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성장의 필요성 (히5:11-14)
본문
신앙은 생명이기 때문에 계속적인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땅히 성장해야 성도가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책망을 면치 못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1.영적 미성숙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항상 불안전하고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말 기 때문에 성장하여야 합니다(11-12). 바울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에 대하여 말씀을 하다가 그 말을 듣는 자 들의 영적 수준과 상태가 아직 어려서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에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깊은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이제는 충분히 알아 들어야 할 때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신앙의 초보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 깊은 진리를 가르칠 수 없게된데 대한 책망 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만함으로 말미암아 단 지 성전숭배에 집착할 뿐 아니라, 성전보다 크신 이가 오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반대 하고 있다고 덩달아 배척하는 데에만 열심이었지 그리스도의 모형인 멜기세덱과 관 련한 중요한 진리들을 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지를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엄청난 신앙의 손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직 그들은 영적인 초보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심각성과 손실에 대하여 전혀 경각심이 없고 태만 속에 방임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처지가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 자신의 신앙의 현주소를 아십니까 나의 신앙의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에 이르 렀는지를 정검해 보셨습니까 나의 신앙의 걸맞는 수준에 와 있습니까 그렇지않으 면 책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열심히 자신의 신앙의 성숙을 위하여 말씀에 깊은 자리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2.성도는 때가 찰수록 더욱 장성한 신자가 되어가야 합니다(12-13). 어린아이들은 때가 지나가면 서서히 장성하여 젖을 떼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때가 차면 영적으로 장성한 신앙인이 되어 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도록 우리를 다루시고 흔련하시 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사건과 시험과 고통과 은혜와 감사의 내 용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분별할 수 있는 장성한 신앙인이 되어 장성한 신 앙인답게 살게 하기 위한 방편들인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인은 선악간에 분별력을 가진 신자를 의미합니다. 참과 진리를 구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선한 삶인지를 깨닫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결코 선악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분별력이 없습니다. 사7:16절에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라고 말씀함으로 아이는 선악 간의 선택할 분별력이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신앙인은 선악 간의 판별력을 가집니다. 어떤것이 진리이고, 어던 것을 배척해야 되는 지를 압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서 독자들은 믿은 지가 오래되었는데도 이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장성하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성장이란 그 연조에 있다기보다는 진리로써 연단을 받은 경험에 의해서 이룩되는 것인데, 독자들은 비록 신앙의 연조는 오래되었으나 동족과 외부의 위협들에 쉽게 굴복하므로 연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은 일종 의 훈련입니다. 바울은 연단을 쌓ㄹ은 신앙이 최종적인 승리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전9:24-26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그리고 히12:1절에서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 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승리는 가만히 앉아서 유람하듯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과 땀과 연단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연단된 신앙의 성장이 없이는 승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비록 앞길에 환란이 있고 곤고함이 있을지라도 어린아이가 걷고 뛰기 위하여 끊임없이 연습과 인내와 연단이 필요하듯 그 연단의 과정을 통과해야합니다.
