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결심 (히10:19-25)
본문
1.오늘 우리는 12월첫째주 예배를 드리고 있다.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너무나 빨리 지나간 시간이 아쉽다.
2.그러나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대하여 아쉬워할 겨를이 없다. 96년이 눈 앞에 닥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신년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3.본문은 믿음의 사람이 가져야할 자세에 대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 말씀을 통하여 12월을 맞이하는 자세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기다리자.
I.새로운 희망을 갖자(19-20).
A.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1.이 길은 지금까지의 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이다.
1)지성소에는 오직 1년에 한번 그것도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본문의 수신자인 유대인들에게 생명이상으로 귀한 일이다.
2)우리에게 지성소에 대한 개념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감을 못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러가지의 전래 종교와 무속신앙을 통해 지성소의 감각을 이해할 수 있다. 굿을 하기위해 무당을 찾고 점을 치기 위해 술사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3)스스로 종교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중보자가 필요했다. 그것이 유대교에서는 대제사장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절차가 생략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4)이것은 민주화니 복지사회니 하는 말 이상의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날 양반집 소생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혹은 첩의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능력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고 설음과 구박 속에 살았던 사람에게 오늘과 같이 능력만 있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2.이 길 은 에수의 피라는 다리를 통하여 주어진 은혜다.
1)우리는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 사닥다리를 사용한다. 왠만큼 높아도 올라갈 수 있다.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놓는다. 우리나라에도 몇킬로씩 되는 긴 다리가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 생길 서해안 고속도로의 경기도와 충남을 잇는 다리는 수 킬로나 된다고 한다.
2)끊겨진 은혜의 다리가 예수의 피를 통해 다시금 이어졌다. 돈으로가 아니라 예수의 피로 말이다.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힘이 우리를 살리는 길을 열어주었다.
B.내가 선택할 새 길을 찾자.
1.게으름과 원망과 나태로 얼룩진 구습의 옛길을 과감히 버리자. 게으름이나 원망이나 나태는 백해 무익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아껴왔는가 이제 이것들을 버리자. 새 길을 가기위해서는 옛 것을 버려야 한다.
2.실패와 상처의 악몽에서 벗어나자.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오직 도전이 필요하다.
II.새로운 확신을 갖자(21-23).
A.확신과 진실한 마음이 필요하다.
1.죄 사함에 대한 확신이다.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 모든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은 자녀라고 부르신다. 단순히 부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 모두에게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주신다. 이것은 오직 확신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2.누가 그 집을 다스리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독재자가 통치하니까 주위의 나라들이 무역거래를 끊어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유화 제스처를 사용한다. 소련도 그렇고 쿠바도 그렇고 베트남 캄보디아가 그렇다. 그러나 아직도 철부지 독재자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있는데 그들은 극심한 고생에 시달리고 있다.
3.지도자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누가 다스리는 집에서 사느냐에 따라 나의 위치는 달라진다. 독재자의 집에서 살면 나도 그 일당이 되고 만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주님이 다스리는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며 든든한 일인가 나 때문에가 아니라 예수 때문에 나의 존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다.
4.우리는 지금 믿음으로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오직 확신으로.
B.모든 일에 확신을 갖자.
1.우리가 예수를 통할 때 바랄 수 없었던 구원을 얻었다.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주 안에서 우리에게는 확신이 주어졌다.
2.믿음은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정신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무슨 일을 하든 확신만 있다면 길이 열린다. 물론 확신과 맹신은 엄연히 다르다.
3.만일 우리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하여 확신이 없이 의심으로 일관한다면 그 일은 실패할 것이 너무나 뻔하다.
III.새롭게 결단하자(24-25).
A.선한 일에 힘쓰자.
1.서로 돕자.
1)서로 돕는 것처럼 좋은일은 없다. 그러나 또한 그것처럼 어려운일도 드물다. 좋은일인 만큼 쉽지는 않다. 그러나 힘써야 한다.
2)내가 남에게 받은 만큼만이라도 도울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 약점은 남을 돕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님께 진빚 이웃에게 갚아야 한다.
2.친절을 베풀자.
1)우리나라 전반의 비관적인 현상중의 하나가 친절의 상실이다. 친절이 없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교회내에 까지 이러한 현상이 보이고 있다.
2)친절은 그리스도인의 기본 자세다.
B.모이는 일에 힘쓰자.
1.갈수록 저녁예배 참석이 줄고 있다. 교회가 대형화 하면서 저녁예배 시간까지 대예배 시간으로 편성하는 경향이 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중의 하나다.
2.지금까지의 예배참석에 대한 성적을 평가하면서 이제부터 더욱 분발하자. 더욱 열심을 내자.
3.형제의 모임을 통하여 서로 격려할 수 있다. 격려는 큰 힘이다.
