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 비밀을 아십니까? (요14:6)
본문
예수님은 당신의 그리스도입니다. 저는 오늘 당신에게 중대한 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 습니까 당신은 예수님에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오래 전 소학교 시절에서 배웠던 공자나 석가나 마호멧(무하마드)과 함께 세계의 4대 성 인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수양을 위해서 조금 듣고 보아온 실력 으로 그 옛날 팔레스틴 유대에 태어난 기독교의 창시자 정도로 알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십자가 네온싸인 종탑 아래 모인 세상 물정도 모르고 자기들만이 진리라고 고집 하는 말도 통하지 않는 독선주의 외골수들의 교주 정도로 알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위의 어느 부류에 속한다면 당신은 정말 불행한 인생으 로써 이 땅위에서도 참 평안을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숨을 거두는 그 순간 부터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여기에 대 한 확실한 대답과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말씀하시기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콜롬버스가 아메리 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나, 뉴톤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헬라 철인 소크 라테스가 즐겨 사용한 너 자신을 알라는 자기 수양을 위한 자아 발견 같은 것 이 위대한 발견이요, 깨닫음인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근원적인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이 땅위에 왔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만나야 할 분이 있습니다. 부모와 처자와 친족과 친구와 이웃보다도 더 소중한 분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고통과 죄와 사망의 권세에 서 자유를 주신 메시야 곧 당신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가르 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Jesus said to him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but through Me)고 하셨습니다.
첫째:왕적 권세를 가진 길 되신 주님입니다. 죽음 앞에 길이 막힌 인생입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는 여러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상아탑에서 학문을 가르치는 지식의 힘으로 살아가는 자도 있고, 사업의 현장에서 돈을 벌어 재물로 살아가는 자도 있고, 정치권력에 의존하여 벼슬로 살아가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길은 죽음 앞에는 막히고 맙니다 (히브리서 9:27). 범죄한 인생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관문입니다(창세기 2:17).
그런데 이러한 죽음의 문을 뚫고 우리에게 영원히 사는 길을 제시하신 분이 계 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로마서 6:23) 당신이 이 예수를 만나지 않고는 죽음의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죽음 건너편에 음부의 권세가 당신을 삼키 려고 기다리고 있으며(요한계시록 20:10), 그 고통은 영원합니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후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5:55-57)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켜 죽음을 죽인 죽음이다 고 했습니다. 십자가로 주님이 길을 내셨습니다. 범죄하여 낙원에서 버림을 받은 실낙원의 인생이 다시금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복락원의 길에는 피흘리는 죽음이 없 이는 불가능합니다(창세기 3:24). 천사들이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키고 있는 그 낙원에 어떠한 자도 진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을 주님은 십자가에서 완성하셨습니다(마가복음 15:38).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그 길은 우리를 위 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9:20) 그래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 주 님이 말씀하신 길이란 말은 모든 인류가 사망권세 아래서 그토록 찾고 있던 길 입니다. 지식으로도, 재물로도, 명예와 권세로도 갈 수 없는 죽음 건너편의 세 계로 나아가는 그 길(the way)을 말합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마태복음 2:1)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려 왔노라 (마태복음 2:2) 분명히 헤롯궁에 왕이 있는데 또 다른 왕을 찾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왕위에 왕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땅위에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왕, 헤롯같은 왕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 를 깨뜨리신 왕중의 왕, 만왕의 왕을 가르칩니다(창세기 3:15). 주님을 장사하여 무덤을 가로막은 돌은 보통의 돌이 아닙니다. 가이사 황제의 권세로 인봉한 돌 이요, 로마 백부장이 무장한 군인들로 지킨 무력의 돌이요, 어떠한 장사도 옮길 수 없는 크고 무거운 돌입니다(마태복음 27:64, 66)
그런데 그 돌이 굴러 떨어지 고 말았습니다(마가복음 16:4). 이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쥔 만왕의 왕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마태복음 28:18-20). 그 주님이 지금 당신을 천국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탕자인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둘째:선지자적 권세를 가진 진리 되신 주님입니다. 인간의 불행과 비극이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하나님을 떠남에서 부터입니다 (창세기 3:8-10).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는 참만족과 행복이 없습니다 (창세기 3:16-20, 마태복음 11:28).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아비 집을 떠난 탕 자와 같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는 순간 허랑 방탕하여 자신의 가진 것 다 낭비하여 궁핍하여 결국에는 주려 죽는 돼지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 고통을 청산하는 길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 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 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20) 그 순간 아들의 신분을 회복했습니다. 