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들됨의 증거 (히12:5-13)
본문
끔찍한 살인과 강도등의 큰 범죄를 저지른 어떤 흉악범이 사형 을 언도받고,형을 집행 당하기 위해,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을 때에, 그 앞 에서 그의 어머니가 울며불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형수 아 들은 울고 있는 어머니에게 다가가서는, 어머니를 위로하기는 커녕, 어머니 를 향해 침을 밸았습니다. 그리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하는 말이, " 오늘 당신의 아들을 이렇게 죽게 만든 것은 바로 당신인데, 무엇이 슬 프다고 우는 겁니까 당신은 울자격도 없는, 자식을 망친 아주 지독히 나쁜 어머니요" 라고 말하더랍니다.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이 가시는 애길줄로 압니다만, 그 사연인즉 이렇습니다. 그 아들이 어렸을 때, 그는 함께 놀던 손꼽친구의 장난감을 몰래 훔쳐와서 어머니께 보였습니다. 자식이 사랑스러운 나머지 어머니는 야단을 치는 대신 아들을 마냥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동네 마 을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슬쩍 해 와서 어머니께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역시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우리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길은, 또 내가 어머니께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남의 물건을 훔쳐오는 것 바로 그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한 아들은 그 이후로 계속해서 남의 물건을 훔쳤고, 또 어머니는, 늘 그 아들을 계속해서 그때마다-도적질 해올 때마다-칭찬만 했습니다. 결 과적으로 아들은 차츰차츰 바늘 도독 소도둑 되면서, 나쁜 범죄를 저지르는 데에 아주 어려서 부터 이골이 나고, 훈련이 되서, 마침내는 강도/ 강간/ 살인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서운 흉악범으로 성장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깊이 잘 생각하고, 그리고 또 분별있 게 처신하며, 행동해야 할 일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는 줄로 압니다.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지를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모의 자식 사랑이 그렇습니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무조건 모든 일을 감싸 고 덮으려고 하기가 쉽습니다만, 그러나 참으로 깊이 생각하고, 판단해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랑도 그무엇도 아니라, 아주 자식을 망치는 분별없는 잘 못된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화:옛날에 어떤 포수가 사냥을 하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더니만, 어떤 조그만한 새 한마리가 당돌하게 포수에게 다가와서는 하는 말이, "포 수님 포수님, 제발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좀 들어 주셔야겠습니다"."그 래-그 부탁이란 게 무어냐 포수님, 이 산에 있는 모든 새는 다 잡으 시더래도 절대로 한마리 새만은 잡지 말고, 좀 봐주세요. 그래 그새 가 어떤 새인가예 그새는 포수님이 보시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곧 그 새는 이 산의 모든 새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이쁜 미인새이니까 말입니다. 그게 바로 제 새끼이든요." 그러나 이 말은 하는 새가 과연 어떤 새인가 자세이 보았더니, 다름아닌 굴뚝새라고 하는, 세상에도 가장 못난새, 가장 작고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새로 이름난, 바로 그 새 였더랍니다. 어미가 굴뚝새니, 당연 히 그 새끼도 굴뚝새일태고,
그렇다면 그새는 가장 못난 새였슴이 사실이지 만, 그러나, 전혀 상황이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미가 제 새끼를 보는 눈이 이처럼 맹목적이고 착각하기 쉽다는 사실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 의 모든 부모가, 짐승이나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다 자기 새끼를 보는 눈은 이처럼 착각에 빠져들기 꼭 알맞은 사랑의 눈이 되어버립니다. 사랑으로 보 니 가장 아름다운 것인 물론 사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참으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 줄 로 압니다. 그것은 첫쩨로 착각하지 말아야 할것과, 또한 둘쩨로는 맹목 적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자유가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법과 질서가 따르지 못하는 자유는 방 종과 무질서의 혼란을 가져올 뿐입니다. 오늘날 젊은 이들이 부르짖는 자칫 빗나간 자유의 방향과 또한 민주주의가 바로 이 사회를 지금 그렇게 만들고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습니다.-또한 사랑도 꼭 같은 이치입니다. 사랑스럽다고 무조건 사랑만 하다보 면, 사랑스러운 나머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식의, 맹목적인 사랑-전후 좌우도 구분 못하는 맹목적인 사랑은-자식을 사형터로 보낸 어리석은 어머니의 바로 그런 사랑이 되어버리기 쉽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나쁘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사랑과, 그리고 자녀 를 위한 올바른 교육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 될수도 있다는 이치를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살을 도려내는 아픔도 감수하면 서 부단한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만 그 아이가 비로소 바로 성장할 수가 있 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정으로 그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또한 사랑만 아는 데 그치지 아니하고, 진정으로 자식을 바로 가르쳐서, 올바른 인물로 성 장시키기를 바라는 분별있는 부모라면, 자식이 잘못했을 때, 버릇없는 일을 저지를 때, 따끔하게 매를 들고 종아리를 쳐야할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큰 잘못이 있는데도, 사랑하기 때문에, 오냐 그래 좋다가 아니라, 회초리를 무섭게 휘둘러서, 다시는 그런 행동을 두번다시 저질르지 못하도록 버릇을 고쳐놓아야 참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교훈과, 또한 사랑의 이치가 바로 이러한 것임을 우리가 밝히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 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은 한걸음 더 나가셔서, 만일 그러하지 않았 다면, 다시 말해서 자식이 잘못했는데도 회초리를 들지 않았다면, 그것은 참아들이 아니요, 참 그 부모가 아니라고까지 강조하셨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을 체찍질 하시느니라.