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를 불일듯 하게 하라 (딤후1:1-9)
본문
우리 나라 옛말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의 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어떤 마음이 들어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의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을 오늘 성경 본문이 디모데의 경 우를 예로 들어서 우리에게 밝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5절 말씀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라고 하며 또 1장 14절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디모데라는 신앙인 속에는 이렇게 "믿음이 있다. 하나님의 은사가 있다. 성령이 있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성령도 받았고 그리고 성령에 반드시 따르는 은사도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 성령, 은사 이 모든 것은 사실 다 똑같 은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을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이 믿음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한가지 이상씩 의 성령의 은사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것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이 바로 믿는 사람이요, 성령 받은 사람이요, 영생 얻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그 속에 없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구원받 지 못한 사람이요, 성령이 없는 보통 자연인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이 과연 내 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지금 거하 고 있는가 이것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식어져서 조그마한 불 씨만한 상태로 되어 있는가 아니면 크게 불일 듯 타오르고 있는가 하는 이 문제를 우리가 검토해 보자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젊은 청년 목회자입니다. 바울의 직제자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디모데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그의 속에 있는 그러한 믿음과 은사 가 그만 식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1장 6절에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 디모데 속에 있는 그 은사가 식어져 있 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그 당시 상태를 좀더 더듬어 보십니다. 7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 니" 왜 이 말을 했습니까 이미 무언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디모데는 또한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까 그 답이 8절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자기의 스승이 하나님의 능력 충만한 바울이었는데 그런 자기의 스승이 그만 감옥에 갇혔으니 어찌 보면 제자인 디모데로서는 사람들로부터 부 끄러움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서 그는 목회자로서 복음 전 하는데 더욱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끄러움과 고난 등을 인하여서 디모데는 두려워하고 있었고 상당히 위축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진단하자면 뜨겁던 믿음의 열기가 식어 져 있었습니다. 목회자인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던 디모데에게 바울은 이 편지를 써서 디모데를 다시 힘이 나게 하려고 합니다. 목적은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 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의 은사가 식어져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이 식어져 있었습니다. 꺼져가는 불 처럼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한 부끄러워하 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의 속에 내재되어 있는 믿음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의 은사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두려움이 없어지고 부끄러움도 없어지 고 어떠한 고난도 넉넉하게 이겨 버릴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지금 이것을 위해서 3절에 "쉬지 않고 디모데를 생각하며 밤낮으로 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또한 지금 이 편지를 디모데에 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고 할 지라도 엔진에 불이 타오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 이 있습니까 엔진에 불이 붙어 있으면 언덕이라도 짐을 싣고서도 거뜬히 올라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 속에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성령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중한 영적인 선물들이 내 속에서 식어져 있고 다 꺼져 가고 있고 소멸되어 가고 있는 상태라 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문제는 이 은사가 내 속에서 지금 불붙어 있는가 아니면 꺼져 가고 있는가 하나님 주신 성령이, 믿음이, 은사가 내 속에서 불같이 타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식어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도 신앙 생활도 마음속에서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과 열심히 있어야 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에 도무지 기쁨이 없고 의욕이 없고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신앙생활이 되고 나중에는 그만 두는 지경에까지 이르 게 됩니다. 불이 아예 꺼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 불이 켜져 있는 것에 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바로 구약의 성막 성전에서 불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들입니다. 성전은 곧 성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성소 안에는 등대, 촛대 또는 등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소 안을 밝 히는 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성소 안에는 분향단이라는 것 이 있습니다. 거기에 불을 피워서 항상 향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하도록 하나님 께서 지시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성소 마당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불을 피워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이 세 가지는 성소에서 불과 관계되는 것들입니다. 늘 성전 마당 번제단에서는 때마다 번제의 불이 피워 드려지고 그리고 성소 안에서는 등대에 불이 켜져 있고 또한 분향단에서는 역시 늘 불이 피워져서 향 기가 위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성소, 성막, 성전의 정상 상태입니다. 출애굽기 30장 7절에 보면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지며"라고 하면서 아침에 불을 피운다고 했습니다. 그 리고 출애굽기 30장 8절에 보면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라고 하면서 등불을 저녁에 피운다고 했습니다. 늘 이렇게 성전에는 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종종 성소의 불 이 꺼졌던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사사 시대에 엘리 제사장의 암울한 시대를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삼상3:3)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소의 등불이 거의 꺼져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유다 아하스왕때에 등불이 완전히 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히스기 야왕이 다시 신앙 부흥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히스기야왕때에 불이 꺼진 이스라엘의 성전의 모습은 등불이 꺼지고, 분향단의 불이 꺼지고, 번제단의 불이 꺼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9장 6절.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 리지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고 내어 버리사 두려 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 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느니라" 그러나 이런 불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불과 그렇지 않은 불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성전에 사용되는 불은 먼저 제단에 번제물을 드릴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서 그 불이 붙습니다. 그리고 그 불을 불 화로에 옮겨다가 성소 안의 분향 단에 불을 붙입니다. 또한 그 불로 그 성소 안의 등불을 켭니다.
