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꾼 (딤후2:1-7)
본문
어떤 일의 성패는 그 일에 쓰임받는 일꾼들의 질적 자세 여하에 따라 결 정된다고 누군가가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좋을 일꾼이 있는 곳에는 성공이요 나쁜 일꾼이 있는 곳에는 성공이요 나쁜 일꾼만 모인곳에는 실 패가 따른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좋은 일꾼 되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꾼이란 어떤 일꾼인가에 관해서 성경말씀에 비추어 알아보 겠습니다. 먼저 본문을 기준하여
I) 좋은 군사같은 일꾼(3절) 좋은 군인은
(1) 상관의 명령에 죽고사는 "절대복종"의 사람입니다. 예로서 지난 걸프전쟁 때에 후세인의 군사는 상부명령에 절대복종 않고 모조리 손들고 투항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후세인은 전쟁에 패망하였습니다.그러나 다국적군은 부시대통령의 작전 명령에 "절대복종"함으로 전쟁에 승리하였습니다. 결국 후세인의 군사는 좋은 군사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신앙선배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두렵게 생각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절대순종하여 순교적 믿음으 로 선을 무장하여 악과 싸워 이기었습니다.
(2) 좋은군사는 항상 임전태 세를 갖춘 사람입니다. 유비무환, 출전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사람 입니다. 성도의 싸움 대상은
(1)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너희가 죄와싸 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아니하였도다" (히12:4)라고 하였습니다.
(2) 육체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2:11) 고 하였으며 바울은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서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법 아래로 나를사 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2-23) 라고 하였습니다.
(3) 원수마 귀와 싸워야 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 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 5:18-19) 고 하였습니다. 택한자라도 할 수만 있으면 넘어 뜨리려고 유혹하는 마귀를 멸하는 데 임전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유다서 1:9절에 천사장 미카엘이 모세의 시체를 두고서 마귀와 다투고 변론한 일이 있습니다. 주님이 오 신 이유중의 하나가 곧 마귀의 일을 멸하려는 것입니다. (요일 3:8)
(3)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좋은 군인입니다. 훈련 잘 받고 의무 에 출실한 군인은 절대로 군의 규율을 어기면서 함부로 외출, 휴가 등을 하지 않습니다. 탈영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제자양육훈련을 잘받은 성도는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가면서 자기 뜻대로 편한대 로 자기기분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예수믿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기 이치 대로 사사로이 풀지도 않습니다. 진실로 믿는자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고난 핍박 시험 환란이 걷잡을 수 업도록 몰아쳐도 참고 견디며 자기 뜻 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신본주의 곧 믿음본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히 11:6) 이러한 성도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입니다.
II) 운동선수와 같은 일꾼 (5절)
(1) 좋은 스포츠맨은 깨끗한 매너의 정신을 갖춘 사람입니다. 올림픽정신은 승패에 있지않고 참여하는 정신에 있다고 합니다. 히10:25절에 모 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 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한것은 모이기를 힘쓰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도 모이는 곳에는 주님이 함께 하시겠 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오순절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120문도들이 모여 서 기도하는 가운데서 성령은 역사하였습니다. 깨끗한 매너의 성도는 주 일성수, 수요예배, 금요철야, 구역예배, 새벽기도회 등 성도의 모임에빠 지지 않습니다.
(2) 좋은 운동 선수는 볍대로 경기하는 자입니다. 본문 5절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 할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지난 88 올림픽대회에 캐나다 벤존슨은 달리기에 분명코 1위를 하였으 나 법대로 경기하지 않았기에 그만 탈락되고 말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의 율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쉽게 "거짓"를 부린다거나자 기 꾀를 쓰면 안됩니다. 교회에는 교회법이, 교단에는 교단법이, 사회에는 사회통념과 규범이 국가에는 국법이 있으니 소위 악법도 법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촉되지 않는 법은 다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3) 좋은 선수는 공적신분 사명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국가 대표 선수는 개인신분이기전에 온국민을 대표하는 신분임을 명심하고 공적정신으 로 초신을 다하여 경기를 하여야 합니다. 이렇듯 성도는 개인의 자신이 기 전에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결코잊 어서는 안됩니다. 성도의 신분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깨닫고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전임을 믿고 거룩해야 하며 깨끗해야 하고 온전 해야 합니다. 고단수의 운동선수는 항시 여유있는 자세로 늠름합니다. 누가 때리면 맞아줄뿐 함부로 응수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성도는 악이도 전할때 함부로 악으로 갚지않고 왼뺨을 돌려댈 망정 선으로 여유있게 담 대하게 응해줍니다. 바울은 '이제 내가 사는것이 아니요 내속에 그리스도가 사시니 나의 몸은 내 몸이 아니요 그리스도에게 매인몸이라"고 하 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하였으며 내게는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성도는 나 개 인 아닌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공적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III) 수고하는 농부와 같은 일꾼 (6절)
