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들 (딤후4:-8)
본문
본문7절은 바울의 이력서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가 살아온 경력을 간단 명료하게 세 문구로 로 요약해 놓은 이력서와 같은 것 입니다.그것은.“선한 싸운을 싸웠다; ”달려갈 길을 마첬다 ; 믿음을 지켰다;는 말로 요약되는 삶이었 습니다 과연 우리는어떤 이력서를 쓸수 있을까요 이 다음에 하나님께 갈때에는 이력서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우리 모두는 바울과 같은 이력서를 하나님드릴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선한 싸움’이 무었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그는 인생을 하나의 싸움으로 간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처에서 이기라는등 싸움판에서의 용어를 많이 사용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싸움이란 그의 인생 철학이었 습니다 이것은 무었을 의미하는 것이겠 습니까 이것은 초긴장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실재 싸우는 사람과 같이 항상 긴장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또는 생명을 건 노력을 뜻하는 것입니다.온 생명을 걸고 다 바처 가면서 수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또는 싸움이란 피곤하고 곤욕스러운 것입니다.고생스런 삶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그의 인생을 악전고투를 격으며 살다간 우리네 하고 다를바 없는 사람 입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선한 싸움 이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죽을때까지 해야하는 일이 있다면 우리의 생업이라고 하는 현장에서 싸움판을 벌려야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아이들을 키우며 또는 직업인으로 가정살림 하느라 직장생활 하느라 정신없이 바뿌게 살아 갑니다.이렇게 고닯프게 산다고해서 선한 싸움을 싸웟다고 할수 있겠 습니까
한참 인기를 모앗던 김우중 씨의 책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의 내용을 간단히 인용합니다 김우중씨의 어머니는 과부로서 5남매를 최고 학부까지 공부시킨 아주 헌신적인 여인이었 습니다 하루 4차례씩 기도하는 아주 독실한 믿음을 가진 어머니였다고 합니다.그러나 김우중씨는 그 어머니의 믿음을 본받지 못한것 같습니다 김우중씨는 자본금 500만원을 가지고 직원 다섯으로 시작한 대우실업을 오늘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혼신의 힘을 다 쏫앗다고 합니다.그에게는 항상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고 합니다 너무 시간에 쫒기다 보니까 아침 출근차 안에서 물수건으로 세수를 대신하고 면도하고 간단히 식사하는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그는 사업때문에 수없이 많은 비행기 여행을 했는데 그 회수는 기네스 북에 올라갈 정도라고 하니 가히 짐작 할만 합니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위해 가급적이면 밤 비행기를 타고 기내에서 수면ㅇ르 취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좀 많은 일을 하기위해서 회사 간부회의도 근무시간이 아닌 새벽이나 밤에 했다고 합니다그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기업을 놓고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대우가 이만큼 성장한 원동력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데 있다고 합니다 김우중씨의생은 바울 못지않게 초긴장 상태에서 혼신을 다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 앞에 이력서를 내어 놓을 때 ”주여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 습니다’ 라고 말할수 있을까요.그의 삶이 하나의 싸움 이었다고는 말할수 있을는지 모르나 선한 싸움이라고는 못할 것입니다 저는 김우중 씨가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생각 합니다.기업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것은 변함이 없어야 하겟지만 그렇게 사는 의미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진정한 의미가 부여된 삶 즉 싸움을 싸우되 반드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선하다는것은 무슨 뜻일까요 근본적으로 죄를 범한 인간은 그 누구도 선한자가 없 습니다.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십니다 따라서 선한 일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일을 말합니다.하나님을 위하는일.하나님을 영광을 나타내는 일.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일 을 말 합니다 우리가 하는일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는 것이 확신 한다면 그것은 선한 일이 될수있는 것입니다.나자신이나.돈벌이나 .자녀가 키우는것이 우상이 되지 않는것이 선한 것입니다. 젖소를 열심이 키우는 어느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얼마나 젖소를 정성을 들이는지 동네잔치에도 통 가지를 않고 부모님 생신이나 친척집 혼사에도 꼼작을 못합니다.젖소를 왜 키우느냐고 물어본다면 분명 내가 살기위해 젖소가 있다고 할것입니다.그러나 내가 볼때에는 젖소가 사람을 위해 잇는것이 아니라 사람이 젖소를 위해 있는것서만 같습니다. 남아프리카 말라위공화국의 블랑뛰르에 가면 리빙스턴 기념관이 있다. 그 기념관에는 색 유리창이 있는데 거기엔 리빙스턴이 남긴 말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편지에서 따온 것으로 비교적 생애 초기에 쓴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관계된 것이 아닌한, 무엇을 소유하든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소유하겠다는 기대도 않으리라” 역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을 소유하든, 또한 소유하겠다는 욕구도 해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노예가 되는것을 싷어 하십니다.그래서 이집트에서 노예로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하여 해방 시키고야 말앗던 것입니다.하나님은 우상을 싫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상에 대해서는 질투 하실뿐 아니라 성경에보면 모든 죄에 대해서는 오래 참으셨는데 유독 우상을 숭배하는 죄에 대해서만 참지 못하시고 심판 하셨 습니다 자기의 일을 하나님 보다 앞세우면 그것은 우상이되고 맙니다.