2.그러나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대하여 아쉬워할 겨를이 없다. 96년이 눈 앞에 닥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신년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3.본문은 믿음의 사람이 가져야할 자세에 대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 말씀을 통하여 12월을 맞이하는 자세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기다리자.
I.새로운 희망을 갖자(19-20).
A.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1.이 길은 지금까지의 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이다.
1)지성소에는 오직 1년에 한번 그것도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본문의 수신자인 유대인들에게 생명이상으로 귀한 일이다.
2)우리에게 지성소에 대한 개념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감을 못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여러가지의 전래 종교와 무속신앙을 통해 지성소의 감각을 이해할 수 있다. 굿을 하기위해 무당을 찾고 점을 치기 위해 술사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3)스스로 종교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중보자가 필요했다. 그것이 유대교에서는 대제사장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절차가 생략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4)이것은 민주화니 복지사회니 하는 말 이상의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날 양반집 소생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혹은 첩의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능력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고 설음과 구박 속에 살았던 사람에게 오늘과 같이 능력만 있으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2.이 길 은 에수의 피라는 다리를 통하여 주어진 은혜다.
1)우리는 높은 곳을 올라가기 위해 사닥다리를 사용한다. 왠만큼 높아도 올라갈 수 있다. 강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놓는다. 우리나라에도 몇킬로씩 되는 긴 다리가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 생길 서해안 고속도로의 경기도와 충남을 잇는 다리는 수 킬로나 된다고 한다.
2)끊겨진 은혜의 다리가 예수의 피를 통해 다시금 이어졌다. 돈으로가 아니라 예수의 피로 말이다. 예수께서 흘려주신 피의 힘이 우리를 살리는 길을 열어주었다.
B.내가 선택할 새 길을 찾자.
1.게으름과 원망과 나태로 얼룩진 구습의 옛길을 과감히 버리자. 게으름이나 원망이나 나태는 백해 무익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아껴왔는가 이제 이것들을 버리자. 새 길을 가기위해서는 옛 것을 버려야 한다.
2.실패와 상처의 악몽에서 벗어나자.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오직 도전이 필요하다.
II.새로운 확신을 갖자(21-23).
A.확신과 진실한 마음이 필요하다.
1.죄 사함에 대한 확신이다.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 모든 사람을 여호와 하나님은 자녀라고 부르신다. 단순히 부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 모두에게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주신다. 이것은 오직 확신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2.누가 그 집을 다스리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독재자가 통치하니까 주위의 나라들이 무역거래를 끊어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유화 제스처를 사용한다. 소련도 그렇고 쿠바도 그렇고 베트남 캄보디아가 그렇다. 그러나 아직도 철부지 독재자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있는데 그들은 극심한 고생에 시달리고 있다.
3.지도자의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누가 다스리는 집에서 사느냐에 따라 나의 위치는 달라진다. 독재자의 집에서 살면 나도 그 일당이 되고 만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주님이 다스리는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며 든든한 일인가 나 때문에가 아니라 예수 때문에 나의 존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다.
4.우리는 지금 믿음으로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오직 확신으로.
B.모든 일에 확신을 갖자.
1.우리가 예수를 통할 때 바랄 수 없었던 구원을 얻었다.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주 안에서 우리에게는 확신이 주어졌다.
2.믿음은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정신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무슨 일을 하든 확신만 있다면 길이 열린다. 물론 확신과 맹신은 엄연히 다르다.
3.만일 우리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대하여 확신이 없이 의심으로 일관한다면 그 일은 실패할 것이 너무나 뻔하다.
III.새롭게 결단하자(24-25).
A.선한 일에 힘쓰자.
1.서로 돕자.
1)서로 돕는 것처럼 좋은일은 없다. 그러나 또한 그것처럼 어려운일도 드물다. 좋은일인 만큼 쉽지는 않다. 그러나 힘써야 한다.
2)내가 남에게 받은 만큼만이라도 도울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 약점은 남을 돕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님께 진빚 이웃에게 갚아야 한다.
2.친절을 베풀자.
1)우리나라 전반의 비관적인 현상중의 하나가 친절의 상실이다. 친절이 없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교회내에 까지 이러한 현상이 보이고 있다.
2)친절은 그리스도인의 기본 자세다.
B.모이는 일에 힘쓰자.
1.갈수록 저녁예배 참석이 줄고 있다. 교회가 대형화 하면서 저녁예배 시간까지 대예배 시간으로 편성하는 경향이 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중의 하나다.
2.지금까지의 예배참석에 대한 성적을 평가하면서 이제부터 더욱 분발하자. 더욱 열심을 내자.
3.형제의 모임을 통하여 서로 격려할 수 있다. 격려는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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