3.신자는 장선한 신앙인이 됨으로 나중믿는 신자들의 교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성 장해야 합니다. 초신자는 먼저믿어 신앙의 연륜이 오랜 성도들을 보고 본받고 배우고 성장합니다. 띠라서 일찍 믿었다고 할지라도 아직 장성하지 못하여 어린아이와 같다면 결코 초신 자들을 이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초신자들을 실족시킬 뿐입니다.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그들이었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그 폐단이 있기에 책망하 고 있는 것입니다. 장성했어야 될 신자가 아직도 신앙의 초보밖에 머물러 있지 않다 면 그것은 교회적으로도 누가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신앙이 미지근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토하여 내침을 받을 것이 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계3:16절에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그러므로 아직도 은혜받을 만한 때요 기회입니다. 어서 속히 장선한 신앙의 대열에 힘차게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성도들의 신앙을 성숙시키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빈 심령에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심령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 의 자랑의 모든 죄악들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고 거룩한 성령님이 나의 삶의 주인 으로 모셔서 계속적으로 성장하시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마땅히 성장해야 성도가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책망을 면치 못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1.영적 미성숙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항상 불안전하고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말 기 때문에 성장하여야 합니다(11-12). 바울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에 대하여 말씀을 하다가 그 말을 듣는 자 들의 영적 수준과 상태가 아직 어려서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에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깊은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이제는 충분히 알아 들어야 할 때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신앙의 초보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 깊은 진리를 가르칠 수 없게된데 대한 책망 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만함으로 말미암아 단 지 성전숭배에 집착할 뿐 아니라, 성전보다 크신 이가 오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반대 하고 있다고 덩달아 배척하는 데에만 열심이었지 그리스도의 모형인 멜기세덱과 관 련한 중요한 진리들을 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되지를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엄청난 신앙의 손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직 그들은 영적인 초보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심각성과 손실에 대하여 전혀 경각심이 없고 태만 속에 방임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처지가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 자신의 신앙의 현주소를 아십니까 나의 신앙의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에 이르 렀는지를 정검해 보셨습니까 나의 신앙의 걸맞는 수준에 와 있습니까 그렇지않으 면 책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열심히 자신의 신앙의 성숙을 위하여 말씀에 깊은 자리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2.성도는 때가 찰수록 더욱 장성한 신자가 되어가야 합니다(12-13). 어린아이들은 때가 지나가면 서서히 장성하여 젖을 떼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때가 차면 영적으로 장성한 신앙인이 되어 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신앙이 자라나도록 우리를 다루시고 흔련하시 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사건과 시험과 고통과 은혜와 감사의 내 용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분별할 수 있는 장성한 신앙인이 되어 장성한 신 앙인답게 살게 하기 위한 방편들인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인은 선악간에 분별력을 가진 신자를 의미합니다. 참과 진리를 구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선한 삶인지를 깨닫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결코 선악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분별력이 없습니다. 사7:16절에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라고 말씀함으로 아이는 선악 간의 선택할 분별력이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성한 신앙인은 선악 간의 판별력을 가집니다. 어떤것이 진리이고, 어던 것을 배척해야 되는 지를 압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서 독자들은 믿은 지가 오래되었는데도 이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장성하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성장이란 그 연조에 있다기보다는 진리로써 연단을 받은 경험에 의해서 이룩되는 것인데, 독자들은 비록 신앙의 연조는 오래되었으나 동족과 외부의 위협들에 쉽게 굴복하므로 연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은 일종 의 훈련입니다. 바울은 연단을 쌓ㄹ은 신앙이 최종적인 승리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전9:24-26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그리고 히12:1절에서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 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승리는 가만히 앉아서 유람하듯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과 땀과 연단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연단된 신앙의 성장이 없이는 승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비록 앞길에 환란이 있고 곤고함이 있을지라도 어린아이가 걷고 뛰기 위하여 끊임없이 연습과 인내와 연단이 필요하듯 그 연단의 과정을 통과해야합니다.
3.신자는 장선한 신앙인이 됨으로 나중믿는 신자들의 교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성 장해야 합니다. 초신자는 먼저믿어 신앙의 연륜이 오랜 성도들을 보고 본받고 배우고 성장합니다. 띠라서 일찍 믿었다고 할지라도 아직 장성하지 못하여 어린아이와 같다면 결코 초신 자들을 이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초신자들을 실족시킬 뿐입니다.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그들이었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그 폐단이 있기에 책망하 고 있는 것입니다. 장성했어야 될 신자가 아직도 신앙의 초보밖에 머물러 있지 않다 면 그것은 교회적으로도 누가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신앙이 미지근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토하여 내침을 받을 것이 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계3:16절에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그러므로 아직도 은혜받을 만한 때요 기회입니다. 어서 속히 장선한 신앙의 대열에 힘차게 들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성도들의 신앙을 성숙시키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빈 심령에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심령의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 의 자랑의 모든 죄악들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고 거룩한 성령님이 나의 삶의 주인 으로 모셔서 계속적으로 성장하시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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