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거인 (히11:1-6)
본문
고 김형남 장로님께서 소천한 지 10다녀이 되는 오늘, 추모예배를 맞 이하여 '신앙의 거인'이라는 제목으로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히 브리서 11:4에 "믿음으로 아벧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엇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 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 라."고 하였습니다. 고인께서 세상에서 74세의 천수를 누리시고 영광 스러운 천국행활 10년을 하셨으며, 앞으로 영원히 영생하실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아벧이라는 족장은 목축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릴 때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벧의 형인 가 인은 농사짓는 농부이기에 땅의 소산으로 재물을 바쳤습니다. 여기에는 첫 소산이란 말씀도, 탐스럽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아벧은 믿음의 제사요, 가인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 깊은 신앙의 표현이 바로 양의 첫 새끼요, 기름진 양인 것입니다. 이 신앙적이며 양심적인 삶 때문에 아벧은 형의 시기와 미움을 사서 피살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신앙 때문에 고통당하면, 손해를 보 며,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걷는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벧은 죽어서 천국에 간 신앙의 위인이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에녹 이라는 족장은 65세에 장자 므두셀라를 생산했습니다. 300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고 365세를 향수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5:24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생산하면 대개는 신앙이 해이해 지는 것이 공시처럼 되어 있는데 이 에녹만큼은 특별했습니다. 그는 자녀를 낳을수록 더욱 하나님을 친근해 했습니다. 얼마나 믿음이 독실 했기에 하나님께서 동행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헤 아려 그 높으신 뜻을 맞추었으며 생활에 옮긴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 리면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이 넘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망이라는 관문을 통하지 않고 소천할 수가 있 었습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든지 살아서 천당에 가든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데 그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임명되어 근로자에게 복음 을 전해야 될 필요성을 절감하시고, 1946년 2월 10일에 교회를 설립했 습니다. 즉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선교를 위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47년 정문을 나가는 수천명의 작업인들의 몸수색, 소위 검 신제도를 금지할 것을 청원했습니다. 회사 창업정신으로 만든 사규가 세 가지인데, 즉 1조:기독교 정신으 로 근무할 것, 2조:인화필성(人和必成), 3조:생산보국이었습니다. "우리가 회사를 시작한 후에 저들을 믿지 못해 검신을 해야 할까"라 고 고인의 질문에 현장 부장과 과장들은, "검신제도는 일본에서 시작 한 것입니다. 그들도 하는데 우리가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를 폐지한다면 공장 물건들은 남아 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인은 "공장 안에 교회를 세워 놓고 저들의 몸을 수색한단 말이요 저들을 한번 믿어 봅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이와같은 소신을 갖고 단행하였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기숙사의 사물함을 조사해보니 어김없이 실타래, 광목천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오히려 숨 기지 않은 사람이 이단자요,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고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배시간에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속여야겠느냐고 간곡히 타일렀습니다. 그때 그들은 만장일치로 공장의 물건을 가져 가 지 않기로 결의했으며, 서로 불신하고 패쇄적이었던 저들이 마음문을 열었습니다. 이 때부터 복음이 들어가고 교회가 저들의 마음 속에 세 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도난도 20-30퍼센트 정도가 줄었습니다. 김장로님은 이렇게 믿음의 실천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마가복음 9:23 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그분은 신행일치의 조화를 이룬 분입니다. 흔히 말로만 믿는 사람이 많은데 비해 김장로님은 행동하는 믿음의 소유자 이셨습니다. 그분은 이미 가셔서 말씀은 없지만 그분이 하신 사업은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5-26에 보면 예수께서는 부활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신앙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신 신비가 있습니다. 6.25동란으로 폐허가 된 공장을 재건했습니다. 방직은 세밀한 기계로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돌 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의 폭격으로 못 쓰게 된 기계를 손으 로 복구했습니다. 시설의 90% 파괴되었고, 건물의 80%가 소실되었습니다. 고 김형남 장로님은 맨 먼저 교회를 청소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리고서 당신 자신에게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빌립보서 4:6-7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 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아직 부산에 있는 가족이 광주 로 돌아오기 전이었습니다. 너무 과로에 지쳐서 안방까지 들어가지도 못하고 부엌 쪽 문으로 들어가 그 마루에서 쓰러져 드러눕기가 일쑤였 다고 합니다.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근면하게 일해서 10개월만에 6,000추가 설치되 었습니다. '네 일에 충실하라. 그러면 네 일도 내게 충실하리라."이 말은 뉴욕의 프래트 공과대학 설립자의 교훈이었는데, 이 교훈은 고인 김형남 장로님의 생애를 좌우했습니다. 백화점 왕으로까지 대성한 와나메이카는 처음에, 14세 때에 서점 점 원이었습니다.그는 문자 그대로 근면한 인물이었습니다.
