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믿음과 참된 믿음 (약2:14-26)
본문
믿는 사람이면 이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 본문 성경은 우리 귀에 익숙한 말씀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서 수없이 들은 말씀인데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야고보의 신령한 기도의 종이 우리에게 어떤 것이 거짓된 믿음이고 어떤 것이 참된 믿음인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을 잘 듣고 우리의 믿음이 참된 믿음이 되도록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됩시다. 이 말씀은 3가지 믿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1.거짓 믿음은 어떤 것인가(14-17) 한 마디로 거짓 믿음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르치는데 우리가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고 다 알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행함이 없는 그 믿음이 바른 믿음이 아니라 거짓 믿음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행함이 없다는 믿음은 믿는다고 해도 그것이 인정되는 바른 믿음이 되지못하기에 오늘 우리는 여기
1) 거짓된 믿음
2) 행함이 없는 믿음은
3)구원받지 못한다는 엄청난 말입니다. 14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1.행함이 없는 믿음은 구원치 못합니다. (요일3:14)우리가 형제를 사랑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정말 내가 구원받은 확신이 있는 믿음의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 때문에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람은 내가 불고기 집, 참기름 집, 화장실 내게 성령이 함께 하고 참 믿음 구원의 믿음이 있으면 행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다는 것은 하늘을 찌를 만큼 대단한 믿음을 사람 앞에 보일지라도 그것은 바른 믿음이 아닌 거짓된 믿음이기 때문에 행함 없는 거짓된 믿음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이 귀한 사실에 대해서 믿음은 “ 믿으면 되겠네”라는 찬송을 한없이 부르고 기도한다고 소리치고 신앙 생활의 연조요 지식으로 자랑해도 행함이 없는 것은 다 거짓 믿음입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것은 죽은 믿음이요 구원의 확신도 없으면 우리는 행하는 실천하는 말씀을 따라 사는 참 믿음의 성도가 됩시다. 나무가 아무리 적은 아무라도 믿음의 뿌리가 있는 살아 있는 나무는 자라서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큰데 뿌리가 썩어 있는 나무는 물을 아무리 주고 기도를 아무리 하고 아무리 철야 기도 산기도, 들기도 한다고 설치고 다녀도(이것이 물을 주는 행위)썩어 있는 뿌리는 더 썩게 마련이다. 정말 믿음의 뿌리가 살아 있는 사람은 때가 되면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이미 그 뿌리가 믿음이 죽어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라고, 썩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한다면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되어 정말 내 믿음의 뿌리가 살아 있어 그 결과적인 열매로 어진 구원의 확신과 믿음의 부요함과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시는 승리의 열매가 충만케 하시기 바랍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살아나는 사도 요한의 말씀처럼 열매를 맺힐 수 있는 좋은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행함이 없이 말로만 하는 믿음입니다. 행하고 실천하지는 않고 말로만 하는 믿음입니다. 주여 주여 합니다. 15-16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지금 당장 배고파 쓰러져 가는 사람에게 “ 평안히 지내십시오” 라고 말만 한다면 되겠습니까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옷 입어 따뜻하게 되는 게 아닙니까 교회 안에도 좋은 말 많이 하고 번지르르하게 다하는 것 같고 정말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말만 하는 사람 이런 사람 많습니다. 말로는 다합니다.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드립니다.” 함께 따라 합시다“ 말로 다하는 사람은 쉽게 하는 사람은 행동은 끝까지 끝까지 가 봐야 안다” 마로만 큰 소리 치고 안하는 사람 많습니다. 회의에서는 이런 저런 말이 많지만 하나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마로만 믿는 사람 이것은 거짓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갈6:9-10)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지니 피곤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둘 때가 오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서 할지니라. 행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낙심치 않으면 내 행하는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로 응답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요일3: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말로만 믿음으로 사랑한다. 못할 것 없이 다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우리 지방 어떤 교회는 교회 교육관과 유아실이 필요했는데 어떤 집사님이 지금은 교회가 2층에 있는데 3층이 비면 제가 얻겠다고 하다가 막상 건물이 비게 되니까 교회 재정이 얼마나 있습니까 차라리 23층 얻을 돈으로 땅을 삽시다 하면서 식언하는 일꾼이 있었습니다.> 믿음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함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믿음이 참 믿음 인줄 믿습니다.
