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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디에 거하십니가? (요일2: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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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적이 무섭다 요한공동체에 내부의 적이 있었다 내부의 적에 대하여 저항력을 길러라 당신의 마음과 몸은 어디에 있는가 내부의 적이 무섭다 병균보다 무섭고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암세포입니다. 한국인은 위암 간암 폐암순으로 암이 발병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 암세포를 감시하여 자라지 못하도록 백혈구라는 호위병을 몸속에 깔아 놓으셨는데 사람들의 무절제한 술과 담배와 마약에 백혈구가 몽롱해지면 암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도 우리 몸의 저항력을 약화시킨다고 합니다. 우리 정신 세계에도 윤리 도덕의식이 무너지지 않도록 양심을 주셨는데 양심이 무감각해지고 그 기능을 잃으면 부모까지 죽이는 패륜아가 됩니다. 우리 신앙의 적이 환경에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우리 내부에 있음을 사도요한을 통하여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 내부의 이단적인 요소는 암세포와 그 속성이 놀랍도록 똑 같습니다. 사도 요한은 바로 이 내부의 적으 정체를 밝히고 우리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적은 뚜렷이 분별이 되기때문에 쉽게 응전의 태세를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의 적은 우리와 함께 먹고 자고 마시고 꼭같이 행동하므로 처음에는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설마 저들이 우리의 적일리가 없다고 없다고 방심하게 됩니다. 암세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암세포가 자란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깨닫지 못합니다. 실은 건강한 사람에게도 암세포는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암세포가 점점 자라는데도 우리 몸이 그것을 빨리 제거하지 못하면 문제가 커지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암세포가 자라 혹이 되어 만져지거나 통증이 느껴지면 그때는 이미 치료하기에는 너무 늦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도 요한이 목회하는 교회의 적그리스도 역시 보이지 않는 적이 있었습니다. 꼭같이 헌금내고 꼭같이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도무지 외갱 분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제 5-6정권 시절에 학생운동이 전성기였습니다. 이 시절에 새문안 교회 당회가 대학부 해산 결정을 내려 소문이 파다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부에 학생운동을 일삼는 사람 몇이 들어와 자꾸만 데모를 선동하고 심지어 공동의회 석상에서까지 데모를 주동했다는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가 몇명의 운동권 학생들의 농간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에 대해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것이지요. 얼핏 보면 다 같은 대학생이요 순수한 젊은이 같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2.무서운 속도로 전염이 되기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이 주님의 몸된 공동체를 허는 보이지 않는 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죄악은 선한 것보다 훨씬 전염의 속도가 빠릅니다. 땅이 저주받은 이래 알곡은 애써 가꾸어도 풍성한 수확얻기가 슆지 않지만 잡초는 뿌리기는 커녕 해년마다 뽑아내고 또 뽑아버려도 한 밭 가득히 솟아납니다. 얼마나 번식력이 강한지 농민들이 김매기 힘들어 제초제 뿌리는 심정이 이해갑니다.
예)
1)민수기 16장의 교훈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고라와 다눗 아비람 이들은 회중의 대표로 뽑힌 지도자급 인물들로 이들의 추종자 250명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모세 지도권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냈습니다. 이런 도전의 말을 들었을때 모세는 겸손하게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누가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지도자인지 하나님께서 스스로 판가름 하도록 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고라는 레위의 증손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각기 성막에서 피우는 향로에 불을 담아가지고 성막으로 모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에게도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불러 오라고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들은 다지 않겠다고 하며 이렇게 전갈을 보냈다.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데려 내다가 이 광야에서 죽이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이젠 우리 위에 군림하여 호령까지 하려 드시오 당신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지도 못했고 우리가 차지할 밭이나 포도원을 나누어 주지도 못하였소. 이 백성을 장님으로 만들셈이오 우리는 못 가오] 이들은 권력에 눈이 어두웠고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말씀을 들었을때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땅에대한 거부요 에굽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거부는 곧 하나님 자신에 대한 거부입니다. 하나님을 무능력한 분이라고 비판하고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노예생활하던 에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오히려 전개했던 것입니다. 이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무려 250명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250명이 백성들에게 자꾸만 하나님 하시는 일에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불신을 전염시키고 가나안보다는 에굽이 훨씬 풍요로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고 부정적인 시각을 전염시킨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무서운 속도로 이들의 불신은 백성들 가운에 전염되어갔습니다. 신앙은 눈물겨운 훈련을 통해서 연단이 되지만 불신은 훈련시키지 않아도 잡초처럼 번식하여 우리를 믿음에서 떨어지게 합니다.
3.다른 지체들과 결코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암세포역시 우리 몸에 바탕을 두고 우리 몸의 양분을 섭취하고 우리 몸에 붙어있는 세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것이 왜 병이 됩니까 다른 지체들과 조화를 이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암세포가 커지면 다른 지체들이야 어찌되든지 자신의 세포만 키우기에 막무가내로 양분을 섭취해 버립니다. 이 암세포가 자라면 자랄 수록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다른 기능이 마비되어 갑니다. 위암 환자가 소화를 시키지 못하여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인데도 이들 암세포는 게걸 스럭 자신의 세포를 키우기 위하여 양분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다른 지체들은 우리가 금식하여 외부로부터 영양이 중단될때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양분을 오히려 내어놓습니다. 처음에는 지방질이 풀려나갑니다. 그다음에는 단백질까지 내어놓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해서든지 몸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생명을 부지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나 암세포는 결코 자신의 양분을 양보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단의 속성이 꼭 이와 같습니다. 그들이 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 집단 안에서만 사랑이요 공동체이지 결코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희생하지 않습니다. 게걸스럽게 자신들의 덩치만 키워가는 것입니다. 자신들 집단에만 구원이 있다고 믿게합니다. 때문에 이들이 세력이 약할때는 교회에서 얌전히 있지만 세력이 커지면 정면으로 도전장을 냅니다. 마치 고라 일당 250명이 모세를 대항하여 일어나듯이 말입니다.
