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예배의 비밀을 아십니까? (창4:1-8)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를 드립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당신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신약의 예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구약의 제사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구약의 제사는 신약 예배의 뿌리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피흘려 죽는 제물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신약의 예배는 부활하신 주님의 새생명에 초점을 맞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는 죄를 사하는 속죄의 죽음을 통한 눈물로 회개하는 슬픔이나, 신약의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아 누리는 부활의 축제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와 예배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제사에 나타난 몇가지 중요한 요소가 바로 신약 예배의 원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신약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사람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었습니다(창세기1:26-28). 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시고 그 가운데 주권의 상징인 선악과를 두어 계약하신 것입니다(창세기2:17). 3장에서는 계약을 파괴하고 타락한 인간을 찾아오신 원시복음이 나타나 있습니다(창세기3:9,15,20). 4장에서는 어린양의 피로서 구속함을 받은 인생이 예수 안에서 새롭게 되어 날마다 속죄의 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신 예배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창세기4:4). 아벨의 제사는 당신에게 바른 예배관을 가르쳐 주십니다. 본문 3절에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제사하는 법을 직접 가르쳐 주셔서 범죄한 인생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창세기3:21, 4:4). 그 후에 많은 세월이 흘러 그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장성하여 아비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제사를 드릴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드린 제사는 중요한 제사입니다. 만약에 아담의 제사가 대를 이어 전수되는 이 제사가 바르게 전수되지 못하면 그의 후예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가르쳐 준 계약대로 드리지 않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어떠한 제사인가
첫째:언약에 기초한 피의 제물입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제사의 제도가 이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흘리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9:22)고 했습니다. 이것이 범죄한 아담에게 가르쳐 준 새로운 언약계시입니다.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6:23)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두 제사에 대하여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4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5절)고 했습니다. 왜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았는가 가인의 제사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르쳐 준 피의 제물이 없었습니다. 그의 제사는 하나님이 본래 가르쳐 준 제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제물입니다. 히브리서 기사는 이 사실을 너무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11:4)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벨이 드린 제물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르쳐 준 계약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구약의 제사가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갈보리에서 완전한 제물이 되어서 그가 한번 드림으로서 모든 것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마태복음27:5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의 담이 허물어져 버린 것입니다(이사야59:1-2).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9:12)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종교행위는 미신적인 무속신앙이요, 우상숭배 행위입니다. 예수 외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14:6)고 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4:12)고 했습니다.
둘째:믿음에 근거한 인격적인 교통입니다. 다음으로 제사에 중요한 것은 예배자의 인격입니다.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4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시니라”(5절)고 했습니다. 아벨의 제물과 함께 그의 인격을 받으신 것입니다. 반면에 가인의 제물만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가인의 인격까지 거절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제사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르쳐 준 것이 그 아들에게 전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버지로부터 오랫동안 배워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이 드린 제사가 어쩌다가 한번 다행스럽게 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몸에 체질적으로 베여 있는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가인의 제사 역시 어쩌다 한번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인격과 삶의 행위 속에서 나타난 습관화된 일상적인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히브리서11:4)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가인의 인격은 어떠했는가 요한은 가인의 인격에 대하여 말하기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한일서3:12)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인의 “행위”라는 말입니다. 가인은 지금까지 아버지를 통해 제사에 참여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언제나 믿음없이 대충해서 그저 그렇게 드려도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너무도 이러한 무례함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이 제사는 바로 그의 인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거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가증한 제사를 드리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가인이 깨닫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변화를 입어야 하는데 오히려 분노와 적개심이 가득차서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가인의 행위요, 바로 그의 인격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입니다. 인격이란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용납하고 관용하나 불의하고 불법한 것은 저주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인격으로 나아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의 행위속에 당신의 인격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인간에게 최초로 성문계시를 주실 때 돌판에 새겨 예배의 비밀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출애굽기20:3-6).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인격에게 드리는 제사를 용납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제사를 우상숭배 행위라고 했습니다.