매일 그 서점에 맨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었고, 손님보다 1시간 전에 왔습니다. 뉴 욕행 기차를 타고 다니며 기차 속에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체신부 장 관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관청문을 여는 선례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 습니다. 그는 70세가 되어도 원기왕성했습니다. 가끔 7시쯤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에 와서 복도의 청소상황을 조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 시간이나 늦게 어슬렁 출근하는 지배인들에게 여러 가지 주의를 주었 다는 것입니다. 그는 독실할 기독교인이요, 교회학교 교사 교장으로 종교교육에도 열성을 쏟았습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제일 잘 되어 있는 나라가 스웨덴입니다. 스웨덴은 인구 800만, 국토는 우리 나라 (남북한을 합한)의 두배, 문맹률은 0%, 국민소득 10,745불이고, 기독교가 98% 개신교이다. 네덜란드는 인구 1,500만,국토는 4만평방KM로서 우리 나라의 5분의 1이고, 문맹률은 0%,국민소득은 8,500불이고, 개신교 60% , 가톨릭 35%이다. 스위스는 인구 600만 국토는 4만평방KM 의 5분의 1이고, 국민소득 16,000불, 문 맹률은 0%,개신교 57%, 가톨릭 40%이며, 스위스는 알프스 산악의 나라 입니다. 그리하여 관광, 정밀기계를 생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적고, 가볍고, 값비싼 정밀기계가 발달해서 부강한 국가를 만들었 습니다. 우리나라 아시안게임에서 2위, 올림픽게임에서 4위, 자유진영에서 2 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우리 백성의 무한한 능력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산업사회를 바꿔 놓으면 축복받는 국가와 사회가 분명히 될 것입니다. 그 김형남 장로님 같은 위인들이 숙출하기를 바랍니다. '고 김형남 장로님 10주기 추모예배 설교'
다시 말씀드 리면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이 넘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망이라는 관문을 통하지 않고 소천할 수가 있 었습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든지 살아서 천당에 가든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데 그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야말로 임명되어 근로자에게 복음 을 전해야 될 필요성을 절감하시고, 1946년 2월 10일에 교회를 설립했 습니다. 즉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선교를 위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47년 정문을 나가는 수천명의 작업인들의 몸수색, 소위 검 신제도를 금지할 것을 청원했습니다. 회사 창업정신으로 만든 사규가 세 가지인데, 즉 1조:기독교 정신으 로 근무할 것, 2조:인화필성(人和必成), 3조:생산보국이었습니다. "우리가 회사를 시작한 후에 저들을 믿지 못해 검신을 해야 할까"라 고 고인의 질문에 현장 부장과 과장들은, "검신제도는 일본에서 시작 한 것입니다. 그들도 하는데 우리가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를 폐지한다면 공장 물건들은 남아 나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인은 "공장 안에 교회를 세워 놓고 저들의 몸을 수색한단 말이요 저들을 한번 믿어 봅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이와같은 소신을 갖고 단행하였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기숙사의 사물함을 조사해보니 어김없이 실타래, 광목천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오히려 숨 기지 않은 사람이 이단자요,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고마는 상황이었습니다. 예배시간에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속여야겠느냐고 간곡히 타일렀습니다. 그때 그들은 만장일치로 공장의 물건을 가져 가 지 않기로 결의했으며, 서로 불신하고 패쇄적이었던 저들이 마음문을 열었습니다. 이 때부터 복음이 들어가고 교회가 저들의 마음 속에 세 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도난도 20-30퍼센트 정도가 줄었습니다. 