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서로 돕는 성도의 삶 (빌4,14-16)

본문

1,사도 바울을 돕는 빌립보 성도들 행16장에 보면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된 내력이 상세히 기록되 있다. 바울의 일행이 빌립보 지방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가장 처음에 만난 사람이 두아디라라는 여인이었다. 그 다음 그곳에 귀신들이 점하는 여인을 고쳐준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점하는 여인의 주인들에게 붙들리어 무수한 몲매를 맞고 옷이 찢기운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감금되게 되었다. 그때 바울과 실라는 예수 때문에 복음 때문에 이렇게 감금되게 된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기뻐서 그 날 밤에 기쁨의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었다. 그날 밤에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에 열리고 바울과 실라를 묶었던 착고가 절로 풀리게 되었던 일로 인하여 간수장이 죄수가 도망간 줄 알고 칼을 빼어 자결할려할 때 바울이 그를 만류하며 전도를 했던 일이 있었다. 그 후 그 간수장의 집에서 교회가 시작되었던 겄이다. 이런 어려운 여건 하에 세워진 교회였기에 교역자와 성도간의 사이는 뜨거운 주의 사랑으로 넘치고 있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최선을 다하여 사도 바울로 하여금 성곡적인 목회를 하게 했다. 그때만 그렇게 도왔던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것도 감옥에 같혀 있는 노 사도를 계속해서 물질로 돕고 있음에 대하여 바울이 감사의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 이 빌립보 편지였다. 당시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핍박으로 인하여 성도들의 삶은 말이 아니였으나 항상 도왔던 것을 볼 수 있다. 물질로만 그렇게 도왔던 것이 아니다. 그것을 14절에서 "그러나 너희가 내 괴오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라고 했다. 사도 바울이 옥에서 당하고 있는 그 괴로움에 함께 했던 일들이 무었인지는 자세한 설명이 없기에 알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짐작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당시의 감옥은 오늘의 것과 도져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빌립보 지방에서 로마의 감옥까지의 거리를 보아도 당시의 형편으로 면회를 간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겠나를 짐작은 할 수가 있다. 말로다 형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괴로움에 함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괴로움"이란 단어는 말세에 있을 "환난"이란 단어가 쓰여져 있다. 저는 이 말을 보면서 정말 지금 환난이 시작된다면 우리 교회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그렇게 서로가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15절엔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립보 교회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한 교회였다. 16절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2,서로 서로를 돕는 성도들 "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는 언제 들어도 흐뭇한 일들이다. 또 서로가 서로를 위하면서 산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돕는 방법은 방송국이나 신문등에 커다란 광고가 있어야 더 호응을 잘하는 것을 볼때는 마음이 언잔아 지곤 한다. 또 세상 사람들은 남을 도울 때 돕고 있는 있는 자기에게 돌아 올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할지를 모를 때가 많다. 내 이름이 크게 나던지 아니면 어떤 이해괸계 때문에 도움의 손길를 편다면 이는 성경이 말하는 도움의 정신과는 너무 거리가 먼것이다. 빌립보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도울때 그리스도의 사랑에 입각하여 도웁고 있었다. 물질이 필요할 땐 물질로 도왔고 때로는 영적인 면으로 신령한 면으로 더 뜨겁게 도왔던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가 있다. 사람들이 물적인 것으로는 도울 수 있으나 영적인 면으로까지 도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찾아가서 도왔고 로마에 있을 대에도 찾아가서 도왔던 교회였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와 로마를 왕래하면서도왔던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이 었던 것이다.
3,서로 돕는 사람을 내 주위에 둔 기쁨 사도 바울 주위에는 물질로 또 신령한 것으로 도웁는 사람들로 둘려 쌓여 있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서로 돕는 현제로 뭉쳐진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다. 빌립보 교회 성도라면 어느 누구든지 그 주위엔 돕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성도로 둘러쳐져 있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 주위에는 어던 분들이 있는가 또 여러분들은 누구를 감싸고 있는가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을 때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우리는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다시 16절을 본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서로 서로 주고 ㅂ받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사도 바울은 저들에게 복음의 복된 소식을 전하여 주었고 또 저들은 사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었다. 복음이 제되로 전파되기 위하여 불질과 영적인 도움이 다 같이 필요한 것임을 보았다. 이는 마치 사람이 자동차의 운전사라면 불질은 연료와도 같은 것이다. 오늘의 결합이 없는 성도는 마지막 환난의 날에도 이기적일 수 박에 없다, 그러나 오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뭉쳐져 있는 성도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게 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겐 오늘도 있지만 더 귀하게 내일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한다면 사실은 남에게 도움을 받는 일도 귀하지만 남들을 돕는데서 와지는 기쁨은 경험한 사람만이 아는 기쁨이다. 아므튼 여러분 모두가 줄 수 있는 사람 즉 도울 수 있는 사람 도우면서 살 수 있는 느역의 사람 또 기쁨의 사람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4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