선한 싸움은 하나님을 앞세우고 싸우는 싸움을 말합니다. 그는 달려갈길을 마첬다고 할때에 달려갈길은 마음내키는대로 아무데나 달려가는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한된 길이요 분명하게 정해진 길입니다.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정해놓은 길입니다,하나님니 정해주신 코스대로,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는 것을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상관이 없 습니다.그러나 한가지,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가야 한다는 사실만은 꼭 명심해야 합니다.하나님게서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바치라고 하는 것은 바처야 합니다,헌신하라 할때는 헌신 해야 합니다.본받지 말야야 할것은 본받지 과감히 떨처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이 정해주신 길을 따라야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한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은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상 생활이 하나님 나라와 구체적인 영관ㅅㅇ을 가지고 있지 안다면 그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이 될수가 없 습니다.하나님의 자녀는 열심이 사업을하고 공부도하고 돈벌이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업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보다 돈버는데 가 있다면 그것은 벌써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요 선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옥한음 목사님의 말씀중에 삽십대 초반에 박사학위를 받은 유능한 교수가 있답니다.지신의 일에 몰두 하느라고 일년에 교회는 열번도 못나온 답니다.보다못해 안타까와.편지를 썻답니다 많은 사람이 변화를 받는데 형제님ㅇ르 보면 서글퍼 지고 담임 목사로서 책임감을 느낌니다 그랬더니 화가 잔득나서.답장이 왔습니다.나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충실하고 잇습니다.
그런 사람도 나름대로 소명감을 가지고 산다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주일날 교회도 나가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믿음을 지킨다고 말할수 있으며 소명자로서 산다고 하겟 습니까 세상에서 아무리 훈륭해 보이고 큰 업적을 쌓앗더래도 믿음을 지키지 않했다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 습니다,그러나 하루 하루 고달푸고 힘들게 사는데도 그만한 결과가 주어지지 않드래도 믿음을 지키며 살았다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하늘나라에서 보상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사는데도 마음속에 간직해둔 꿈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선하신 숨은 뜻이 담겨 잇 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바울이 선한 싸움을 할수있었던 비결이 무었 일까요 죽음을 알고 그의 영광된 죽음을 바라보며 희망햇기 때문 입니다.그런대 이런 가장 상식적인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첮째 사람은 죽습니다.언젠가는 죽는다는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그것은.올때는 순서가 있엇으나 갈때는 순서가 없 슴니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어느 대학교수가 있었는데.죽을 날이 까까온것을 짐작 했으리라 해서 이제 하던 일도 정리하고 유언도 해두어야 할것이 아니냐고 조심 스럽게 말을 꺼냈더니 버럭 화를 내며 “죽긴 내가 왜죽어”라고 하더랍ㄴ니다 죽을 때까지 내가 왜 죽어 하다가 죽었 습니다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엇 습니다.소위 일생을 두고 배웠다는 사람이 무었을 배웠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자기의 죽음을 앞에놓고 대단한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한참 인기를 모앗던 김우중 씨의 책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의 내용을 간단히 인용합니다 김우중씨의 어머니는 과부로서 5남매를 최고 학부까지 공부시킨 아주 헌신적인 여인이었 습니다 하루 4차례씩 기도하는 아주 독실한 믿음을 가진 어머니였다고 합니다.그러나 김우중씨는 그 어머니의 믿음을 본받지 못한것 같습니다 김우중씨는 자본금 500만원을 가지고 직원 다섯으로 시작한 대우실업을 오늘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혼신의 힘을 다 쏫앗다고 합니다.그에게는 항상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고 합니다 너무 시간에 쫒기다 보니까 아침 출근차 안에서 물수건으로 세수를 대신하고 면도하고 간단히 식사하는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그는 사업때문에 수없이 많은 비행기 여행을 했는데 그 회수는 기네스 북에 올라갈 정도라고 하니 가히 짐작 할만 합니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위해 가급적이면 밤 비행기를 타고 기내에서 수면ㅇ르 취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좀 많은 일을 하기위해서 회사 간부회의도 근무시간이 아닌 새벽이나 밤에 했다고 합니다그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기업을 놓고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대우가 이만큼 성장한 원동력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데 있다고 합니다 김우중씨의생은 바울 못지않게 초긴장 상태에서 혼신을 다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 앞에 이력서를 내어 놓을 때 ”주여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 습니다’ 라고 말할수 있을까요.그의 삶이 하나의 싸움 이었다고는 말할수 있을는지 모르나 선한 싸움이라고는 못할 것입니다 저는 김우중 씨가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생각 합니다.기업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것은 변함이 없어야 하겟지만 그렇게 사는 의미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진정한 의미가 부여된 삶 즉 싸움을 싸우되 반드시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선하다는것은 무슨 뜻일까요 근본적으로 죄를 범한 인간은 그 누구도 선한자가 없 습니다.