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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무릎을 일으켜 세우며 (히1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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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슴이 무너지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됩니다. 겆잡을 수 없이 절망의 기운이 삶 언저리를 사로잡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기력한 가슴이 되어 버립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절망의 호흡을 몰아 쉽니다. “끝장이다. 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막막한 시선을 고정 할 곳을 찾지 못하여 안절부절 못합니다. 이쯤에 이르면 어떠한 격려나 위로 조차도 효력이 없어보이고 “듣거나 말하는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형편은 “사람살이를 점차 황폐하게 만들어가는 요인”이 되곤 합니다. 이유야 있을 것이고 그것도 다양할 테지만 스스로 자신을 향하여 “무기력증에 빠졌다.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동안에 사실 더 많은 가능성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차려야 합니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지거나 이러 저러한 위협에 놓이는 일은 언제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애초 모르지는 않았을텐데, 정작 상황에 맞닥드렸을 때 비명을 지르며 어찌 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하며 포기하듯 소스라치며 움찔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일까요 어찌 이다지도 종잡을 수 없는 행태가 우리안에 있는 것일까요 단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씀이, 그리고 우리의 만남과 사람과 사람의 관계맺음의 방식이 허술하며 여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이러한 허술한 모습을 감추고 이러한 단련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빠른 속도로 “우리의 삶이 흐트러지고 가슴과 행동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이 단련되어 있지 않을 수록 폐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듯 합니다. 왜냐면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수고의 길을 걸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변명을 하기에 급하고, 이러한 상황을 합리화하려는 한에는 여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서의 상황은 이러합니다. 그 시대의 공동체는 아마도 현실적 두려움에 놓여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문을 당하고 조롱을 받고 째찍으로 얻어맏고 결박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한 일들을 “가난과 고난과 학대”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로한 고난은 절망스러운 것이어서 “살만한 곳이 못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포기할 수 없는 확신으로 인하여 당하는 이러한 고난에 대해서 성서는 “훈련”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대목을 주목해 보고 싶습니다. 단련된 가슴으로 결국 “야훼의 정의로운 평화세상”을 일구어 이를 앞당기는 일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현실적으로 “괴로운 일”을 기꺼이 “훈련”이라고 고백하며 담담하게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는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보다 적극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절망의 호흡”으로 “끝장이다”“기대할 것은 없다”고 말하는 그 자신의 모습은 영락없는 “늘어진 손과 쇠약한 무릎” 입니다. 조금도 주어진 상황을 “재수없이” 당한 현실이거나 “억울하게 당한 일” 정도로 생각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달리말하면 빨리 어떠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이것에서 벗어나고 탈피해야할 일로만 여긴다는 말입니다. 이를 통하여 단련되고 결국 상황을 “전도”시키는, 뒤바꾸어 놓는 “정의로운 평화의 일꾼”인 것을 고백하려 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힘없이 늘어진 손을 쳐들고 쇠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십시오. 그리고 바른 길을 걸어가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지치고 쇠약해진 무릎을 일으켜 세워” 주어진 상황이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그것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이 되어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일의 주체로 서는 것”이야 말로 “예수사상의 핵심”입니다. 구경꾼으로 주변만을 맴돌다가 결국 적당한 선에서 물러서 버리는 모습을 예수는 결코 말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네 십자가를 네가 지고 따르라”고 말하십니다. 또한 네 손을 내밀어 온갖 약한 것을 일으켜 세우라“고 말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결코 구경꾼을 만드시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 나라를 앞당겨 세우는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어느새 우리의 다리가 “절름거리고 뒤틀려”버려 “야훼의 나라”를 세우는 걸음을 걷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지를 살피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친 다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새롭게 일어서는 “건강한 무릎”이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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