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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 ? (행4:12)

본문

이런 일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없는 교회,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한 교회, 하나님과 말씀과 무관한 성도를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선포 되어야 하고 성도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예화]어떤 교회 목사님이 죄에 대하여 몇 주를 계속 설 교를 하셨답니다. 어느 주일 낯 예배 후에 장로님 한 분 이 찾아오셔서 목사님 요즈음 죄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 시는데 좀 안하시던지 다른 말로 바꾸면 안되시겠습니까 하면서 제안을 하셨답니다. 그러면 죄를 뭐라고 할까요 뭐 실수라든지 뭐 그런 고상한 말로 사용하시면 안됩니 까 그래서 목사님이 독약 이라고 쓰인 독약병을 하나 가져다가 장로님 앞에서 독약 표시를 떼시고, 소화제 라 고 쓰셨답니다. 그리고 장로님께 이 약을 교회 상비함에 넣어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장로님이 안된다며 펄쩍 뛰시더랍니다. 아니 그 독약을 소화제로 먹고 아동 부 아이들이 죽으면 어떻게 하라고 그런 일을 하십니까 장로님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롬6:23에서 말씀하고 있는 데 어떻게 죄를 고상한 말로 바꿔서 실수 라고 할 수 있 습니까 죄를 정확하게 죄라하여 죄를 짖지 않도록 해야 죠 했더니 장로님이 아무말씀 안하시더랍니다. 죄에 대한 설교가 듣기 싫어도 들으시고 나를 돌아보아 정결케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우리는-다 죄 아래 있다 고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죄와 죄들을 구분 합니다. 죄는 보이지 않는 죄의 세력을 의미 합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공중권세 잡은자 마귀,사단, 악령이라고 했습니다. 죄들은 여러 가지 악한 행위를 의미 합니다. 죄가 죄들을 짖게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인간이 죄 아 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래 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포 라고 합니다. 휘포는 무엇을 아래에 두고 끌고 다 니며 꼼짝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죄는 인간 을 무서운 힘으로 끌고다니며 죄를 짖도록 유혹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7:23에서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라고 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결단을 하고도 자주 넘어지는 지 아십니까 아직 죄의 줄을 완전히 끈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는 길은 예수님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는 길 밖에 없습니다. (10절읽고) 죄 아래 있는 인간은
첫째로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죄 아래 있는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한 마음 이 굳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뿐 아니라 112절 무익하게 된다 고했습니다. 여기서 무익하다는 것은 영육 간에 잘못 되는 것을 의 미 합니다.
2선을 행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선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즉 성도로 살기를 거부 한다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 합니다. 깨닫지도 못한 주제에 깨달았다고 교만하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51-52에 보면 스데반 집사님이 복음을 전 하다가 순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시대를 영적으로 보면 깨어 있는 사람은 순데반 집사의 부류 즉 사도들과 성령님 받은 성도들 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서기관 바리새 인은 자기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고, 스데반 집사님은 하나님을 망녕되이 하는 사람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스 데반 집사님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돌을 들고 잘난척 하는 무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는 자요, 하나님 과 무관한 무리 입니다. 구원과는 상관없는 무리 였습니다.
그러므로 죄 아래 있는 자가 자기의 모습을 알지 못 하고, 열심을 내면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 합니다.
둘째로 죄 아래 있는 사람은 열린 무덤입니다. 열린 무덤이란 말의 의미를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잘 이해 되는 이야기 입니다. 중동 지역의 장례법은 사람을 장례 할 때 동굴을 파서 그 곳에 집안식구를 장례 합니다.
그런데 열린 무덤은 토굴자나 자연적 현상에 의해서 입구의 큰 돌이 굴러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면 송장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혀는 자신과 남을 속이고, 입 술은 독사의 독이 가득해서 물리면 죽습니다. 입은 저주 와 악독이 있고,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죄 아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제 맘대로 합니다. 하나님을 업신 여깁니다. 구약 다니엘 5장에 보면 교만한 왕 벨사살 있습니다. 그는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예 루살렘에서 전리 품으로 가져온 서전 기구를 술을 마시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그의 부친은 하나님이 두려워 창고에 쌓아 두었는데 벨사살은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하나님의 물건으로 술을 마셨습니다. 그 때 손가락이 나타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메네는 왕의 시대는 끝났다데겔은 하나님이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다. 우바르신은 왕의 나라는 둘로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무시하는 자는 끝장납니다, 부족함이 드러나 심판을 받습니다, 분열의 고동을 맛봅니다.
