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잘 사는 사람들 (잠3:1-10골3:12-17)

본문

사람들의 소원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좀 더 잘 살고자 하는 것이다. 플 라톤 같은 위대한 사상가도 사람이 살되 잘 살지 못한다면 어찌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가 사람들마다 다르다. 그의 환경이나 교육수준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성서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세속적인 차원에서아무리 행복해 보여도 성서적의 의미에서 그릇되면 그것을 일컬어 행복한삶이라 말할 수 없다.
(1) 사람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두 말 할것 없이 그것은생명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있겠느냐"(마태 16:26)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0:10)고 말씀하셨다. 생명은 하나 밖에 없다. 그래서 귀중한 것이다. 재물은 잃었다가도 다시 찾을 수 있다. 권세도 잃었다가도 다시 복권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은한번 잃으면 그것으로 끝나버린다. 생명은 도대체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신성하기 조차 한 것이다. 모든 것은사람이 만들 수 있지만 아직까지 생명만은 사람이 만들지 못한다. 이 소중한 생명을 유지하는 길이 무엇일까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있기를 빕니다"(골로새 3:16) 사도 바울의 신앙에 의하면 사람이 풍성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길은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 예언자 이사야의 경우에도 같은 경험이었다.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떨어지되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이사야 40:6)이사야가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할 때는 이스라엘이 바벧론에서 해방의 날을기다릴 때였다. 귀국하여 독립된 조국을 재건할 때 그들에게 먼저 있어야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것이다. 예수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옛날 작은 나라 이스라엘 땅에서 광야에 5천명의 장년들이 모여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그의 인기와 그의 위대함을 가늠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께서 병든 자를 고치며 허기진 사람에게 기적적인 방법으로 풍성한 떡으로 만족케할 때의 일이었다. 정작 하나님 나라의 선교에 주력하며 인간구원의 선교는 십자가의 길이라는설교에 주력하자 그 숫한 사람들이 바다의 썰물처럼 떠나가 버렸다. 예수는 주위에 남은 몇사람의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께 영생의 말씀이 계신데 저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한 6:68)사람들은 교회에 대해 여러가지 비평을 가하고 있다. 거의가 부정적인 평가들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이와 같은 비판을 받을 만한 정신적 위기상황에 놓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의한 권력 앞에서는 벙어리귀신에 사로잡힌 자와 같았고, 부(부)와 영화의 유혹 앞에서는 악마와도 함 께 노래하며 춤을 쳤던 것도 사실이었다. 토마스 엘리옷의 말처럼 그런부정적인 비판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 가는 까닭이 무엇일까 "교회에서는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한 말씀이 아직도 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아들아, 내 가르침을 잊지 말고 내 훈계를 마음에 간직하여라 그러면 너는 오래 살고 날이 갈수록 행복을 누리게 된다"(잠언 3:1-2) 솔로몬의 교훈이지만 이것도 성령의 영감으로 된 성서 속의 말씀임을상기할 필요가 있다.
(2) 사람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존엄성"이다. 인격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없다면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은 도리어 웃음거리가 되고 침뱉음을 받을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에 열을 쏟아 헌신했다. 시골을 다니며 민정을 살피는데 성을 다했다.
그런데 그가 놀라운 충격을 받았다. 시골 소년들이 그를 환영하면서 "박정희, 박정희"하며 대통령의 이름을 친구 이름 부르듯 하더라는 것이다. 어른 공경할 줄 모르는 잘못된 교육을 한탄한 일이 있었다. 서구사회에서는 별 문제될 것 없지만 충효(충효)사상을 시정의 목표로 삼았던 박 대통령으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고 참담한 낭패감을 느꼈던 것이다. "많은 재물 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잠언 22:1)사람은 자기위신을지킬 수 있어야 한다. 위신(위신)을 지키는 길이 무엇일까 엄한 법으로 되는 것도 아니요, 철옹성 같은 권세로 되는 것도 아니다. "성실하게 신의를 지켜라 이것을 네 목에 걸고 네 마음 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그래야 너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기림을 받는다"(잠언 3:3-,공동번역)신의(신의)를잃어 버린 권세는 사람들의 불신과 저주를 받는다. 신의를 잃어 버린 아버지는 아들에게 인격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버지 따로, 아들 따로 행동하게 된다. 신의를 잃은 선생은 학생들에게 침뱉음을당한다. 신의를 잃은 목사는 양무리들에게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이리로거부된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신고(신고)가 무엇인가 신의의 상실이다. 통일정책을 비롯하여 민생문제에 이르기까지 거의가 그 정책에 전적인신뢰감을 가지고 따르지 않는다. 민주화를 위하여 싸우던 정치지도자들도국민적인 신뢰를 받지 못한다. 그들은 국민에게 희망이 아니라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귀찮은 존재로 전락되고 말았다. 신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기성체제를 지키는데 매우 온건하고 보수적이다. 그것자체는 건전한 사고요 자세이다. 그러나 비판세력을 보는 시각은 매우 왜곡되어 있다. 비판세력이란 힘이 없는 집단이요 양심세력이다. 힘없는 사람의마음은 거듭되는 패배와 좌절로 인하여 한을 품게 마련이다. 아버지 곁을떠난
둘째 아들을 맞아들인 아버지의 사랑을 설교하는 목사, 장로들이 돌아온 아들을 그 아버지의 사랑으로 맞아들이려고 문간에 서서 기다리는 아량과 관용과 인내심은 갖추지 못한다. 우리들은 우리의 망나니 아들 딸들의 탈선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다. 될 수 있는대로 그 결점을 숨기려 하고 그 동기와 과정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그 아들 딸들을 위해 밤낮으로 눈물로 기도하며 그들이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부끄럽게도 남의아들 딸들의 탈선이나 반항적 행위에 대해서는 있는 말, 없는 말까지 더보태서 비방하고 들추어 내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실상이다. 이것은 신앙적인 자세도 아니고 인간으로서의 바른 자세도 아니다. 이 점을 회개하지않으면 교회는 아무에게도 존경받지 못하며 신뢰받지 못한다.
(3) 인간의 소원이 무엇일까 부(부)의 향유(향유)이다. 현대인은 부를행복의 척도로 삼고 있다. 그것이 결코 죄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로서는 부의 향유를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적 기준이 있다.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그분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십시오"(골로새 3:17)"네 소유를 바치고 땅에서 난 첫 열매를 드려 야훼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네 곳간이 가득차고 넘치리라"(잠언 3:9-10)성서의 교훈에 의하면 부는 감사와 봉헌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축복하는 결과라는 것이다. 바다 모래 가지고 신도시건설에 참여함으로써부를 획득할 수도 있다. 페놀방출로 낙동강을 오염시켜 가면서도 부를 취득하고 축적할 수도 있다. 권력을 힘입어 엄청난 부를 쌓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죄악의 열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열매이지 결코 허락받은 삶을 행복하게 하는 부는 되지 못한다. 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위대한 역사적 사건은 하나님께 대한 봉헌과 깊은 관련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아브라함의 "여호와이레", 이것은 인간의종교사에 있어 위대한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사랑하는 외아들을 바침으로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존재를 재발견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빼앗아 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앞서서 모든 일을 준비하시며 진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하나님은 은총의 존재이시지만 그 은총은 과거의 허물을 용서하시는 은총이기도 하고 모든 인간만사를 미리 준비하시며 선행하고 계신 은총이라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축복이 바로 이와 같은 근거에서 새로운 것이요 위대한 것이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에게 보낸 예수의 복음은 다음과 같다. "온 세상 어디에서든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알려져서 사람들이 저를 기억하게 되리라"(마가 14:9)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3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