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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를 바라보자 (히12:1-3)

본문

우리 기독교는 기독을 믿는 즉,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출발점 내지 근거는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의 생애는 그의 십자가의 고난과 함께 정점에 도달합니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었다는 그 자체가 이미 그에게는 고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 습니다. 하나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 굳이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하지 않 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 이 되었다는 것 그 자체가 그리스도에게는 이미 하나의 결정적인 고난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고난의 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철저히 고난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인간 을 구원하심은 먼저 그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가능했습니다. 물론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였지만 그의 고난의 죽음이 먼저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고난의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에게 가까와지고자 하면 할 수록, 모 든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그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그가 당한 고난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생애가 한마디로 고난이 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어느 인간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그 것이 어떤 종류의 고난이던지 말입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맞는 자세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이는 자기보다 더 큰 불행을 당하는 자가 없다 하 면서 낙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음으로 이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튼 고난은 그 누구나 겪게되어 있는 것입니다.욥기 5:7에 보면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피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싶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이 땅에 오셔서는 예외 없이 많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 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난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난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트리피스라고 하는데 '환란'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을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죄인에게 무거운 짐을 가슴에 올려 놓게해서 죽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이 점점 가슴을 눌러 숨이 막히고 가슴이 부서지고 터지는 아픔 가운데서 죽게하는 형벌이 있는데 그런 형벌을 고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날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죽어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하루 이틀의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 씩 죽어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희랍신화에 보면 어떤 사람이 신에게 벌을 받는 데 그 벌은 이런 것입니다. 날마다 독수리가 와서 그의 간을 뜯어 먹는 것입니다. 결국 저녁 때 쯤되면 간이 다 없어져서 거의 죽게 되었고, 시간이 되었으니 독수리는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간이 밤새도록 다시 회복되어, 아침이 되면 독수리가 다시 날아와서 그의 간을 다시 뜯어 먹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간이 거 의 다 없어질 저녁이 되면 독수리는 다시 날아갑니다. 이런 일이 날마다 계속되는 형벌인데 이런 것을 인간의 고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여기서 말하는 고난이란 인간의 힘으로 견디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러 살 소망마져 잃어버리게 되는 절대절명의 순간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치 수렁에 빠진 짐승이 허우적 거리면 거릴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어 마침내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와 같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 탐험길에 나섰다가 수렁에 빠지게 되 었는데 근처에는 그를 건져 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시간이 갈 수록 그는 서서히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몸부림을 쳐도 안되고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는 허리, 가슴, 그리고 마침내는 목까지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뒤로도 제쳐봅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의 머리는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고 그의 허우적 거리는 손의 손가락 끝도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조금 후에 그의 마지막 숨을 알리듯 진흙 위로 한 방울의 거품이 솟아 올랐다 꺼집니다. 마침내 한 생명을 잃게 되기까지 서서히 죽어가는 그런 고난을 말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생각한대로 고난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죽을 지경까지 이르게 된 아 픔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고난이 인간을 떠나지 않습니까 정말 인간은 고난에 파뭍혀 살아야 하는 존재란 말입니까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죄의 댓가로서 받는 벌로서 의 고통입니다. 인간은 울면서 태어나고 죽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울립니다. 고 통으로 시작하여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인생이라고 할 정도로 범죄한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든지 그 댓가를 받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고통은 자기들의 죄의 댓가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마땅히 받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성경에서 우선 채아 볼 수 있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죄의 댓가 로서 벌로 주는 고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여러 종류의 고통이 있음 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식에게 주시는 훈계와 징 계로 또는 연단으로 주시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고난은 사람을 정화하 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돈독하게 하는 시련의 의미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당하신 고난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고난은 그가 죄인이시기 때문도 아닐 것이요, 하나님께서 실수로 그에게 고난을 당하게 하신 것도 아닐 터인데 과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왜 고난을 당하셨는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 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첫째 이유는 인간이 모든 고난에 동참하시므로 인간 을 이해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 63:9에 보면 "그들의 모든 환 란에 동참하사 자기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직접 인간의 고난에 동참하시는 뜻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둘째 이유는 환란 당하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입니다. 고후 1:4에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 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고난 때문에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주 님에 대하여 말하므로 또 위로 할 수도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포스딕이란 사람이 말하기를 "남을 가장 많이 위로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근 심, 걱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허다한 쓰라린 일을 겪고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큰 고난을 당한 자의 이야기들은 작은 고난을 가 진 자들을 위로하고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헬렌켈러 같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지만 삼중 고(고) 가운데에서도 훌륭한 일을 이루어낸 위인이 장애자들에게는 큰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세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당할 고난을 그가 대신 짊어져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3:4,5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 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뇌성마미 시인 송명희 양의 '그러한 나를 위하여'라는 시가 우리가 당할 고난을 주님이 대신 당하셨다는 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러한 나를 위하여 (송명희 시) 나는 실수가 많으나 나는 허물이 많지만 나는 잘못이 있으나 나는 죄악이 있어도 그러한 나를 위하여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나의 많은 실수가 예수님의 가시관이요 나의 많은 허물이 예수님의 맞으신 채찍으로 되었고 나에게 있는 잘못이 예수님의 무거운 십자가가 되었으며 나의 쌓인 죄악이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힌 못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대신한 고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믿 지 아니하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을 그가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버나드 디 클라이폭스는 "범죄는 내가 하고 주는 욕을 보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정말 우리의 우매함을 대신하여 그가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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