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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사람들 (살전4:17-18,골3:15-17)

본문

“감사하다”는 말은 언제나 그말에 상응하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는듯 합니다. 그래서 “무엇 무엇 때문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실로 긍정적인 현실적 조건은 자연스럽게 감사의 언어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누구를 향해서가 되었든 자신에게 주어진 어떠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 감사한다는 것은, 감사한 감정을 전한다는 것은 사람살이나 인간관계의 최소한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어떠한 일의 결과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만남의 관계”에 비중을 두고 있는 표현방식일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서로에게 좋은 결과물들을 가져오게 하고, 결국 그것이 상대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유발시키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고맙다”라든가,“감사하다”는 말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적인 인간관계”에는 어떠한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즉 언제나 어떠한 경우에도 기능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결국 부정적이고 참담한 인간관계적 조건에 다달았을 때는 전혀 다른 표현양식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적인 조건과는 무관하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수 있는가”의 문제에 관심을 두려 합니다. 달리말하여 오늘 본문의 경우에서 처럼 “모든일에 어떤 처지에서든지 항상 감사할 수 있는가”,“이러 저러한 조건을 저울질하지 않고도 감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 입니다. “무엇 무엇을 충족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감사한다”는 것은 이미 어떠한 한계를 전제하고 있고, 어떠한 의미에서는 진정한 감사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가 “야훼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다”라고 했을 때 이러한 사실은 더욱 분명해 집니다. 고난과 고통의 시절, 참담한 사건들 한복판에서 역설적으로 “감사”한다는 말은 그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고통당하시며 아파하셨다는 것에 대한 신앙고백적인 표현이며, 그속에서 “우리와 함께 일어나셨다”는 신앙고백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파라오의 손에서 벗어난 해방의 사건을 경험하였지만, 그들 에게 뒤따라 온 상황은 참담한 광야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조건이라는 것은 주림과 목마름의 경험 속에서 몸부림하였던 것과, 끝없는 방랑의 시절이 전부였습니다. 이러한 외적인 조건을 고려하여 본다면 “감사하다”는 말은 오히려 어색하기 이를데 없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있어서 한결같은 삶과 공동체의 기준은 야훼를 외적인 조건에 근거하여 평가하지 않고, 고통의 시점 조차도 함께하는 분이라는 고백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야훼께 감사”라는 그들의 기도법은 그들의 역사적 고난의 밭에서 일구어낸 “성숙한 용기”의 반영이었습니다. 이것은 학대받고 고통당하던 때와 척박하고 지루한 광야의 어려운 시절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풍요속에 담겨있는 고난의 전역사를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고통의 시절조차 야훼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하게 그들의 감사절기는 계절적인 것이기보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깊게 담고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무엇 무엇 때문에”라는 가시화된 외적인 조건에 근거한 조건반응적인 행위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한다는 것은 “온갖 삶 속에서, 온갖 역사 속에서 함께하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내가 지금 여기에 없지 않고 있다는 존재의 기쁨”을 시각화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감사를 편협한 조건으로 제한하는 일의 무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살아있음으로 하여 감사한다”는 말은 삶에 대한 성숙한 결단과 성숙한 확신 속에서 가능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이신 분이 사랑하는 까닭에 인간과 함께 더듬거리며 인간의 말을 하시고, 인간과 함께 고통당하시며 결국 인간과 함께 일어서며, 성숙한 역사적 용기를 공동체적으로 표현하게하신 것에 대하여 언제나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란 더 이상 어떤 조건에 대한 우리의 최소한의 호의적인 보상이란 말이 아닙니다. 즉 감사란 우리가 하나님의 행위를 관찰하여 이따금씩 끊어주는 우리의 “영수증”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조금 잃었을 때는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기적인 욕심에 안절부절이며, 불안해 합니다. 그러나 아예 크게 잃었을 때 오히려 욕심껏 행하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비로소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그래서 크게 잃었을 때, 역사적인 풍랑 속에서 오히려 감사할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기는가 봅니다. 오늘 우리의 질곡의 역사 속에서 조차 감사의 내용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되는 듯 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나눔의 현실 속에서 구체화 됩니다.
서로가 함께하며 공동체적인 기쁨을 느끼며 나누는 현실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 속에서, 그리고 역사 속에서 나눔을 실현할 때, 공동체적인 용기와 움직임을 경험할 때 여기에서 언제나 감사의 내용을 확보하게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불편한 것들을 넘어서게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끌어 줍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역경 속에서 이기고 다시 시작하는 힘을 가져다 줍니다. 만약 “어떠한 처지에서도 감사하라”는 말이 커다란 부담이나 불만을 가져온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조건반응적이며 얇팍하고 계산적인가를 증명하는 셈이될 것입니다. 조금도 손해보려고 하지않으며, 이기적인 범주에 갇혀 더 이상의 것을 받아들이거나, 삶을 나누지 않는 상황 속에서 “언제나 어떠한 처지에서도 감사”라는 말은 우스겟 소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심각하게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그 속에 담겨있는 용기와 확신을 우리의 삶과 공동체에 담아내야 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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