3.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17) 죽은 사람에게 말하라고 움직이라고 아무리해도 못합니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백제 화장터에서 “ 여보 말좀 해봐”라고 울부짖는데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이 믿음이 죽은 자가 되지 맙시다. 살아 있어야 되겠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천하없이 떠들고 다니고 교회 걱정 혼자 다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안하는 믿음도 죽은 믿음 거짓된 믿음입니다. 가장 기도 많이 한 신령한 종 야고보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二. 귀신의 믿음을 갖은 이도 있습니다.(18-19) 거짓 믿음과 참된 믿음의 가교 역할도 귀신의 믿음도 있다고 18-19절에 말씀합니다. 함께 19절을 읽어봅시다. 말씀은 “귀신들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귀신들도 믿는 다고 했습니까 안 믿는다고 했습니까 믿음과 행함, 거짓 믿음과 참된 믿음 사이에 이를 판가름해 주는 가교 (
1)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기도 한다. (막3;11) 더러운 귀신들도 주님만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엎드려 절했다. 주님이 하나님 의 아들이라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막5:7)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이러고 누가 그랬습니까 귀신이 말했습니다. 귀신도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것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신학에서 하나님은 죽었다. 천국과 지옥을 부정하고 메시야의 탄생을 부인하는 교단과 신학자가 있다. 예수교로 시작되는 교단은 하나님이 죽었다는 교단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기독교로 시작되는 교단 중에는 하나님 죽었다는 교단이 이런 계열에 속해 있는 교회가 많다. 이런 믿음은 귀신의 믿음만도 못하다는 말입니다. (눅8:29-31) 귀신아 나오라 32절에 무저갱에 들어가지 말게 해 주실 것 간구하면서 끝이 없는 무저갱에 들어가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무저갱은 마귀가 장차 갈 지옥이에요 귀신도 지옥이 이음을 미는 다는 말입니다. 지옥에 대해 두려워 떨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확신하는 믿음으로 생활을 바꾸어 행하는 믿음이 됩시다. 믿음의 행위를 올바르게 가지는 성도가 됩시다. 오늘날 강단에서 “ 회개하라”“지옥 간다” 이런 설교는 가장 인기 없는 설교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불타는 곳 고통이 그치지 않는 곳 후회해도 때늦은 곳이 있다 했는데 지옥에서 보니까 천국에 있는 나사로가 보였다. 이것이 더 못할 노릇이다. 북한 주민들이 여기가 지상 낙원이라니까 거기 밖에 없는 줄 알고 길들여진다.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다 무너져 가는데도 김일성이는 우리 방식대로 사는 게 좋단다. 그래서 외국 물먹은 사람들이 큰 골치 덩어리로 여긴다.
2.심판과 지옥의 존재를 믿기도 합니다. 사후의 세계는 죽음 후의 세계는 분명히 둘로 존재합니다. 이만하면 괜찮은 믿음이지가 아니라 내 믿음이 혹 한가지라도 부족한 것이 없나 돌아보고 그 한가지씩을 채워 나가는 믿음이 되자 그 부족한 한가지를 채우지 못한다면 하나가 아니라 둘 셋 이러다 주님과 멀어져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이처럼 천국 지옥의 사실을 확신하면서도 내 믿음의 행위가 죽은 것 행하지 않는 것 책임감 없는 것이라면 문제라는 말이에요 귀신보다 못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의지의결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귀신은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결단을 못한다. 이것이 귀신의 한계입니다. 지식적으로는 믿고 알지만 실제적으로 아는 하나님께 대한 것을 믿고 신뢰하는 결단성이 없다. 왜 천국을 못 가고 지옥에 가는 신세니까 말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오랜 시간 다니면서 들은 풍월로 지식적으로는 하나님도 알고 천국도 알고 다 알지만 그렇지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결단하지 못하면 귀신처럼 거짓 믿음이다. 이런 말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믿음의 결단이 잊기를 축원합니다.
