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늘의 모세입니다 (출3:10-12)
본문
당신은 출애굽의 사명자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간에 “왜 인생에게 행복이 없는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인생의 불행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남에서 비롯되었고, 그로 인해 인간의 목적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왕”을 통해 성민의 보금자리인 고센의 둥지를 어지럽혀 그들로 하여금 출애굽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애굽은 성민이 거할 곳이 아닙니다. 고센이 아무리 좋아도 성도는 그곳을 나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할 곳은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거하나 애굽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땅에 거하나 땅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립보서3:20)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상에 거하는 우리가 세상을 떠날 수 있는가 기독교의 신비와 복음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3:16)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세상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땅에 오셔서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28)고 했습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2-4장까지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모세의 사명을 통해서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하나님은 당신을 사명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은 일세기에 가깝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에 속한 경건한 한 사람을 선택하여 팔십년 전에 준비하신 것입니다.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출애굽기2:1-2)라고 했습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에레미야33:2-3)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때 이미 그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계획을 진행 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인간적으로 볼 때 불행한 시기에 출생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운명에 묶여 있었으나 하나님은 사단이 씌우는 운명의 사슬에서 그를 풀어서 구원의 갈상자로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그가 갈상자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날에 일기와 하수의 풍속과 하수의 출입자들과 출입자의 마음을 간섭하셨던 것입니다(출애굽기2:2-6). 그래서 그는 그 누구도 해할 수 없는 가장 안전한 곳에서 어미의 젖을 먹으면서 자라게 된 것입니다. 그는 왕궁에서 나이 사십에 이르기까지 애굽의 모든 학문을 통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 어머니에게 배운 민족교육을 통해서 민족해방운동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일은 단순한 국수주의 운동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민족을 괴롭히는 바로의 저변에는 엄청난 사단세력이 있음을 그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좌우를 살피는 지극히 세속적인 방법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출애굽기2:12). 출애굽 사건은 좌우를 살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좌우를 보는 일에 익숙한 모세를 위로 하나님을 보게 하기 위해서 광야로 보내신 것입니다.
둘째:하나님은 당신을 미디안에서 훈련시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하루 아침에 광야로 버려진 야인이 된 것입니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출애굽기2:15)고 했습니다. 그가 40년간의 왕궁에서 배운 것은 좌우를 살피는 수평적인 인생교육입니다. 그는 그것 이면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의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수평적인 인간 모세를 수직적인 하나님과 직접 만나는 영적교육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좌우를 바로볼 필요도 없는 광야로 보내어 위를 바라보는 영성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미디안은 모세의 영적인 훈련장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사명자들은 다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수십년 동안 훈련시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가나안 전역에서 훈련시킨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치는 목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도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 아라비아광야로 보내어 훈련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쓰기 전에 먼저 당신을 훈련시키십니다. 아무리 좌우를 살펴도 도울 자가 없는 미디안으로 보내어 자아가 완전히 부서지도록 훈련시킵니다. 여기에서 당신은 수평적인 인간관계의 도움을 단절하고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사명자로 바뀌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미디안을 한번 거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광야의 생활을 하고 있음은 고난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의 기회입니다.
셋째:하나님은 당신을 환상중에서 부르십니다. 미디안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모세의 인간적인 모든 꿈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아무것도 수 없는 인간 폐인이 된 것입니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애굽기3:1-2)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시편에서 잘 말해 줍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10)고 했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본 불붙은 떨기나무 환상은 도대체 무슨 계시인가 그 불은 이상한 불이었습니다. 더 이상 번지지도 않고, 살아지지도 않으면서 맹렬히 타오릅니다. 그 불은 성민을 괴롭히는 환란의 불입니다. 그 가시떨기는 아무곳에도 쓸모 없는 모세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은혜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3:5)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출애굽운동을 위한 사명이 주어지는 소명의 현장이었습니다. 너는 이제 세속의 신을 벗고, 복음의 신을 신고, 출애굽의 사명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넷째:하나님은 당신을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모세의 사명훈련은 끝났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기3:10)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사실은 “이제 내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이제 훈련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출애굽을 할 때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이제 내가”라고 하기까지 훈련받아야 합니다. 당신의 자아가 완전히 부서져서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 때에 이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것은 모세의 생각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애굽기3:11)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55:8-9)고 했습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애굽기3:12)고 했습니다. 출애굽은 모세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일입니다. 할 수 없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됩니다. 오늘날 당신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착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모세가 강건한 사십에 도전한 것은 인간적인 야심이지 소명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팔십에 본 가시떨기 환상은 소명에 근거한 사명이었습니다. 다섯째: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구원사역을 이루십니다. 사명의 현장 애굽으로 가는 모세의 손에는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모세의 구원사역은 엄청난 시련에 부딪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그의 마음을 강팍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출애굽기4:21)고 했습니다. 바로의 강팍함은 모세로 하여금 사명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여기에서 당신의 삶에 풀리지 않은 숙제의 해답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왜 주권적인 하나님이 바로를 단번에 항복시키지 않고 그를 강팍하게 만드는가 사단의 패망과 하나님의 감추어진 놀라운 구원역사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바로의 항복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애굽에 열가지 재앙이 내려질 때입니다. 사단권세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 앞에 굴복될 때입니다.