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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의 광맥을 찾아서 (딤전4:12-16)

본문

잘 아시는 것처럼 디모데서는 사도 바울이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목회상 중요하게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점을 세가지 면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리고 12절에서는 인격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분명히 인격의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인격의 성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을 많이 해도 그 노력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는 법입니다. 짐 승들은 열심히 노력을 해도 마지막엔 모두 뺏기고 맙니다. 꿀벌이 열심히 꿀 을 모으지만 결국은 빼앗기게 되고, 다른 짐승들도 열심히 먹어서 살을 찌우 지만 다른 짐승이나 사람에게 결국 먹히고 마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인격의 성장을 통해서 영혼을 자신의 품속에 품게 됩니다. 따라서 인격의 성장이 없게 될 때, 밑에 들어 왔던 영혼이 평안히 쉴 수가 없음으로 해서 다 도망을 갑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인격에 성장이 있을 때 풍성한 마음 안의 그늘이 시원하므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여들게 됩니다. 두번째, 13절에서는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하면서 목회사역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이 목회하는 것도 이것이 아닙니까 심방해서 권하고, 카운셀링하 고, 가르치며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목회사역입니다. 사실 이 런 것들은 누구나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14절에서는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는 세가지가 분명히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은사에 대해서 조심없이 말며 전심전력하여 은사를 개발시켜야 될 것을 확실하 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목회를 하면서 인격적인 것도 좋고, 노력도 많이 하는데 무엇인가 노력하는 것만큼의 댓가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회자들 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을 한 분들로서, 양심껏 노력을 하는데도 잘 안됩니다. 오히려 거짓말도 하고 허풍도 떠는 부흥강사 타입의 사람들이 더 잘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곧이 곧대로 양심껏 하는 사람이 더 안됩니다. 교인들도 양심껏 일생동안 믿음생활 잘 하는 사람들 중에 영적인 상처를 입 고 슬픔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또 직장일은 열심히 하면서 교회 의 영적인 사역은 뜨겁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은사를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세미나가 목회자의 은사를 개발하는 동시 에 교인들에게도 받은 은사에 맞게 일할 자리를 줄 수 있는 진단의 시간이 되기 를 바랍니다. 은사는 자동차로 말하면 엔진과 마찬가지 입니다. 인격은 운전기사이고, 사역은 짐을 싣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운전기사가 있고 많은 짐을 실어 놓았지만 엔 진이 잘 돌아가지 않으면, 잘 나가지도 않고 고생만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자신 의 은사와 교인들의 은사를 잘 찾고 개발시켜서 하나님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은사는 시간 이 가면서 일생동안 계속 성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목회자들의 말로가 비참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목회자가 나이가 들면서 교인들이 많아지고 부목사, 전도사의 숫자가 늘어나면 점차 부목사나 전도사의 눈치를 보게 되며, 또 장로나 교인들과 실랑이 하며 눈치보느라고 시 간 다 보내고 마지막엔 인격적인 문제 때문에 말년을 비참하게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것이 은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은사를 일생동안 잘 개발하면 절대로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젊은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신학을 공부한다든가 심방을 한다든가 또는 찬양을 인도하는 일들은 나 이가 들면 젊은 사람들을 따라갈 수가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계속 해서 은사를 잘 개발시키면 젊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상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생동안 계속해서 여러분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목회를 확실하게 할수 있는 것은 바로 은사를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2)은사의 광맥을 찾아서(후) 그러면 먼저 교재를 보겠습니다. '믿음 은사 개발의 원리'라는 교재를 가지고 전체적인 것을 설명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보면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은 영을 다루시는 분들로서 영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영적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며, 영과 혼에 대한 구분 또한 성경에 있는대로 그 개념을 잘 구 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잘 구분하면 영적인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 우선 몸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몸에는 본능이 있고, 몸을 움직이며 사는 환경이 있습니다. 또, 혼이라는 것은 의식공간으로서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공간입니다. 즉, 사회생활은 의식에너지를 서로 주고 받는 활동인 것입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한다던가 이렇게 세미나를 한다든가 하는 것도 의식에 너지를 공급받는 한 방법입니다. 의식에너지를 공급받으면 의식의 활동공간이 넓어지게 됩니다. 많이 배운것 만큼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되고, 또 배운 것을 통헤서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져 자기실현의 범위가 점점 커집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곧 자기를 의식하는 능력입니다. 사람에게서 의식에너지를 공급받으면 자기를 의식하는 능력이 많아짐과 동시에 자기확장이 더 잘 됩니다. 이것을 '성공했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 신의 의식을 넓히는 의식적인 활동을 통해서 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즉 사회생활을 통해서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 지 않습니까 혼적인 문제로 위엣것을 해결하면 아랫것은 자연적으로 해결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의식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처음에 태 어났을 때에는 의식이 없습니다. 감각이라는 본능만 있기 때문에 건드리면 움 츠리고, 젖냄새를 맡고 젖이나 빨고 하는 것 뿐입니다. 의식은 다른 사람이 공 급해 줌으로써 뇌속에 마치 밧데리처럼 저축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축한 의식을 remind시켜서 자신에게 필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는 것을 의식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의식이라는 것이 본래 뇌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뇌는 의식을 저장하는 밧데리와 마찬가지일뿐, 뇌에서 의식이라는 것 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가지 사실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태어난 어린 아이를 그 부모가 키우지 않고 깊은 산속이나 늑대굴에서 키운다면 그 아 이는 의식은 없고 본능만 있게 됩니다. 인도에서 한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잃 어버렸는데, 십여년이 지난 후에 늑대굴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모습만 사람일뿐 완전히 늑대였습니다. 