레위기 16장 12절 이 하에 그 말씀이 잘 나와 있습니다.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막에 들 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그러나 이를 어기고 하나님이 붙여 주시지 않은 다른 불의 모습이 성경 민수 기 3장 4절에 나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을 여호와 앞 에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고 무자하였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 아비 아 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다른 불이 성소에 켜질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고린도전서 7장 9절에도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고, 로마서 1장 27절에서도 "이와 같이 남 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또 아가서 8장 6절 "…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 니", 야고보서 3장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 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온 성령의 불 이 아니라 지옥 불에서 온 불이라는 것입니다. 쾌락의 불은 가정 파탄까지도 이르게 합니다. 탐욕의 불은 사람까지도 죽입니다. 나라를 부패하게 만듭니다. 명예욕의 불은 거짓으로 남까지도 죽입니다. 사 치의 불은 국가경제까지도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불에 대한 구절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 말씀은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하면서 성령의 불을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도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 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불을 말씀합니다. 요엘서 2장 18절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하나님 마음속에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뜨거운 불, 성령의 불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이 예수 믿는 자들의 성전, 마음속에는 있는데 꺼져가는 불이 아니라 늘 타오르는 불이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다른 불은 붙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 의 불 은사의 불은 꺼지지 않고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불이 간검되어야 하고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불일 듯 타올라 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8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미련한 자들의 등불은 기 름이 없어서 꺼져 갑니다. 이 등불이 늘 타올라야 하는데 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2장 35절에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에 한 구절을 또 검토해 보십시다. 여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으면 우리 가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 "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 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등불을 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등불을 많이 켰다고 합니다. 계속 봅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남들은 지금 말씀을 듣느라고 등불을 많이 켠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영적 등불이 켜져 서 사모하고 있는데 한 청년은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에게는 깜깜합니다. 계속 졸다가 그 청년은 3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이렇게 바울의 기도로 살려낸 이야기입니다. 유두고라는 뜻은 복 된 자라는 뜻입니다. 유두고는 복된 자입니다. 그에게는 믿음, 은사, 성령이 있었 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믿음과 은사가 가물가물해서 자기의 졸음을 이길 정도의 강한 불로 타오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 들은 심령에 불을 켜고 말씀을 받고 있는데 이 청년은 깜깜한 잠이 든 것입니다. 그에게는 불씨가 있었지만 그 불이 타오르지 못하고 깜깜한 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바로 이 뜻입니다. 사순절 기간을 맞이해서 전국의 교회들은 대부분 잠을 이기고 깨어서 일어나 특별 새벽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식어져 가는 믿음의 불길을 뜨겁게 타오르 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내 가정과 교회를 다시 힘있게 하고 어두워진 이 민족을 빛으로 비추기 위해서 모두들 열심 내고 있습니다. 모두 다 깜깜한 새벽에 심령의 불을 밝히 밝히고 있는데 혹 우리 중에 유두고 와 같이 아직도 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깊은 밤중인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 기간에 모두들 우리 속에 있는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타오르게 하 여야 합니다. 누구나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통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좋은 은사를 내 속에서 식혀 두어도 되겠습니까 달란트를 받고서 그냥 땅속에 마음 깊은 곳에 묻어만 두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얼마나 슬픈 일입니 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식어져 있는 커져 가는 디모데의 속에 있는 은사를 불일듯하기 위해서 바울은 밤낮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에게 안수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편지에 말씀을 기록해서 디모데에게 읽어보고 생각을 하라고 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 로 성령의 불은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속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귀한 은사의 씨, 분명히 하늘에서 주신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마음속에 묻 어 두고 그냥 지나간다면 얼마나 아깝습니까 이것에 불이 붙으면 힘이 나고 열 심이 나서 빛이 발하여 세상에 나가서 빛이 될 것이요,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빛을 발하며 썩어진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신자답게 살 수 있는 데, 불을 받기는 받았으나 꺼져 가고 식어져 가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사순절 기간에 말씀에 열심 내시고 기도에 열심 내셔서 어떻게 해서든지 내 영혼에 불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 기간임을 기억하셔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열심히 기도와 말씀으로 여러분 심령 속에 있는 은사와 믿음을 불붙여 세워서 환하게 타올라 고난도 이기고 부끄러움도 이기고 열심히 주님을 전하는 참된 크 리스챤의 삶을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의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을 오늘 성경 본문이 디모데의 경 우를 예로 들어서 우리에게 밝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5절 말씀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라고 하며 또 1장 14절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디모데라는 신앙인 속에는 이렇게 "믿음이 있다. 하나님의 은사가 있다. 