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안식으로 들어가자 (히4:1-13)
본문
본문에서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두 말은 "안식"이란 말과 "말씀"이란 말이다.이 두 개념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뗄래야 뗄 수 없다. 말씀이 나무의 뿌리라면 안 식은 그 열매와 같고, 말슴이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면 안식은 그 집의 대청과 거실에 비유될 수 있다. 논리상 나누어서 설명을 드리자. 먼저, 안식에 대하여. <본론> 안식이란 말은 "쉼"(rest)이란 말이다. 히브리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3장11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안식"이라 하셧 고,3:18,4:1,10,11엔 "그의 안식" 4:3에 "저 안식" 4:5에 "내 안식"이라고 햇다. 즉 하나님의 안식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안식으로 인생을 초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다 창조하신 후 일곱째되는 날에 안식하셧다. 안식은 성취의 결과로 누리는 즐거움이다. 어떤 랍비는 창1장에 매일 하루가 끝 날때마다 " 져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일곱째날 엔 그게 없다. 하나님게는 다시 여덟째 날이 없고 영원한 일곱째날가운데 즉 영원한 안식가운데 계신다고 햇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안식에 함게 동참하시 길 원하신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하 셨습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슴에 순종했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 신 낙원에서 하나님과 함게 영원한 안식을 누렷을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의 결 과로 그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낙원에서 추방되고 말앗다. 우리가 하루의 노동후에 밤의 안식을 맞이할 수 잇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입 니까! 밤은 분명히 안식의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다. 6일의 노동다음 에 오는 주일도 안식의 하나님께서 그의 안식에 인생들을 초대하시어 영육간에 피로를 풀고 새 힘을 얻게 하시려고 주신 인자하신 선물이다. 그러나,인생은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진정한 면에서 안식은 없다. 그래서 범죄한 직후 인생에게 주어진 것 중 하나가 "고통"이다. 여자에게는 해산 의 고통,남자에게는 노동의 고통이다. 물론 그 고통속에 하나님의 긍휼이 함게 잇어서 여인은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자식을 얻는 기쁨을 맞보게 되고 남자는 노 동을 통해서 성취의 기쁨과 소득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범죄가 없었더라면 에덴동산에서 수만가지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무 거운 짐이 아니요,힘든 노동이 아니였을 것이다. 거기에서의 일은 모두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것이엇을 것이다.
오늘날도 범죄하는 사람에겐 안식이 없다. 밤에도 쉬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까이 하는 사람,그의 사랑 을 입은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기를 기뻐하신다. 시127:3에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그 잠이란 바로 안식이다. 그야말로 하루의 노동뒤에 오는 평안한 안식을 만끽 하는 사람,잠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고문중에 가장 지독 한 고문이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고문이라고 합니다. 육신도 마음도 깊이 잠들 수 잇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요즈음 땅값상승으로 부자된 사람이 참 많습니다만 여전히 부족함은 많습니다. 우리 큰 딸 아이가 5살 때 유치원에서 용인 자연농원에 일박 캠프를 갖을 때 일입니다. 낮에는 잘 놀았는데 밤이 되서 자기 엄마 찾으며 엉엉 울어 잠이 오 질 않습니다. 겨우 집사님 등에 업혀 잠이 들긴 했다지만 그 마음이 어디 안식이 잇엇겠습니까! 다음날 오전에 제 엄마를 보더니 울음을 터트려요. 보고 싶었다는 거지요. 이젠 안심이라는 거지요. 요즘 잠자리 들 때 기도를 하고 때로는 이 야기를 한 두개 들려줍니다.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든 아이들은 마 냥 행복합니다. 곤히 잠든 모습 보면 이게 바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품안에 거하지 않는 영혼이 엄마품을 떠난 어린 아이처럼 그 렇게 안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품안에서는 참된 안식이 잇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니 우리 예수님은 1:12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부활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안식을 의 미합니다. 12:2에 "저는 그 앞에 잇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 움을 게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 앞에 있는 즐거움,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이것은 천국에서의 독생자의 안식 입니다. 바로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시어 저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아담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래 아무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승천 하시어 우리에게 안슥의 하나님게로 가는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의 안식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쉼이 없는 인생,평안이 없는 인생에게 진정한 쉼,영원한 즐거움을 주시려는 약속입니다. 에덴에동산에서 쫓겨난 인생들에게 하늘나라의 집을 주시려는 약 속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복음을 받은 우리는 우리앞에 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 갈 큰 약속이 남아 있습니다. 이 안식에 우리가 들어갈려면 예수님처럼 하나님 의 말슴에 순종해야 합니다.