(1) 훌륭한 농부는 부지런합니다. 새벽별을 보고 들녁에 나가서 저녁 늦게 별을 보면서 돌아오는 농부는 부지런한 농부입니다.(a) 이른 봄에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 부풀게되면 보리가 뿌리 내리지 못해 말라 죽으므로 끊임없이 보리 밟기를 하여 얼어부푼땅을 차곡차곡 다져 줍니다. 이렇듯 성도의 마음밭에 죄악의 봄바람으로 들뜬 것을 열심히 자기 자신을 밟아 짓눌려야 합니다. 자신이 말씀으로 잘 다져지도록 낮 아져서 겸손하다록 영적 보리밟기를 잘하여야 수확을 거둡니다. (b) 여 름에는 뜨거운 햇볕밑에서 또한 솟아오르는 지열속에서 몸이 익을 정도 로 확근거리면서도 김을 맵니다. 논에는 벼 잎사귀에 얼굴과 팔뚝이 다 찔려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이렇듯 성도는 어려운 난관중에서 상추투성 이가 되어 십자가 주님 생각하면서 참고, 인내로서 일을 해야 합니다. 눅21:19절에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마24:13절에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인내를 강조하 였습니다. (c) 추수하는 가을에는 익은곡식 거두는 기쁨에 피로한 줄 도 잊고 몸을 아끼지 않고 땀흘려 추수하기에 여념이 없으며 타작에몰 두합니다. 이렇듯 성도는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 수확에 여념이 없 어야 하며 알곡타작에 몰두하여야 합니다. 농부가 이른 봄부터 늦가을 까지 바쁘게 부지런한 결과 추운겨울이 와도 걱정없이 양식걱정 없이 평안히 엄동설한을 지낼 수 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복음의 씨를 울면서 눈물로 뿌리며 부지런히 가꾸고 물주며 김매준 결과 즐겁고 기 쁜 천국의 평안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은
(1) 자기 일에 억매이지 않는 좋 은 군사와 같은 일꾼
(2) 법대로 경기하는 운동선수와 같은 일꾼
(3) 수고를 아끼지 않고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부지런 한 농부와 같은 사람입니다. 좋은 요리사 성경
본문:왕하 4:38-41 우리의 삶이 여유가 생기면서 이제는 맛을 따라 3천리를 누비는 시대가 되었다. 장소가 아무리 후미져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음식점이라 면 많은 삶들로 북적거린다. 이 말을 맛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거 리가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을 영적 세계에 적용시켜 보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 여 성도들에게 전하는 사람을 요리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성도들을 손님에라 할 수 있다. 말씀의 요리를 잘하는 주의 종이 있는교회에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들게 되는 것은 어쩜 극히 당연한현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될 수 있을까 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엘리사가 수넴에서 길갈에 이른다. 길갈에는 선지학교가 있는 곳이다. 열왕기하 2:7에 보면 이 선지학교에는 50여명의 생도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에는 선지학교가 길갈과 여리고에 있었다. 엘리사는 이곳 두 학교를 오고가며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때 선 지학교는 식생활의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유는
(1) 학교장의 부 재에 의한 행정상의 문제에 의한 어려움이었을 것이며
(2) 비가 오지않 은 때라 무엇을 지배하지 못한 때문이다. 엘리사는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생도들을 위해 큰 솥을 걸고 죽을 끓여 음식을 먹이게 한다. 이제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 인가를 알아보자. 엘리사는 하나님의 모형이라 할 수 있고. 사환은 말씀을 요리해서 할 수 있고, 사환은 말씀을 요리해서 먹이는 사람(목사) 들이라 할 수 있고 생도들은 요리한 것을 먹는 사람(성도) 들이라 할수 있다. 요리사는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요리사가 요리를 잘해서 손님들에게 내놓으면 손님들은 맛있게 잘 먹 겠지만 잘못 요리해서 내놓으면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성도를 만드는 것은 요리사의 책임이다. 음식의 맛은 요리사에 따라 각 각 달라진다. = 요리를 잘 하는법 =
1. 요리를 잘 할려면 재료가 좋아야 한다. 좋은 재료는 좋은 음힉을 만든다. 또 음식에 따라서 재료는 달라진다. 성경을 해석하여 전하는데는 두가지 재료를 사용하면 더욱 좋은 음 식을 만들 수 있다. 원재료로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요 부재료로서 말씀증거를 돕는 다른것 예화나 간증등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수많은 재료들이 들어있고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부재료들이 산재해 있다. 설교란 이 수많은 재료들을 가지고 요리하는 것이다. 맛있는 요리를 할려면 좋은 재료를 가지고 해야하므 로 그만큼 말씀을 보고 듣고 배워서 알아야 한다. 엘리사의 사환은 생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수고는 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왜 이런 요리를 했을까 음식을 만드는 재료에 독이 든 재료 가 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독이 든 음식을 만들면 먹는자에게 유 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죽이게 한다. 재료라고 다 좋은 음식을 만드는 데만 쓰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요리사들은 명심해야 한다. 좋은 요 리를 할려면 재료에 대해 많으니 알아야 하고 좋은 재료를 적절한 곳에 써야 한다.
2. 요리를 잘 하려면 요리하는 기술이 좋아야 한다. 엘레사가 사환에게 명형할 때 "큰 솥을 걸고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끊 이라"한다. 요리는 생도들을 위한 요리여야 했다. 말씀을 요리해서 전 하는 사람들은 듣는 자들의 영혼의 양식이어야 한다. 사환은 무책임한 요리를 했다. 재료에 대해서도 요리하는 법도 잘 몰랐지만 자기가 요리 한 것을 먹어 보지도 않고 생도들에게 떠다 준다. 그 음식 속에는 독이 들어 있었다. 자기가 먼저 맛을 보았더라면 국에 든 독이 든 것을 먼저 발견했을 것이다. 국을 먼저 먹은 생도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요리사는 요리를 했을 때 내가 먼저 먹어보고 독이 들어 있는가, 없는 가,맛이 있는가,없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말은 무책임하게 말씀을 전하 지 말라는 말이다. 요리사는 요리를 잘못하면 살려야 할 영혼을 죽이는 경우도 있다. 요리란 재료는 같아도 요리하는 자에 따라 맛이 다르다. 이것이 기술 의 차이다. 좋고 맛있는 요리는 좋은 재료+기술이다. 기술은 좋아도 재 료가 좋지 않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 반대로 재료는 좋아도 기술이 없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머 요리 잘하는 기술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1) 요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할줄 모르는 자도 배우면 잘할 수 있다.