말도 모르고 네 발로 걸어다니며 늑대처 럼 으르렁 거리고 병아리를 잡아먹었습니다. 보통사람들이 머리가 커지면서 의식이 발달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가설 이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의식은 항상 밖에서 들어가야 합니다. 창세기 3 장에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혼자 있게 되면 절대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나와 너와의 관계를 통해서 의식을 공급받게 되 고 자기를 의식하게 되며 자기를 의식하는 것만큼 환경을 자기 위주로 선택하 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환경이 좋은데도 점차 자기의 것을 잃어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쁜 환경에서도 점차 자신의 것이 많아지는 것은 바로 '자기의식 '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위주의 선택을 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의 생활은 점차 자신의 것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자기의식이 뚜렷하지 못한 사람일 수록 본능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화를 잘 내고 술을 마시며 신경질을 잘 내는 사람은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늘 손해를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본능은 자기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본능이 역사할수록 자기 것을 잃어버리 게 됩니다. 짐승이 얼마나 힘이 셉니까 그렇지만 짐승은 잡혀 먹힙니다. 시간이 가면서 자신의 범위를 넓히고, 자기를 성장시킬수 있는 것은 본능을 억제할 수 있었을 때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항상 본능적으로 살 때, 즉 성적으로 문란하다든 가, 먹는 것을 너무 강조한 나라나 집은 망했습니다.
왜냐하면 본능은 자기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의식만이 자기화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3)말씀의 의식화-그 축복의 통로 의식은 사람을 통해서 공급받습니다. 따라서 돈을 번다든가 어떤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말을 통해서 의식을 공급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 한 것은 사실 선생님이나 스승의 말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금이나 은, 떡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사람은 떡이 나 돈, 직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목사님들은 pride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처음 목회할 때는 목사라는 직업에 상당한 저열감을 가졌습니다. 다른 약 장사들은 비록 가짜약이라도 놓고 팔지만, 목사는 아무것도 없이 입만 가지고 떠들기 때문에 제가 볼때는 형편없는 말장사처럼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의 말씀을 공급받게 되면 생활속에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의식을 가지고 바른 선택을 함으로써 모든 것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다 해도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 누 릴수 있고, 세상것을 다 가져도 믿음이 없으면 다 잃게 됩니다. 세상에 있는 말은 모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즉 사람의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에 세상의 말을 받으면 받을수록 내것을 뺏기게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교인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모든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교회에 나와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것을 찾거나 보관할 수 있는 능력이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목회자 여러분! 귀교회의 교인들이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장님이나 교장선생님이고, 또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여러분은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받아 자기 것으 로 만들어야 하는 필연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위치를 바로 알고 그런 사람들을 깨닫게 해야지, '이 사람은 돈 많고, 또 장로님이니까' 하면서 먼저 굽신거리고 눈치나 보는 사람의 종이 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자신뿐 아니라 성도들도 말씀만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축복 이 있습니다. 믿습니까 자신과 확신을 가지십시오. 이것은 법칙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력을 가졌던 사람, 쾌락을 맛보았던 사람, 지혜를 가졌던 세상의 많은 사람들도 마지막엔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히틀러도 솔로몬도 지위와 쾌락을 모두 잃어 버렸습니다. 세상의 것은 사람의 본능을 자극하므로 결국 짐승처럼 잃어버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짐승은 죽어서도 다른 것에게 먹히게 됩니다. 짐 승은 장사를 지내는 것이 없이 그저 먹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예수를 시험할 때에, 돌로 떡을 만들라고 한 것입니다. 돌산을 모두 금덩어리와 다이아몬드로 만들라고 할 때 예수님은 'No'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금덩어리를 아무리 많이 갖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모두 잃 어버리게 됩니다. 세상에서 나오는 말은 세상지식이고 마귀의 초등학문인데 이 초등학문은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는 것으로 결국 마귀가 역사합니다. 그래서 내 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뺏습니다. 여러분들이 목회를 하실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로 세상의 방법을 모방 하지 마십시오. 솔직히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 않습니까 오직 하나님 의 말씀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밑천으로 해서 그 밀씀이 우리 안에 의식화가 되도록 하여 주위에 없는 것들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것을 모방한다면 정말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집, 땅 등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잃어버렸을때 그 후유증이 오래 가지만, 우리는 잃어버릴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들. 신학교에서 어떤 새로운 학설이 나왔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영적으로 잘 구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것은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요즘 해방신학에 속한 목회자들이 목회는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유행가 부르고 직장마다 돌아다니면서 왕왕거리는데, 그 분들이 팔자를 고쳤습 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차라리 돈이나 많이 벌어서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세우 고 도와주는 편이 낫습니다. 제일 알거지 목사가 되어서 누구를 도와주겠다는 것입니까 누구를 도우려면 자신이 벌어서 자기 돈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목사는 거지입니다. 종교거지 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 굶어죽는 형편에 누구를 돕겠다는 것입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일하기도 분주한 사람들을 데리고 길거리에 나가서 떠든다고 누가 알아주겠습 니까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는 사람들을 알아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셔야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내어 놓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분명히 깨달으면 여러분의 생활에도 변화가 있 게 되고 여러분의 교회도 변화될 것입니다. 