4장 1절을 보자,"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 아 잇을지라도 너희중에 혹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잇을까 함이라." 참으로 두려워할 일입니다(원문에는 두려워하라는 말이 맨 앞에 나와 있다). 고3이나 재수생이 시험이 낙방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며,의원후보로 나선 자가 낙방하게 되는 것도 여간 큰 충격이 아닌 듯 싶습니다.사업가가 새로 시작한 사 업이 실패한다면 그것도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 입니다. 명예가 아깝고 노력이 아깝고 투자한 돈이 아까와서가 아닙니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인데 희망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실망이라는 두 글자가 그 앞에 가다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일을 앞둔 이들은 최선을 다합니다. 입후보자는 당선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 합니다. 학생들은 수험정보를 받고 밤잠을 자지 않으며 공부합니다. 사업가는 주 야로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고 사방으로 뛰어다닙니다. 이번에 우리 여름성경학교 를 하는데도 책임자들의 어깨는 무겁습니다. 이미 한두달전부터 기도하며 계획을 짜고 착실히 진행해 나갑니다. 열매없이 끝날까봐 두렵기 때문이고 좋은 열매르 거두기 위한 간절한 바램이 잇게 대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봐 우리는 두려워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약속은 받았으나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고모라가 불타는데서 구원을 받도록 천사의 지시를 받았고 저주 의 성에서 빠져나오긴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구원의 성을 향해 달려가지 못 하고 세상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더 좋와하여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마았습니다. 바로의 학정아래 시달리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넌 사람 들은 20세 이상된 남자만 60만이었는데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러간 사람 은 두 사람밖에 없엇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의 목표가 애굽에서 나오는 것이 나아 니라,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엇듯이, 우리의 목표는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 니라,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나와 예수를 믿어 구원받앗다고 안심하고 방심할께 아니라, 천국을 기업으로 얻기 위해 그앞에 잇는 즐거움을 의해 하나님게 순종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주여,주여"부르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 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지만, 주님으로부터 "너희는 누구냐 나는 너희 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는 말씀을 들을 자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왜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합니까 (마7장)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는 말씀에서 날 수 잇씁니다. 주님의 말슴을 알고도 행 치 않앗기 때문이며,주님의 말씀을 거역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말슴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꼭 순종해야 구원받는단 말인가 하는 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같은 겁니다. 여기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잇습니다. 2절, "우리도 복음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슴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말씀을 듣고 믿음을 화합치 않으니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겁니다. 그 뒤에 3절에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을 믿는 사람,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는 사람만이 저 안식에 들어 갑니다. 두가지 확실한 진리가 잇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가운데 단 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 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또,믿는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지옥에 가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왜 지옥에 떨어지는가 주님을 불신하기 때문이요,주의 말슴을 불신하며,주의 사랑을 불신하기 때문입니다.이렇게 본문엔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안 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러나 6절엔 저희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11절에도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 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함는 본에 바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음과 순종은 결국 같은 겁니다. 순종치 않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 로 믿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 단지 아는 것을 말 하지 않고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는 예수 믿는다!" 라고 말하는데,그가 예수님의 교훈에 무관심하고 그의 말슴대로 순 종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가 믿노라 하는 말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끝까지 견고히 믿음에 서서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그의 말슴에 주의해야 합니다. 도대체 무엇에 순종하느냐 하나님의 말슴에 순종하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으로 가라 하신 하나님의 말슴에 불순종하고 애굽 으로 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사십년간 방황한며 다 죽었습니다. 천국 을 향해 가는 길은 말씀이라는 오솔길을 따라가야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안식의 세계를 행해 가리켜 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1절에,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라 햇습니다. 이 약속을 굳게 붙잡고 날마다 그 약속을 바라보는 자는 실망치 않습니다. 벧후1:4절,"지극히 큰 약속"이라 햇고, 고후 1:20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안에서 예가 된다 햇고,롬4:20절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었다고 햇다. 약속이 없는 자는 소망이 없지만, 약속이 잇는 자는 소망이 잇습니다.
