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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죽음 (히11:22)

본문

해마다 창립 기념주일이 되면 목회에 도움을 얻고자 교회와 저에 대해서 성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합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문항이 있습니다. 목사가 너무 강하다, 강하다, 적당하다, 약하다. 하는 것과 목사가 독선적이다, 민주적이다, 자유 방임형이다.는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떤 답을 하셨습니까 저는 이 질문의 답을 보면 저 자신에 대해 저도 헷갈릴 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너무 강하 다 에 큼지막하게 동그라미를 쳐 놓은 분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분은 너무 약하다 에 동그라미를 쳐 놓은 분 들이 있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독선적이다는데 큼지막하게 동그라미를 해 놓은 반면 또 어떤 분은 방임형 이다는데 동그라미를 크게 쳐 놓은 분들이 있습니다. 분명 황석용이라는 저 자신은 하나인데 보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른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강하게 그것도 너무 강하게 보이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에 게는 너무 약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디 다시 한 번 여쭈어 볼까요 목사가 너무 강하다, 강하다, 적당하다, 약하다. 어떻습니까 어느 것에다 동그라미를 치셨습니까 목사가 독선적이다. 민주적이다. 방임형이다. 이 질문에는 어디에 동그라미를 치셨습니까 이렇듯 우리는 누구누구 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느껴지는 감정이 있습니다. 물론 그 감정 자체가 제 각각이지 만요.
그렇다면 한 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요즘 살피고 있는 요셉, 이 요셉의 생애도 이제 오늘로서 마지막인데요. 지금까지 요셉의 생애를 저와 함께 살피면서 나름대로 많은 것들을 느끼실 터인데요, 요셉 하면 느껴지는 것이나 생각나는 것이 있으실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여러분들은 요셉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아마 이것 역시 저에 대해서 여러분 나름대로 평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상이 나타나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분 나름대로의 처지에 따라서 경험에 따라서 각기 달리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요셉 하면 꿈이 생각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감옥이, 애굽의 총리가, 그가 빠졌던 구덩이가, 혹은 용서 등., 요셉과 관련 있는 여러 단어들이 여러분들의 머리를 스치며 지나 갈 것입니다. 또 요셉은 어떤 인물입니까 하고 질문한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이라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아마 여기에도 여러분 나름대로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요셉이 참고 견디어 내는 부분에 은혜를 받은 분 같으면 원망 없이 산 사람이라 고 대답을 하실 것이고, 형님들을 용서하던 부분에서 은혜를 입은 분들 같으면 용서의 사람이라는 대답을 할 것 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 사용되었던 사람이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무튼 여러분들 은 여러분들이 은혜를 입은 대로 대답들을 하시겠지요.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여러분들의 주관적인 대답이 아니라 객관적인 대답을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핀 요셉의 삶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되십니까 한 번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 임종시에 이 요셉에 대해 신약성경도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은 요셉이 어떤 사람이라 고 결론을 내리고 있을까요 특별히 구약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요약해서 표현하고 있는 히브리서 11장, 오늘 본문에서는 그의 삶에 대해서 상당히 특색있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이것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요셉의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죠 그렇 습니다. 요셉의 임종시에 일어났던 일을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했던 저자도 요셉에 대해서 많은 할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히브리 저자 역시 우리처럼 요셉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참 많았을 것입니다. 그의 인생이 파란만장했던 만큼 할 이야기가 많았겠지요.