목사의 책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인들의 의식속에 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 로 '말씀의 의식화'입니다. 이것을 곧 믿음이라고 합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말이 상당히 애매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 하는 것' 이라고 하거나, 무조건 '믿습니다'하며 목에 힘주는 것도 믿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의 의미가 이렇듯 애매하기 때문에 저는 믿음을 ' 말씀의 의식화' 라고 합니다. 말씀이 의식화가 되면 자기선택의 능력이 생기게 되어 믿음으로 열매가 맺히고 없는 것이 있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4)영(靈)-그 창조의 현장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은 이처럼 말씀의 의식화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이 법칙을 깨닫고 교인들에게 강조하고 반복하십시오. 교인들에 게 '아멘'하게 하고, '할렐루야'로 화답하게 하며 복창시키십시오. 김일성이나 세상의 운동권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이론 을 숙지시켜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을 우리는 '의식화'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의식화는 사실상 성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러한 의 식화의 원리는 잊어버리고, 오히려 세상에 나가서 다른 것을 배우고 흉내내려 고 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2절 말씀에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 함이라'했습니다. 분명히 들었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 닙니다. 보통 생각하기를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가르쳐서, 머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기억하게 하고, 그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머리는 밖에서 들어오는 information을 저장할 뿐입니다. 즉, 내가 무 엇을 안다고 해서 그것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약 국 이름, 식당의 위치같은 것을 기억은 해두지만, 늘상 그것을 생각하고 염두 에 두고 있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도 내가 필 요할 때만 기억해 내서 이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교인들이 머리가 좋아서 성경을 다 외우고 있다가 필요할 때만 이용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 성경말씀으로 목사님을 걸고 넘어진 다든가,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든가, 다른 사람을 이단으로 몰때만 써먹고, 정 작 자신이 순종해야 할 때는 '지금 할일이 너무 많습니다.'라고 핑계를 대면 서 순종치 않는다면 그것은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기억력이 좋은 사람을 마치 말씀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외운다고 해서 실제적 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도 '지식은 교만케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교인들 중에서도 신학교를 나온 교인들은 목회자들을 참 피곤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지식이 많아서 목사가 무슨 말을 하면 '왜 저렇 게 하는가 나는 이렇게 할텐데'라고 생각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아서 의식화가 안됩니다. 또 오래 믿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본문 만 읽어도 '오늘은 이런 설교를 하겠구나'하고 미리 다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이 아니고 기억력입니다. 우리는 기억력이 아니라 말씀으로 의식화를 시켜야 합니다. 의식화는 자기 가 좋고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데모하는 학생들 중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하는 학생이 죽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화가 되면, 의식의 세계와 영의 세계가 접선이 되기 때문에 내가 선택을 하지 않아도 수동적으로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들어가면 영계와 접 선이 되고, 이렇게 영계와 접선이 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내가 생각을 해보아서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하는 것은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는데, 머리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할 때만 나오는 것은 말씀이 아니고, 단지 기억력입니다. 운동력이 있는 말씀은 사람에 의해서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사 로 잡혀서 내가 그 분에 의해 조정되고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대 로 선택을 하고 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마 치 요리를 하듯 새로운 책을 많이 인용하면서 설교를 하여, 교인들에게 '이번 에 목사님께서 책도 많이 읽으시고, 설교준비를 열심히 하셨구나' 하는 귀만 간지럽게 하는 쇼를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교인들의 귀가 토끼의 귀 처럼 커져서, 마치 사도행전에 나와 있는 아덴사람들이 매일 길거리에 나 가 새로운 뉴스를 듣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것처럼 됩니다. 교인들이 이번 주에는 목사님께서 어떤 재미있는 설교를 하실 것인가 기 대하면서 자신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저 목사님께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 려줄 것을 바라게 됩니다. 이런 것은 말씀이 아닙니다. 의식화가 말씀인 것 입니다. 믿습니까 의식화를 통해서는 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환경에는 의식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영의 세계에는 영적인 환경이 있습니다. 이 영적인 환경이 곧 하늘나라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의 몸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우리의 영이 거듭나고, 영은 성장하고, 영은 눌림을 받기도 하며 싸움을 하고, 영은 일도 합니다. 영의 에너지는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창조의 에너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으 로부터 영의 에너지를 받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영은 믿음의 통로이고 은혜의 통로이며 창조의 현장입니다. 영이 의식과 다른 점은 의식이 장소적 으로 자신의 범위를 만들어 놓으면, 영이 그 곳에 실제적인 것을 채워줍니다. 이것이 영의 역사입니다. 예를 들어서 돈을 1억을 벌었다면 보통 사람들은 '이 돈은 내 돈이다' 라 고 의식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하나님의 실상의 영이 이 1억 의 돈을 채워주지 않으면 명목상으로만 1억이 내 것일뿐입니다. 교통사고 가 난다든가 도둑이 들어와서 1억을 가져간다든가 하면 의식적으로만 내 것이었지 실제적으로는 내 것이 아닌 것입니다.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이 많은 여자도 거느리고, 물질적으로도 부유해서 의 식적으로 모든 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나서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라고 자신이 헛것이고 비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세상지식이나 학문을 가지고 의식적으로는 범위를 넓힐 뿐만 아니라 하나님 의 영과 운동력으로 우리의 심령과 인생을 채울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과 영은 같은 차원에서 역사를 하는데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1억이라는 돈은 어떤 1억원에 해당하는 것만큼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운동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돈의 운동력이 내게 유익함을 주느냐, 아니면 내가 가지고만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함을 주느냐 하는 최종적 인 운동력의 역사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그저 보관 만 하고 있는 것이 되고, 실제적으로는 하나님의 종들이 사용하게 됩니다. 