넷째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 합니까 구약에 보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창5:22 에 보면 에녹이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 했고, 6:9절에 보 면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 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 행한 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 이라고 했고, 노아도 믿음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26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우시며, 믿는 자는 의롭다 하심, 즉 칭의의 의인이 된 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아직 완전한 믿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 주셔서 완전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십니다. 눅9:23에 보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고 했습니다.온전한 믿음 은 십자가를 지고 (죽을 각오를 하고, 목숨을 드려) 따르는 것 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려서 우리 시온중앙 감리교회 학생 들은 죄의 줄을 완전히 끊고 죄와는 상관이 없는 자가 되 시어 이 시대에 쓰고자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 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제목:구원받은 성도의 삶 성경:마태 13:24-33절 좋은 학원, 좋은 유치원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모든 부 모는 자녀를 그곳으로 보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시대에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자녀를 참된 제단으로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이것은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구원은 상대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사명을 이루게 하 기 위해서 자녀를 모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임마누엘교회 성도는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구원받은 성도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넓은 마음은 변함없는 마음이요, 포용하는 마음입니다. 죄악 의 길에서 방황하던 나를 끝까지 지켜보시면서 참아주시 고, 기다리신 주님의 모습 같이 우리도 성도를 향하여,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향하여 참아주고 기다려야 합니다.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고, 영적 미성숙자가 성숙자가 될 때까지 넓은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마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 수 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 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하나님 은 모든 사람에게 한 평생을 기회로 주셨습니다. 육체를 입고 있는 한 기회는 있습니다. 본문이 식물학적으로 보 면 모순입니다. 가라지는 끝까지 가라지 입니다. 곡식은 끝까지 곡식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천국의 비유입니다. 참 감람나무에 돌 감람나무를 접붙여 택한 자의 영광을 이방 인이 누리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와 알곡을 끝까지 함께 두시는 것은 가라지 같은 인생이 변하여 알 곡이 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넓은 마음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도 쭉정이가 변하여 알곡이 되고, 죽을 심령이 새 생 명을 얻을 때까지 넓은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구원받은 성도는 밀 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밀 알은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속에 부활의 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습니까 여러분은 살리는 영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영이 되었습니까 구원받은 성도는 1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작은 예수의 삶을 살고,
2살리는 영으로 말미암아 산영이 되어 3세상 끝날에 부활 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구원받은 성도가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1)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의 기준은 성경말씀입니다. (예화)사장님이 신입 사원에게 경리부에서 일하라 했는데 신입 사원은 자 기 맘대로 현장 일을 했고, 너무 열심히 일해서 코피를 흘렸어도 사장님은 신입 사원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마찬 가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2)기도해야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생명줄 입니다. 기도가 없는 성도는 죽은 성도입니다. (예 화)미국의 고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 야 할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학 생과 선생님과 우리 나라에 복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케네디가 미 국의 대통령이 되면서 기도를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구 의 使嗾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 결과 학생들은 1성적 이 떨어짐,
2마약 복용자가 증가함, 3미혼모가 급증함,
4동거 커플이 350% 급증, 5가출 학생이 130-150만명이 됨. 짧은 기도가 청소년의 영혼을 지켜 줬습니다. 우리의 짧은 기도, 보잘것없는 기도도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진실한 마음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흔드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1영이 죽고,
2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3사단의 지배를 받아 쭉정이 신자가 됩니다. 바라기는 우리 임마누엘감리교회 성도는 늘 깨어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구원받은 성도는 결실이 있어야 합니다.
(1)결실 하려면 뿌려져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두 가지 확신이 있습니다. 1씨를 뿌리면 새싹이 난다.
2 성장한 후에 좋은 결실을 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도 죄인을 구원하실 때 1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가 되길 원하시고,
2구원받은 성도가 사명 감당하길 원 하십니다.