성령이 있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성령도 받았고 그리고 성령에 반드시 따르는 은사도 각각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 성령, 은사 이 모든 것은 사실 다 똑같 은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믿을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이 믿음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한가지 이상씩 의 성령의 은사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것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이 바로 믿는 사람이요, 성령 받은 사람이요, 영생 얻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그 속에 없는 사람은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구원받 지 못한 사람이요, 성령이 없는 보통 자연인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이 과연 내 속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지금 거하 고 있는가 이것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식어져서 조그마한 불 씨만한 상태로 되어 있는가 아니면 크게 불일 듯 타오르고 있는가 하는 이 문제를 우리가 검토해 보자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의 젊은 청년 목회자입니다. 바울의 직제자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디모데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그의 속에 있는 그러한 믿음과 은사 가 그만 식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1장 6절에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 디모데 속에 있는 그 은사가 식어져 있 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의 그 당시 상태를 좀더 더듬어 보십니다. 7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 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 니" 왜 이 말을 했습니까 이미 무언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디모데는 또한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까 그 답이 8절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자기의 스승이 하나님의 능력 충만한 바울이었는데 그런 자기의 스승이 그만 감옥에 갇혔으니 어찌 보면 제자인 디모데로서는 사람들로부터 부 끄러움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서 그는 목회자로서 복음 전 하는데 더욱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끄러움과 고난 등을 인하여서 디모데는 두려워하고 있었고 상당히 위축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진단하자면 뜨겁던 믿음의 열기가 식어 져 있었습니다. 목회자인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던 디모데에게 바울은 이 편지를 써서 디모데를 다시 힘이 나게 하려고 합니다. 목적은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 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의 은사가 식어져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이 식어져 있었습니다. 꺼져가는 불 처럼 희미해져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한 부끄러워하 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의 속에 내재되어 있는 믿음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의 은사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두려움이 없어지고 부끄러움도 없어지 고 어떠한 고난도 넉넉하게 이겨 버릴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지금 이것을 위해서 3절에 "쉬지 않고 디모데를 생각하며 밤낮으로 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또한 지금 이 편지를 디모데에 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고 할 지라도 엔진에 불이 타오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 이 있습니까 엔진에 불이 붙어 있으면 언덕이라도 짐을 싣고서도 거뜬히 올라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 속에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성령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중한 영적인 선물들이 내 속에서 식어져 있고 다 꺼져 가고 있고 소멸되어 가고 있는 상태라 면 그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문제는 이 은사가 내 속에서 지금 불붙어 있는가 아니면 꺼져 가고 있는가 하나님 주신 성령이, 믿음이, 은사가 내 속에서 불같이 타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식어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도 신앙 생활도 마음속에서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과 열심히 있어야 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에 도무지 기쁨이 없고 의욕이 없고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신앙생활이 되고 나중에는 그만 두는 지경에까지 이르 게 됩니다. 불이 아예 꺼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 불이 켜져 있는 것에 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바로 구약의 성막 성전에서 불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들입니다. 성전은 곧 성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성소 안에는 등대, 촛대 또는 등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소 안을 밝 히는 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성소 안에는 분향단이라는 것 이 있습니다. 거기에 불을 피워서 항상 향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하도록 하나님 께서 지시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성소 마당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번제단에서 불을 피워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이 세 가지는 성소에서 불과 관계되는 것들입니다. 늘 성전 마당 번제단에서는 때마다 번제의 불이 피워 드려지고 그리고 성소 안에서는 등대에 불이 켜져 있고 또한 분향단에서는 역시 늘 불이 피워져서 향 기가 위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성소, 성막, 성전의 정상 상태입니다. 출애굽기 30장 7절에 보면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지며"라고 하면서 아침에 불을 피운다고 했습니다. 그 리고 출애굽기 30장 8절에 보면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라고 하면서 등불을 저녁에 피운다고 했습니다. 늘 이렇게 성전에는 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종종 성소의 불 이 꺼졌던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사사 시대에 엘리 제사장의 암울한 시대를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삼상3:3)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소의 등불이 거의 꺼져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유다 아하스왕때에 등불이 완전히 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히스기 야왕이 다시 신앙 부흥 운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히스기야왕때에 불이 꺼진 이스라엘의 성전의 모습은 등불이 꺼지고, 분향단의 불이 꺼지고, 번제단의 불이 꺼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9장 6절.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 리지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고 내어 버리사 두려 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 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느니라" 그러나 이런 불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불과 그렇지 않은 불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성전에 사용되는 불은 먼저 제단에 번제물을 드릴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서 그 불이 붙습니다. 그리고 그 불을 불 화로에 옮겨다가 성소 안의 분향 단에 불을 붙입니다. 또한 그 불로 그 성소 안의 등불을 켭니다.