할 렐루야!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누가 부자라든가 10억을 가지고 있다든가 하는것 때문에 굽신거리고 기가 죽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명목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혼적인 것이며 실질적인 것은 아직 결정이 안된 것입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떡반죽 그릇도 복을 받는다' 했는데 음식도 하나의 운동에너지입니다. 음식이 내 속에 들어와서 생리적 인 에너지로 변화되어야 내 것이 되는 것이며, 들어오긴 했지만 흡수가 되 지 않고 그대로 배설이 되었다거나 체했다면 내가 먹긴 했어도 진정으로 내 것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따라서 돈이나 금덩어리, 음식을 아무리 많이 가 지고 있다 해도 아직은 내 것이 아니며, 그것들을 맨 마지막에 쓰는 사람이 비로소 그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을 가진 사람의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목사님들은 '하나님의 바람만 불면 다 이쪽으로 온다'는 생각을 하시고 두둑한 배짱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운동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나라가 강하고 약한가 하는 것은 그 나라에서 사용되는 총에너지의 소비량으로 결정됩니다. 이것이 곧 운동 력의 결정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목회하는데 필요한 운동력을 가지고 오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실 때 운동력으로 주시며, 형체로 주 시거나 흔적으로 주시지 않습니다. '네 것이다' 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운동 력으로 주십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고 옷이 없을 때, '주여, 주시옵소서'라 고 기도하면 꼭 자기 것인줄 알았던 어떤 사람의 영감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 돌아 가셨을 때, 주님의 무덤이 없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 셉이 자신의 무덤을 삼고자 열심히 팠지만, 예수님께 넘겨 주었습니다. 당나 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나귀 주인이 열심히 당나귀를 키웠지만 주님께서 가져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제게 이러한 운동력을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믿음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도 다 내 게로 오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세상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땅을 살까, 집을 살 까' 하고 시시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다 가져 오셨습니다. 여러분과 제게 와 계신 성령님 께서 목회하는데 필요한 땅도 주시고 자동차도 주시며,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다 가져 오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입을 통해서 교인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은사의 운동력도 가져오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 것, 네 것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어떻게 부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올 때, 애굽사람들이 애써 모은 금은 보화를 다 가지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역사를 통해서 혼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낮은자 같지만 높은 자이고, 슬퍼하는 자 같지만 기쁜자 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우리는 모두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운동력이 우리에게 이미 와 있다는 것입니다. 내게 와 있는 운동력이 언제, 어떻게 무슨 방향으로 나타 나느냐 하는 것만 남아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미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대 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아시기를 원하시면 '기도학교'라는 교재와 Tape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5)일군을 양성하는 목회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렇다 고 내가 그냥 '믿습니다'라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운동력이 나타 나심을 통해서 불가능한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죽어야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사실 하늘나라는 텅 비어 있습니다. 성령님도 내려와 계시고 천사들도 모두 내 려와 있기 때문에 하늘나라에는 하나님과 예수님만 계십니다. 하늘나라는 이미 완성이 되었고, 이 세상의 물질 세계도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성도 들을 통해서 새하늘과 새땅이 지어져야 하고, 그 새하늘을 하나님께서 지금도 계속 창조하고 계십니다. 새로운 창조에 속한 새로운 일을 해야하는 것이 성도들의 교회 생활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을 것이 나, 입을 것을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운동력으로 해결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 뿐이며, 이것 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교인들에게 '내가 직장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도록 기도를 해주겠다'는 식으로 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있는 곳이 직장이건 학교이건 모두 하늘나라가 임하는 생활 현장이기 때문에 그 현장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가짐으로 하늘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교회에서만 모이면 다 똑같은 환경에 하늘나라가 임하며, 그 범위가 좁아 지기 때문에 가정이나 직장, 또 학교등 범위를 넓혀서 하늘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직장도 하늘나라를 넓히기 위해서 갖는 것이지 밥벌이나 하려고 갖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여러분 자신의 개념도 달라져야하고, 교인들의 의식도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인들의 움직임도 달라지고, 교회도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새하늘과 새땅을 짓고 계시며, 현재 이루어 지고 있는 새 창조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여러분과 저는 새언약의 일군으로서 영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며, 새로운 나라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모든 교인들은 새로운 언 약의 일군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온 교인도 하나님께서 일 을 시키기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요즘 직장에서는 사원을 모집하고서 교 육을 받게 한 후에 일을 하게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교인들을 보낸 것은 하나님의 일군으로 훈련받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일꾼으로서 훈련을 시킨 다음 하나님의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일반적으로 교인들을 A,B,C의 세 등급으로 분류합니다. A등급은 특급으로 서 사도처럼 열심히 따라 다니며 좋은 일군이 될 수 있는 교인들 입니다. B등 급은 일반 군중처럼 떼로 몰려 다니는 그룹이며, C등급은 가룟 유다처럼 말썽 을 일으킬 수 있는 그룹입니다. 주님께서는 A등급의 사람을 가장 많이 상대하셨습니다. B등급은 몇만명이 있 어도 그대로 두고, 조용히 산에 가셔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B등급은 주님을 위해서 헌신한 것도 없습니다. C등급은 투자를 해도 별로 소용없는 그룹입니다.