김장로님은 이렇게 믿음의 실천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마가복음 9:23 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그분은 신행일치의 조화를 이룬 분입니다. 흔히 말로만 믿는 사람이 많은데 비해 김장로님은 행동하는 믿음의 소유자 이셨습니다. 그분은 이미 가셔서 말씀은 없지만 그분이 하신 사업은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25-26에 보면 예수께서는 부활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신앙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신 신비가 있습니다. 6.25동란으로 폐허가 된 공장을 재건했습니다. 방직은 세밀한 기계로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돌 아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행기의 폭격으로 못 쓰게 된 기계를 손으 로 복구했습니다. 시설의 90% 파괴되었고, 건물의 80%가 소실되었습니다. 고 김형남 장로님은 맨 먼저 교회를 청소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리고서 당신 자신에게 능력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빌립보서 4:6-7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 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아직 부산에 있는 가족이 광주 로 돌아오기 전이었습니다. 너무 과로에 지쳐서 안방까지 들어가지도 못하고 부엌 쪽 문으로 들어가 그 마루에서 쓰러져 드러눕기가 일쑤였 다고 합니다.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근면하게 일해서 10개월만에 6,000추가 설치되 었습니다. '네 일에 충실하라. 그러면 네 일도 내게 충실하리라."이 말은 뉴욕의 프래트 공과대학 설립자의 교훈이었는데, 이 교훈은 고인 김형남 장로님의 생애를 좌우했습니다. 백화점 왕으로까지 대성한 와나메이카는 처음에, 14세 때에 서점 점 원이었습니다.그는 문자 그대로 근면한 인물이었습니다.
매일 그 서점에 맨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었고, 손님보다 1시간 전에 왔습니다. 뉴 욕행 기차를 타고 다니며 기차 속에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체신부 장 관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관청문을 여는 선례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 습니다. 그는 70세가 되어도 원기왕성했습니다. 가끔 7시쯤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에 와서 복도의 청소상황을 조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 시간이나 늦게 어슬렁 출근하는 지배인들에게 여러 가지 주의를 주었 다는 것입니다. 그는 독실할 기독교인이요, 교회학교 교사 교장으로 종교교육에도 열성을 쏟았습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제일 잘 되어 있는 나라가 스웨덴입니다. 스웨덴은 인구 800만, 국토는 우리 나라 (남북한을 합한)의 두배, 문맹률은 0%, 국민소득 10,745불이고, 기독교가 98% 개신교이다. 네덜란드는 인구 1,500만,국토는 4만평방KM로서 우리 나라의 5분의 1이고, 문맹률은 0%,국민소득은 8,500불이고, 개신교 60% , 가톨릭 35%이다. 스위스는 인구 600만 국토는 4만평방KM 의 5분의 1이고, 국민소득 16,000불, 문 맹률은 0%,개신교 57%, 가톨릭 40%이며, 스위스는 알프스 산악의 나라 입니다. 그리하여 관광, 정밀기계를 생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적고, 가볍고, 값비싼 정밀기계가 발달해서 부강한 국가를 만들었 습니다. 우리나라 아시안게임에서 2위, 올림픽게임에서 4위, 자유진영에서 2 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우리 백성의 무한한 능력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산업사회를 바꿔 놓으면 축복받는 국가와 사회가 분명히 될 것입니다. 그 김형남 장로님 같은 위인들이 숙출하기를 바랍니다. '고 김형남 장로님 10주기 추모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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