둘째,우리의 전인격에 영향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게 해 준다. 맹장에,관절염에,심장병에 여러가지 합병증을 가진 사람을 고칠려면 칼로 수술 하고 전자광선으로 치료하고 약을 써야 합니다. 전인격적으로 철저하게 병든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깊은 곳 구석구석 치료받아야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슴은 살았고 운동력이 잇고 좌우에 날선 어떤 거모자 더 예리하다는 말 은 그렇게 우리의 치료를 위해 역사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슴은 절망을 치료해서 희망으로 가득하게 채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질투를 고치어 사랑과 인자함으로 우리 영혼에 가득 채워줍니다. 하나님의 말슴은 음란을 고치시어 거룩과 순결한 아름다움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갠다는 말은 인격의 깊은 부분까지 전체적으로 말씀 이 영향을 미치고 새롭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효력은 인간의 뜻 과 욕망,영혼 깊은 곳까지 꿰둘고 들어가서 그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순종하는 자,그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이들이 이와같은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거역하는 자에겐 만물을 그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그러내는 것처럼 그의 죄를 드 러내고 심판하는 역활을 합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라는 거룩하신 분의 너그럽고 사랑에 넘치는 초청이 잇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너도 이 안식에 들어 올 수 잇다는 자비 넘치는 약속을 받앗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에 능히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고 읽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안에서 믿음 이 자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자녀가 되시고 저 즐겁고 사랑과 빛과 영광이 충만한 하나님의 안식에 다 함게 참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날도 범죄하는 사람에겐 안식이 없다. 밤에도 쉬지 못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까이 하는 사람,그의 사랑 을 입은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기를 기뻐하신다. 시127:3에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그 잠이란 바로 안식이다. 그야말로 하루의 노동뒤에 오는 평안한 안식을 만끽 하는 사람,잠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고문중에 가장 지독 한 고문이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고문이라고 합니다. 육신도 마음도 깊이 잠들 수 잇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요즈음 땅값상승으로 부자된 사람이 참 많습니다만 여전히 부족함은 많습니다. 우리 큰 딸 아이가 5살 때 유치원에서 용인 자연농원에 일박 캠프를 갖을 때 일입니다. 낮에는 잘 놀았는데 밤이 되서 자기 엄마 찾으며 엉엉 울어 잠이 오 질 않습니다. 겨우 집사님 등에 업혀 잠이 들긴 했다지만 그 마음이 어디 안식이 잇엇겠습니까! 다음날 오전에 제 엄마를 보더니 울음을 터트려요. 보고 싶었다는 거지요. 이젠 안심이라는 거지요. 요즘 잠자리 들 때 기도를 하고 때로는 이 야기를 한 두개 들려줍니다.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든 아이들은 마 냥 행복합니다. 곤히 잠든 모습 보면 이게 바로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품안에 거하지 않는 영혼이 엄마품을 떠난 어린 아이처럼 그 렇게 안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품안에서는 참된 안식이 잇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니 우리 예수님은 1:12에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했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부활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안식을 의 미합니다. 12:2에 "저는 그 앞에 잇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 움을 게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 앞에 있는 즐거움,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이것은 천국에서의 독생자의 안식 입니다. 바로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시어 저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아담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래 아무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승천 하시어 우리에게 안슥의 하나님게로 가는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의 안식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쉼이 없는 인생,평안이 없는 인생에게 진정한 쉼,영원한 즐거움을 주시려는 약속입니다. 에덴에동산에서 쫓겨난 인생들에게 하늘나라의 집을 주시려는 약 속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복음을 받은 우리는 우리앞에 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 갈 큰 약속이 남아 있습니다. 이 안식에 우리가 들어갈려면 예수님처럼 하나님 의 말슴에 순종해야 합니다.