(2) 자주 해 보아야 한다.요리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자 주 해 봄으로 잘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들의 음식솜씨를 볼때 놀랄때가 많다. 재료는 별 로 넣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머니 손에서 주물럭거려져 나온 음식은 맛 있다. 그것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좋은 요리사 만나 좋은 음식을 얻어 먹으므로 영혼이 건강한 성도는복 있다. 돈을 내고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일어설때는 기분이 좋지 않은 가. 아모스선지가가 외쳤던 말씀은 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 이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 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8:11) 종교인과 신앙인 성경
본문:마 5:17-20 바리새인이라 하면, '위선자'를 나타내는 말로 통합니다. 그래서, 그 리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 들은, 그 위선적인 행위와 가식때문에 언제나 호된 책망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그 위선적인 행위와 가식때문에 언 제나 호된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워 剌 '바리새'란 말은, '세상과 구별된다'는 말로, 남달리 경건하고 거룩한 종교생활을 하는 무리를 지 칭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생활을 위하여 자주 금식했습니다. 또 산 하나님께 대한 의무로서,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으며, 또한 타인에게 대한 의무로서 많은 구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십일조 를 드리는 일이나, 아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을, 어기는 법이 없었 고, 또 율법의 계명들을 잘 지키고, 또 이 계명를 어기는 자들을 처벌하는 데에도 매우 엄격하였습니다. 특별히 이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 그 일점이나, 일획이라도 소홀히 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인 그 율법을 따르고 준 행하는 데에 있어서 아무런 결점이 없는 사람들인 것같습니다. 또한 자 기들 스스로도 우리는, '율법에 의에 있어서 흠이 없는 자'(빌 3:6)라고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그들은 대 개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잘 지키는 자로서'(마 18:21)이것을 생활화 하여 온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의 외적인 생활에 있어서 누가 감히 비난하거나 책망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이 바리새인들은,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 의 한구절, 한단어, 한획이나, 한점까지라도 가볍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잘 지키고, 또 그대로 따르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바리 새파 사람들이 '말씀을 따르고' '그 말씀대로 실천한것'은 가장 모범적 이 아니였다고 그렇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만은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인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 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종교생활을 일 단 긍적적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그 사람들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즉 그것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본문에 말씀에서,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세가지입니다.
1.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의가 바리새인들보다 더 낫지 않으면 않된다.'고 하 셨는가
2. 그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3. 예수님이 우리에게 정말 원하시는 '의'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문제에 해답을 찾는다면, 우리는 주의 말씀 을 제대로 따르는 자들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첫째로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않된다고 하셨습니까 '여기서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이라고 한 말씀에 대하여, 좀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그 하나는 '바리새인들의 가식적이고 위장된 경건.' 그것보다 더 낫지 않으면, 그런 뜻이 있을 수 있고(칼 빈), 또 하나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충정과 열심' 그것보다 더 낫지 않으면 그것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매튜 헨리) 그런데 예수님이 친히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면서 하신 말씀중에 마태복음 23:23을 보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하셨 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율법에 대한 충정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너희들은 더 잘 지키지 않으면.아니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라면 그들은 전형적인 종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인으로서의 행동거지가 완벽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그들의 외적인 면 이나 생활 행동면에 있어서, 율법을 범한다든지,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한다든지, 또 남에게 약점을 잡히거나 어떤 빈축을 살 만한 일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이나 타인이나 사회에서 존경을 받 았습니다. 적어도 외적으로 나타나는 행동과 생활이 거의 완벽하니까 요 이들은, 참으로 종교인으로서 나무랄 것이 없는 사람들이였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가 조아교인으로서 자기의 품위와 위신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선 술이나 담배같은 것을 하지 않 고, 언행이 올바라서 농담조차도 아니하고, 점잖고, 고상하며, 대인관계 에 신용을 잘 지키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적의무, 수행을 성실히 잘 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사람들도 존경 합니다. 아마 그넌 분에게는, 주일날 골프약속을 한다던지, 술좌석에서 술한잔을 권하다던지 하는 것을 감히 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 개는 그런 타입의 사람을, 진실한 종교인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바 리새인들은 그랬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의 성전에 가서 기도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여 나는 다른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 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 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9-)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지금 이 바리새인이 이렇게 기도한대로 살았다는 것은 아름답고 좋 은 일입니다. 그는 바리새파에 속한 종교인으로서 그 입장을 잘 지킨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훌륭합니다. 참 잘했습니다. 또 마땅히 그래 야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종교인으로서 체통을 지키며, 의무를 수행하면서 살기도 힘이 들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너희의 의가 서 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왜, 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단순한 '종교인'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교인'이 되면, '다 이룬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종교인으로 머물러 있지 말고, '참 신앙인'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종교인과 신앙인은 다른 것입니다. 종교인은 종교적 의식과 제도를 중요시하며, 그 의무를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내면과 정신과 영적상태는 어쨌던, 외적으로 종교인인 것을 나타내는 사람을 우리는 종교인이라, 그렇게 부 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자기 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종교인 중에는 구원받지 못한 종교인도 있을 수 있고, 외화와 형식만 치 중하는 종교인도 있고, 타인의 이목과 평판만 의식하는 종교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된 신앙없이 위신과 체면, 남의 이목만 생각하는 종교인은 '위선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들의 종교생활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무거운 의무감만 있을 뿐입니다. 그 의무를 기계적으로 행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는 자기의 '한 일'이 '자기 의'가 되고 '공 로'가 되여 의를 이루는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바리새인은 좋은 기도 를 드리고 돌아갔지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바리새인은 신앙이 없는 종교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의인이라 고 생각했기에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종교인 으로 무흠하다고 생각했기에, 사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긍휼과 자비가 필요치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말씀을 지키고 따랐지만, 그 말씀이 주는, 은혜와 구원과 기쁨과 평안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종교인의 수준에서, 더 올라가지 않 으면 않된다고 하신 것입니다.(더 낫지 않으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종교인'의 자리에 머물면서 만족해선 않됩니다. 우리는 교인이 됐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는 신앙인입니다. 그런고로 종교인에 지나지 않는 바리새 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않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이목만 중요시 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인을 능가하는 참 신앙인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신앙이 '구체성'을 띄우려면, 다시 종교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생활, 교회생활, 즉 그 '생활'과 연결되고, 우리가 믿는 바의 내용을 실제로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신앙인이라 하 면서.