신 분의 족보에 천한 기생 라합이 등장한 것 자체가 어떤 메세지를 담고 있습 니까 결론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볼때 율법적 행함으로는 절대로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믿음은 숨어 있을 수 없습니다. 저절로 자연적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행함으로 그 믿음의 정당성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의로운 행동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을 때 말로만 믿은 것이 아닌 것이 그가 이삭을 바치기까지 한 순종, 곧 그 믿음에 부합된 행함이 있 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께 대한 내적 증거요, 행위는 그 믿음에서 흘러 나오는 외적인 활동입니다. 따라서 행위는 믿음안에 내포 되어 있는 것입니다. 행위로 표현되는 믿음과 행위로 표현되지 않는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불완전 한 믿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는 규정하였습니다. 반대로 행위로 실행되는 믿음이야 말로 참된 믿음이요 산 믿음이라고 그는 본문에서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산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된다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인 것 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