선지자들의 외침을 들읍시다. 주님의 비유중에 포도원 농부에 관한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을 종들에게 맡기고 타국으로 갔다가 실과 때가 이르매 종들을 보냅니다. 그들은 종들을 때리기도 하고, 돌로 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종들을 보내었으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최후에 자신의 외 아들을 보냅니다. 설마 아들은 공경하겠지 생각했는데 아들은 상속자라고 하여 포도원 밖으로 쫓아내어 죽여 버렸던 것입니다. 후에 주인은 그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사람(이방인)에게 주었던 것입니다(마태복음 21:33-46) 하나님은 구약에 많은 선 지자들을 보내셔서 자기의 뜻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패하고 타락한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으며, 최후에는 아들 되신 예수가 직접 선지자로 오셨으나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 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1-2)고 했습니다. 자유만이 참 자유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계약을 파괴한 인생은 죄로 인하여 타락함으로 멸망 받는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독생 자 예수를 보내어 주셨습니다(요한복음 3:16) 그러나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는 세상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한복음 1:9-11). 당신도 지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속에서 누리는 쾌락으로 생을 즐기고 있으나 순간 순간 의 쾌락은 당신을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 되신 예수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시면 이 순간 모든 세속적 고통에서 자유 하는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 라 (요한복음 8:32)
셋째:제사장적 권세를 가진 생명 되신 주님입니다. 아담은 가죽옷을 입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로마서 6:23) 범죄한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창세기 2:17)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21) 이것은 피흘림이 없 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것을 가르침입니다(히브리서 9:22)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 가가 산다는 원리입니다. 아담이 살기 위해서 짐승이 대신 대속의 죽음을 죽으 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범죄한 당신을 위해서도 대신 죽을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이 바로 당신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에게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출애굽기 12:7) 출 애굽을 하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애굽과 같은 죄악의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당신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성의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당신 인생이 새롭게 태어나는 거듭나는 작업이 일어나야 합니다(요한복음 3:5). 그래 야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고린도후서 5:17) 당신 이전의 세속적인 가치관이 완 전히 죽어져야 합니다(갈라디아서 2:20) 그리하지 않고는 당신은 애굽(세속)의 가치관 바로(마귀)의 권세에서 결코 자유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광야의 아사셀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제일에 두마리 의 수염소를 구별하여 한 마리는 성소에서 제물로 드리고, 한 마리는 백성들의 죄를 지고 광야에 버려지는 아사셀이 되게 합니다. 이 아사셀이 바로 하늘 보좌 에서 버려진 주님의 모습입니다.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라(요한복음 1:29)고 했습니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 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레위기 16:22) 최후에 고통으로 절규 하다가 죄로 인한 속죄의 죽음을 죽게 됩니다(마태복음 27:46). 최후의 승리는 골고다 십자가입니다. 범죄한 인간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떠 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인생의 불행과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이 비극을 치 료하기 위하여 구약의 수많은 짐승들이 속죄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최후에 하나님 자신이 아들의 신분으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 위에 강림하신 것입니다(요한복음1:14).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 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 소에 들어갔느니라 (히브리서 9:11-12) 그 예수를 당신의 구주로 믿으면 당신은 죄에서 자유하고 영생을 얻으며 후일에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요한복음 3:16-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사단의 권세를 결박하는 왕적인 권세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선지자적 권세를 얻습니다. 새생명을 얻는 제사장적인 권세를 얻습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주님을 모시고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왕적 권세를 가진 길 되신 주님입니다. 죽음 앞에 길이 막힌 인생입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는 여러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상아탑에서 학문을 가르치는 지식의 힘으로 살아가는 자도 있고, 사업의 현장에서 돈을 벌어 재물로 살아가는 자도 있고, 정치권력에 의존하여 벼슬로 살아가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길은 죽음 앞에는 막히고 맙니다 (히브리서 9:27). 범죄한 인생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관문입니다(창세기 2:17).
