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과 새 예루살렘 (히12:18-24,14-29)
본문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뜨거운 열심이 식어가면서 기독교에서 유대교로 다 시 돌아가려는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런 배경에서 은혜를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와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 시내산은 공포의 산입니다. =
1. 율법의 성지는 시내산입니다.
2. 시내산은 우리가 밟고 지나온 불모의 돌산입니다.
3. 율법이 주어질 때에 시내산은 공포의 산이었습니다.
4. 불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소리가 뒤섞여서 모세 조차도 두려워 떨던 죽 음의 산이었습니다. 모세조차 떨며 두렵게 받았던 율법에 구원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은혜와 구원의 진리로 길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은혜의 길로 도 착한 교회를 시내산으로 착각하고 율법으로 돌아갈려고 합니까 = 우리가 도착한 산은 시온산 새 예루살렘입니다.
1.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있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2. 천사들과 생명록에 기록된 형들과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곳에 도 착하였습니다.
3. 예수님과 아벧의 피보다 더 진한 피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피 쁘린 구원의 제단 앞에까지 와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 피를 등지고 공포의 시내산으로 다시가서 율법을 지키려고 합니까 하나님이 계 신 곳을 떠나 어디로 가려고 합니까 = 거룩하여 주님을 뵈옵시다 (히 12:14-17).
1.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합니다.
2. 은혜 안에서 쓴 뿌리의 더러움을 멀리 하십시오.
3. 속되고 음란한 생활은 쓴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4. 에서와 같이 축복의 질서와 말씀을 경히 여기시는 것도 쓴 뿌리서 나온 것입니다. 공포의 시내산으로 다시 돌아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도착한 새 예루살 렘의 문으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룩히 살고 더불어 공평해 야 합니다. 거룩히 살고 화평한 생활은 쓴 뿌리의 나쁜 생활 습성의 근거를 떠나는 것입니다. 쓴 뿌리의 더러운 구별될 때 거룩한 생활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생활이 세상에서 외로운 것 같으나 견디십시오. 새 예루살 렘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우리의 주님이 보일 것입니다.
1. 율법의 성지는 시내산입니다.
2. 시내산은 우리가 밟고 지나온 불모의 돌산입니다.
3. 율법이 주어질 때에 시내산은 공포의 산이었습니다.
4. 불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소리가 뒤섞여서 모세 조차도 두려워 떨던 죽 음의 산이었습니다. 모세조차 떨며 두렵게 받았던 율법에 구원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은혜와 구원의 진리로 길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은혜의 길로 도 착한 교회를 시내산으로 착각하고 율법으로 돌아갈려고 합니까 = 우리가 도착한 산은 시온산 새 예루살렘입니다.
1.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 있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2. 천사들과 생명록에 기록된 형들과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곳에 도 착하였습니다.
3. 예수님과 아벧의 피보다 더 진한 피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피 쁘린 구원의 제단 앞에까지 와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 피를 등지고 공포의 시내산으로 다시가서 율법을 지키려고 합니까 하나님이 계 신 곳을 떠나 어디로 가려고 합니까 = 거룩하여 주님을 뵈옵시다 (히 12:14-17).
1.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합니다.
2. 은혜 안에서 쓴 뿌리의 더러움을 멀리 하십시오.
3. 속되고 음란한 생활은 쓴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4. 에서와 같이 축복의 질서와 말씀을 경히 여기시는 것도 쓴 뿌리서 나온 것입니다. 공포의 시내산으로 다시 돌아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도착한 새 예루살 렘의 문으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룩히 살고 더불어 공평해 야 합니다. 거룩히 살고 화평한 생활은 쓴 뿌리의 나쁜 생활 습성의 근거를 떠나는 것입니다. 쓴 뿌리의 더러운 구별될 때 거룩한 생활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생활이 세상에서 외로운 것 같으나 견디십시오. 새 예루살 렘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우리의 주님이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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