종교가 규정한 제반의무들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신앙은 오히려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드리 고, 성경을 읽고, 규칙적인 기도를 하고, 진실히 예배를 드리며, 성도들 은 사회적인 의무와 봉사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 것도 못하면서, 어찌 '신앙인'이 될 수가 있습니까 '저 바리새인들이 하는 것을 보라! 너희가 적어도 나를 믿는 자요, 나의 제자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을 능가 하지 않으면 않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의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더 잘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종교인을 능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 하나도 못하면, 신앙인은 커녕 종교인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종 교의 가장 기초인, 십일조를 드리는 일, 그것도 못하면서, 어찌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겠느냐 금식과 구제와 기도가 신자들의 3대의무인데 새벽에 나와 기도도 못하고, 일주일에 두번 금식고 아니하 고, 평생 가난한 사람 구제 한번 못했으면서.뭘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겠느냐 그것도 못하면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다.' 하느냐 성경을 읽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안다 하느냐 도대 체 성경을 모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느냐 그러니까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어기 '너희 의가'라는 말은, '너희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종교생활속에 규정된, 기초적인 의무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의무라는 것은, 마음먹고 행할려면 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도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다 됩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모범적인 '종교인'이 되는 것은 자기 노력으로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가, 바리새인들이 하는 것보다 더 잘하면, 더 철저히 하면 그들을 능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못하면서, 어떻게 신앙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들보다 더 능하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적인 면'에서 확실히 더 나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무 엇이던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 지 말라.'(마 23:2)하셨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란 외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적인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라!' 하더라도 '더 잘 하라!' 그러나 이 바리새인들의 해이위, 즉 그 속에서 울어 나오는 갖가 지 가식과 위선적인 해이위는 절대로 따르지 말라! 그들으 모든 행위는 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들이다. 그들의 옷모양, 잔치에서 상좌 에 앉는 것, 시장에서 인사받는 것, 남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 아하는 것, 그런 것이 그들의 행위인데, 그런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그런 마음의 동기때문에 그런 위선적 행위 가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내적으로 은혜와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종교적 의무를 행하는 것과,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한'(마 23:25) 바리새인들의 종교의무수행, 그 얼마나 다릅니까 주님 은 또 이들을 회칠한 무덤같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8) 그랬습니다. 그래서 위선자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된 사람들은, 종교를 능가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 내적인 면에 있어서 확실히 바리 새인들보다 더 낫다고 믿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자신들의 의와 선행을 극구 내세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와 무능을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내세웁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바리새인들의 생활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이라고 하신 것은 바로 우리의 내면적인 생활을 강 조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오직 하나님 의 은혜와 능력으로 하며 또 기쁨과 감사로서 행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확실히 바리새인을 능가한다고 믿습니다.
셋째로, 그러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참으로 원하신 것은 무엇이였 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이 종교인이 되는 것이나, 또 신앙인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고, 그 보다 한단계 더 올라가서 천국백성이 되기를 원하셧습니다. 그럼 천국백성이란 어떤 것입니까 신앙인 과 천국백성은 다른 것입니다. '나더라 주여, 주여한다고 다 천국에 들 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고,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마음으로'만 주를 부르고 있는 신앙인, '나는 하나님께 초대를 받았으니까'하고 안심하고 있는 신앙인.그 자리에서만, 맴돌고 있지 말고, 능히 천국에까지 넉넉 히 들어 갈 수 있는 '천국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끔 어떤 말씀끝에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실 때가 있으신데 그것은 천국백성의 자격을 논하실 때 그러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다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은 천국에 간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천국에 이를 때까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추어야 할 과정과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인과 신앙인이 되는 과정을 거쳐서 드디여 '천국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나라에 들어가지 위 해 비자(입국사증)을 받았어도, 그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의 법을 따르 지 않으면 추방당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백성은, 마땅히 천국백성 의 법을 지키는 자라야 합니다. 천국에는 그 나라의 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체질화 되고 생활화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가라'고 해도 못가고, '억지로 거기에 보내줘도' 제발로 다시 걸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산상설교에서 읽을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대로 실천하기가 어려운 계명들입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 나라게 가면, 그 계명들이 그대로 실행될 것입니다.(하나님 나라의 법이 기 때문입니다) 나는 도대체 그 법과, 그 원리를 따라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거기서 못살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거기에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는 이 계명, 즉 하나님 나라의 법 도와 생활을 미리 미리 연습하고 훈련하는 장소입니다. 이 하늘나라 시 민의 법이 우리들에게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 질 때까지 배우고, 익히 고, 따르고, 생활화하는 그런 곳이 곧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장차 하나님 나라가서 사는 법을 미리 앞당 겨서 실습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과 하나님 나라사이에 거리와 그 격차가 있기 때문에 갈등도 느깨고, 좌절도 당하는 것인데,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리에 까지 이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미리 우리에게 그의 계명을 주시고 법도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산상설교를 보면, '옛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했는데' '나는 너희 에게 이르노니.하라.' 그러시면서, 정말 세상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계명들을 주셨습니다. "성자'아니고는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천국의 율법입니다. 장차, 우리가 그 나라에 가서 지키고, 살아 갈 그 나라의 법입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이 말씀을 그대로 지키고, 다 따를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이것을 훈련하 고, 연습하고 실천하여, 따를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고 따르자는 것입니다. 잘 따를수록, 장차 우리가 가서 사는 그 나라 에서 좋을 것이며, 또 잘 따를수록, 이 세상은 그 만큼 하나님의 나라와 가까와 질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 모두가 종교인도 아니고, 신앙인도 아닌, 바로 천국백성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힘써 말씀을 따르는 연습과 훈련을 모두 열심히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I) 좋은 군사같은 일꾼(3절) 좋은 군인은
(1) 상관의 명령에 죽고사는 "절대복종"의 사람입니다. 예로서 지난 걸프전쟁 때에 후세인의 군사는 상부명령에 절대복종 않고 모조리 손들고 투항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후세인은 전쟁에 패망하였습니다.그러나 다국적군은 부시대통령의 작전 명령에 "절대복종"함으로 전쟁에 승리하였습니다. 결국 후세인의 군사는 좋은 군사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신앙선배들은 십자가의 죽음을 두렵게 생각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절대순종하여 순교적 믿음으 로 선을 무장하여 악과 싸워 이기었습니다.
