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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빌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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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감옥에 수감중인 노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말한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이 말 속에는 지금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는게 아니라 주 안에 있다는 것 을 더 강조하는 것이 된다. 사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무었을 하든지 먼저 생각하는 것은 현재 자기가 어디 있는가를 생각 했었다. 사도 바울이 매를 맞으면서도 굶주리면서도 또 헐벗으면서도 또 감옥에 같히면서도 언제나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나를 바 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주 안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주 안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했던 바울이었다. 주 안에서라면 무었이든지 다 할 수 있었던 바울이었다. 주 안에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아까울게 없었던 바울이었다. 사도 바울은 늘 자기가 주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여러분들은 병들거나 괴로울 때나 슬플 때 무었이 먼저 생각 나던가요 "내 팔자가 왜 요모양인가어쩌다가 내가 요렇게 되었나" 아니면 괴록고 힘든일을 당할 때 사도 바울처럼 내가 "주 안에 있음"이 생각나던가 우리 모두는 세상에 있으면서도 또 주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데는 분명히 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자기의 소속감과 목적의식이 없으면 결코 일에 보람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사도 바울은은 분명한 소속감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았었다. 소속은 주 안에서였다, 목적은 그리스도의 영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겐 늘 기쁨이 충만했던 것이다.
1,생각하던 것이 다시 생각 남이라 그러면서도 사도 바울이 언제나 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엇다. 어디를 가든지 무었을 하든지 잠시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었었다. 다름 아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었다. 불모지 빌립보 지방에 함께 교회를 세우면서 함께 고와 락을 같이 했던 형제자매들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똑 같은 심정이었다. 10절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바울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큰 기쁨은 주안에 있다는 것과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있다는 것임과 동시에 자기를 생각해 주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10절을 다시 본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다시 싹이 남 이니.너희가 나를 생각"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 참으로 귀한 일이다. 부부들이 살다가 가끔 사랑 싸움을 할때 흔히들 사용하는 문구가 무었이 든가 여러분들은 무슨 단어를 제일 많이 사용했었는지 이런게 아닐까 "당신이 나를 생각하기나 해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그러지는 않았을꺼야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그런일을 해" 여러분 생각해 준다는 것 얼마나 귀한 것인가 옛날에는 생각하는 정을 은근히 표현을 했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생각을 확끈하게 표현하길 더 원하는 것을 본단다. 저도 그렇드라구요. 마음에 생각을 생각만으로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생각에 형식을 가추어야 하겠드라구요.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어야 더 좋와하는 것을 본다. 뭐 생일이든지 결혼일에는 작은 손 수건이라도 장만을 해야 하겠드라구요 가정에서만 아니라 친척간에만 아니라 이젠 그 범위를 조금씩 더 넓여 가 도록 하자. 지금 여러분들 곁에 계시는 분들은 필연적으로 생각을 하셔야 할 사람들 이다. 기도할 때마다 한 사람씩이라도 생각하는 사람들의수효를 늘여 가시길 바란다. 여러분들이 혹시나 병원 같을데 입원을 하여 외록게 있어 본 이리 있는지 아니면 어떤 일로 인하여 외록게 지내 보신 경험이 있으신지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구금된 상태 이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겠는가
그런데 어느날 어바브로 디도를 통하여 빌립보 교회 소싯을 전해 왔던 것이다. "생각하던 것이 다시 싹이 남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이 적적해 할때 주님께서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옛 정을 실현하도록 해 주셨음을 믿고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마음에 얄미운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다. 얄밉던 사람들이 생각의 사람으로 바뀌길 바란다. 날이 갈 수록 더 많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사시길 바란다.
2,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 10절을 다시 본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생각은 있었으나 뭐가 업었다구요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여기 이 말씀은 생각하는 마음도 매우 귀한 것이지만 그 보다 더 귀한 것은 생각했던 것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살 수 있는 것이 더 귀함을 말 하 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생각했던 것들 생각 났던 일들, 생각 나고 있는 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 포착이 더 없이 귀중함을 말하고 있다. 귀회가 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짖는 분들이 아무때나 씨았을 파종하지 않는다. 씨앗을 심을 때가 있고 또 심은 것은 거둘 때가 있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좀 심하게 사람들이 성공하는데 오는 기회도 일생에 세번 박엔 오질 않는다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참으로 기회는 잊어버리기가 더 쉬운 것이다. 지나고 나면 후회만 남는 것이 지나간 기회인 것이다. 지금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라도 살아 잇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벌써 죽고 없었다면 저들의 아름다운 생각이 무슨 소용이 되었겠는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무었때문에 기회가 없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거나 기회가 없었다고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빌립보 교회는 그 잃었던 기회를 찾았다. 저들의 생각을 지금 실천으로 옮기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들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언제일까요 우리들이 형제를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일까요 우리들이 이 다음에 출세를 해서. 크게 성공을 한 후에. 회장 아니면 사장 정도는 되었을때. 언제가 가장 좋은 기회일까요 가장 좋은 때는 지금이다. 가장 좋은 기회는 주님께서 생각 나고 있을 때이다. 가장 좋은 기회는 형제들이 생각 나고 있을 때이다. 빌립보 교회가 잃어던 기회를 찾음으로 바울을 기쁘게 할 수 있었던 것처럼 주님을 향한 좋은 기회들을 잊으셨던 분들은 지금 기회를 찾으시어 주님을 크게 기쁘시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은 여러분들을 통하여 기뻐 하시길 원하신다. 주님은 여러분들을 통하여 웃어 보시길 원하신다. 오늘이 바로 잃었던 기회를 찾는 날이다. 오늘 주님을 위한 생각의 싹들을 튀우시길 바란다. 주님을 위한 생각들의 열매를 거두는 날이 되실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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