신앙과 감정과 지식에 머물러 있어서는 참된 것이 아닙니다. 전전으로 하나님은 신뢰하고 의지하고 맡겨야 되는 결단이 있어야 참 믿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자를 것 자르고, 버릴 것 버리고 분명히 결단하자. 이것은 사회 생활도 마찬가지다. 성공의 비결이다. 알기는 다 알아도 결단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믿음의 결단이 있기를 자르고 끊고 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三. 참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20-26)
1.살아 움직이는 믿음입니다.(20) 살아 움직이는 행동이 있는 믿음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이 열심 있는 살아 움직이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믿음이 참 믿음인가 야고보는 두 사람의 예를 들어서
2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로 들었다. (창15:) 100세에 아들을 낳고-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아브라함이 믿습니다 했더니 (창22장)에는 모리아 산에서 이 믿음의 행동을 시험으로 확정하시고 의로 인정. 아브라함이 행하는 믿음을 보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비로서 네가 나를 사랑하는 주를 알 았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가 아니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반복해도 행하지 않으면 헛것이다.
3. 기생 라합의 믿음과 같습니다. 수 2장-6장-2장은 내 몸, 6장은 결과, 히11장의 믿음의 위인들 소개-이 기생 라합 소개 정탐꾼들(여리고성 정탐) 숨겨 주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정탐군, 체포장을 받고 기생 라합 의 집에도 군사들이 왔지만 끝까지 숨겨 주었다. 이것이 행동입니다. “ 믿습니다”하고서 행동 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다. 믿음으로 숨겨 주었지만 여리고 왕이 대노해서 체포령을 내렸고 병사들이 수색하니까 두렵고 떨려서 “여기 있다”고 고발하면 행하지 못하는 믿음이다. 한다고 믿는다고 시작해 놓고 조금만 어려움이 오고 부딪쳐도 다음에 하지 못하겠어 여기 있습니다. 고발하는 것이다. 숨겨 줘 놓고 “여기 있다”고 말하면 죽으라는 것입니다. 라합은 믿음과 행 위가 일치된 여인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 라합의 이름이 기록돼 있고 히11장의 믿음의 위인으로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하는 믿음에 행위가 동반되어 지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참 의로 운 믿음의 본이고 라합은 천한 신분으로 참 믿음의 본을 보인 사람입니다. 참 믿음은 아브라 함에게도 참 믿음 라합 같은 여인이다. 누구에게도 잘 믿을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합니다. 나는 뭐가 부족해서 참 믿음에 동참치 못하겠나 우리도 잘 믿을 수 있는 참 믿음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과 행위의 차이는 뭔가 하나도 없다. 손바닥과 손등과 같다. 실과 바늘이다. 26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1.거짓 믿음은 어떤 것인가(14-17) 한 마디로 거짓 믿음은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르치는데 우리가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고 다 알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행함이 없는 그 믿음이 바른 믿음이 아니라 거짓 믿음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행함이 없다는 믿음은 믿는다고 해도 그것이 인정되는 바른 믿음이 되지못하기에 오늘 우리는 여기
1) 거짓된 믿음
2) 행함이 없는 믿음은
3)구원받지 못한다는 엄청난 말입니다. 14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1.행함이 없는 믿음은 구원치 못합니다. (요일3:14)우리가 형제를 사랑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정말 내가 구원받은 확신이 있는 믿음의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 때문에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람은 내가 불고기 집, 참기름 집, 화장실 내게 성령이 함께 하고 참 믿음 구원의 믿음이 있으면 행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함이 없다는 것은 하늘을 찌를 만큼 대단한 믿음을 사람 앞에 보일지라도 그것은 바른 믿음이 아닌 거짓된 믿음이기 때문에 행함 없는 거짓된 믿음으로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이 귀한 사실에 대해서 믿음은 “ 믿으면 되겠네”라는 찬송을 한없이 부르고 기도한다고 소리치고 신앙 생활의 연조요 지식으로 자랑해도 행함이 없는 것은 다 거짓 믿음입니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것은 죽은 믿음이요 구원의 확신도 없으면 우리는 행하는 실천하는 말씀을 따라 사는 참 믿음의 성도가 됩시다. 나무가 아무리 적은 아무라도 믿음의 뿌리가 있는 살아 있는 나무는 자라서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큰데 뿌리가 썩어 있는 나무는 물을 아무리 주고 기도를 아무리 하고 아무리 철야 기도 산기도, 들기도 한다고 설치고 다녀도(이것이 물을 주는 행위)썩어 있는 뿌리는 더 썩게 마련이다. 정말 믿음의 뿌리가 살아 있는 사람은 때가 되면 자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이미 그 뿌리가 믿음이 죽어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라고, 썩어 있는 믿음이라고 말씀한다면 우리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되어 정말 내 믿음의 뿌리가 살아 있어 그 결과적인 열매로 어진 구원의 확신과 믿음의 부요함과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시는 승리의 열매가 충만케 하시기 바랍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살아나는 사도 요한의 말씀처럼 열매를 맺힐 수 있는 좋은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행함이 없이 말로만 하는 믿음입니다. 