그러므로 A등급을 잘 훈련 시키면 A등급이 B등급을 인도하고, C등급도 맡 아서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A등급의 그룹에 투자를 하는 것이 목회하는 여러분들이 우선 할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일군을 양성하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A,B등급을 방관한 채, C등급만 좇아 다니게 되면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 뿐 여러분 자신은 비위 만 맞추는 천덕꾸러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초신자인 베드로를 보실 때 '너는 사람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초신자라고 해서 기분만 좋게 해 줄 것이 아니라, 초신자 때부터 좋은 일군이 될 사람은 비젼을 주어서 일군으로 키워야 합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보통 은사라 하면 방언을 한다든가, 병을 낫게 한다든가 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점잖게 설교를 하는 것은 은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사님께서는 설교하는 것은 은사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먼저 은사의 정의를 성경에서 찾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4절에 서 5절에 보면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였노라'고 말함으로써, 은사는 성령의 나타남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의식구조를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 에너지를 나타내시는 것이 바로 은사입니다. 영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성령님의 창조적인 운동력이 나타나는 것이 은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 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믿는 사람은 다 성령을 받은 것 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방언하는 사람만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로 부터 13절을 봅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 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분명히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아 우리가 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다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아 성령으로 마시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성령을 받은 것이고, 따라서 모든 신자는 다 은사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1절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 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는 말씀에서 각 사람이라고 했으므로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특별한 은사를 받으면, 자기 혼자서만 받은 줄 알고 어깨에 힘을 주며 목사님도 제쳐 놓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은사를 받았 기 때문에 어깨에 힘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어깨에 힘을 주는 것은 혼적인 문제이고, 영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에게는 모두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몸된 교회의 지체로 서의 위치이며 직분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8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우리 몸에 손과 발이 있는 것처럼 교회의 큰몸에 내가 지체로서 편입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고, 하늘나라에 내 집의 주소가 있게 되는 것 입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새하늘과 새땅을 짓는 우주적인 교회라는 큰 공장 의 일군으로서 내게 맞는 어떤 직책이 주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우주공장에 자신의 직책이 어느 것이든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어떤 직책에서 맡은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고, 훈련시키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교회는 저 절로 부흥이 됩니다. 한 사람도 그냥 놀려서는 안됩니다. 제 몸에 있는 각 지체는 지금 모두 일 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치질 수술을 받았습니다. 항문에 있는 근 육이 웃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웃을 때마다 당겨서 웃 을수도 없고 기침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교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우주 공장에서 성령의 바람과 나타나심에 따라서 모두 움직여야 되는 필연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깨달으시고 교인들의 숫자만 헤아려 오백명, 천명으로 불리려고만 하지 말고 지금 나오는 사람에게만 일을 잘 시키면, 그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하나님께서 저절로 30 배, 60배, 100배로 숫자를 불려 주십니다.
(6)교인들을 은사로 무장시켜라! 우리들의 책임은 안오려고 하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들어온 사람을 좋은 일군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다섯번째, 은사란 서로 다른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기 다른 것 을 주셨습니다. 은사는 서로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안 에서 은사를 가지고 경쟁을 시켜서는 안됩니다. 경쟁을 시키는 것 자체가 성령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혼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부작용이 많습니다. 어떤 일을 했을 때, 상을 준다든가 칭찬을 해준다든가 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영으 로 하는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상을 주 신일이 없으셨지만 모두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절대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성령님께서 주신 운동력으로 다 움 직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상을 주지 않아도 모두 움직입니다. 여섯번째, 각 사람은 지체이므로 부분적인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9절에서 10절을 보겠습니다. '우리 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 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목회자는 은사를 가진 교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들이 고 민을 하는 것은 교인들보다 무엇이건 앞서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교인들보다 성경도 많이 알아야 하고, 기도도 많이 해야 하며, 능력도 많아야 한다고 생각 함으로써 저열감과 초조감이 생깁니다. 목사님들도 교인들처럼 교회의 한 몸이기 때문에 우리도 한 부분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하는 것 이 여러분도 편하고, 교인들도 목사님을 돕기가 좋습니다. 없으면서도 있는 척 해서 목사님이 병안수도 해주고, 찬송도 인도하고, 돈계산도 다 하다 보 면 혼자서 지쳐 떨어지게 됩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모든 교인들 도 다 은사들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한 부분만 되면 됩니다. 목사의 책임은 운동선수의 코우치와 같습니다. 코우치는 선수와 함께 뛰지 않습니다. 앉아서 호루라기 하나만으로 선수들을 움직이게 합니다. 목사 혼자 서만 뛰면서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도 성장되지 않고 여러분은 지치게 됩니다. 