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선을 좇으라 (살전5:15)

본문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만사가 반드시 정리 (正理)로 돌아간다는 뜻으로서, 선은 반드시 악을 지배하고 승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선에 속한 분으로서 모든 일을 선 속에 역사하시며 그의 자녀들에게도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롬 12:9).그래서 마음이 선한 사람은 마음 문을 쉽게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얻고 하 늘나라 시민권을 소유하여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선을 좇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 복음을 무시하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 입니다. 따라서 모든 행함이 선 가운데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하시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을 좇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 습니다.
1.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살펴볼 때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는 그 결과가 확연하게 달랐 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8절부터 20절까지를 보면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 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 되 이 사람아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 보고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라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며 서로 의논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많 은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께서 베풀어 준신 기적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악한 사람들은 오히려 비난하고 모독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놀라운 이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이나 대제사장들은 이로 인해 더욱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 할 뿐만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려 했으니 그들의 행동에는 선악간에 커다 란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께서 살려 주셨 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죽임을 당할 쩐하였으니 그들의 악독이 하늘을 찌르지 않습니까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그리고 대제사장 같은 종교 지 도자들은 그 마음에 시기와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자들이었기데 예수님 께서도 성경 곳곳에 화 있을진저 하시며 매우 안타까워 하셨지요. 그러며 이번에는 구약 성경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로 할까요 열왕기상 3장 16절 이하를 보면 일천번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솔로몬이 그 소원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뛰어난 지혜를 받은 것이 확인되는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3일 차이로 아이를 낳은 두 창기의 아 이에 관한 사건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집에 사는데 어느 날 한 여인이 잠을 자다가 잘못하여 아 이를 깔아 죽게 하고는 다른 여인의 아이와 몰래 바꿔치기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진짜 어미라고 주장하였으므로서로 싸움이 붙어 마침내 솔로몬 왕 앞에 나와 진위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칼을 가져와 그 산 아이를 둘로 갈라서 반씩 나누어 주라는 판결을 내립니다. 솔로몬은 아기를 사랑하는 어미의 마음을 간파앴기 때문이지요. 그러자 진짜 어미 되는 여인은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 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였지만 다른 여인은 내 것도 되게 말 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고 냉정히 말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어미의 입장에서는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고 그 자녀를죽음에서 구해야 했기에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반대로 악한 여인은 악한 말을 뱉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진짜 어미를 쉽게 구분 할 수 있었지요. 이와 같이 선에 속한 것과 악에 속한 것은 같은 일을 당했을지라도 현 저한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각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이 고 세상의 돌아가는 일들을 보아도 선에 속한 사람의 행동과 악에 속한 사람들의 행동은 이렇게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2. 악을 악으로 대한 사람들의 결과 사람이 어떤 일을 당하면 그것을 악으로 대응하는 경우와 선으로 갚는 경우가 있는데 악한 사람들은 악으로 악을 대항하여 결국 서로 망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에 관한 일화입니다. 연산이 포학함을 드러내게 된 것은 자신의 생모인 폐비 윤씨에 대한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알고부터였습니다. 폐비 윤씨가 쫓겨난 지 25년째 되던 어느 날, 폐비 윤씨의 어머니가 외손자인 연산군에게 나아와 그 날을 상기하며 무슨 일로 어 떻게 쫓겨났는지를 고해 바칩니다. 