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갇힌자에게 사랑을 (히13:3)

본문

요즘 장안의 화제는 연일 신문지상에 보도되는 떼강도사건입니다. 열 일곱 차례의 삼인조 강조떼들이 모든 전과자들입니다. 누가 이 흉칙한 전과자들을 범죄소굴에서 구원하겠습니까 전과자들, 그들은 누구입니까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아니되었습니 까 이러한 때 교회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히브리서 13:3에는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 은 자를 생각하라'고 히브리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에 3대사건을 든다면
첫째 마굿간의 탄생,
둘째, 십자가의 형벌, 세째 무덤에서 부활이라고 할 것입니다. 즉 뇌옥(牢獄)과 십자가와 묘욕(墓獄)으로 일생을 죄인처럼 옥(獄과) 과 관련지으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것입니까.
1. 뇌옥:죄인 구원의 사명 뇌옥은 '우양의 우리'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소나 양같은 짐승을 가두어 두는 뇌옥에서 탄생하므로 이땅에 죄인을 구원하시려 오신 목 적을 뚜렷이 밝혔습니다. 그와 동시에 믿음의 형제들에게는 죄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길에 동참해아여 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이 스스로 만든 법률에 따라 범법자 들을 엄벌했습니다. 중세 서구에서는 죄인들을 사자우리에 집어 던졌 으며 요즘은 법치국가로서 형법에 의하여 처리합니다. 그러나 죄인을 보는 인간들의 안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앞에 전개되고 있는 전과자를 경멸하고 매도하며 소외시키는 현 실과 그에따라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죄악. 이 모든 것은 남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나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선과 악 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합시다. 나도 자칫 잘못되면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시다. 교회는 그들을 찾아 위 로하며 복음을 전하고 선을 키워 나가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2. 십자가:사명감당의 체험 예수님의 두번째 사건은 죄인이 아니시면서 죄인들이 받을 십자가 형 벌을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형은 반역적인 노예들이나 범지자들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처형 방법으로서 그 범지자로부터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만족을 주기위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교차로에서 십자가형을 집행했다고 합니다. 십자가형은 처형하기 전에 심한 매질과 고문을 가하며 양손과 양발에 못 을 박으므로서 체중으로 인하여 손발이 찢겨져 못에서 빠져 나오는 것 을 방지하기 위하여 밧줄로 사지를 꽁꽁 묶어둠으로 모진 날씨에 덤 벼드는 파리와 모기떼 조차 피할 수 없이 매달려 있게 하였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죄인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십자가형은 인간에게 자유를 박탈합니다. 명예를 빼았습니다. 세인의 조롱거리로 만듭니다. 오늘날 많은사람들은 범법자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고 손가락질하 며 비웃고 조롱하며 십자가에 매어달어 만신창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은 죄와 무관한 사람처럼 돌멩이를 던지고 있습니다.이제는 교회 가 범벚자들의 고통을 분담할 사명을 맡아야 합니다. 성도 일백명이 교도소 수형자 한명씩만 맡아서 교화하고 위로하고 취업을 책임진다면 이땅은 범죄자없는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땅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인의 심정으로 돌아가 낮아지고 겸손하고 희생하며 그들의 곁 에서 새삶을 도와 줍시다.
3. 묘옥:사명완수의 결과 마태복음 25:31-40에는 병든자, 굶주린자, 감옥에 갇힌자 등등 지극 히 작은 이웃 하나에게 베푼것이 곧 주님께 행한 것이라고 분명히 예 를 들어 심판의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지막 관문인 죽음에서 영원히 죽느냐, 그렇지 애으면 새생명을 부활하여 주님과 영 원히 함께 사느냐 이것은 저의 각자의 인생여정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프랑스 속담에 "부자에게는 의무가 따른다'는 것이 있습니다. 가진자 들은 남을 돕고 빈곤한 사람들에게 관대해야 된다는 의무를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시 한번 이 격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난 때문에 범죄하기된 그들을 감싸주며 복음으로 새삶을 주어서 빈 번히 사회에 거세게 휘몰아치는 떼강도가 없어지도록 범죄예방에 적극 노력합시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죄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들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시고 하나뿐인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피닉스는 한웅큼의 재를 남기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재속에서 또하나의 피닉스가 새로운 날개를 펴고 보 다 씩씩하고 아름답게 탄생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생명을 바치는 사랑을 베풀다가 부활에 참여하는 영광을 차지합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2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