행하고 실천하지는 않고 말로만 하는 믿음입니다. 주여 주여 합니다. 15-16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지금 당장 배고파 쓰러져 가는 사람에게 “ 평안히 지내십시오” 라고 말만 한다면 되겠습니까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옷 입어 따뜻하게 되는 게 아닙니까 교회 안에도 좋은 말 많이 하고 번지르르하게 다하는 것 같고 정말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말만 하는 사람 이런 사람 많습니다. 말로는 다합니다.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드립니다.” 함께 따라 합시다“ 말로 다하는 사람은 쉽게 하는 사람은 행동은 끝까지 끝까지 가 봐야 안다” 마로만 큰 소리 치고 안하는 사람 많습니다. 회의에서는 이런 저런 말이 많지만 하나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마로만 믿는 사람 이것은 거짓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갈6:9-10)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지니 피곤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둘 때가 오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서 할지니라. 행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낙심치 않으면 내 행하는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의 축복의 열매로 응답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요일3: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말로만 믿음으로 사랑한다. 못할 것 없이 다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우리 지방 어떤 교회는 교회 교육관과 유아실이 필요했는데 어떤 집사님이 지금은 교회가 2층에 있는데 3층이 비면 제가 얻겠다고 하다가 막상 건물이 비게 되니까 교회 재정이 얼마나 있습니까 차라리 23층 얻을 돈으로 땅을 삽시다 하면서 식언하는 일꾼이 있었습니다.> 믿음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함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믿음이 참 믿음 인줄 믿습니다.
3.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17) 죽은 사람에게 말하라고 움직이라고 아무리해도 못합니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백제 화장터에서 “ 여보 말좀 해봐”라고 울부짖는데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이 믿음이 죽은 자가 되지 맙시다. 살아 있어야 되겠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천하없이 떠들고 다니고 교회 걱정 혼자 다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안하는 믿음도 죽은 믿음 거짓된 믿음입니다. 가장 기도 많이 한 신령한 종 야고보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二. 귀신의 믿음을 갖은 이도 있습니다.(18-19) 거짓 믿음과 참된 믿음의 가교 역할도 귀신의 믿음도 있다고 18-19절에 말씀합니다. 함께 19절을 읽어봅시다. 말씀은 “귀신들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 귀신들도 믿는 다고 했습니까 안 믿는다고 했습니까 믿음과 행함, 거짓 믿음과 참된 믿음 사이에 이를 판가름해 주는 가교 (
1)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기도 한다. (막3;11) 더러운 귀신들도 주님만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엎드려 절했다. 주님이 하나님 의 아들이라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막5:7)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이러고 누가 그랬습니까 귀신이 말했습니다. 귀신도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곧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것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신학에서 하나님은 죽었다. 천국과 지옥을 부정하고 메시야의 탄생을 부인하는 교단과 신학자가 있다. 예수교로 시작되는 교단은 하나님이 죽었다는 교단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기독교로 시작되는 교단 중에는 하나님 죽었다는 교단이 이런 계열에 속해 있는 교회가 많다. 이런 믿음은 귀신의 믿음만도 못하다는 말입니다. (눅8:29-31) 귀신아 나오라 32절에 무저갱에 들어가지 말게 해 주실 것 간구하면서 끝이 없는 무저갱에 들어가지 않게 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무저갱은 마귀가 장차 갈 지옥이에요 귀신도 지옥이 이음을 미는 다는 말입니다. 지옥에 대해 두려워 떨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확신하는 믿음으로 생활을 바꾸어 행하는 믿음이 됩시다. 믿음의 행위를 올바르게 가지는 성도가 됩시다. 오늘날 강단에서 “ 회개하라”“지옥 간다” 이런 설교는 가장 인기 없는 설교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불타는 곳 고통이 그치지 않는 곳 후회해도 때늦은 곳이 있다 했는데 지옥에서 보니까 천국에 있는 나사로가 보였다. 이것이 더 못할 노릇이다. 북한 주민들이 여기가 지상 낙원이라니까 거기 밖에 없는 줄 알고 길들여진다.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다 무너져 가는데도 김일성이는 우리 방식대로 사는 게 좋단다. 그래서 외국 물먹은 사람들이 큰 골치 덩어리로 여긴다.