4.제거하는데 큰 고통이 따르기때문입니다. 보이는 적은 싸워 물리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암세포는 자기 살을 도려내야만 졀키 됩니다. 약물로 세포를 죽이는 것도 사실은 암세포가 아닌 다른 세포에게 엄청난 부담을 줍니다. 항암제를 투입하면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기도합니다.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고통 없이 암세포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이 심판을 받아 멸망받았을때 그 족속들과 친인척 관계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저희 모친께서도 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처음 병원에 갔을때 의사 선생님 척 만져보시더니 "그져 마음 편히 모시라고"하시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믿을 수가 없어서 다른 곳에서 또 진단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위암 환자가 병세가 깊어지면 기진하여 죽게됩니다.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가족의 고통또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모친이 꿈에 나타나면 꼭 앓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자녀로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요한공동체에 내부의 적이 있었다 오늘 우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신앙의 적은 이처럼 무섭고 지독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목회하는 교회동체를 헐려는 암세포와 같은 신앙의 적을 그는 적 그리스도라 불렀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추종자들입니다. 이 적들이 무서운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혼한 신앙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정체를 바로 알고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질병은 병나고 잘 치료하는 것보다 예방이 최선책입니다. 아예 어떤 병균도 어떤 암세포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튼튼한 저항력을 길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입니다. 내부의 적에 대하여 저항력을 길러라 어떻게 건강한 신앙인으로 우리 안에 움트는 암세포인 이단적인 요소를 이길 수 있다고 하십니까 한마디로 말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으라고 하십니다.
성령이라고 하는 예방주사-> 20절성령이라고 하는 예방주사를 맞아야합니다.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은 우리가 믿을때 받은 성령을 가르키십니다. 성령을 중심에 모신 사람은 결코 영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20)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사람입니다(22) 청결한 영적 위생관리->22-23두번째 확실한 신앙 고백으로 청결한 영적인 위생을 유지하여햐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히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여자도 유혹할 엄두를 못냅니다. 한 남자만을 확실히 사랑하는 여자에게 어떤 제비도 접근하지 못합니다. 항상 두사람 사이가 뭔가 서먹서먹하고 "저 사람이 나를 아무래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혹은 "아무래도 마누라고 바람 피우는 것 같아" 이렇게 의심할때 유혹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고한 사랑의 고백 신앙의 고백이 있을때 우리는 건강한 신앙인이 됩니다.
예)기독교는 여러 종교인들이 모이는 석상에서는 가장 존경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거든요. 그래서 다른 불교인들이나 여타의 종교인들이 비난을 많이 합니다. 너무 독단적이라고 합니다. 너희들만 진리를 아는체한다고 나무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 독단 성을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진리와 우리가 믿는 진리 자체가 다르기때문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는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진리와 결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만 사랑하겠노라고 서약하고 결혼식(세례식)까지 다 올려 놓고 석가도 좋고 공자도 좋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예수님 한남편만 섬기는 지조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 두고 다른 것과 또 결혼한다면 그는 이미 구원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이점을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영양을 끊임없이 공급받아야합니다.->24절처음부터 들어온 복음을 확고히 믿고 그 위에 서라고 권고하십니다. 처음부터 들어 온것이란 무엇입니까 뒤에 나오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의 마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과의 교제르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을 확고히 믿고 그사랑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고백을 받아들이지 않을때 처럼 답답한 일을 없을 것입니다.
예)탕자의 비유(눅15:)아버지와 독립을 선언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다 털어 먹었던 탕자의 훌륭한 점이 무엇입니까 그가 회개하고 아버지의 머슴이라도 되면 밥은 먹을 수 있겠다 싶어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점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별로 훌륭한 점이 못됩니다. 그가 굶어죽게 생겼으니까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한 것이지 그가 만일 돈이라도 잘 벌었다면 그런 생각 꿈에도 안했을 것입니다. 그의 훌륭한 점은 그의 실패와 연약함을 온전히 받아 주시고 그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100프로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염치가 있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어코 머슴살이라도 해서 벌을 받겠다고 우겼다면 그는 몸은 집에 왔을 지언정 진정한 구원은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100프로 수용하는 것이 결코 슆지 만은 않은 듯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철저히 믿지 못하고 내일 먹을 양식을 걱정하고 고라의 일당처럼 예수 않믿을 때가 좋았는데 이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완전히 100프센트 수용한 사람은 왠만한 일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항상 문제는 관계가 삐닥할때 일어납니다. 온전히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는 어떠한 영적인 질병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과 몸은 어디에 있는가 몸이 교회에 있다고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올시다. 마음까지 와야합니다. 주님께서는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가고 하셨습니다. 자기 지식과 명예와 권력과 세상의 어떤 것을 겸하여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지 못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주님과 바른 관계요 몸과 마음이 온전히 그분 편에 서는 것입니다. 몸만 가 있어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에 이글을 쓴다고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하는 이런 확고한 태도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요구되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 부부가 지켜야할 도리를 지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한 여러분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정말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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