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빌4,11-12)
본문
Tolstoi의 박품 가운데 "사람은 얼마의 땅을 필요로하나"라는 글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땅을 사러 왔다. 그 지주는 "당신이 금을 그어서 해지기 전 까지 이곳에 돌아 오면 그 안에 있는 것은 전부 당신의 땅이요" 라고 했다. 땅을 사러 온 젊은 이는 금을 언덕에서부터 그으며 뛰기를 시작했다. 온 종일 기운을 다하여 뛰어 해 질 무렵에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 왔다.
그런데 그 사람은 기진맥진하여 돌아 온 즉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아다. 그리고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고작 두세평으로 끝나고 말았다.
1,자족 11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본문에 자족이란 말이 나온다. 자족이란 글 그대로 스스로 족한 줄로 아는 상태를 말한다. 사도 바울이 지금 자족지도를 말함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에서 즉 체념의 상태이기에 말함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 여기에 쓰인 자족이란 단어는 당시 스토아 철학자들이 즐겨 쓰던 문자이다.
Immanuel Kant "나는 백만금을 소유하지 못한 때에라도 그것을 소유한 것처럼 만족할 수 있다." Sokrates "제일 부자는 가장 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자족은 자연의 주요" 이 자족이란 단어는 스토아 철학자들간에 사용되던 용어이긴 하나 오늘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그 개념은 그들과 엄청나게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스토아 철학에 있어서의 자족(Autarchy)이란 현자들이 수양을 통해서 인 생을 관조하는 달관의 경지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의지력으로 환경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구축해서 매사에 만족해 하려는 정신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의 "자족"은 그런게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나 의지력으로 획득한 그 어떤 마음의 상태가 이니다. 스토아철학자들의 자존이 독립적이라면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의 자족은 의존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철저히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삶의 결과들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험 사도 바울의 자족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히13;5-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 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관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 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 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딤전6;6-8절엔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유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 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고후6;10절엔 "근심하는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 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1절 하반절에서 또 12절 하반절에서 다 같이 이토록 자족한 삶을 실지로 사시었던 사도 바울의 자족지도는 배움을 통 하여 얻어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자족지도의 삶은 날때부터 특별한 섬품을 타고 낳기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배움을 통하여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심이다. 배움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2,무었을 어떻게 배웠나 " 그럼 사도 바울이 무었을 배웠기에 자족할 수 있었단 말인가
첫째는 풍부였다.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사울이었다(행21;39)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고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유대교 신앙에서 교육을 받았고 석학 가말리엘 아래서 율법에 대하여 배웠고 열열한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엄격한 율법주의자였다.
둘째는 궁핍이었다. 고후11;23-31절에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 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같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은 돌에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 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에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 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 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아늬 거짓만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사도 바울은 풍부속에 살았던 사람이면서 또 궁핍의 삶을 경험한 사람임 을 볼 수 있다. 11절과 12절 하반절에서 배운다는 말을 우리 말로 다시 직역을 한다면 "일체의 비법을 내가 터득했노라"가 된다. "일체의 비법을 내가 전수했노라"이다. 여기 배웠다. 터득했다. 전수했다는 말들이 그냥 배워지고 터득되고 전수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그가 몸소 실천의 삶을 삶으로 몸에 배이게 된 것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배우기는 배운 것인데 그 배움이 목적이 아니었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았더니 저절로 몸에 배이게 되었던 것을 배웠다고 표현 했던 것이다. 그러니 순수하게 경험의 학교에서 배운 것이다. 12절 "내가 비천에 처헐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품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옛날에는 중들이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을 찾아 들어 갔었다. 그러나 이제는 속세를 다시 찾아 산을 내려오고 있다. 왜 세상에는 만족이란 없다. 물질 명예 권력 전설에 마이다스 와(King Maidas)같이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었이든지 황금으로 바꾸고 싶은 게 인간세계이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다. 만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뢰하면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만족할 때 가능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때문에 늘 불평하고 원망 한다. 그러나 지혜있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누릴 줄 안다. 우리 모두는 어떠한 형편에서도 만족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만 한다. 만족은 우리의 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의 내적인 영의 문제 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현재의 상태를 현재의 환경을 현재의 생활을 배움의 학교로 알아 최선을 다할 때 거기에 사도 바울의 자족이 있는 것이다. 또 성령과 함게 계심을 명심하시고 주 안에서 살고 있음을 확신하시길 바란다. 자족지도를 사도 바울처럼 삶의 현장에서 배우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기진맥진하여 돌아 온 즉시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아다. 그리고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그 사람이 차지할 수 있었던 땅은 고작 두세평으로 끝나고 말았다.