이에 연산은 흥분하여 그 당시 사건 에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색출하고 처형하였습니다. 먼저는 선왕의 후궁들을 대역죄인으로 몰아서 직접 몽둥이를 휘둘러 타 살하고 그들의 아들인 안양군과 봉양군은 곤장 18대씩을 때려 족쇄를 채운 채 변방으로 보냈으며, 단순히 선왕의 어명에 따라 사약을 받들고 나갔던 사람에게까지 사약을 내리고 괸련된 신하들을 모두 잡아 들이게 해서 서위 26관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벌을 내립니다. 연산은 왕으로서 자기 사사로운 감정을 이기지 못하므로 이성을 잃은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권세를 이용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수없이 죽이며 악을 악으로 갚 았던 것입니다. 이런 개인적인 경우 외에도 자기가 속한 단체에 불이익을 끼친 사람이 나 상대편에 대해서 악으로 대응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정 치적인 싸움의 대부분은 이런 악한 마음에서 발생되는데 조선시대의 당 쟁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정치를 보아도 자신의 소속 정당에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주면 이내 반격 자세를 취하 고 성명을 내며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렇게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여서 앙갚음을 하므로 그 결말이 좋지 못 했던 한 인물을 성경에서 들어보겠습니다. 오랫동안 다윗 가까이 있언 군장 요압입니다. 원래 그는 다윗에게 가장 신임을 받았으며 생명을 바 쳐 다윗을 전쟁터에서 지키고 승리로 이끌었던 아주 위대한 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3장을 보면 요압이 아브넬을 죽이는 사건이 나 옵니다. 아브넬은 다윗의 적이었지만 화평하기 원하여 다윗에게 다가와 항복할 의사를 밝히자 다윗은 화친하러 온 무리들에게 자치까지 베풀고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평안히 돌려 보냅니다.
그런데 요압이 몰래 그 뒤를 따라가서 아브넬을 죽였으니, 이는 전날 아브넬이 전쟁에서 자기 동생 아사헬을 죽인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습니다.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인 이유는 전쟁터에서 사울의 군사들과 다윗 의 군사들이 싸움이 붙었을 때 아사헬에게 자기를 쫓지 말라고 몇 번이 나 권고하였지만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에 악함이 있던 요압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며, 다윗이 죽은 후에 솔로몬을 대신하여 아도니아를 왕으로 세우는 데 가 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섬겼던 다윗의아들 솔로몬을 섬 기는 것이 당연한데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배신하였던 것입니다. 악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학한 사람은 믿을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 주는 것과 같이 때문입니다.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자기를 상하게 하며 마침내는 사망의 길로 갈 뿐인 것입니다. 본시 그 마음이 악하고 개조되지 않으니 상황만 제공된 다면 중심의 악이 발동하여 배신하는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 압이 다윗 당시에는 감히 배신하거나 악을 발하지 못하였지만 다윗이 죽고나자 힘이 그만큼 연약해진 솔로몬을 따르지 않고 돌아섰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고 하 셨습니다. 악이 그 마음 안에 있으면 악한 만큼 악을 내게 되므로 스스 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배신하며, 간음하는 등, 이 렇게 악을 행하는 일은 자신이나 이웃을 고통스럽고 가슴 아프게 할 뿐 이요, 백해 무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선으로 악을 이기며 오직 선을 쫓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선으로 악을 이긴 사람들의 결과 본문인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5절을 보면 삼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 선으로 악을 이기면 항상 선을 좇게 되니 영혼이 잘되는 축북이 임하게 되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상대가 악을 행하였지만 선으로 대응한 예들을 살펴보기로 하 겠습니다. 조선시대 선조 임금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파 싸움에만 정신을 팔고 있던 조정의 대신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 하였습니다. 그나마 군장으로 파견된 이들은 하나같이 패전의 소식만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순신 장군은 전라 좌도 수군절도사로서 왜적이 아예 뭍 에 발을 딛지 못하도록 원천봉쇄를 하여 당황케 만들었고 그들이 세웠 던 계획까지도 혼란케 만들었습니다. 이순신은 죄수영에 부임하자 군비 확충에 힘썼고 혼자서 거북선의 연구제작에 골몰하여 마침내 세계 최 초의 철갑선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옥포에서부터 시작하여 한산대첩 등 계속 승리를 거두자 그 공로가 인정되어 최초로 삼도 수군통제사라는 직분까지 받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훈련을 강화하고 군비확충과 난민구제, 산업장려 등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자 이순신은 원균을 비롯한 악한 무리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사형을 받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로운 이들의 변호로 권율의 막하에 백의종군을 합니다. 그 동안 숱하게 고문을 당하고 곤욕 을 처렀지만 자기를 모함한 원균이 참패를 당하자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이 됩니다. 