그런데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 히브리 기자는 한 절 로 요약하기를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라고 말함으로 요셉의 임종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가 좀 전에 요셉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해 달라고 했었는데 그 때 내렸던 결론과 맞아 떨어 졌습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미처 생각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말씀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아직 요셉의 임종을 우리가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요셉의 임종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었노라고요. 물론 그러실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요셉의 임종시에 일어났던 일들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본문을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의 임종이 얼마나 위대했기에 오늘 히브리 기자는 그 멋진 일들을 다 제쳐 두고 임종시에 일어났던 일을 요셉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일까요 이제 이 문제를 요셉의 임종을 살펴보면 서 함께 살피기를 원합니다. 요셉의 유언 자 다시 히 11:22절을 봅니다. . 이 구절은 요셉의 유언이 무엇이었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일반 적으로 유언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나 생각을 말하는 것이죠. 따라서 오늘 히 11장 22절에 기록되고 있는 요셉의 유언, 이것 역시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 유언으로 남겼던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에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 고 있는데요. 하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떠나는 일이고 다음은 자신의 해골이 애굽을 떠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후손들에게 애굽을 떠나라고 명하고 자신의 해골도 그렇게 해 달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 살피고난 후 혹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군요. 자신을 어디에 묻어 달라고 하는 유언이 뭐 그리 중 요한가 아 우리들도 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고 말하지 않는가 또 어떤 사람은 화장을 시켜 어디 어디에 버려 달라고 하지도 않는가
그렇다면 그런 것도 위대한 신앙이란 말인가 하고요. 그러나 요셉의 이 유언은 그 런 범주의 것이 아닙니다. 이 유언은 요셉의 죽으면서 의례적으로 하는 유언이 아니라 그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 지고 평생을 살았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유언입니다. 자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 습니다. 떠나기 힘든 애굽 이것을 위해 먼저 요셉이 애굽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이 몇 세에 애굽에 왔습니까 대략 17세 정도로 생각되어 집니다. 요셉이 몇 세까지 살았죠 창 50:26절을 보면 요셉의 나이를 110세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애굽에서 몇 년을 산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93년 을 산 것입니다. 93년이라면 요셉의 인생 대부분을 여기서 산 것입니다. 그는 이 93년을 살아가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오를 수 없는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출세를 한 것이죠. 따라서 요셉에게 있어서 가나안은 실패와 낭패의 자리라고 말한다면 애굽은 성공과 명성의 자리라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어느 곳에 애증과 애착을 더 가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애굽일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나안에 누가 살고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조상들의 무덤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입니다. 가나안 에 간다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곳 애굽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을 비롯해 서 모든 가족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지가 제법 오래 되었고 영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한번쯤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적인 생각에 불과 합니다. 왜 우리들도 간혹 농 촌이 좋아, 농촌에서 살아 봤으면 하지만 실제로 농촌에 가서 살라고 하면 싫다 고 하지 않습니까 감상적인 생각과 현실은 이렇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기반을 닦으며 성공해서 살아 왔던 애굽을 떠 나 가나안에 가서 산다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포기 하고 성공의 보장도 없는 가나안에 가서 산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요셉의 지위 여러분 요셉이 애굽에서 어떤 지위를 누렸습니까 그렇습니다. 애굽에서 왕같은총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속한 모든 가족들이 이런 요셉의 덕을 보고 살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창 50장에 기록되고 있는 야곱 의 죽음은 요셉이 어떤 지위를 누렸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창세기 50:1-3절 말씀을 보죠. . 요셉이 며칠 장으로 치러졌죠 그렇습니다. 70일 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이 70일 동안 어떤 일이 있었죠 그렇습니다. 70일 내내 애굽 사람들이 야곱을 위해서 울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중 40일을 야곱의 몸에 향을 바르느라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마치 누가 죽었을 때 처럼요 그렇습니다. 마치 왕이라도 죽었을 때처럼 그렇게 한 것입니다. 루터는 이 장면을 주석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이처럼 상세하게 또 이처럼 존경 스럽게 기록된 장례는 없었다. 