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이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 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말씀을 뒤집으면 이해가 아주 쉽습니다. 곧 징계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징계와 꾸지람과 회초리가 있다는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 의 사생자요 버리운 자식이 아닌, 참아들됨의 확실한 증거라는 사실이요, 반대로 잘못햇는데도 매사가 무사 형통하고 막힘이 없이 시원시원 잘 되어 가는 것은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라, 그것은 어쩌면 하나님깨로부터는 버림 을 받고 있다는 기가막힌 슬프고 비극적인 사실일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 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1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 고,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아니하고 고침을 받게 함이라.때문에 비록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아니하는 징계를 너희에게 허락함이니 라. 그렇지요. 세상에 징계가 즐겁고 좋은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갑자기 사업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실직당했습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시련이요, 고통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몸이 조금 이상해서 병원엘 가보았더니 아니 글세 그 무서운 암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하늘이 무너앉는 절망이요, 슬픔일 것입니다. 괴로운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참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그러나-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 러할 지라도, 오늘 말씀 앞에 참으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크 게 깨닫고, 마침내 저는 다리를 고치고, 무릎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복된 기 회를 다시금 되찾으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 이 우리를 버리심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자녀로 인정하시 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영적으로 들여다 보아서, 하나님 앞에 징게받지 않아도 좋을 온 전한 사람이 단 한사람인들 있겠습니까 하루에도 수십번씩, 어쩌면 벼락이 라도 맞아야 마땅할 잘못을 저지르면서 사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만사가 형통이냐.자랑하지 마시고, 참으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혹씨 버림 받은 자식이 되어 버 리지나 않았는지를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많은 징계가 있습니까 환란이 있습니까 어쩌면 욥과 같은 시련이 닥쳐옵니까 그러나 결코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망하 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나로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깨달아야 할 것을 똑바로 깨닫고, 온전히 고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참 아들되게 하시려는 확실한 하나님 사랑의 증표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이진리를 께달은 후에, 하나님을 신실한 축복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 여 참으로 너 영혼이 잘되었으니, 이제부터 너가 범사에 잘 되고, 또한 강 건하리라."이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깊이 잘 생각하고, 그리고 또 분별있 게 처신하며, 행동해야 할 일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는 줄로 압니다.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지를 말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부모의 자식 사랑이 그렇습니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무조건 모든 일을 감싸 고 덮으려고 하기가 쉽습니다만, 그러나 참으로 깊이 생각하고, 판단해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랑도 그무엇도 아니라, 아주 자식을 망치는 분별없는 잘 못된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화:옛날에 어떤 포수가 사냥을 하러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더니만, 어떤 조그만한 새 한마리가 당돌하게 포수에게 다가와서는 하는 말이, "포 수님 포수님, 제발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좀 들어 주셔야겠습니다"."그 래-그 부탁이란 게 무어냐 포수님, 이 산에 있는 모든 새는 다 잡으 시더래도 절대로 한마리 새만은 잡지 말고, 좀 봐주세요. 그래 그새 가 어떤 새인가예 그새는 포수님이 보시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곧 그 새는 이 산의 모든 새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이쁜 미인새이니까 말입니다. 그게 바로 제 새끼이든요." 그러나 이 말은 하는 새가 과연 어떤 새인가 자세이 보았더니, 다름아닌 굴뚝새라고 하는, 세상에도 가장 못난새, 가장 작고 그야말로 별 볼일 없는 새로 이름난, 바로 그 새 였더랍니다. 어미가 굴뚝새니, 당연 히 그 새끼도 굴뚝새일태고,