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길은 예수 십자가 보혈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서 당신이 기억할 것은 강팍한 바로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언16:4)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의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이러한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님의 오른 장중에 붙잡힌 모세와 같은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을 이 시대에 모세로 세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대리자요,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요, 사단권세인 바로의 대적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이 시대에 이 제단을 위해 이 도성에 사명자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무리 중에 당신을 선택하셨고, 당신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해서 미디안광야로 보내셨으며, 당신에게 가시떨기 환상을 보여주시며, 당신을 강팍한 바로 앞으로 인도하시며,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당신은 충성된 사명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첫째:하나님은 당신을 사명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은 일세기에 가깝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 지파에 속한 경건한 한 사람을 선택하여 팔십년 전에 준비하신 것입니다. “레위 족속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었더니,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 준수함을 보고 그를 석달을 숨겼더니”(출애굽기2:1-2)라고 했습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에레미야33:2-3)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때 이미 그들이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계획을 진행 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인간적으로 볼 때 불행한 시기에 출생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운명에 묶여 있었으나 하나님은 사단이 씌우는 운명의 사슬에서 그를 풀어서 구원의 갈상자로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그가 갈상자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그날에 일기와 하수의 풍속과 하수의 출입자들과 출입자의 마음을 간섭하셨던 것입니다(출애굽기2:2-6). 그래서 그는 그 누구도 해할 수 없는 가장 안전한 곳에서 어미의 젖을 먹으면서 자라게 된 것입니다. 그는 왕궁에서 나이 사십에 이르기까지 애굽의 모든 학문을 통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 어머니에게 배운 민족교육을 통해서 민족해방운동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일은 단순한 국수주의 운동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민족을 괴롭히는 바로의 저변에는 엄청난 사단세력이 있음을 그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좌우를 살피는 지극히 세속적인 방법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출애굽기2:12). 출애굽 사건은 좌우를 살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좌우를 보는 일에 익숙한 모세를 위로 하나님을 보게 하기 위해서 광야로 보내신 것입니다.
둘째:하나님은 당신을 미디안에서 훈련시킵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하루 아침에 광야로 버려진 야인이 된 것입니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출애굽기2:15)고 했습니다. 그가 40년간의 왕궁에서 배운 것은 좌우를 살피는 수평적인 인생교육입니다. 그는 그것 이면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의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수평적인 인간 모세를 수직적인 하나님과 직접 만나는 영적교육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좌우를 바로볼 필요도 없는 광야로 보내어 위를 바라보는 영성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미디안은 모세의 영적인 훈련장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사명자들은 다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수십년 동안 훈련시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가나안 전역에서 훈련시킨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치는 목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도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 아라비아광야로 보내어 훈련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쓰기 전에 먼저 당신을 훈련시키십니다. 아무리 좌우를 살펴도 도울 자가 없는 미디안으로 보내어 자아가 완전히 부서지도록 훈련시킵니다. 여기에서 당신은 수평적인 인간관계의 도움을 단절하고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사명자로 바뀌게 됩니다. 당신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미디안을 한번 거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광야의 생활을 하고 있음은 고난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의 기회입니다.
셋째:하나님은 당신을 환상중에서 부르십니다. 미디안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모세의 인간적인 모든 꿈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아무것도 수 없는 인간 폐인이 된 것입니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애굽기3:1-2)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시편에서 잘 말해 줍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10)고 했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본 불붙은 떨기나무 환상은 도대체 무슨 계시인가 그 불은 이상한 불이었습니다. 더 이상 번지지도 않고, 살아지지도 않으면서 맹렬히 타오릅니다. 그 불은 성민을 괴롭히는 환란의 불입니다. 그 가시떨기는 아무곳에도 쓸모 없는 모세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라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장중에 있는 은혜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3:5)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출애굽운동을 위한 사명이 주어지는 소명의 현장이었습니다. 너는 이제 세속의 신을 벗고, 복음의 신을 신고, 출애굽의 사명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넷째:하나님은 당신을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모세의 사명훈련은 끝났습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기3:10)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사실은 “이제 내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이제 훈련이 끝났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출애굽을 할 때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이제 내가”라고 하기까지 훈련받아야 합니다. 당신의 자아가 완전히 부서져서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 때에 이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것은 모세의 생각과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애굽기3:11)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55:8-9)고 했습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애굽기3:12)고 했습니다. 출애굽은 모세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일입니다. 할 수 없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됩니다. 오늘날 당신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착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모세가 강건한 사십에 도전한 것은 인간적인 야심이지 소명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팔십에 본 가시떨기 환상은 소명에 근거한 사명이었습니다. 다섯째: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구원사역을 이루십니다. 사명의 현장 애굽으로 가는 모세의 손에는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모세의 구원사역은 엄청난 시련에 부딪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그의 마음을 강팍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출애굽기4:21)고 했습니다. 바로의 강팍함은 모세로 하여금 사명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여기에서 당신의 삶에 풀리지 않은 숙제의 해답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왜 주권적인 하나님이 바로를 단번에 항복시키지 않고 그를 강팍하게 만드는가 사단의 패망과 하나님의 감추어진 놀라운 구원역사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바로의 항복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애굽에 열가지 재앙이 내려질 때입니다. 사단권세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 앞에 굴복될 때입니다.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길은 예수 십자가 보혈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여기에서 당신이 기억할 것은 강팍한 바로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언16:4)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의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이러한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님의 오른 장중에 붙잡힌 모세와 같은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을 이 시대에 모세로 세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대리자요,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자요, 사단권세인 바로의 대적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이 시대에 이 제단을 위해 이 도성에 사명자로 세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무리 중에 당신을 선택하셨고, 당신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해서 미디안광야로 보내셨으며, 당신에게 가시떨기 환상을 보여주시며, 당신을 강팍한 바로 앞으로 인도하시며,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당신은 충성된 사명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