4장 1절을 보자,"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 아 잇을지라도 너희중에 혹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잇을까 함이라." 참으로 두려워할 일입니다(원문에는 두려워하라는 말이 맨 앞에 나와 있다). 고3이나 재수생이 시험이 낙방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며,의원후보로 나선 자가 낙방하게 되는 것도 여간 큰 충격이 아닌 듯 싶습니다.사업가가 새로 시작한 사 업이 실패한다면 그것도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 입니다. 명예가 아깝고 노력이 아깝고 투자한 돈이 아까와서가 아닙니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인데 희망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실망이라는 두 글자가 그 앞에 가다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일을 앞둔 이들은 최선을 다합니다. 입후보자는 당선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 합니다. 학생들은 수험정보를 받고 밤잠을 자지 않으며 공부합니다. 사업가는 주 야로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고 사방으로 뛰어다닙니다. 이번에 우리 여름성경학교 를 하는데도 책임자들의 어깨는 무겁습니다. 이미 한두달전부터 기도하며 계획을 짜고 착실히 진행해 나갑니다. 열매없이 끝날까봐 두렵기 때문이고 좋은 열매르 거두기 위한 간절한 바램이 잇게 대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봐 우리는 두려워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약속은 받았으나 거기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고모라가 불타는데서 구원을 받도록 천사의 지시를 받았고 저주 의 성에서 빠져나오긴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구원의 성을 향해 달려가지 못 하고 세상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더 좋와하여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마았습니다. 바로의 학정아래 시달리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넌 사람 들은 20세 이상된 남자만 60만이었는데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러간 사람 은 두 사람밖에 없엇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의 목표가 애굽에서 나오는 것이 나아 니라,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엇듯이, 우리의 목표는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 니라,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나와 예수를 믿어 구원받앗다고 안심하고 방심할께 아니라, 천국을 기업으로 얻기 위해 그앞에 잇는 즐거움을 의해 하나님게 순종하고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주여,주여"부르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 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지만, 주님으로부터 "너희는 누구냐 나는 너희 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는 말씀을 들을 자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왜 주님으로부터 외면당합니까 (마7장)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는 말씀에서 날 수 잇씁니다. 주님의 말슴을 알고도 행 치 않앗기 때문이며,주님의 말씀을 거역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말슴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꼭 순종해야 구원받는단 말인가 하는 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같은 겁니다. 여기에도 그렇게 말씀하고 잇습니다. 2절, "우리도 복음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슴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말씀을 듣고 믿음을 화합치 않으니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겁니다. 그 뒤에 3절에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을 믿는 사람,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믿는 사람만이 저 안식에 들어 갑니다. 두가지 확실한 진리가 잇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가운데 단 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 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또,믿는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지옥에 가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왜 지옥에 떨어지는가 주님을 불신하기 때문이요,주의 말슴을 불신하며,주의 사랑을 불신하기 때문입니다.이렇게 본문엔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안 식에 들어가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러나 6절엔 저희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11절에도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 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함는 본에 바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믿음과 순종은 결국 같은 겁니다. 순종치 않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 로 믿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 단지 아는 것을 말 하지 않고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는 예수 믿는다!" 라고 말하는데,그가 예수님의 교훈에 무관심하고 그의 말슴대로 순 종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가 믿노라 하는 말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끝까지 견고히 믿음에 서서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그의 말슴에 주의해야 합니다. 도대체 무엇에 순종하느냐 하나님의 말슴에 순종하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땅으로 가라 하신 하나님의 말슴에 불순종하고 애굽 으로 돌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사십년간 방황한며 다 죽었습니다. 천국 을 향해 가는 길은 말씀이라는 오솔길을 따라가야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안식의 세계를 행해 가리켜 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1절에,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라 햇습니다. 이 약속을 굳게 붙잡고 날마다 그 약속을 바라보는 자는 실망치 않습니다. 벧후1:4절,"지극히 큰 약속"이라 햇고, 고후 1:20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안에서 예가 된다 햇고,롬4:20절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었다고 햇다. 약속이 없는 자는 소망이 없지만, 약속이 잇는 자는 소망이 잇습니다.
둘째,우리의 전인격에 영향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게 해 준다. 맹장에,관절염에,심장병에 여러가지 합병증을 가진 사람을 고칠려면 칼로 수술 하고 전자광선으로 치료하고 약을 써야 합니다. 전인격적으로 철저하게 병든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깊은 곳 구석구석 치료받아야 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슴은 살았고 운동력이 잇고 좌우에 날선 어떤 거모자 더 예리하다는 말 은 그렇게 우리의 치료를 위해 역사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슴은 절망을 치료해서 희망으로 가득하게 채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질투를 고치어 사랑과 인자함으로 우리 영혼에 가득 채워줍니다. 하나님의 말슴은 음란을 고치시어 거룩과 순결한 아름다움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갠다는 말은 인격의 깊은 부분까지 전체적으로 말씀 이 영향을 미치고 새롭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효력은 인간의 뜻 과 욕망,영혼 깊은 곳까지 꿰둘고 들어가서 그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순종하는 자,그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이들이 이와같은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거역하는 자에겐 만물을 그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그러내는 것처럼 그의 죄를 드 러내고 심판하는 역활을 합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라는 거룩하신 분의 너그럽고 사랑에 넘치는 초청이 잇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너도 이 안식에 들어 올 수 잇다는 자비 넘치는 약속을 받앗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에 능히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부지런히 배우고 읽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안에서 믿음 이 자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자녀가 되시고 저 즐겁고 사랑과 빛과 영광이 충만한 하나님의 안식에 다 함게 참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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