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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바울의 감사 (살전3:1-4)

본문

저 구라파의 관문인 마게도니아는 정복의 대왕 알렉산더(Alexander)를 울려버린 곳이었습니다. 그가 이곳을 정복한 이후 그의 부하들로부터 이젠 정복할 땅이 없다는 보고를 받은 대왕은 주저앉아 울면서 세계가 이렇게 좁으냐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의 세계를 꿈꾸었던 최초의 세계주의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후 30대 초반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는 마게도니아에 도착하여 그 부왕의 이름 필립을 따라 '빌립보'라 도시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부매(異父妹=half-sister)인 처의 이름을 따서 또 하나의 도시에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데살로니가로 명명된 것이었습니다. 원래 이 도시의 최초 이름은 텔마이(Thermai)였습니다. 온천이 솟고 있는 텔마이만에 붙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Xerxes)왕이 이곳을 침입했을 때는 해군의 본거지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시대까지도 이곳은 세계에서 유명한 조선소가 있었습니다. B.C. 315년에 카산더(Cassander)왕이 이 시를 재건하였는데, 알렉산더 대왕 때 데살로니가로 명명되어진 것입니다. 당시 이 데살로니가는 유대인을 포함한 헬라인, 로마인, 그 외 라틴민족들로 혼합된 국제성을 띤 도시였고, 이곳이 마게도니아 제일의 도시임은 물론이고, 남으로 그리스 전 지역, 동으로 소아시아, 북서로는 마게도니아와 로마지역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새지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데살로니가에 온 날이야말로 그리스도교가 세계 종교에로의 문을 여는 놀라운 계기가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중 빌립보를 떠나 실라와 디모데를 데리고 암비볼리(Amphipolis)와 아볼로니아(Apollonia)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할 때부터였습니다. 아마 주후 50152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관례를 따라 그곳에 있는 유대의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을 상대하여 3주간을 전도했습니다(행17:1-10). 그 3주간에 유대인중에서와 특별히 많은 이방인 중에서 예수 믿는 신자가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이 일은 유대주의자들을 격동시켰고, 바울은 목숨을 걸고 베뢰아로 도망을 해야만 했습니다. 베뢰아에서도 똑같은 복음의 폭풍이 일어났고, 또 유대주의자들의 반대를 받게 되었습니다(행17:10-12).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와 실라를 베뢰아에 남겨두고 아덴으로 옮겨왔습니다. 그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대한 불안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디모데가 아덴에 도착했습니다. 그로부터 데살로니가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후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영감의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본문에서 우리는 그의 편지 서두에 나타난 전도자들의 감사를 보게 됩니다. 1장 2절에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너희를 말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우리가'라고 함은 바울과 함께 있는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가리킵니다. 전도자들이 데살로니가 교인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데살로니가 교인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 것입니다. "말한다"라고 함은 '기도 속에서 기억이 나서 하나님께 아뢰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한 바울과 전도자들의 감사는 데살로니가 교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 때문에 전도자들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가 폭발하고, 기도할 때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전도자들의 기도 속에 기억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I. 믿음의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1장 3절에 '믿음의 역사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직역하면 '믿음의 일'을 가리킵니다. 믿음의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참된 믿음이 생산하는 선한 역사(役事)를 가리킵니다. 언제나 참된 믿음은 놀라운 세 가지 결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믿음의 결국은 의롭게 되어(갈 2:6) 구원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벧전 1:9). 구원은 믿음에서 얻게 됩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산다고 하였습니다(롬 1:17).