여러분 야곱이 왜 이런 대접을 받습니까 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대접을 받습니까 그렇습니다. 요셉의 아버지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우리는 당시 애굽 사람들이 요셉 의 가문에 대해 갖는 생각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7절 이하에 보면 이 장례식에 어떤 사람들이 참석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장 례에 어떤 인물이 참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사회적인 지위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자 어떤 인물들이 여기 에 참석을 했는가를 보죠. 바로의 모든 신하, 바로궁의 장로, 애굽 땅의 장로들이 참석을 했습니다. 즉, 바로만 빼 고 높은 사람들이 다 참석을 한 것이죠.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죠 그렇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대단한 존재였다 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요셉이 이렇게 대단한 존재였음 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9절 말씀을 보죠. 이 장례식에 누가 동원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군사가 동원이 됩니다. 이 엄청난 인원이 야곱의 장 례식에 동원이 됩니다. 여러분 이 장례식이 며칠이나 진행이 되었겠습니까 제법 많은 날들이 여기에 투자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장지가 가나안 땅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다녀오는데 걸리는 왕복 시 간하며, 10절 말씀에 이 장례행렬이 아닷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7일 동안 호곡을 한 시간 등을 합하면 적어도 한 달 가까이 걸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기간동안 애굽의 모든 행정이 마비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이 장례식으로 인해 새로운 지명이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이 엄청난 장례식이 무엇을 말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요셉의 명성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명성이 있고 부가 있는 곳을 떠난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그것도 아무것도 보장되 지 않은 곳을 향하여 말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모험입니다. 실패했을 때 그 실패한 곳에서 떠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공을 하고 명성을 얻었던 곳을 떠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죠. 여러분 같으면 여러분들이 성공한 곳에서 자손들이 멋지게 살고 있는데 아무런 보장도 없는 곳을 향해 떠라나 명 령하시겠습니까 아마 그럴 분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자신의 후손들이 이 애 굽 땅을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떠나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이들이 떠나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이유, 그것이 도대체 무 엇일까요 아마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고 하는 것을 보면 뭔가 대단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모든 부귀와 영광을 다 버릴 만한 그 이유, 이제 그것을 따져 보십시다. 야곱의 유언에서 우리들이 이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야곱의 죽음서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죽음과 요셉의 죽음 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야곱의 유언을 살펴보도록 하죠. 창 47:29-31입니다. . 야곱이 무엇이라 유언을 합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을 애굽에 장사지내지 말 것을 엄중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맹세까지 시켜 가면서요. 또 49:29-32 말씀을 보면 자신의 매장지를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어디라고 말 하죠 그렇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자신의 아내 레아가 묻혀 있는 헤브론의 밭에 매장을 하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곳이 어디인줄 아십니까 이곳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하란땅을 출발해 처 음 가나안땅에 도착해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을 받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가 죽자 아내를 매장하기 위해 땅을 샀던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처럼 이 땅 을 사서 아내를 묻었던 이유는 가나안 땅을 주시마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행동 중에 하나였습니다. 바로 이 땅에 야곱, 자신도 묻혀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 들에게 주시마 약속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요셉과 다른 여느 형제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을 때 요셉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도 하나님께서 주시마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 땅에 묻히기를 소원했던 것이며 자신의 후손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올라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요셉의 꿈