(2) 좋은군사는 항상 임전태 세를 갖춘 사람입니다. 유비무환, 출전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사람 입니다. 성도의 싸움 대상은
(1)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너희가 죄와싸 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아니하였도다" (히12:4)라고 하였습니다.
(2) 육체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2:11) 고 하였으며 바울은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서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법 아래로 나를사 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2-23) 라고 하였습니다.
(3) 원수마 귀와 싸워야 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 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 5:18-19) 고 하였습니다. 택한자라도 할 수만 있으면 넘어 뜨리려고 유혹하는 마귀를 멸하는 데 임전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유다서 1:9절에 천사장 미카엘이 모세의 시체를 두고서 마귀와 다투고 변론한 일이 있습니다. 주님이 오 신 이유중의 하나가 곧 마귀의 일을 멸하려는 것입니다. (요일 3:8)
(3)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 좋은 군인입니다. 훈련 잘 받고 의무 에 출실한 군인은 절대로 군의 규율을 어기면서 함부로 외출, 휴가 등을 하지 않습니다. 탈영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제자양육훈련을 잘받은 성도는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가면서 자기 뜻대로 편한대 로 자기기분대로 자기의 생각대로 예수믿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기 이치 대로 사사로이 풀지도 않습니다. 진실로 믿는자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고난 핍박 시험 환란이 걷잡을 수 업도록 몰아쳐도 참고 견디며 자기 뜻 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신본주의 곧 믿음본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히 11:6) 이러한 성도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입니다.
II) 운동선수와 같은 일꾼 (5절)
(1) 좋은 스포츠맨은 깨끗한 매너의 정신을 갖춘 사람입니다. 올림픽정신은 승패에 있지않고 참여하는 정신에 있다고 합니다. 히10:25절에 모 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 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한것은 모이기를 힘쓰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도 모이는 곳에는 주님이 함께 하시겠 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오순절날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120문도들이 모여 서 기도하는 가운데서 성령은 역사하였습니다. 깨끗한 매너의 성도는 주 일성수, 수요예배, 금요철야, 구역예배, 새벽기도회 등 성도의 모임에빠 지지 않습니다.
(2) 좋은 운동 선수는 볍대로 경기하는 자입니다. 본문 5절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 할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지난 88 올림픽대회에 캐나다 벤존슨은 달리기에 분명코 1위를 하였으 나 법대로 경기하지 않았기에 그만 탈락되고 말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의 율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쉽게 "거짓"를 부린다거나자 기 꾀를 쓰면 안됩니다. 교회에는 교회법이, 교단에는 교단법이, 사회에는 사회통념과 규범이 국가에는 국법이 있으니 소위 악법도 법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촉되지 않는 법은 다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3) 좋은 선수는 공적신분 사명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국가 대표 선수는 개인신분이기전에 온국민을 대표하는 신분임을 명심하고 공적정신으 로 초신을 다하여 경기를 하여야 합니다. 이렇듯 성도는 개인의 자신이 기 전에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결코잊 어서는 안됩니다. 성도의 신분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깨닫고 성령님께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전임을 믿고 거룩해야 하며 깨끗해야 하고 온전 해야 합니다. 고단수의 운동선수는 항시 여유있는 자세로 늠름합니다. 누가 때리면 맞아줄뿐 함부로 응수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성도는 악이도 전할때 함부로 악으로 갚지않고 왼뺨을 돌려댈 망정 선으로 여유있게 담 대하게 응해줍니다. 바울은 '이제 내가 사는것이 아니요 내속에 그리스도가 사시니 나의 몸은 내 몸이 아니요 그리스도에게 매인몸이라"고 하 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하였으며 내게는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성도는 나 개 인 아닌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공적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III) 수고하는 농부와 같은 일꾼 (6절)
(1) 훌륭한 농부는 부지런합니다. 새벽별을 보고 들녁에 나가서 저녁 늦게 별을 보면서 돌아오는 농부는 부지런한 농부입니다.(a) 이른 봄에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 부풀게되면 보리가 뿌리 내리지 못해 말라 죽으므로 끊임없이 보리 밟기를 하여 얼어부푼땅을 차곡차곡 다져 줍니다. 이렇듯 성도의 마음밭에 죄악의 봄바람으로 들뜬 것을 열심히 자기 자신을 밟아 짓눌려야 합니다. 자신이 말씀으로 잘 다져지도록 낮 아져서 겸손하다록 영적 보리밟기를 잘하여야 수확을 거둡니다. (b) 여 름에는 뜨거운 햇볕밑에서 또한 솟아오르는 지열속에서 몸이 익을 정도 로 확근거리면서도 김을 맵니다. 논에는 벼 잎사귀에 얼굴과 팔뚝이 다 찔려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이렇듯 성도는 어려운 난관중에서 상추투성 이가 되어 십자가 주님 생각하면서 참고, 인내로서 일을 해야 합니다. 눅21:19절에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마24:13절에는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인내를 강조하 였습니다. (c) 추수하는 가을에는 익은곡식 거두는 기쁨에 피로한 줄 도 잊고 몸을 아끼지 않고 땀흘려 추수하기에 여념이 없으며 타작에몰 두합니다. 이렇듯 성도는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 수확에 여념이 없 어야 하며 알곡타작에 몰두하여야 합니다. 농부가 이른 봄부터 늦가을 까지 바쁘게 부지런한 결과 추운겨울이 와도 걱정없이 양식걱정 없이 평안히 엄동설한을 지낼 수 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복음의 씨를 울면서 눈물로 뿌리며 부지런히 가꾸고 물주며 김매준 결과 즐겁고 기 쁜 천국의 평안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은