코우치가 직접 뛰지 않는다고 해서 코우치가 소용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경기를 승리로 이끌면 그 영광은 코우치에게 돌아갑니다. 또 목사는 공장의 현장주임과 같습니다. 현장주임은 직접 망치질을 하지 않 고 직공들에게 일만 맡기고 시키면서 지도할 뿐입니다. 여러분, 목회자의 개념을 분명히 아십시오. 한국 교인들은 목사가 굶어서 눈이 쑥 들어가면 신 령한 목사로 여깁니다. 또 집에서 잠을 자는 것보다도 교회에서 잠을 자며 기도하면, 기도의 능력있는 목사라고 생각합니다. 또 낮에 쉬거나 집에서 낮잠 을 자면 큰일납니다. 낮에는 부지런히 심방을 다녀야 신령한 목사가 되는데, 그렇게 해서 얼마나 견딜 수 있겠습니까 이런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목회자들도 성도들과 똑같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에게 코우치나 현장감독으로서의 직분만 주셨습니다. 현장 감독이라고해도 그 밑에 더 기술좋은 기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감독이기 때문에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쓸데없는 부담을 갖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자신이 어떻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이 기도의 능력을 받아서 교인 들이 그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그것을 못하게 막고, 또 자기 밑에 있는 전도사가 자신보다 설교를 더 잘한다고 못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잘하는 대로 계속 시키면 됩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은 자신의 교회 전도사가 설교를 잘해서 교인들이 전 도사님 설교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더 많은 은혜 를 받으시오"하고 석달 동안을 새벽기도부터 시작해서 매일 설교를 시켰 습니다.
그런데 얼마 오래가지 못하고 두손 들었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더 이 상 재미가 없다고 목사님의 설교를 다시 듣고 싶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 느 것이든지 막지말고 계속 시켜보십시오. 우리는 현장감독이기 때문에 아 랫 사람들에게 일만 잘 시키면 내 자리는 영원히 보장됩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교인들이 받은 은 사를 잘 개발시켜서 일을 하게 하고 여러분들은 여유를 가지고 교인들 을 계속 성장시킬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은사의 용도를 보면
첫째, 성도를 유익하게 합니다. 은사를 가지 고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에 보통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후, 신이 나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교인들이 신나게 교회 생활을 하게 하는 방법은 은사로서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은사로 일을 시 키면 변화가 계속 일어납니다. 내가 누구에게 기도를 해주고, 누구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쳐서 상대방이 변화를 받게 되면 정말 살 맛이 납니다. 은혜는 목사님의 설교로 받는 것 이 아니라 자신이 일하면서 받아야 하며, 교회에 나오는 것은 그 받은 은 혜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로만 은혜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설교를 듣고난 후 에 교인들이 오늘은 보리밥이니, 보리떡이니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입을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은 초신자때 입니다. 오래 믿은 신 자는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나누어야 하며,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조회를 하면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것과 같습니다. 설교는 우리 교회가 해야할 일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를 듣고 큰 사명을 가지고 새롭게 방향을 전 해서 더 큰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 은사의 용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입니다. 은사를 통해 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6절에 '또 역사는 여러가 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 12절에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 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 습니다. 온전케 한다는 것은 부족한 것을 채워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사 와 교사를 세운 것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케 한다는 것은 일할 수 있도록 무장시킨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을 무장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들은 교회에 그냥 보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큰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들에게 받은 은사대로 무장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사와 교사의 할 일입니다. 이렇게 무장시킨 다음에 봉 사의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Minister의 의미는 목사로서 사역을 말하는데 목사만 Minister가 아니 라 모든 성도들은 다 Minister입니다. 여러분들이 혼자서만 기름부음을 받은 종이라고 목을 곧게 하고 어깨에 힘을 줄 수록 고생을 하게 됩니다. 목사와 교인은 똑같은 Minister이지만 나를 코우치로 뽑아 주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 들은 내 말을 듣고 일을 해야 하며, 자기들 혼자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만 다 른 것입니다. 그러나 '나만 거룩하게 기름부음을 받았으니,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며 목에 힘을 주게 되면, '기름부음을 받은 종이여, 우리 대신 열심히 금식하고 기도하시오. 우리는 세속에 속해서 약하니 거룩한 종께서 안수도 해주십시오' 라고 하므로 목사만 죽을 지경이 됩니다. 만일 안수기도를 해도 병이 안나으면 목사님의 영력이 약한 것이라고 원망 은 목사님이 듣게 됩니다. 이렇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Minister입니다. 각자가 목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들을 무장시키고 '당신은 이런 사역을 감당하시오'하며 자신의 Ministry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7)교인들은 일하면서 은혜받는다 여러분, 교회의 부흥을 목적으로 일하지 마십시오. 위와 같이 하면 교회의 부 흥은 부산물처럼 이루어지게 됩니다. 한가지 덧붙여 알아야 할 것은 교회에서 밥이나 하고, 목사님 구두나 옷을 사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사실 입니다. 이러한 Ministry는 없습니다. 교회의 Ministry는 영적인 사명을 가지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큰 일을 하려고 나온 교인들에게 쉬운 일을 시키거나 슬그머니 넘어가거나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크고 독특한 일을 성령의 나타나심을 통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넥타이나 사다 드리고 또 자가용을 사주었다고 해서 큰 일 을 한 것이 아닙니다. 돈있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 외에 자기 은사에 따라서 일을 해야 합니다. 목사님께 어떤 대접을 했다고 해서 사역의 책 임으로 부터 면제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회사 직원이 과장이나 사장에게 선 물을 했다고 해서 회사일을 안할 수 없지 않습니까 선물은 선물이고, 자신이 맡은 일을 해야 월급을 받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교인들에게 본래 맡기신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은사는 교회와 성도에게 다음과 같은 유익을 가져옵니다.