그렇다면 요셉이 꿈꾼 것이 무엇입니까 애굽의 화려함입니까 애굽의 명성입니까 애굽의 부귀영화입니까 아니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비록 요셉이 애굽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이곳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꿈꾸고 살았던 것입니다. 저는 참 이런 면에서 요셉을 존 경합니다. 세상의 부귀나 명예는 사람을 취하게 만듭니다. 한번 이런 것의 맛을 알면 여기서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이전 사역지에 있을 때 제법 괜찮은 생활을 했습니다. 물질적인 여건이나 생활 환경, 문화환경 등이 제법 괜찮았습니다. 자주 일급 호텔을 드나들면서 식사도하고 차도 마셨습니다. 제법 괜찮은 음악회, 연극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었습니다. 제법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런 생활이 참 매력 이 있더군요. 어느 정도로 매력이 있었는고 하니 저의 집사람과 이러다가 큰일나는데 하는 생각을 할 정도의 매 력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의 집사람과 이러다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오지로 보내시면 과연 우리가 아멘 하고 갈 수 있을까 이거 이러다가 이런 생활이 좀 더 진행되면 이 생활에 도취되어서 하나님께서 보내실 때 안 간 다 하겠어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지금 내 생활이 불만족하니 개선해 달라 이런 이야기를 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저의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요셉의 처지를 이해했으면 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최고의 생활은 아니라 하더라도 좀 괜찮다 싶은 생활에서도 이런 매력을 느꼈는데 요셉은 어떻겠 습니까 그는 수십 년의 세월을 이런 환경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최고의 권좌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 구하고 그는 여기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꿈꾸며 자신의 인생 을 살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에 매력을 느끼며 사십니까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사십니까 여러분 중에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답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어디에 매력을 느끼느냐고요 아 그야 예수님께 매 력을 느끼지요.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사느냐고요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죠
그렇다면 제가 묻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정말 여러분들은 여기에 매력을 느끼고 여기에 소망을 두고 사십니까 한 번 더 묻고 싶습니다. 이런 것에 매력을 느끼고 소망을 두었다면 그것이 여러분들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혹 그저 일주일에 한 번 쯤 와서 예배하고 가는 그것으로 이런 것에 소망을 두고 산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정말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에 매력을 느끼고 이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신다면 이런 것들이 여러분들의 삶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하십시오. 여러분들의 인격에 여러분들의 행동에 가치관에 이런 것들이 나타 나고 드러나기를 힘쓰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런 요셉의 삶이 히브리 기자에게는 크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요셉의 삶이 믿음의 행동이었 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신뢰함 이런 요셉의 행동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시간 에도 살펴 봤었는데요. (창 15:13,14)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 말씀이 누가 누구에게 한 말씀이라 했죠 그 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된다는 말이 무엇을 두고 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요셉 시대에 있었던 이 사건을 두고 한 말입니다. 요셉도 이 말씀이 비록 200년 전의 일이지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자신의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음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왜 이 말이 이상하죠 그렇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처지와 너무나 딴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의 처지는 어떤 처지입니까 그렇습니다. 애굽에서 존경받는 처지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잘 나가는 처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을 향해 괴롭힘을 당하다니요. 이것은 요셉 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들이야 출애굽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애굽을 정복하고 다스리 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요셉 시대의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지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전두환씨가 시퍼런 칼을 가지고 휘두를 때 자신이 백담사로 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 겠습니까 아마 생각지도 생각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앞으로 괴롭힘을 당하게 될 것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가게 할 것이라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먼 약속, 먼 성취 여러분 이 일이 언제 일어날 일입니까 예, 요셉이 지금 애굽에 온지 93년이니까 적어도 300년 뒤에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300년 뒤에 일어날 일이었지만 그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그 자신만 이 것을 바라보고 살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후손들도 이 일을 바라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행여나 자신의 후손들이 이 땅에 살면서 이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할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대한 소망을 접어 두고 살아가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그는 죽으면서 자신의 후손들에게 가나안을 꿈꾸며 살 것을 이야기합니다. 함 께 창 50: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에 게 이것을 맹세시킵니다.