둘째는, 믿음에서 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5장 16절에 나타난 '.착한 행실 입니다. 생명있는 믿음, 구원받은 믿음에는 필수적으로 역사(役事), 곧 '일'이 따라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밝힌대로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는 비유적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마 7:17).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위가 따르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약 2:17). 데살로니가 교회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확실한 증거는 저들의 믿음에는 '역사'(役事), 곧 일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하는데는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채찍이 무서워서 일을 합니다. 노예들의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수(삯)를 목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엄격한 의무감에서 일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명예를 위하여, 자신의 가정을 위하여, 아니면 여러 가지 경우들에서 일하는 동기를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인간 자신을 목적하는 모든 인생의 사역(事役)을 가리켜 썩는 양식을 위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경우는 '믿음' 때문에 일했습니다. '믿음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요 6:27).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헌신을 가리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바로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에 이르러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믿음의 역사'가 있었다는 말은 구원의 확신이 있었고, 그 구원의 확신에서 나오는 헌신이 있었고, 그 결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목적적 삶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전도자들의 마음에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고, 그것이 마침내 하나님께 감사로 불타오르게 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II. 사랑의 수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1장 3절은 말합니다. '.사랑의 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수고'란 말은 '자르다', '채찍으로 때리다', '애쓰다'를 의미하는 동사 코프토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단순한 일과 다른 의미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노력이 기울여진 고생'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대단한 영의 체험을 하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사랑의 수고였습니다. 저들은 그리스도 사랑, 곧 아가페를 나누는데 자신의 육체를 자르고, 채찍으로 맞는 고통의 아픔이 따랐다고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아가페 사랑이 지닌 특질이요, 멋입니다. 아가페 사랑만이 가진 색깔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릅니다.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얼마나 더 어려운가하는 사실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푼 아가페 사랑에서 나타났습니다. 십자가의 자기 희생을 통하여만이 그 사랑 전달이 가능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웃들에게 아가페 사랑을 나누는 일에 뼈아픈 수고를 감수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이름을 주는 전도입니다. 희생하고 봉사하는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2절에 보면 마게도니아 교회들이 환란과 궁핍 가운데도 풍성한 연보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데살로니가 교회도 들어갑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죽음에 이르는 수고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의 수고가 기도하는 전도자들의 마음에 기억으로 떠올랐고, 그것이 마침내 하나님께 감사의 불을 지르게 된 것입니다.
III. 소망의 인내라고 하였습니다. 1장 3절은 또 말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가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무엇인가 그것은 주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미래적 기대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산 소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서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언급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1:10, 2:19, 3:13, 4:14-18). 저들은 너무 재림 소망에 불이 타서, 그만 세상일을 등한히 하는 연약에까지 빠지는 일 때문에 사도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주님의 재림 소망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인내하고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인내'란 무거운 압력에 눌려 '아래서 버티면서 나아가는' 고통스러운 진행을 가리킵니다. 결코 눌리는 압력 때문에 죽거나, 망할 줄 모르고, 버티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불사조적 용맹을 가리킵니다. 알렉산더(Alexander)대왕이 출정 준비를 하는 중에 자기와 함께 동맹한 친구들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골고루 분배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이것을 보고 있던 누군가가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가지려고 합니까" 라고 했습니다. 그 때 대왕은 웃으면서 답하기를 "오! 나는 나의 희망을 가지고 있소"라고 했습니다. 아마 그가 그들에게 던져 준 희망은 전쟁에서의 승리! 그리고 하나의 세계였을 것입니다. 바로 정복자의 꿈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좋은 희망을 가졌을 때 인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밤이 아니고 새벽을 향하여 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기가 아닌 저기를 향하는 자이고, 오늘이 아닌 내일을 찾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일들은 힘이 아니라 인내로 성취됩니다. 하루 세 시간을 힘차게 걷는 사람은 7년이 지나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과 같은 거리를 걷게 됩니다. 하물며 새 하늘 새 땅의 미래를 향하여 걷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걸음이겠습니까 사랑하는 경향의 성도 여러분! 웰링톤 공작의 요리사가 사표를 내고 그를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그렇게 이름있고, 보수 좋은 직장을 스스로 떠났느냐"고 했습니다. 그 때 그 요리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식사가 좋아도 공작은 칭찬하지 아니하고, 식사가 나빠도 공작은 나를 꾸중하거나 비난하지 아니하였다. 나는 애쓰는 보람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 공작은 자기의 요리사에 대해서 관심이 떠나버렸다는 증거라고 그 요리사는 생각했기 대문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자신의 존재의미와 수고의 보람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살맛이 없어지고, 일할 맛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오늘 이 경향의 목장을 담임하고 있는 저나, 저와 함께 이 목장에서 사역하는 여러 전도자들은 오늘 경향인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임을 저희 전도자들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1:1). 이것은 오늘 우리 교회가 살아있고, 행동하고, 존재하는 영의 고장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든 인생이 공기가운데 둘러싸여 살고 있듯이 교회는 폭군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살고 있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피차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 영감속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이고 또 저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임을 안다고 하였듯이(1:4), 오늘 이 목장에서 사역하는 저와 모든 동역자들은 경향의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또 하나님의 영예로운 선택을 받은 자들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 큰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십니까 바로 경향인된 여러분에게는 '믿음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의 인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지난 1994년 9월에 우리 교회의 소원인 새 성전 건축의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1995년 7월 17일에 역사적인 교회당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1년하고 3개월, 말하자면 15개월 동안 새 성전 사역에 우리 생의 최고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이 목장에서 동역하는 모든 전도자들은 저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처럼,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경향인들에게 있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때문입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새 성전 건축의 위대한 자원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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