첫째, 은사는 각 성도가 머리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합니다. 에베소서 4 장 16절을 보십시오.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 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 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 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각 교회마다 목사님의 목회방침이 서면 그 밑에 여전도회, 성가대, 청년회, 학생회등 여러기관이 방침에 따라 움직입니다. 기관이 움직이면 교회 전체가 움직이게 됩니다. 따라서 목사가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기도하고 움직이여야 하므로 누구보다 힘든 것이 목사입니다. 자동차는 엔진이 움직여서 그 아래 바 퀴까지 연결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걸음을 걸을 때, 머리에 힘을 주어서 다리가 움직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그 움직이는 힘이 그 속에 다 들어가 있고 머리는 신경을 통해서 연결만 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속에 그 움직이는 힘이 있음을 믿으 시기 바랍니다. 각 사람이 모두 주님과 직접 연결된 영적인 힘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들여다 보아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에게 같은 일을 하도록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을 먼저 조직에 집어 넣 고 그 조직에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움직이는 힘의 방향 에 따라 조직을 만들어서 그 힘이 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 목회자의 Ministry입니다. 믿습니까 교인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나 혼자만 움직여서 그들에게 감화를 주려고 하거나, 또 아무도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고 나 혼자서만 새벽기도에 나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도들 속에는 모두 움직이는 힘이 있으며, 주님과 직접 통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 성도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세상 의 무거운 짐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 두 자기 속에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해야 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직장이 나 세상의 다른 짐때문에 마음이 눌리고, 주님의 일은 목사님이나 교회 제직들 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안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형식적 이고 외식적인 것을 제거해 버리면 그사람 속에서 부터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분출하게 됩니다. 그 힘을 모아서 교회가 움직일 수 있는 운동력으로 삼 아야 합니다. 만일 인간적인 수단이나 칭찬, 또는 포상이나 감투를 통해 교인들을 움직이 게 하다 보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부작용이 생기게 되 고 결국엔 목회자인 여러분이 세운 장로나 집사에게 발목을 잡히고 낭패를 당 하게 됩니다. 목회자인 내가 인간적인 재주를 피웠기 때문에 그들도 내게서 배운대로 인간적인 재주를 가지고 나의 발목을 잡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성령님께서 주신 은혜안에서 그 힘을 이용하면 결코 실패하지도 않 고, 쫓겨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기만 하면, 굳이 하나님 의 뜻이 아닌 줄 알면서도 억지로 무엇을 한다든가, 어떤 형식적인 쇼를 할 필 요가 없습니다. 두번째, 각 성도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나타내게 됩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것을 나타내게 됩니다. 세번째, 각 성도는 해야 할 사명을 갖게 됩니다. 할머니로부터 유치부 아동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없으며 모두 사명이 있습니다. '유 치부 아이들이 뭘 알고 할 수 있겠나, 그저 먹을 것이나 주고 놀게 하다가 보 내면 되지'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들도 역시 영적인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작은 인격체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유치부 아이들에 게 과자를 주거나 상을 주거나 하는 일이 없고 생일 잔치도 없습니다. 그들을 작은 일군으로 생각하고 십일조도 하게 하고, 필리핀 선교를 위한 선교 헌금도 하게 했습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먹을 것이나 주고, 레크레이션이나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군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영 적으로 구원해서 보내셨기 때문에 어릴때 부터 일군으로 키워야 합니다. 청년이나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놀러나 다니고, 끼리끼리 모여서 오락이 나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일군들이 모여서 일은 하지 않고 오락을 하는 공장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피가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네번째,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귀함을 덧입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2절에서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 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 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사람에게서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는 저열감입니다. 저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의식이 약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으로 부터 의식의 공급을 받지 못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속에 응어리가 생겨서 늘 짐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인생에서 자기 구실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른 사람의 짐이 되고 또 자신에게도 짐이 됩니다. 이러한 저열감이 있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훈련을 받지 못하므로 어디서도 저열감을 커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기도를 많이 하여 하나님께 병고치는 은사를 받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사람은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서 저열감이 커버되고 용기있게 사는 신나는 사람이 됩니다. 누가 무슨 말을 했을 때, 쉽게 토라지는 사람도 저열감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사를 받아서 필요한 사람이 되면 모든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섯번째, 각 성도는 서로 경쟁하거나 다투지 않게 됩니다. 서로 은사가 다 르기 때문에 누구와 경쟁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이 열심히 한다고 시기할 것 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사자들을 따라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여섯번째, 각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자기 일을 하게 됩니다. 교인들 은 일을 한 것 만큼 성령의 감화를 받게 되므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또 그만큼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이 생깁니다. 교회 돈으로 선물이나 사 주고 점심 사먹는데 쓰지 마십시오. 교회 돈은 주님의 돈이므로 선교를 하거나 구제하는 일에 써야 됩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일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교회는 풍성해 지고 교인들도 돈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집니다. 