함께 25절 말씀을 보죠. . 우리는 여기 해골이라는 말에서 요셉이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왜 요셉이 자신을 해골이라 말했을 까요 그렇습니다. 이 일이 적어도 300년 뒤에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에요. 이렇게 보면 요셉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요셉이 직접 이 부분에 대해 서 약속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아까 우리가 살펴봤던 아브라함의 후손에 400년 동안 객이 되리라는 창 15장의 사건은 요셉으로부터 몇 년 전의 약속이었다고요 그렇습니다. 200년 전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 질 일은요 그렇습니다. 적어도 300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자신을 해골이라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 라보게 하기 위해서 맹세를 시키고 있습니다. 얼마나 확신에 찬 믿음입니까 저는 이런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요 셉에게 고개가 숙여 집니다. 자신에게 직접한 말씀도 아니고 또 자신의 시대에 바로 이루어 질 일도 아니지만 그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간혹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사랑하는 아무개야 내게 헌신하여라 말씀하시면 헌신하겠다. 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니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렇게 말씀하셔야만 됩니까 서로 오랫동안 생활을 하다보면 얼굴만 봐도 아니 얼굴을 보지 않아도 상대의 뜻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직접 여러분들에게 나타나셔서 아무개 집사야 좀 더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여라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난리가 날 것입니다. 아니 꼭 그렇게 나타나셔야만 뜨 거워집니까 하나님의 뜻이 지금 헌신을 하라고 하시는지 말라고 하시는지. 뜨거워 지라 하시는지 말라 하시는지 몰라서 꼭 나타나서 말씀하셔야만 헌신하고 뜨거워집니까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한 말씀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시대에 이루어 질 일이 아니었지만 하나님 의 말씀을 붙잡고 산 사람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히브리 기자는 요셉의 임종을 요셉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으로 부각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요셉의 삶을 살피다가 머릿속에 스치며 지나가는 복음송이 있었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오 주님 같은 친구 없도다 저 천국 없으면 나 어떻게 하나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물론 이 복음송이 너무 현실도피를 강조하고 있기에 이 복음송을 부르는데 있어서 위험 부담은 있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복음송을 인용하는 것은 요즘 세상 속에 너무 깊이 빠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기에 이 런 분들에게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님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이 복음송을 인용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애굽 성공하였고 그것이 화려하게 보이는 것이었지만, 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구체적으 로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지도 않았지만, 선조들에게 하신 말씀이 역시 자신에게 한 말씀인줄 알고 자신은 비록 그 땅에 가 볼 수 없는 처지였지만 자신의 후손들은 이곳에 가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죽으면서까지 애써 이 일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런 요셉을 보면서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뭔가 느껴지시기는 합니까 그렇다 면 좀 고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삶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요셉의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먼 훗날 모세는 출애굽을 하면서 이 요셉은 해골을 취하여 나오게 됩니다. 함께 출애굽기 13:18-19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 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 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그렇다면 이 기간 동안 요셉의 해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역할을 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언의 설교를 했을 것입니다. 어떤 설교를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이곳은 우리가 살 곳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그 때를 바라보고 살아라 하면서요. 사람들이 요셉 의 해골 앞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이런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는 죽었지만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말할 수 없는 그런 처지였지만 그의 무덤은 애굽에 사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설교를 통해 누가 탄생을 한 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도, 그의 어머니도 바로 이런 설교를 통해서 이런 꿈을 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가나안을 꿈꾸었고 이 일을 실천에 옮겼던 것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죽어서도 이렇게 위대한 일을 했기에 오늘 성경은 요셉의 임종이 요셉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음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로 하는 사람도 바로 이런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삶으로 하나님 의 말씀을 바라보고 사는 삶이 어떤 것이다는 것을 증거 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사는 것이 이런 것이란다 삶을 통해서 설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른다 하면서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산다고 하면서 전혀 엉뚱한 것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어요, 저는 오늘 밤 죽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천국에 갈 것을 확신해요. 하면서 실제로는 천국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시대에 요셉처럼 묵묵히 삶을 통해서 설교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무엇보다 필 요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교회에도 마찬가지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재정 적 으로 든든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명성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또 말만 앞세 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이것을 위해 전심전력하는 삶을 사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이런 사람이 오늘 존귀히 여김을 받고 칭송을 듣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 오. 오늘 우리 사랑하는 교회가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기도하십시오. 이제 우리 사랑하는 교회가 출범을 한지 3년이 지나 4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사랑하는 교회의 선구자들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이렇게 삶을 삶으로서 여러분을 뒤따르는 신앙의 후배들에게 이것을 설교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이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하시렵니까 바로 이것을 하십시오. 여러분들의 신앙 의 후배들을 위해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위해 요셉처럼 온 몸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삶이란 이런 것이 란다 설교하십시오. 장년은 청년들에게 이것을 설교하십시오. 지탄의 대상이 되는 장년이 아니라 뭔가 배울 것이 있고 따를 것이 있는 신앙의 선배들이 되십시오. 청년은 학생들에게 또 그렇게 하십시오.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이렇게 살려는 사람들이 많아 질 때 오늘 우리 사랑하는 교회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이런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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