레위기 16장 12절 이 하에 그 말씀이 잘 나와 있습니다.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두 손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 가지고 장막에 들 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그러나 이를 어기고 하나님이 붙여 주시지 않은 다른 불의 모습이 성경 민수 기 3장 4절에 나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시내 광야에서 다른 불을 여호와 앞 에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고 무자하였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 아비 아 론 앞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다른 불이 성소에 켜질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고린도전서 7장 9절에도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고, 로마서 1장 27절에서도 "이와 같이 남 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또 아가서 8장 6절 "…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 니", 야고보서 3장 6절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 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온 성령의 불 이 아니라 지옥 불에서 온 불이라는 것입니다. 쾌락의 불은 가정 파탄까지도 이르게 합니다. 탐욕의 불은 사람까지도 죽입니다. 나라를 부패하게 만듭니다. 명예욕의 불은 거짓으로 남까지도 죽입니다. 사 치의 불은 국가경제까지도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불에 대한 구절들이 잘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 말씀은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하면서 성령의 불을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도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 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불을 말씀합니다. 요엘서 2장 18절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하나님 마음속에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뜨거운 불, 성령의 불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이 예수 믿는 자들의 성전, 마음속에는 있는데 꺼져가는 불이 아니라 늘 타오르는 불이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다른 불은 붙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 의 불 은사의 불은 꺼지지 않고 타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불이 간검되어야 하고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불일 듯 타올라 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8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미련한 자들의 등불은 기 름이 없어서 꺼져 갑니다. 이 등불이 늘 타올라야 하는데 꺼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2장 35절에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에 한 구절을 또 검토해 보십시다. 여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으면 우리 가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 "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 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등불을 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등불을 많이 켰다고 합니다. 계속 봅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남들은 지금 말씀을 듣느라고 등불을 많이 켠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영적 등불이 켜져 서 사모하고 있는데 한 청년은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그에게는 깜깜합니다. 계속 졸다가 그 청년은 3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이렇게 바울의 기도로 살려낸 이야기입니다. 유두고라는 뜻은 복 된 자라는 뜻입니다. 유두고는 복된 자입니다. 그에게는 믿음, 은사, 성령이 있었 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믿음과 은사가 가물가물해서 자기의 졸음을 이길 정도의 강한 불로 타오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 들은 심령에 불을 켜고 말씀을 받고 있는데 이 청년은 깜깜한 잠이 든 것입니다. 그에게는 불씨가 있었지만 그 불이 타오르지 못하고 깜깜한 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바로 이 뜻입니다. 사순절 기간을 맞이해서 전국의 교회들은 대부분 잠을 이기고 깨어서 일어나 특별 새벽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식어져 가는 믿음의 불길을 뜨겁게 타오르 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내 가정과 교회를 다시 힘있게 하고 어두워진 이 민족을 빛으로 비추기 위해서 모두들 열심 내고 있습니다. 모두 다 깜깜한 새벽에 심령의 불을 밝히 밝히고 있는데 혹 우리 중에 유두고 와 같이 아직도 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도 깊은 밤중인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 기간에 모두들 우리 속에 있는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타오르게 하 여야 합니다. 누구나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통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 좋은 은사를 내 속에서 식혀 두어도 되겠습니까 달란트를 받고서 그냥 땅속에 마음 깊은 곳에 묻어만 두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얼마나 아쉬운 일입니까 얼마나 슬픈 일입니 까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식어져 있는 커져 가는 디모데의 속에 있는 은사를 불일듯하기 위해서 바울은 밤낮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에게 안수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편지에 말씀을 기록해서 디모데에게 읽어보고 생각을 하라고 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 로 성령의 불은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속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귀한 은사의 씨, 분명히 하늘에서 주신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마음속에 묻 어 두고 그냥 지나간다면 얼마나 아깝습니까 이것에 불이 붙으면 힘이 나고 열 심이 나서 빛이 발하여 세상에 나가서 빛이 될 것이요,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빛을 발하며 썩어진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신자답게 살 수 있는 데, 불을 받기는 받았으나 꺼져 가고 식어져 가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사순절 기간에 말씀에 열심 내시고 기도에 열심 내셔서 어떻게 해서든지 내 영혼에 불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 기간임을 기억하셔서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열심히 기도와 말씀으로 여러분 심령 속에 있는 은사와 믿음을 불붙여 세워서 환하게 타올라 고난도 이기고 부끄러움도 이기고 열심히 주님을 전하는 참된 크 리스챤의 삶을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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