이 때는 거북선도 없어지고 함선은 12척뿐이었 으며 병력 또한 빈약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랫도 그 병력을 거느 리고는 명량에서 133척의 적선을 맞아 용감히 싸웠고, 그 이듬해에는 노량에서 오백여 척의 적선을 맞아 명나라와 연합하여 싸우다가 혼전중 적군의 유탄을 맞아 전사했습니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은 애매히 고난을 받을지라도 투철한 조국애는 조금 도 변함이 었었습니다. 또한 뛰어난 전략으로 나라를 지켰던 훌륭한 정신으로 인해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추앙받는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길이 남게 된 것입니다. 그는 나라와 임금을 위하는 마음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악한 무리의 모함으로 진위를 알아보지도 않은 채 백의 종군시킨 왕에 대해서도 조금도 서운해 하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도 선으로 악을 이기고 축복받은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잇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일한 대가로 품삯을 주겠다고 약속 한 삼촌이 약속을 번번이 지키지 않았어도 변치 않는 성실함으로 봉사 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창 29장). 또한 요셉은 자기를 미워하고 시기하여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악으로 갚지 아 니하고 오히려 선으로 구원의 은총을 베풀었습니다(창 25장). 다윗은 자기를 시기하여 원수처럼 여기며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울을 오히려 죽 일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자기가 앞서 행치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만 의뢰했습니다(삼사 24:4-7).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트집을 잡아 올무를 걸려고 하는 악한 무리들을 향해서 항상 감동할 만한 선한 진리의 가르침으로 깨우침을 주셨으며 그들에게 친히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무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중보기도를 올렸던 것입니다.
4. 항상 선을 좇아 행하려면 그러면 우리가 모든 일에 항상 선을 좇아 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을 낸다 하였으니 먼저, 열심히 기도하 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힘입어 악이 없는 선한 마음으로 개간해야 됩니다. 미움, 시기, 질투 등 악한 마음이 모두 뽑혀진 옥토와 같은 깨 끗한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릇 판단하면 공정하지 못할 수가 있으니 정 과 욕심은 다 십자가에 봇박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 29절 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고 말슴하신 대로 무슨 일을 행하든지 항상 선 가운데 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선을 좇아 행함에 있어서 부지런히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고 어느 때나 지속적인 선행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 게 되고 중도 하차해 버리는 것은 그 마음 중심에 자기가 선을 행한 것 에 대한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선이 아니요, 거기에 대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는 힘을 잃으므 로 지속적인 선을 행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불쌍한 이웃을 위해 구제하거나 받은 바 은혜에 보답하고자 섬기는 것 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누구를 도와 주었다면 한두 번에서 그치지 말 고 그 사람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변함없이 도와 주어야 온전한 구제가 됩니다. 또한 상대에게 은혜를 한 번 받은 적이 있을 때 그 사람 을 한 번 섬겼다고 해서 내가 받은 은혜를 다 갚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누군가 나를 도와 주어서 그 은혜를 통해 소생할 수 있 었다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 섬길 수 있는 한은 끝까지 섬기는 것이 도 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올바른 선을 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아무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을 뿐 아니라 낙심치 말고 늘 베풀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다거나 내 유익을 좇아서 하는 것 이 아니라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자라면 그러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 꺼이 선을 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보다 더한 아픔의 길을 걸으셨스며 더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주님의 일꾼은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며 선을 행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선으로 가득 찬 사람은 무엇을 얻기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까지 바치고 헌신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기 때 무입니다. 사람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진정 훤하시는 것은 항상 선을 좇아 모든 것을 선으로 생각 하고, 선으로 분별하여 선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 앞에 크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3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