(1) 자기 일에 억매이지 않는 좋 은 군사와 같은 일꾼
(2) 법대로 경기하는 운동선수와 같은 일꾼
(3) 수고를 아끼지 않고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부지런 한 농부와 같은 사람입니다. 좋은 요리사 성경
본문:왕하 4:38-41 우리의 삶이 여유가 생기면서 이제는 맛을 따라 3천리를 누비는 시대가 되었다. 장소가 아무리 후미져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음식점이라 면 많은 삶들로 북적거린다. 이 말을 맛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거 리가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을 영적 세계에 적용시켜 보자,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 여 성도들에게 전하는 사람을 요리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성도들을 손님에라 할 수 있다. 말씀의 요리를 잘하는 주의 종이 있는교회에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들게 되는 것은 어쩜 극히 당연한현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 될 수 있을까 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엘리사가 수넴에서 길갈에 이른다. 길갈에는 선지학교가 있는 곳이다. 열왕기하 2:7에 보면 이 선지학교에는 50여명의 생도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에는 선지학교가 길갈과 여리고에 있었다. 엘리사는 이곳 두 학교를 오고가며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때 선 지학교는 식생활의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유는
(1) 학교장의 부 재에 의한 행정상의 문제에 의한 어려움이었을 것이며
(2) 비가 오지않 은 때라 무엇을 지배하지 못한 때문이다. 엘리사는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생도들을 위해 큰 솥을 걸고 죽을 끓여 음식을 먹이게 한다. 이제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 인가를 알아보자. 엘리사는 하나님의 모형이라 할 수 있고. 사환은 말씀을 요리해서 할 수 있고, 사환은 말씀을 요리해서 먹이는 사람(목사) 들이라 할 수 있고 생도들은 요리한 것을 먹는 사람(성도) 들이라 할수 있다. 요리사는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요리사가 요리를 잘해서 손님들에게 내놓으면 손님들은 맛있게 잘 먹 겠지만 잘못 요리해서 내놓으면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건강한 성도를 만드는 것은 요리사의 책임이다. 음식의 맛은 요리사에 따라 각 각 달라진다. = 요리를 잘 하는법 =
1. 요리를 잘 할려면 재료가 좋아야 한다. 좋은 재료는 좋은 음힉을 만든다. 또 음식에 따라서 재료는 달라진다. 성경을 해석하여 전하는데는 두가지 재료를 사용하면 더욱 좋은 음 식을 만들 수 있다. 원재료로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요 부재료로서 말씀증거를 돕는 다른것 예화나 간증등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는 수많은 재료들이 들어있고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부재료들이 산재해 있다. 설교란 이 수많은 재료들을 가지고 요리하는 것이다. 맛있는 요리를 할려면 좋은 재료를 가지고 해야하므 로 그만큼 말씀을 보고 듣고 배워서 알아야 한다. 엘리사의 사환은 생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수고는 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왜 이런 요리를 했을까 음식을 만드는 재료에 독이 든 재료 가 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독이 든 음식을 만들면 먹는자에게 유 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죽이게 한다. 재료라고 다 좋은 음식을 만드는 데만 쓰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요리사들은 명심해야 한다. 좋은 요 리를 할려면 재료에 대해 많으니 알아야 하고 좋은 재료를 적절한 곳에 써야 한다.
2. 요리를 잘 하려면 요리하는 기술이 좋아야 한다. 엘레사가 사환에게 명형할 때 "큰 솥을 걸고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끊 이라"한다. 요리는 생도들을 위한 요리여야 했다. 말씀을 요리해서 전 하는 사람들은 듣는 자들의 영혼의 양식이어야 한다. 사환은 무책임한 요리를 했다. 재료에 대해서도 요리하는 법도 잘 몰랐지만 자기가 요리 한 것을 먹어 보지도 않고 생도들에게 떠다 준다. 그 음식 속에는 독이 들어 있었다. 자기가 먼저 맛을 보았더라면 국에 든 독이 든 것을 먼저 발견했을 것이다. 국을 먼저 먹은 생도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요리사는 요리를 했을 때 내가 먼저 먹어보고 독이 들어 있는가, 없는 가,맛이 있는가,없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말은 무책임하게 말씀을 전하 지 말라는 말이다. 요리사는 요리를 잘못하면 살려야 할 영혼을 죽이는 경우도 있다. 요리란 재료는 같아도 요리하는 자에 따라 맛이 다르다. 이것이 기술 의 차이다. 좋고 맛있는 요리는 좋은 재료+기술이다. 기술은 좋아도 재 료가 좋지 않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 반대로 재료는 좋아도 기술이 없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머 요리 잘하는 기술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1) 요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할줄 모르는 자도 배우면 잘할 수 있다.