2.심판과 지옥의 존재를 믿기도 합니다. 사후의 세계는 죽음 후의 세계는 분명히 둘로 존재합니다. 이만하면 괜찮은 믿음이지가 아니라 내 믿음이 혹 한가지라도 부족한 것이 없나 돌아보고 그 한가지씩을 채워 나가는 믿음이 되자 그 부족한 한가지를 채우지 못한다면 하나가 아니라 둘 셋 이러다 주님과 멀어져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이처럼 천국 지옥의 사실을 확신하면서도 내 믿음의 행위가 죽은 것 행하지 않는 것 책임감 없는 것이라면 문제라는 말이에요 귀신보다 못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의지의결단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귀신은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결단을 못한다. 이것이 귀신의 한계입니다. 지식적으로는 믿고 알지만 실제적으로 아는 하나님께 대한 것을 믿고 신뢰하는 결단성이 없다. 왜 천국을 못 가고 지옥에 가는 신세니까 말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오랜 시간 다니면서 들은 풍월로 지식적으로는 하나님도 알고 천국도 알고 다 알지만 그렇지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결단하지 못하면 귀신처럼 거짓 믿음이다. 이런 말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믿음의 결단이 잊기를 축원합니다.
신앙과 감정과 지식에 머물러 있어서는 참된 것이 아닙니다. 전전으로 하나님은 신뢰하고 의지하고 맡겨야 되는 결단이 있어야 참 믿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자를 것 자르고, 버릴 것 버리고 분명히 결단하자. 이것은 사회 생활도 마찬가지다. 성공의 비결이다. 알기는 다 알아도 결단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믿음의 결단이 있기를 자르고 끊고 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三. 참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20-26)
1.살아 움직이는 믿음입니다.(20) 살아 움직이는 행동이 있는 믿음입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이 열심 있는 살아 움직이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믿음이 참 믿음인가 야고보는 두 사람의 예를 들어서
2 아브라함의 믿음을 예로 들었다. (창15:) 100세에 아들을 낳고-하늘의 별 바다의 모래-아브라함이 믿습니다 했더니 (창22장)에는 모리아 산에서 이 믿음의 행동을 시험으로 확정하시고 의로 인정. 아브라함이 행하는 믿음을 보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비로서 네가 나를 사랑하는 주를 알 았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가 아니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반복해도 행하지 않으면 헛것이다.
3. 기생 라합의 믿음과 같습니다. 수 2장-6장-2장은 내 몸, 6장은 결과, 히11장의 믿음의 위인들 소개-이 기생 라합 소개 정탐꾼들(여리고성 정탐) 숨겨 주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정탐군, 체포장을 받고 기생 라합 의 집에도 군사들이 왔지만 끝까지 숨겨 주었다. 이것이 행동입니다. “ 믿습니다”하고서 행동 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다. 믿음으로 숨겨 주었지만 여리고 왕이 대노해서 체포령을 내렸고 병사들이 수색하니까 두렵고 떨려서 “여기 있다”고 고발하면 행하지 못하는 믿음이다. 한다고 믿는다고 시작해 놓고 조금만 어려움이 오고 부딪쳐도 다음에 하지 못하겠어 여기 있습니다. 고발하는 것이다. 숨겨 줘 놓고 “여기 있다”고 말하면 죽으라는 것입니다. 라합은 믿음과 행 위가 일치된 여인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 라합의 이름이 기록돼 있고 히11장의 믿음의 위인으로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하는 믿음에 행위가 동반되어 지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참 의로 운 믿음의 본이고 라합은 천한 신분으로 참 믿음의 본을 보인 사람입니다. 참 믿음은 아브라 함에게도 참 믿음 라합 같은 여인이다. 누구에게도 잘 믿을 수 있는 것임을 기억합니다. 나는 뭐가 부족해서 참 믿음에 동참치 못하겠나 우리도 잘 믿을 수 있는 참 믿음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과 행위의 차이는 뭔가 하나도 없다. 손바닥과 손등과 같다. 실과 바늘이다. 26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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