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수 있는 사람 (골3:1-6)
본문
감사는 모든 일반도덕과 생활철학의 기초가 되며 행복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씨세로는 "감사하는 마음는 가장 위대한 덕이 될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덕의 부모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인격의 도야와 수양이 여기에서 부터 출발되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은 신앙의 극치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높이 펴서 창공을 주름 잡는 것처럼 감사는 높은 차원에서 하늘나라를 향해 훨훨 날아가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식"이라고 했으며, 루터는 "마귀의 세계에만 감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인생이란 감사해야할 일과 원망해야 할 일이 엉켜져 있는 암담한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혹한 일을 당한 사람 이거나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에게 또는 병고로 시달리는 사람앞에 감사하라고 하면 어처구니 없는 넉두리 같이 들릴것입니다. 추수 소출이 풍성함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소출이 적으지면 원망할 수 밖 에 없습니다. 또는 몸이 건강함으로 감사한다면 몸이 약해질때는 원망하고 말것입니다. 추수 감사절은 곡식을 거둠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1620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던 청교들이 추수의 기쁨과 그 감격을 억제하지 못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와 축제를 성대히 베풀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출애굽 이후에 맥추절과 수장절 을 지키라고 명령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수 때문에 > 감사한다면 불신자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추수때에 감사한다는 것은 이교도나 불신세계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만 해도 북방에 있던 부여는 12월에 감사절을 영고라 하여 지 켰고, 고구려에서는 10월 동맹이라 했으며, 신라에서는 불그쉬라 해 서 감사절기를 지켰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감사의 조건이 있을때 지겼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 감사한다는 것은 평범한것 같으나 실상은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누구나 다할 수 있는 것 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17정11절에는 "열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와서 다 깨끗함을 받았지만 그 중에 단 한사람만이 감사 했던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중심해서 "진실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인가"를 말씀을 드리면 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입니다(1절상) 여기"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다"는 것은 골로새서 2:20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전재로 하는 말씀으로서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신비적 관계에서 연합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진정한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 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1)영적으로 중생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다 고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 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1:21절에서 "거듭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한다"고 했 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된 사람만 이 할 수 있습니다. 믿지않는 불신자들은 범사에 형통하면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려 운 일을 닥치면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항상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갔혔을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갔 혔는데 무엇이 감사합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옥중에서도 감사 할 수 있었 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2)부활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2)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자 말자, 예수님 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도 이미 죽었고 그가 부활하실 때 함 께 살아서 생명의 연합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생명은 영원히 사는 생명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들은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서에 의하면 신자들이 사형장에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기 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2.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2절) 성도의 삶이란 이 땅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내세가 준비된 삶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것만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땅에다가 모든 기대를 걸지 않아야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임을 깨닫는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땅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이 목이 갈하여 바닷물을 마시고 마셔도 다시 갈한 것 처름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세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현실에 아무것이 없으도 감사 할 수 있습니다. 하바국 선지자는 "내 밭에 소출이 없으도 " 감사하였습니다. 영 국에 유명한 설교가 메투헨리가 하루는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가진돈과 소지품을 다 뼁앗기고, 뿐만아니라 그들에게 많은 매를 맞아았다고 합니다. 거의 죽게된 몸으로 집에 돌아왔서, 그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가 예수를 믿고 저들과 같이 강도가 되지 않는 것을 감사하며, 물질을 일었으나, 생명을 잃지않는 것을 감사하며, 또한 이러한 강도가 없는 천국에 들어가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세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고난이 장차받을 상금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 처름 상급으로 가득차 있는 하늘 나라를 바라본자들 만이 이 땅에 어떠한 삶이라도 오히려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만족이 없습니다. 왜야하 면 이땅은 만족이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의 탐심을 버리는 자라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5절) 여기 "땅에 있는 지체"란 인간의 부폐한 성품의 각양작용을 말하는 것이며 "죽이라"는 것은 악한 성품의 활동이 아주 죽은 것 처름 영원히 정지시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땅에 것들을 즐기어 하나님을 떠 나게 하는 죄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체의 소욕은 마치 강물이 날마다 흘러도 바다를 체우지 못하고,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듯이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사람의 탐심은 많은 고통을 부르는 나팔"이라 고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 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탐심을 버리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탐심을 가진자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으 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가 되어서 종교적인 죄가 된 다고 했습니다. "탐심"이란 물질을 추구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위치 에 올려 놓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탐심때문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간은 외투한벌 과 금덩어리에 탐이나 숨김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 전투에 서 패배하였고 자신과 가족은 아골 꼴짜기에서 죽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은삼십이 탐이나서 주님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머리 둘곳 하나 없어도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감사를 생각할 때