그런데 이러한 죽음의 문을 뚫고 우리에게 영원히 사는 길을 제시하신 분이 계 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로마서 6:23) 당신이 이 예수를 만나지 않고는 죽음의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죽음 건너편에 음부의 권세가 당신을 삼키 려고 기다리고 있으며(요한계시록 20:10), 그 고통은 영원합니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후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5:55-57)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켜 죽음을 죽인 죽음이다 고 했습니다. 십자가로 주님이 길을 내셨습니다. 범죄하여 낙원에서 버림을 받은 실낙원의 인생이 다시금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복락원의 길에는 피흘리는 죽음이 없 이는 불가능합니다(창세기 3:24). 천사들이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키고 있는 그 낙원에 어떠한 자도 진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을 주님은 십자가에서 완성하셨습니다(마가복음 15:38).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그 길은 우리를 위 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9:20) 그래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 주 님이 말씀하신 길이란 말은 모든 인류가 사망권세 아래서 그토록 찾고 있던 길 입니다. 지식으로도, 재물로도, 명예와 권세로도 갈 수 없는 죽음 건너편의 세 계로 나아가는 그 길(the way)을 말합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헤롯왕 때에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마태복음 2:1)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려 왔노라 (마태복음 2:2) 분명히 헤롯궁에 왕이 있는데 또 다른 왕을 찾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왕위에 왕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땅위에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왕, 헤롯같은 왕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 를 깨뜨리신 왕중의 왕, 만왕의 왕을 가르칩니다(창세기 3:15). 주님을 장사하여 무덤을 가로막은 돌은 보통의 돌이 아닙니다. 가이사 황제의 권세로 인봉한 돌 이요, 로마 백부장이 무장한 군인들로 지킨 무력의 돌이요, 어떠한 장사도 옮길 수 없는 크고 무거운 돌입니다(마태복음 27:64, 66)
그런데 그 돌이 굴러 떨어지 고 말았습니다(마가복음 16:4). 이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쥔 만왕의 왕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마태복음 28:18-20). 그 주님이 지금 당신을 천국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탕자인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둘째:선지자적 권세를 가진 진리 되신 주님입니다. 인간의 불행과 비극이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하나님을 떠남에서 부터입니다 (창세기 3:8-10).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는 참만족과 행복이 없습니다 (창세기 3:16-20, 마태복음 11:28).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아비 집을 떠난 탕 자와 같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는 순간 허랑 방탕하여 자신의 가진 것 다 낭비하여 궁핍하여 결국에는 주려 죽는 돼지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 고통을 청산하는 길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 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 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20) 그 순간 아들의 신분을 회복했습니다. 선지자들의 외침을 들읍시다. 주님의 비유중에 포도원 농부에 관한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을 종들에게 맡기고 타국으로 갔다가 실과 때가 이르매 종들을 보냅니다. 그들은 종들을 때리기도 하고, 돌로 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종들을 보내었으나 역시 그러했습니다. 최후에 자신의 외 아들을 보냅니다. 설마 아들은 공경하겠지 생각했는데 아들은 상속자라고 하여 포도원 밖으로 쫓아내어 죽여 버렸던 것입니다. 후에 주인은 그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사람(이방인)에게 주었던 것입니다(마태복음 21:33-46) 하나님은 구약에 많은 선 지자들을 보내셔서 자기의 뜻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패하고 타락한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으며, 최후에는 아들 되신 예수가 직접 선지자로 오셨으나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 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1-2)고 했습니다. 자유만이 참 자유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계약을 파괴한 인생은 죄로 인하여 타락함으로 멸망 받는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독생 자 예수를 보내어 주셨습니다(요한복음 3:16) 그러나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는 세상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한복음 1:9-11). 당신도 지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속에서 누리는 쾌락으로 생을 즐기고 있으나 순간 순간 의 쾌락은 당신을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 되신 예수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시면 이 순간 모든 세속적 고통에서 자유 하는 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 라 (요한복음 8:32)
셋째:제사장적 권세를 가진 생명 되신 주님입니다. 아담은 가죽옷을 입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로마서 6:23) 범죄한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창세기 2:17)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21) 이것은 피흘림이 없 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것을 가르침입니다(히브리서 9:22)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 가가 산다는 원리입니다. 아담이 살기 위해서 짐승이 대신 대속의 죽음을 죽으 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범죄한 당신을 위해서도 대신 죽을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이 바로 당신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발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에게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출애굽기 12:7) 출 애굽을 하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애굽과 같은 죄악의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당신 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성의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당신 인생이 새롭게 태어나는 거듭나는 작업이 일어나야 합니다(요한복음 3:5). 그래 야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고린도후서 5:17) 당신 이전의 세속적인 가치관이 완 전히 죽어져야 합니다(갈라디아서 2:20) 그리하지 않고는 당신은 애굽(세속)의 가치관 바로(마귀)의 권세에서 결코 자유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광야의 아사셀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제일에 두마리 의 수염소를 구별하여 한 마리는 성소에서 제물로 드리고, 한 마리는 백성들의 죄를 지고 광야에 버려지는 아사셀이 되게 합니다. 이 아사셀이 바로 하늘 보좌 에서 버려진 주님의 모습입니다.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라(요한복음 1:29)고 했습니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 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레위기 16:22) 최후에 고통으로 절규 하다가 죄로 인한 속죄의 죽음을 죽게 됩니다(마태복음 27:46). 최후의 승리는 골고다 십자가입니다. 범죄한 인간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떠 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인생의 불행과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이 비극을 치 료하기 위하여 구약의 수많은 짐승들이 속죄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최후에 하나님 자신이 아들의 신분으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 위에 강림하신 것입니다(요한복음1:14).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 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 소에 들어갔느니라 (히브리서 9:11-12) 그 예수를 당신의 구주로 믿으면 당신은 죄에서 자유하고 영생을 얻으며 후일에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요한복음 3:16-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사단의 권세를 결박하는 왕적인 권세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선지자적 권세를 얻습니다. 새생명을 얻는 제사장적인 권세를 얻습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주님을 모시고 승리하는 한 주간이 되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