성령으로 움직 이는 사람은 교회 예산을 누가 어떻게 쓰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더 드릴까 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 산 때문에 싸우고 목사님은 이 와중에서 비굴해지는 일이 많습니다. 저희 교회는 돈을 바치는 사람의 이름도 안부르고, 칭찬도 안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 도 바칠 것은 계속 바칩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면 깨끗하고, 부작용도 없이 잘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일곱번째, 개인이나 교회에 어떤일이 생겨도 교인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각자 자기 일을 찾아 해결받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반드 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 문제를 흡수하느냐 더 큰 문제를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인간적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돈을 주고 점심을 사주고, 등을 두들겨 주어야 돌아 가는 사람은 목회자를 피곤하게 합니다. 직장생활이 피곤한 것은 돈때문에 움 직이기 때문입니다. (8)은사는 나를 유용한 사람이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를 통해서든지 그 문제가 반드시 해결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대해서 sensitive한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자신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미리 모든 것을 다 아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운동력을 가지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이 마귀보다 더 큽니다. 이 세상의 파괴적인 운동력이 아무리 클지라도 내 속과 우리 교회에 와 계신 성령님의 운동력이 더 크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는 것 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교인들에게 이 운동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동 력만 키워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적응할 수 있습니다. 여덟번째, 모든 교인이 다 일하게 되므로 지치거나 게으른 사람이 없게 됩니다. 게으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짐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사람이 없게 되고 또 실상 있다 해도 그 짐을 기쁘게 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음은 은사의 부작용에 대해서 살펴 보겠는데, 위에서 살펴본 은사의 좋은 점 들이 제대로 쓰이질 못한 것은 은사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오해때문입니다.
첫째, 자신의 은사를 남에게 강요할 때 부작용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목사님께서 말씀의 은사를 받았다면 다른 사람이 받은 병낫게 하는 은사나 방언 의 은사를 무시하고 자신처럼 말씀으로만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데서 문제가 생 깁니다. 목회자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목사님은 말씀의 은사를 받았고 사모님은 능력의 은사를 받았다고 합시다.
그런데 사모님이 남편인 목사를 보면 입만 가지고 말할 뿐, 힘도 없고 기도도 안하고 또 능력도 없다고 생각해서 남편을 은근히 무시합니다. 또 목사님의 입장에서 사모를 보면 머리에 든것도 없이 말도 잘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고 남편을 꼼짝못하게 하려고만 하니 '잘못 만났구나'생각하며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원수가 되어 극단적으로 이혼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목사님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고 사모님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늘 다툼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서 로의 은사가 다르기 때문이며 누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또 은사는 그 사람의 성품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성품에는 모두 장단 점이 있는데, 배우자를 만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성품과 반대되는 사람을 만납니다. 이것은 자신의 단점을 보충하고자 하는 본능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부간에도 외양이 서로 반대인 부부가 많습니다. 남편이 크면 부인은 작 고, 남자가 여위었으면 여자는 뚱뚱합니다.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점을 서로 보충하는 것입니다. 이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성격이 서로 맞지 않아서 이 혼을 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성격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을 한 것입니다. 부부간이나 교회안에서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인 사람이라고 이혼을 하든가 쫓아내게 되면 자신의 단점을 커버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인생 전체로 볼 때, 큰 손해입니다. 자동차의 악세레다와 브레이크는 정반대의 것이 서로 옆에 붙어 있습니다. 부 부간이나 교회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정반대이긴 하지만 함께 있기때문에 내가 못하는 것을 상대방이 하고, 또 상대방이 못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목회를 할때도 자신의 은사를 상대방에게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은사와 다르다고 상대방을 이단처럼 몰아서도 안됩니다. 대분분 의 사람들이 자기들과 조금만 반대가 되어도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 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은사가 있고 또 이것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은 사가 필요하며 그것을 포용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온전해 지지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상대방이 해줌으로 인하여 쉼을 얻게 되며, 또 상대방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내가 해결해 주기 때문에 내 자신도 유용한 사람이 됩니다. 두번째, 은사를 육신의 생각으로 과장할 때입니다. 성경말씀 골로새서 2장 18절 로 19절을 보면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는 그 본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본것은 이상, 비젼, 환상, 투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과장하게 되 면 예수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과장으로 끝나게 되고, 자칫 잘못하면 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마치 스위치와 같습니다. 내 의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늘 바라보면 하나님의 영이 흐르는 통로가 되지만, 내가 예수님을 제쳐놓고 자신을 과장하면 마귀가 역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성령님이 역사했다 할지라도 내 의식의 방향이 달라지면 마귀가 역 사하게 되어 성령으로 시작해서 마귀로 끝나게 됩니다. 이러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으로 과장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12장에서 자신이 입신하여 천국에 다녀온 것을 말 할 때 '내가'라고 하지 않고 '그 사람'이라고 지칭했습니다. '내가 내가'하며 자신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내 자신은 마귀주머니이기 때문에 나를 과장시키다 보면 성령의 역사를 거스리고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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