셋째:경건한 태도로 드리는 정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소는 경건한 정성입니다. “가인은 땅에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3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4절)라고 했습니다. 가인의 제사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함과 경외함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자신의 직업을 따라 드린 세속주의이며, 자신의 소산으로 드린 편리한 실용주의이며, 준비없이 드린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고 무계획한 안일주의입니다. 아무리 문화적인 환경과 요소가 달라도 하나님 앞에 드릴 경건을 상실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는 언약을 중시하는 경건한 피의 제사이며, 양의 첫 새끼를 드리는 선한 청지기였으며, 기름을 준비하여 드린 정성된 제사였습니다. 제사의 창시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예배의 창시자는 구속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주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고 했습니다. 예배의 대상은 영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께 육을 가진 인간이 나아가는 신령한 교제요, 교통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진실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 사실을 너무도 정확하게 깨닫은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12:1-2)고 했습니다. 당신의 몸은 하나님께 드려진 산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모리아에서 받쳐진 이삭 같이(창세기22:9), 고운 가루로 부서진 소제 같이(레위기2:1)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모든 것이 의의 병기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드릴 지상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영적인 종합예술입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베풀어주는 아름다운 모든 좋은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주의 전의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시편84:1,
2,10)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예배시간을 엄수하여 경건한 의복을 입고 부활의 감격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주님은 오늘도 당신을 부르시고 계십니다(마태복음11:28-30).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는 죄를 사하는 속죄의 죽음을 통한 눈물로 회개하는 슬픔이나, 신약의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아 누리는 부활의 축제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와 예배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제사에 나타난 몇가지 중요한 요소가 바로 신약 예배의 원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신약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사람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었습니다(창세기1:26-28). 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시고 그 가운데 주권의 상징인 선악과를 두어 계약하신 것입니다(창세기2:17). 3장에서는 계약을 파괴하고 타락한 인간을 찾아오신 원시복음이 나타나 있습니다(창세기3:9,15,20). 4장에서는 어린양의 피로서 구속함을 받은 인생이 예수 안에서 새롭게 되어 날마다 속죄의 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신 예배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창세기4:4). 아벨의 제사는 당신에게 바른 예배관을 가르쳐 주십니다. 본문 3절에 “세월이 지난 후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제사하는 법을 직접 가르쳐 주셔서 범죄한 인생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창세기3:21, 4:4). 그 후에 많은 세월이 흘러 그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이 장성하여 아비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제사를 드릴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드린 제사는 중요한 제사입니다. 만약에 아담의 제사가 대를 이어 전수되는 이 제사가 바르게 전수되지 못하면 그의 후예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이 가르쳐 준 계약대로 드리지 않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어떠한 제사인가
첫째:언약에 기초한 피의 제물입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제사의 제도가 이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흘리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9:22)고 했습니다. 이것이 범죄한 아담에게 가르쳐 준 새로운 언약계시입니다.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로마서6:23)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두 제사에 대하여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4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5절)고 했습니다. 왜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았는가 가인의 제사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르쳐 준 피의 제물이 없었습니다. 그의 제사는 하나님이 본래 가르쳐 준 제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제물입니다. 히브리서 기사는 이 사실을 너무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11:4)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벨이 드린 제물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르쳐 준 계약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구약의 제사가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갈보리에서 완전한 제물이 되어서 그가 한번 드림으로서 모든 것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마태복음27:5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의 담이 허물어져 버린 것입니다(이사야59:1-2).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9:12)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종교행위는 미신적인 무속신앙이요, 우상숭배 행위입니다. 예수 외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14:6)고 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4:12)고 했습니다.
둘째:믿음에 근거한 인격적인 교통입니다. 다음으로 제사에 중요한 것은 예배자의 인격입니다.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4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시니라”(5절)고 했습니다. 아벨의 제물과 함께 그의 인격을 받으신 것입니다. 반면에 가인의 제물만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가인의 인격까지 거절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제사는 단순한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르쳐 준 것이 그 아들에게 전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버지로부터 오랫동안 배워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벨이 드린 제사가 어쩌다가 한번 다행스럽게 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몸에 체질적으로 베여 있는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가인의 제사 역시 어쩌다 한번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인격과 삶의 행위 속에서 나타난 습관화된 일상적인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히브리서11:4)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가인의 인격은 어떠했는가 요한은 가인의 인격에 대하여 말하기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한일서3:12)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가인의 “행위”라는 말입니다. 가인은 지금까지 아버지를 통해 제사에 참여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언제나 믿음없이 대충해서 그저 그렇게 드려도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너무도 이러한 무례함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이 제사는 바로 그의 인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거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가증한 제사를 드리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의 제사를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가인이 깨닫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변화를 입어야 하는데 오히려 분노와 적개심이 가득차서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가인의 행위요, 바로 그의 인격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입니다. 인격이란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용납하고 관용하나 불의하고 불법한 것은 저주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인격으로 나아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당신의 행위속에 당신의 인격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인간에게 최초로 성문계시를 주실 때 돌판에 새겨 예배의 비밀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출애굽기20:3-6).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인격에게 드리는 제사를 용납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제사를 우상숭배 행위라고 했습니다.
셋째:경건한 태도로 드리는 정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소는 경건한 정성입니다. “가인은 땅에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3절)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4절)라고 했습니다. 가인의 제사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경건함과 경외함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자신의 직업을 따라 드린 세속주의이며, 자신의 소산으로 드린 편리한 실용주의이며, 준비없이 드린 무성의하고 무책임하고 무계획한 안일주의입니다. 아무리 문화적인 환경과 요소가 달라도 하나님 앞에 드릴 경건을 상실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그렇지를 않았습니다.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는 언약을 중시하는 경건한 피의 제사이며, 양의 첫 새끼를 드리는 선한 청지기였으며, 기름을 준비하여 드린 정성된 제사였습니다. 제사의 창시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예배의 창시자는 구속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주님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고 했습니다. 예배의 대상은 영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께 육을 가진 인간이 나아가는 신령한 교제요, 교통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자는 진실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 사실을 너무도 정확하게 깨닫은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12:1-2)고 했습니다. 당신의 몸은 하나님께 드려진 산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모리아에서 받쳐진 이삭 같이(창세기22:9), 고운 가루로 부서진 소제 같이(레위기2:1)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모든 것이 의의 병기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드릴 지상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영적인 종합예술입니다. 예배에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베풀어주는 아름다운 모든 좋은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주의 전의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시편84:1,
2,10)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예배시간을 엄수하여 경건한 의복을 입고 부활의 감격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주님은 오늘도 당신을 부르시고 계십니다(마태복음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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