1,자족 11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본문에 자족이란 말이 나온다. 자족이란 글 그대로 스스로 족한 줄로 아는 상태를 말한다. 사도 바울이 지금 자족지도를 말함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에서 즉 체념의 상태이기에 말함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 여기에 쓰인 자족이란 단어는 당시 스토아 철학자들이 즐겨 쓰던 문자이다.
Immanuel Kant "나는 백만금을 소유하지 못한 때에라도 그것을 소유한 것처럼 만족할 수 있다." Sokrates "제일 부자는 가장 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다. 자족은 자연의 주요" 이 자족이란 단어는 스토아 철학자들간에 사용되던 용어이긴 하나 오늘 바울이 사용하고 있는 그 개념은 그들과 엄청나게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스토아 철학에 있어서의 자족(Autarchy)이란 현자들이 수양을 통해서 인 생을 관조하는 달관의 경지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의지력으로 환경에 저항하며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구축해서 매사에 만족해 하려는 정신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의 "자족"은 그런게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나 의지력으로 획득한 그 어떤 마음의 상태가 이니다. 스토아철학자들의 자존이 독립적이라면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의 자족은 의존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철저히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삶의 결과들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험 사도 바울의 자족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히13;5-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아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 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관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 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 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딤전6;6-8절엔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유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 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고후6;10절엔 "근심하는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 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1절 하반절에서 또 12절 하반절에서 다 같이 이토록 자족한 삶을 실지로 사시었던 사도 바울의 자족지도는 배움을 통 하여 얻어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자족지도의 삶은 날때부터 특별한 섬품을 타고 낳기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배움을 통하여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심이다. 배움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2,무었을 어떻게 배웠나 " 그럼 사도 바울이 무었을 배웠기에 자족할 수 있었단 말인가
첫째는 풍부였다.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사울이었다(행21;39)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고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고 유대교 신앙에서 교육을 받았고 석학 가말리엘 아래서 율법에 대하여 배웠고 열열한 바리새파 사람이었고 엄격한 율법주의자였다.
둘째는 궁핍이었다. 고후11;23-31절에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 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같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은 돌에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 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에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 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 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아늬 거짓만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사도 바울은 풍부속에 살았던 사람이면서 또 궁핍의 삶을 경험한 사람임 을 볼 수 있다. 11절과 12절 하반절에서 배운다는 말을 우리 말로 다시 직역을 한다면 "일체의 비법을 내가 터득했노라"가 된다. "일체의 비법을 내가 전수했노라"이다. 여기 배웠다. 터득했다. 전수했다는 말들이 그냥 배워지고 터득되고 전수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그가 몸소 실천의 삶을 삶으로 몸에 배이게 된 것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배우기는 배운 것인데 그 배움이 목적이 아니었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았더니 저절로 몸에 배이게 되었던 것을 배웠다고 표현 했던 것이다. 그러니 순수하게 경험의 학교에서 배운 것이다. 12절 "내가 비천에 처헐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품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옛날에는 중들이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을 찾아 들어 갔었다. 그러나 이제는 속세를 다시 찾아 산을 내려오고 있다. 왜 세상에는 만족이란 없다. 물질 명예 권력 전설에 마이다스 와(King Maidas)같이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었이든지 황금으로 바꾸고 싶은 게 인간세계이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다. 만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뢰하면서 오늘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만족할 때 가능한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때문에 늘 불평하고 원망 한다. 그러나 지혜있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누릴 줄 안다. 우리 모두는 어떠한 형편에서도 만족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만 한다. 만족은 우리의 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들의 내적인 영의 문제 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현재의 상태를 현재의 환경을 현재의 생활을 배움의 학교로 알아 최선을 다할 때 거기에 사도 바울의 자족이 있는 것이다. 또 성령과 함게 계심을 명심하시고 주 안에서 살고 있음을 확신하시길 바란다. 자족지도를 사도 바울처럼 삶의 현장에서 배우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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