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십니다 따라서 선한 일은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일을 말합니다.하나님을 위하는일.하나님을 영광을 나타내는 일.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일 을 말 합니다 우리가 하는일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는 것이 확신 한다면 그것은 선한 일이 될수있는 것입니다.나자신이나.돈벌이나 .자녀가 키우는것이 우상이 되지 않는것이 선한 것입니다. 젖소를 열심이 키우는 어느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얼마나 젖소를 정성을 들이는지 동네잔치에도 통 가지를 않고 부모님 생신이나 친척집 혼사에도 꼼작을 못합니다.젖소를 왜 키우느냐고 물어본다면 분명 내가 살기위해 젖소가 있다고 할것입니다.그러나 내가 볼때에는 젖소가 사람을 위해 잇는것이 아니라 사람이 젖소를 위해 있는것서만 같습니다. 남아프리카 말라위공화국의 블랑뛰르에 가면 리빙스턴 기념관이 있다. 그 기념관에는 색 유리창이 있는데 거기엔 리빙스턴이 남긴 말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편지에서 따온 것으로 비교적 생애 초기에 쓴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관계된 것이 아닌한, 무엇을 소유하든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소유하겠다는 기대도 않으리라” 역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을 소유하든, 또한 소유하겠다는 욕구도 해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노예가 되는것을 싷어 하십니다.그래서 이집트에서 노예로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하여 해방 시키고야 말앗던 것입니다.하나님은 우상을 싫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상에 대해서는 질투 하실뿐 아니라 성경에보면 모든 죄에 대해서는 오래 참으셨는데 유독 우상을 숭배하는 죄에 대해서만 참지 못하시고 심판 하셨 습니다 자기의 일을 하나님 보다 앞세우면 그것은 우상이되고 맙니다.
선한 싸움은 하나님을 앞세우고 싸우는 싸움을 말합니다. 그는 달려갈길을 마첬다고 할때에 달려갈길은 마음내키는대로 아무데나 달려가는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한된 길이요 분명하게 정해진 길입니다.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정해놓은 길입니다,하나님니 정해주신 코스대로,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해서 뛰는 것을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상관이 없 습니다.그러나 한가지,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가야 한다는 사실만은 꼭 명심해야 합니다.하나님게서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바치라고 하는 것은 바처야 합니다,헌신하라 할때는 헌신 해야 합니다.본받지 말야야 할것은 본받지 과감히 떨처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이 정해주신 길을 따라야만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한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은 믿음을 지키며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상 생활이 하나님 나라와 구체적인 영관ㅅㅇ을 가지고 있지 안다면 그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이 될수가 없 습니다.하나님의 자녀는 열심이 사업을하고 공부도하고 돈벌이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업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보다 돈버는데 가 있다면 그것은 벌써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요 선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옥한음 목사님의 말씀중에 삽십대 초반에 박사학위를 받은 유능한 교수가 있답니다.지신의 일에 몰두 하느라고 일년에 교회는 열번도 못나온 답니다.보다못해 안타까와.편지를 썻답니다 많은 사람이 변화를 받는데 형제님ㅇ르 보면 서글퍼 지고 담임 목사로서 책임감을 느낌니다 그랬더니 화가 잔득나서.답장이 왔습니다.나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충실하고 잇습니다.
그런 사람도 나름대로 소명감을 가지고 산다고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주일날 교회도 나가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믿음을 지킨다고 말할수 있으며 소명자로서 산다고 하겟 습니까 세상에서 아무리 훈륭해 보이고 큰 업적을 쌓앗더래도 믿음을 지키지 않했다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 습니다,그러나 하루 하루 고달푸고 힘들게 사는데도 그만한 결과가 주어지지 않드래도 믿음을 지키며 살았다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하늘나라에서 보상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사는데도 마음속에 간직해둔 꿈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선하신 숨은 뜻이 담겨 잇 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바울이 선한 싸움을 할수있었던 비결이 무었 일까요 죽음을 알고 그의 영광된 죽음을 바라보며 희망햇기 때문 입니다.그런대 이런 가장 상식적인 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첮째 사람은 죽습니다.언젠가는 죽는다는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언제 죽을지도 모릅니다.그것은.올때는 순서가 있엇으나 갈때는 순서가 없 슴니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어느 대학교수가 있었는데.죽을 날이 까까온것을 짐작 했으리라 해서 이제 하던 일도 정리하고 유언도 해두어야 할것이 아니냐고 조심 스럽게 말을 꺼냈더니 버럭 화를 내며 “죽긴 내가 왜죽어”라고 하더랍ㄴ니다 죽을 때까지 내가 왜 죽어 하다가 죽었 습니다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엇 습니다.소위 일생을 두고 배웠다는 사람이 무었을 배웠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자기의 죽음을 앞에놓고 대단한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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