1)하나님의 비밀을 어린아이들에 게 나타내심을 감사했습니다(마11:25)
2)기도를 들어주심을 감사했 습니다(요11:41)
3)적은 수입을 가지고도 감사했습니다(마14:19)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이요.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요 육체의 소욕 을 죽이고 현세에서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1.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입니다(1절상) 여기"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다"는 것은 골로새서 2:20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을 전재로 하는 말씀으로서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신비적 관계에서 연합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진정한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 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1)영적으로 중생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다 고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 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1:21절에서 "거듭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한다"고 했 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중생된 사람만 이 할 수 있습니다. 믿지않는 불신자들은 범사에 형통하면 감사합니다. 그러나 어려 운 일을 닥치면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항상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갔혔을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갔 혔는데 무엇이 감사합니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옥중에서도 감사 할 수 있었 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2)부활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2)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자 말자, 예수님 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리도 이미 죽었고 그가 부활하실 때 함 께 살아서 생명의 연합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생명은 영원히 사는 생명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들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들은 항상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서에 의하면 신자들이 사형장에 사자의 밥이 되면서도 기 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2.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2절) 성도의 삶이란 이 땅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내세가 준비된 삶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것만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땅에다가 모든 기대를 걸지 않아야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임을 깨닫는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땅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마치 바다에 빠진 사람이 목이 갈하여 바닷물을 마시고 마셔도 다시 갈한 것 처름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세를 위하여 사는 사람은 현실에 아무것이 없으도 감사 할 수 있습니다. 하바국 선지자는 "내 밭에 소출이 없으도 " 감사하였습니다. 영 국에 유명한 설교가 메투헨리가 하루는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가진돈과 소지품을 다 뼁앗기고, 뿐만아니라 그들에게 많은 매를 맞아았다고 합니다. 거의 죽게된 몸으로 집에 돌아왔서, 그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가 예수를 믿고 저들과 같이 강도가 되지 않는 것을 감사하며, 물질을 일었으나, 생명을 잃지않는 것을 감사하며, 또한 이러한 강도가 없는 천국에 들어가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세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고난이 장차받을 상금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 처름 상급으로 가득차 있는 하늘 나라를 바라본자들 만이 이 땅에 어떠한 삶이라도 오히려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만족이 없습니다. 왜야하 면 이땅은 만족이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의 탐심을 버리는 자라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5절) 여기 "땅에 있는 지체"란 인간의 부폐한 성품의 각양작용을 말하는 것이며 "죽이라"는 것은 악한 성품의 활동이 아주 죽은 것 처름 영원히 정지시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땅에 것들을 즐기어 하나님을 떠 나게 하는 죄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육체의 소욕은 마치 강물이 날마다 흘러도 바다를 체우지 못하고,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듯이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사람의 탐심은 많은 고통을 부르는 나팔"이라 고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 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탐심을 버리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탐심을 가진자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으 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가 되어서 종교적인 죄가 된 다고 했습니다. "탐심"이란 물질을 추구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위치 에 올려 놓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탐심때문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간은 외투한벌 과 금덩어리에 탐이나 숨김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이성 전투에 서 패배하였고 자신과 가족은 아골 꼴짜기에서 죽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은삼십이 탐이나서 주님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머리 둘곳 하나 없어도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감사를 생각할 때
1)하나님의 비밀을 어린아이들에 게 나타내심을 감사했습니다(마11:25)
2)기도를 들어주심을 감사했 습니다(요11:41)
3)적은 수입을 가지고도 감사했습니다(마14:19)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이요.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요 육체의 소욕 을 죽이고 현세에서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