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딤후1:7)
본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지독스레 자리잡고 있는 것중에 하나가 “두려움”의 감정입니다. 이것은 쉽사리 삶을 사로잡고 무력감에 빠져들게 하는 통로입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사람들은 두려움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이로 인하여 온갖 삶은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두려움의 파괴적인 힘과 독소를 분명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더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고 도전하지 못하게 묶어버리는 두려움의 족쇄를 지나쳐서는 않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제자인 디모데가 두려움에 사로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일을 향한 도전과 온갖 묶인 것들을 풀어주는 해방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신뢰를 막아세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한마디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과 바겁함을 주시지 않는다”고 충고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야훼 하나님과의 단단한 신뢰관계”를 기억하는 한 두려움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숱한 유형의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두려움을 비키면 또다른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이것에 직면하여 사람들은 비칠거리며 어떠한 시작도 할 수 없노라고 말합니다. 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결국 마땅히 꾸려내야할 일도 내어던지고 숨어버립니다. 두려움은 삶을 폐쇄적이게 합니다. 비겁한 모습으로 멈칫거리고 언제나 새로은 것에 대하여 주저하는 일이 계속 됩니다. 이러한 경우에 결정적으로 그 폐쇄적인 두려움의 공간에서 끌어내기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닙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와 발목을 잡아매고 어떠한 용기의 실마리도 남겨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원인은 오히려 근원적인데 있습니다. 신뢰의 관계가 깨어지거나 무너졌을 때 두려움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두려움은 “관계 단절”의 다른 이름입니다. 야훼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이 인간의 마음 속에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내가 두려워 숨었습니다(창3:10).”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의 특징은 “숨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적인 포기상태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며 절망적인 감정을 유발하고, 여기에 기초하여 자기 연민 속에 빠져들기 때문에 무력감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비겁한 자기연민”이며, 자신의 성벽에 스스로를 숨기는 “고의적인 폐쇄성”입니다. 야훼 하나님과의 정의로운 연결성을 잃지 않는한 비겁한 두려움에 놓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해방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힘과 사랑과 절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두려움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물리적인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실을 사실대로 바라보게하고, 그것에 직면해서 지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어두운 현실이나 뒤틀려 있는 것들을 깨쳐나가며 적절히 대처해나가는 힘”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빌립 4:12)이를 깨쳐나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야훼 하나님과의 “정의로은 신뢰관계”에 촛점을 두고 움직이는 것에,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 속에 “진정한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두려움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야훼 하나님의 “사랑”이 주어졌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어 냅니다(고전13장).” 외적인 조건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단련된 사랑”은 어떠한 두려움도 넘어서게 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요한일서4:18).”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며, 공동체를 사랑한다는 것은 기꺼이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며 꺼리낌없이 서로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던지는 용기로 표현 됩니다. 여기에는 이기적인 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또한 “절제의 마음”이 주어져 있습니다. 절제의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제력을 잃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이는 “산만하지 않고 뚜렸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여 나가고, 쉽사리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는 자기 통제력”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제일먼저 자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어찌해야할 바를 몰라 허둥댑니다. 이러한 경우에 필요한 것은 절제의 마음이며, 이러한 자기 통제력입니다. 이것이 온갖 곤란함을 헤쳐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묶어두고 손상을 입히고 석고상이 되어가게 내버려두는 것이 문제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해방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안에 주신 것, 즉 “힘과 사랑과 절제력”을 우리의 공동체적 결단으로 재확인 해야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몫으로 주어진 것들을 역어갈 일이 남아있을 따름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야훼 하나님과의 단단한 신뢰관계”를 기억하는 한 두려움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숱한 유형의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두려움을 비키면 또다른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이것에 직면하여 사람들은 비칠거리며 어떠한 시작도 할 수 없노라고 말합니다. 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결국 마땅히 꾸려내야할 일도 내어던지고 숨어버립니다. 두려움은 삶을 폐쇄적이게 합니다. 비겁한 모습으로 멈칫거리고 언제나 새로은 것에 대하여 주저하는 일이 계속 됩니다. 이러한 경우에 결정적으로 그 폐쇄적인 두려움의 공간에서 끌어내기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닙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와 발목을 잡아매고 어떠한 용기의 실마리도 남겨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원인은 오히려 근원적인데 있습니다. 신뢰의 관계가 깨어지거나 무너졌을 때 두려움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두려움은 “관계 단절”의 다른 이름입니다. 야훼 하나님과의 관계단절이 인간의 마음 속에 두려움을 심었습니다. “내가 두려워 숨었습니다(창3:10).”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의 특징은 “숨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절망적인 포기상태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며 절망적인 감정을 유발하고, 여기에 기초하여 자기 연민 속에 빠져들기 때문에 무력감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비겁한 자기연민”이며, 자신의 성벽에 스스로를 숨기는 “고의적인 폐쇄성”입니다. 야훼 하나님과의 정의로운 연결성을 잃지 않는한 비겁한 두려움에 놓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해방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힘과 사랑과 절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두려움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하게 물리적인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실을 사실대로 바라보게하고, 그것에 직면해서 지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어두운 현실이나 뒤틀려 있는 것들을 깨쳐나가며 적절히 대처해나가는 힘”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빌립 4:12)이를 깨쳐나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야훼 하나님과의 “정의로은 신뢰관계”에 촛점을 두고 움직이는 것에,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 속에 “진정한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두려움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야훼 하나님의 “사랑”이 주어졌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어 냅니다(고전13장).” 외적인 조건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단련된 사랑”은 어떠한 두려움도 넘어서게 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요한일서4:18).”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며, 공동체를 사랑한다는 것은 기꺼이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며 꺼리낌없이 서로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던지는 용기로 표현 됩니다. 여기에는 이기적인 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또한 “절제의 마음”이 주어져 있습니다. 절제의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제력을 잃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이는 “산만하지 않고 뚜렸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여 나가고, 쉽사리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는 자기 통제력”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제일먼저 자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어찌해야할 바를 몰라 허둥댑니다. 이러한 경우에 필요한 것은 절제의 마음이며, 이러한 자기 통제력입니다. 이것이 온갖 곤란함을 헤쳐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묶어두고 손상을 입히고 석고상이 되어가게 내버려두는 것이 문제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해방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안에 주신 것, 즉 “힘과 사랑과 절제력”을 우리의 공동체적 결단으로 재확인 해야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몫으로 주어진 것들을 역어갈 일이 남아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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