(2) 자주 해 보아야 한다.요리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자 주 해 봄으로 잘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들의 음식솜씨를 볼때 놀랄때가 많다. 재료는 별 로 넣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머니 손에서 주물럭거려져 나온 음식은 맛 있다. 그것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좋은 요리사 만나 좋은 음식을 얻어 먹으므로 영혼이 건강한 성도는복 있다. 돈을 내고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일어설때는 기분이 좋지 않은 가. 아모스선지가가 외쳤던 말씀은 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말씀 이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 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8:11) 종교인과 신앙인 성경
본문:마 5:17-20 바리새인이라 하면, '위선자'를 나타내는 말로 통합니다. 그래서, 그 리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 들은, 그 위선적인 행위와 가식때문에 언제나 호된 책망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그 위선적인 행위와 가식때문에 언 제나 호된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워 剌 '바리새'란 말은, '세상과 구별된다'는 말로, 남달리 경건하고 거룩한 종교생활을 하는 무리를 지 칭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생활을 위하여 자주 금식했습니다. 또 산 하나님께 대한 의무로서,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으며, 또한 타인에게 대한 의무로서 많은 구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십일조 를 드리는 일이나, 아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을, 어기는 법이 없었 고, 또 율법의 계명들을 잘 지키고, 또 이 계명를 어기는 자들을 처벌하는 데에도 매우 엄격하였습니다. 특별히 이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 그 일점이나, 일획이라도 소홀히 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인 그 율법을 따르고 준 행하는 데에 있어서 아무런 결점이 없는 사람들인 것같습니다. 또한 자 기들 스스로도 우리는, '율법에 의에 있어서 흠이 없는 자'(빌 3:6)라고 공공연히 말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그들은 대 개 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잘 지키는 자로서'(마 18:21)이것을 생활화 하여 온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의 외적인 생활에 있어서 누가 감히 비난하거나 책망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이 바리새인들은,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 의 한구절, 한단어, 한획이나, 한점까지라도 가볍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잘 지키고, 또 그대로 따르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바리 새파 사람들이 '말씀을 따르고' '그 말씀대로 실천한것'은 가장 모범적 이 아니였다고 그렇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만은 예수님께서도, 그들을 인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 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시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종교생활을 일 단 긍적적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그 사람들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즉 그것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본문에 말씀에서,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세가지입니다.
1.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의가 바리새인들보다 더 낫지 않으면 않된다.'고 하 셨는가
2. 그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3. 예수님이 우리에게 정말 원하시는 '의'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문제에 해답을 찾는다면, 우리는 주의 말씀 을 제대로 따르는 자들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첫째로 왜 예수님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않된다고 하셨습니까 '여기서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이라고 한 말씀에 대하여, 좀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그 하나는 '바리새인들의 가식적이고 위장된 경건.' 그것보다 더 낫지 않으면, 그런 뜻이 있을 수 있고(칼 빈), 또 하나는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충정과 열심' 그것보다 더 낫지 않으면 그것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매튜 헨리) 그런데 예수님이 친히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면서 하신 말씀중에 마태복음 23:23을 보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하셨 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율법에 대한 충정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 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너희들은 더 잘 지키지 않으면.아니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라면 그들은 전형적인 종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인으로서의 행동거지가 완벽한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그들의 외적인 면 이나 생활 행동면에 있어서, 율법을 범한다든지,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한다든지, 또 남에게 약점을 잡히거나 어떤 빈축을 살 만한 일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이나 타인이나 사회에서 존경을 받 았습니다. 적어도 외적으로 나타나는 행동과 생활이 거의 완벽하니까 요 이들은, 참으로 종교인으로서 나무랄 것이 없는 사람들이였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그가 조아교인으로서 자기의 품위와 위신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선 술이나 담배같은 것을 하지 않 고, 언행이 올바라서 농담조차도 아니하고, 점잖고, 고상하며, 대인관계 에 신용을 잘 지키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적의무, 수행을 성실히 잘 하고 있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사람들도 존경 합니다. 아마 그넌 분에게는, 주일날 골프약속을 한다던지, 술좌석에서 술한잔을 권하다던지 하는 것을 감히 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 개는 그런 타입의 사람을, 진실한 종교인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바 리새인들은 그랬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의 성전에 가서 기도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여 나는 다른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 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 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9-)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지금 이 바리새인이 이렇게 기도한대로 살았다는 것은 아름답고 좋 은 일입니다. 그는 바리새파에 속한 종교인으로서 그 입장을 잘 지킨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훌륭합니다. 참 잘했습니다. 또 마땅히 그래 야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종교인으로서 체통을 지키며, 의무를 수행하면서 살기도 힘이 들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너희의 의가 서 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왜, 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단순한 '종교인'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교인'이 되면, '다 이룬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종교인으로 머물러 있지 말고, '참 신앙인'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종교인과 신앙인은 다른 것입니다. 종교인은 종교적 의식과 제도를 중요시하며, 그 의무를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내면과 정신과 영적상태는 어쨌던, 외적으로 종교인인 것을 나타내는 사람을 우리는 종교인이라, 그렇게 부 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자기 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종교인 중에는 구원받지 못한 종교인도 있을 수 있고, 외화와 형식만 치 중하는 종교인도 있고, 타인의 이목과 평판만 의식하는 종교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된 신앙없이 위신과 체면, 남의 이목만 생각하는 종교인은 '위선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들의 종교생활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무거운 의무감만 있을 뿐입니다. 그 의무를 기계적으로 행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는 자기의 '한 일'이 '자기 의'가 되고 '공 로'가 되여 의를 이루는 줄로 착각하게 됩니다. 바리새인은 좋은 기도 를 드리고 돌아갔지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바리새인은 신앙이 없는 종교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의인이라 고 생각했기에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종교인 으로 무흠하다고 생각했기에, 사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긍휼과 자비가 필요치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말씀을 지키고 따랐지만, 그 말씀이 주는, 은혜와 구원과 기쁨과 평안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종교인의 수준에서, 더 올라가지 않 으면 않된다고 하신 것입니다.(더 낫지 않으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종교인'의 자리에 머물면서 만족해선 않됩니다. 우리는 교인이 됐다고 해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는 신앙인입니다. 