(2)결실 하려면 썩어져야 합니다. 겨자씨가 썩어야 싹이 나듯이 구원받은 성도도 결실 하 려면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온 천하의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듯이 성도는 사명을 위하여 희생할 때 좋은 결실을 얻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임마누엘교회가 변화 받아 사명 감당하면 교회는 자동적으로 부흥하고 성도의 사업장은 자동적으로 잘되 고, 자녀와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구원받은 성도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성도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듣는 체제에서 말씀을 실천 하는 체제로 삶의 스타일을 바꿔야 합니다. 기도는 영의 젖줄입니다. 제 목:일어나 빛을 발하라 성경:이사야 60:1-3 절 빛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기쁨, 자유, 소망,힘을 상 징해 왔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물리치기에 사람들이 빛을 좋아합니다. 사람마다 등을 켜서 낮은 곳에 두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 두고서 많은 곳을 비추게 합니다. 본문 앞 장 59장은 3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1죄악이 하나님과 분 리시켰다는 것입니다.
2죄악의 결과를 이야기하고, 3 하나님 중재자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화해하시고 구원하신 다는 내용입니다. 즉 49장은 죄의 문제와 해결의 결과 구원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60장이 시작됩니다. 60 장의 내용은 1구원받은 너희는 빛이니 일어나 빛을 발하라
2세상은 점점 어두워진다. 3너희의 밝히는 빛을 따 라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시온에 가득 찬다.는 내 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악의 문제가 해결되면 빛이 되 므로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방황하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와 교회가 부흥한다는 내용입니다. 구약의 예언에는 이중적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의 예언은 먼저 이스라엘이 바 벨론 포로에서 돌아 올 것의 예언입니다. 그래서 시온에 사람 이 가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이 예언은 교회시대에 있을 영광의 빛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을 빛으로 표현합니다. 빛 되신 주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고 영접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빛을 교회에 두시고 세상의 소망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도의 삶을 통하여 이 빛이 증거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마5:14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도 일어나 빛을 발하라 고 했습니다. 성도 가 세상의 빛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빛이 되지못합니까 죄 때문입니다. 어 린 때 등잔불을 키고 살았습니다. 등잔불을 오래도록 켜 두면 불꽃이 흐려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등잔 심 지가 타고남은 재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성냥개피도 재를 털어내면 불꽃은 다시 피어오릅니다. 성도의 빛이 흐리고 빛을 발하지 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끼어 있는 앙금 같은 죄, 회개치 않은 죄, 용서하지 않은 죄, 교만, 불순종 때문입니다. 죄중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성령 훼방죄 입니다. 죄중에 큰 죄는 습관적인 죄, 반복적 인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하지 못할 죄 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치 않는 죄는 사함 받을 수 없 습니다. 성도의 영혼을 그늘지게 하는 것은 회개치 않은 죄입니다. 회개치 않으면 심령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다시 피어오르는 등잔불처럼 빛을 발하게 됩니다. 성도는 세 가지를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첫째로 성실한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삼풍 백화점의 붕괴는 이사회의 불성실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건설업계만 아니라 사회전반의 불성실 입니다. 이런 어두운 세상에서 성도는 성실로 빛을 발해 야 합니다. 이사회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독교인은 성실하고, 믿을 만하다는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평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 없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실이 그 시대에는 환영받지 못했어도 후대에는 계속해서 드러납니다. 또한 창세기 37장 이하에 보면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창39:3에 보면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 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 았더라 라고 했습니다. 또한 감옥에서도 전옥이 요셉에게 감옥의 일을 다 맡기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디발과 전옥이 영안으로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의 성실이 말해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실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겸손한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창 26:28)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 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 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여기 서도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불레셋의 아비멜렉이 이삭을 쫓아낼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인데 그가 하나님을 영안으로 보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삭의 겸손 즉 그랄 우물에서 싯나로, 르호봇으로, 브엘세바로 다투지 아니하고 겸손히 옮겼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이삭의 겸손을 통해서 전해진 것입니다.
셋째로 희생의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희생 이 없이는 영광이 없습니다. 성도의 희생적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 이 인류를 구원했습니다. 성도의 희생이 세상의 희망이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서로 돌보아 구제하며 봉사하며, 빛을 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은 이 사회에서 꼭 필요 한 인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임마누엘 교회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의 빛, 생명의 빛을 성실 과 겸손과 희생으로 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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