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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믿음 (약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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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당대의 부자가 된 깁슨(Gibson)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물방앗간의 심부름꾼으로 출발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였고 결국 갖은 고생 끝에 산림20만 에이커(2억 4488만평) 철도280마일이라는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여 아메리카의 거부로 손꼽히게되었습니다.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기자가 깁슨에게 물었습니다. "아주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크게 성공할 수있었는지 그 비결을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깁슨은 "글쎄요, 굳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한다면 세 가지 신조입니다.
첫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을 것,
둘째는 수고하는 것을 싫어하지말고 부지런히 일할 것,
셋째는 하나님을 믿고 만사를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나를 오늘이 있게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난 기자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그거야 누구 나가 다 아는 얘기 아닙니까" 라고 되물었고 깁슨은 웃음 띤 얼굴로 다시 말했습니다.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못됩니다. 누구나가 다 아는 하찮고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깁슨을 거부로 만든 것은 해박한 지식이나 달변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평범한 사실의 실천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사상이나 이론이 세력을 얻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공산주의의 이론은 공산주의가 된다면"능력대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쓰는 사회"가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그럴싸한생각입니까 그러나 70년 간의 실제상황에서 사람들에게 빈곤만을 가져다주고공포심만을 주었기에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는 사상이 되고만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이 오늘날도 위대한 것은 모든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한 열심 있는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는데 그만 청년 때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내용에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원수를 사랑하고위해서 기도하라는 내용,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 뺨도 돌려대라는 말씀, 송사 하여 겉옷을 달라고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도 주라고하신 말씀,억지로 짐을 지워 오리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 십리를 가주라는 말씀 등은 더 이상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치않는 구 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심리학을 공부하여 사람들의 일그러진 마음을 돌보는 상담자가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원한과 심리적 갈등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그러므로 정신이 잘못되어서 수많은 장애가 생겨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치료법을 배우며 연구하는 가운데 예수님의방법이 아니고서는 사람을 정신적인 혼란에서 오는 불행에서 막을수가 없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의위대성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항상 우리를 풍성하게 하며 절대불변의 복되게 하는 진리가 됩니다. 믿음은 위대한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천국을소유하게 만들어 줍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살지 않게 하며 담대한 용기를 줍니다. 병을 이기게 하고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눈에 보이는 금은 보화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간직하는 것은 믿음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믿음을 단순한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믿음은 사람의모든 삶을 변화시켜 행위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기독교의 역사동안 수많은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때로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루터는 행위를 강조한다고 해서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하여 성경에서 빼버리기까지 하였을 정도였습니다. 언듯 읽어보면 본문에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구원받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진정으로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그릇된 형식적인 신앙에대하여서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나의 구원자로 믿고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복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되었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받지 못함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우리가자신과 사귐을 가지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갖고 복되게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초청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모시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인정하는데 그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지식으로만이 아니라고 하는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그리스도의생각으로 채우고 내 행위를 그리스도의 행위로 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순종의 행위를 수반하게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갈 2:20 '1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2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 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삶,
그러므로 내 삶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보는 신앙생활의 이상입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외모로만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에수를믿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고백을 하는 것으로만 끝내서는 안됩니다. 이제는 이 고백을 우리의 삶에서 드러내며 살아야되는 것입니다. 구원파라고 하는 이단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로 묻습니다. 당신 구원받았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구원받은 날짜를 물어옵니다. 정확하게 년 월 일시를 물어봅니다. 만약에 대답을못하면 구원받지 못했다고 몰아칩니다. 우리가 우리의 출생 시각을 정확하게 모르고서도 그런 대로 사람인 것처럼우리가 구원받은 날짜를 정확히 모른다고 해도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 구실하며 사는것이 중요한 것처럼 예수를 믿는 사람도 거듭나는 것이 중요하지만 성도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구원은 죄로부터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중생이 있고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가는 성화가 있습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닮아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한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지만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14-17절에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없으면 무 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아니하면 무슨 이익 이 있으리요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변화되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계명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행위는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는 것은 내가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내가 남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과 라합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100세에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가 어려운 조건들이 많이 있었지만그러나 순종했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행위가 그의 믿음을 입증한것입니다. 라합도 그 행위로 믿음을 입증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기생 라합은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의 첫 번째 목표인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을 공략하기 위하여 정탐꾼을 보냈는데 이 정탐꾼이 성안으로 잠입했을 때 그들을 위험에서 구해줌으로 여리고 성이멸망을 받을 때 그와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야고보는 라합의이러한 구원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준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므로 결국 그녀는 그녀의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증언하고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서로 통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일반도덕적인 선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행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 이 행위가 우리를 구원하는행위인 것입니다. 성도는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속에 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 행위가 선한 행동으로 나올 뿐인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행하는 선한 일과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선한 일은 결과는 같을 지라도 내용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선하다고 믿고서 선한일을 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보니 선한 행위가 된 것입니다. 믿음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행위란 말은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결론을 내리기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죽은 믿음입니까 살아있는 믿음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살아있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하셔서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을 맡기기만 하시면 주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그분의 삶을 살으셔서 풍성한 믿음의 열매가 맺도록 역사하십니다.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셔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여러분의 삶을온전히 지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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