그런고로 종교인에 지나지 않는 바리새 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않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이목만 중요시 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인을 능가하는 참 신앙인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신앙이 '구체성'을 띄우려면, 다시 종교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생활, 교회생활, 즉 그 '생활'과 연결되고, 우리가 믿는 바의 내용을 실제로 실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신앙인이라 하 면서.종교가 규정한 제반의무들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신앙은 오히려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일을 성수하고, 십일조를 드리 고, 성경을 읽고, 규칙적인 기도를 하고, 진실히 예배를 드리며, 성도들 은 사회적인 의무와 봉사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 것도 못하면서, 어찌 '신앙인'이 될 수가 있습니까 '저 바리새인들이 하는 것을 보라! 너희가 적어도 나를 믿는 자요, 나의 제자라고 한다면 그 사람들을 능가 하지 않으면 않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의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더 잘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종교인을 능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 하나도 못하면, 신앙인은 커녕 종교인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종 교의 가장 기초인, 십일조를 드리는 일, 그것도 못하면서, 어찌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겠느냐 금식과 구제와 기도가 신자들의 3대의무인데 새벽에 나와 기도도 못하고, 일주일에 두번 금식고 아니하 고, 평생 가난한 사람 구제 한번 못했으면서.뭘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겠느냐 그것도 못하면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다.' 하느냐 성경을 읽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안다 하느냐 도대 체 성경을 모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느냐 그러니까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어기 '너희 의가'라는 말은, '너희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종교생활속에 규정된, 기초적인 의무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의무라는 것은, 마음먹고 행할려면 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도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다 됩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모범적인 '종교인'이 되는 것은 자기 노력으로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가, 바리새인들이 하는 것보다 더 잘하면, 더 철저히 하면 그들을 능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못하면서, 어떻게 신앙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들보다 더 능하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내적인 면'에서 확실히 더 나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무 엇이던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 지 말라.'(마 23:2)하셨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란 외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적인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라!' 하더라도 '더 잘 하라!' 그러나 이 바리새인들의 해이위, 즉 그 속에서 울어 나오는 갖가 지 가식과 위선적인 해이위는 절대로 따르지 말라! 그들으 모든 행위는 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들이다. 그들의 옷모양, 잔치에서 상좌 에 앉는 것, 시장에서 인사받는 것, 남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 아하는 것, 그런 것이 그들의 행위인데, 그런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그런 마음의 동기때문에 그런 위선적 행위 가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내적으로 은혜와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종교적 의무를 행하는 것과,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한'(마 23:25) 바리새인들의 종교의무수행, 그 얼마나 다릅니까 주님 은 또 이들을 회칠한 무덤같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8) 그랬습니다. 그래서 위선자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된 사람들은, 종교를 능가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 내적인 면에 있어서 확실히 바리 새인들보다 더 낫다고 믿습니다. 바리새인들도 자신들의 의와 선행을 극구 내세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와 무능을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내세웁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바리새인들의 생활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이라고 하신 것은 바로 우리의 내면적인 생활을 강 조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오직 하나님 의 은혜와 능력으로 하며 또 기쁨과 감사로서 행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확실히 바리새인을 능가한다고 믿습니다.
셋째로, 그러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참으로 원하신 것은 무엇이였 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이 종교인이 되는 것이나, 또 신앙인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고, 그 보다 한단계 더 올라가서 천국백성이 되기를 원하셧습니다. 그럼 천국백성이란 어떤 것입니까 신앙인 과 천국백성은 다른 것입니다. '나더라 주여, 주여한다고 다 천국에 들 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고,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마음으로'만 주를 부르고 있는 신앙인, '나는 하나님께 초대를 받았으니까'하고 안심하고 있는 신앙인.그 자리에서만, 맴돌고 있지 말고, 능히 천국에까지 넉넉 히 들어 갈 수 있는 '천국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끔 어떤 말씀끝에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실 때가 있으신데 그것은 천국백성의 자격을 논하실 때 그러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다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은 천국에 간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천국에 이를 때까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갖추어야 할 과정과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종교인과 신앙인이 되는 과정을 거쳐서 드디여 '천국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나라에 들어가지 위 해 비자(입국사증)을 받았어도, 그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의 법을 따르 지 않으면 추방당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백성은, 마땅히 천국백성 의 법을 지키는 자라야 합니다. 천국에는 그 나라의 법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체질화 되고 생활화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가라'고 해도 못가고, '억지로 거기에 보내줘도' 제발로 다시 걸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산상설교에서 읽을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대로 실천하기가 어려운 계명들입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 나라게 가면, 그 계명들이 그대로 실행될 것입니다.(하나님 나라의 법이 기 때문입니다) 나는 도대체 그 법과, 그 원리를 따라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거기서 못살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거기에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는 이 계명, 즉 하나님 나라의 법 도와 생활을 미리 미리 연습하고 훈련하는 장소입니다. 이 하늘나라 시 민의 법이 우리들에게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 질 때까지 배우고, 익히 고, 따르고, 생활화하는 그런 곳이 곧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장차 하나님 나라가서 사는 법을 미리 앞당 겨서 실습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과 하나님 나라사이에 거리와 그 격차가 있기 때문에 갈등도 느깨고, 좌절도 당하는 것인데,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리에 까지 이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미리 우리에게 그의 계명을 주시고 법도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산상설교를 보면, '옛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했는데' '나는 너희 에게 이르노니.하라.' 그러시면서, 정말 세상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계명들을 주셨습니다. "성자'아니고는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천국의 율법입니다. 장차, 우리가 그 나라에 가서 지키고, 살아 갈 그 나라의 법입니다.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이 말씀을 그대로 지키고, 다 따를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이것을 훈련하 고, 연습하고 실천하여, 따를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고 따르자는 것입니다. 잘 따를수록, 장차 우리가 가서 사는 그 나라 에서 좋을 것이며, 또 잘 따를수록, 이 세상은 그 만큼 하나님의 나라와 가까와 질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 모두가 종교인도 아니고, 신앙인도 아닌, 바로 천국백성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힘써 말씀을 따르는 연습과 훈련을 모두 열심히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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