그렇다면 그새는 가장 못난 새였슴이 사실이지 만, 그러나, 전혀 상황이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미가 제 새끼를 보는 눈이 이처럼 맹목적이고 착각하기 쉽다는 사실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 의 모든 부모가, 짐승이나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다 자기 새끼를 보는 눈은 이처럼 착각에 빠져들기 꼭 알맞은 사랑의 눈이 되어버립니다. 사랑으로 보 니 가장 아름다운 것인 물론 사실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참으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 줄 로 압니다. 그것은 첫쩨로 착각하지 말아야 할것과, 또한 둘쩨로는 맹목 적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자유가 참으로 좋은 것이지만, 법과 질서가 따르지 못하는 자유는 방 종과 무질서의 혼란을 가져올 뿐입니다. 오늘날 젊은 이들이 부르짖는 자칫 빗나간 자유의 방향과 또한 민주주의가 바로 이 사회를 지금 그렇게 만들고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습니다.-또한 사랑도 꼭 같은 이치입니다. 사랑스럽다고 무조건 사랑만 하다보 면, 사랑스러운 나머지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식의, 맹목적인 사랑-전후 좌우도 구분 못하는 맹목적인 사랑은-자식을 사형터로 보낸 어리석은 어머니의 바로 그런 사랑이 되어버리기 쉽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나쁘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사랑과, 그리고 자녀 를 위한 올바른 교육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 될수도 있다는 이치를 강조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살을 도려내는 아픔도 감수하면 서 부단한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만 그 아이가 비로소 바로 성장할 수가 있 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때문에 진정으로 그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또한 사랑만 아는 데 그치지 아니하고, 진정으로 자식을 바로 가르쳐서, 올바른 인물로 성 장시키기를 바라는 분별있는 부모라면, 자식이 잘못했을 때, 버릇없는 일을 저지를 때, 따끔하게 매를 들고 종아리를 쳐야할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큰 잘못이 있는데도, 사랑하기 때문에, 오냐 그래 좋다가 아니라, 회초리를 무섭게 휘둘러서, 다시는 그런 행동을 두번다시 저질르지 못하도록 버릇을 고쳐놓아야 참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교훈과, 또한 사랑의 이치가 바로 이러한 것임을 우리가 밝히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 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은 한걸음 더 나가셔서, 만일 그러하지 않았 다면, 다시 말해서 자식이 잘못했는데도 회초리를 들지 않았다면, 그것은 참아들이 아니요, 참 그 부모가 아니라고까지 강조하셨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을 체찍질 하시느니라.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이 징계가 없으면 사생자 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말씀을 뒤집으면 이해가 아주 쉽습니다. 곧 징계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징계와 꾸지람과 회초리가 있다는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 의 사생자요 버리운 자식이 아닌, 참아들됨의 확실한 증거라는 사실이요, 반대로 잘못햇는데도 매사가 무사 형통하고 막힘이 없이 시원시원 잘 되어 가는 것은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라, 그것은 어쩌면 하나님깨로부터는 버림 을 받고 있다는 기가막힌 슬프고 비극적인 사실일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 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1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 고,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아니하고 고침을 받게 함이라.때문에 비록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아니하는 징계를 너희에게 허락함이니 라. 그렇지요. 세상에 징계가 즐겁고 좋은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갑자기 사업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실직당했습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시련이요, 고통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몸이 조금 이상해서 병원엘 가보았더니 아니 글세 그 무서운 암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하늘이 무너앉는 절망이요, 슬픔일 것입니다. 괴로운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참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그러나-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 러할 지라도, 오늘 말씀 앞에 참으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크 게 깨닫고, 마침내 저는 다리를 고치고, 무릎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복된 기 회를 다시금 되찾으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 이 우리를 버리심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자녀로 인정하시 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영적으로 들여다 보아서, 하나님 앞에 징게받지 않아도 좋을 온 전한 사람이 단 한사람인들 있겠습니까 하루에도 수십번씩, 어쩌면 벼락이 라도 맞아야 마땅할 잘못을 저지르면서 사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만사가 형통이냐.자랑하지 마시고, 참으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혹씨 버림 받은 자식이 되어 버 리지나 않았는지를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많은 징계가 있습니까 환란이 있습니까 어쩌면 욥과 같은 시련이 닥쳐옵니까 그러나 결코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망하 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나로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깨달아야 할 것을 똑바로 깨닫고, 온전히 고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참 아들되게 하시려는 확실한 하나님 사랑의 증표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이진리를 께달은 후에, 하나님을 신실한 축복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 여 참으로 너 영혼이 잘되었으니, 이제부터 너가 범사에 잘 되고, 또한 강 건하리라."이제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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