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마땅히 행할 의무 (빌4:4-5)
본문
사도 바울은 본 서신의 주제인 그리스도인의 기쁨으로 롤아옵니다. 바울은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3:1)“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바울은 다시 기뻐하라고 말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거룩한 기쁨이 그리스도인의 제일의 임무임을 어급하기를 결코 지겨원하지 않키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과 연합하여. 그리고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자는 항상 기뻐하며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6:10)말하고 있습니다.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노니” 고후10:1에서“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을 권하고” 여기서 ‘관용은’ 우리 주님께 속한 것으로 설명 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 의하면 ‘관용’은 낮은 평가에 만족하며. 정당한 권리의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기쁨이 열린 마음, 관대한 사랑을 포함합니다. 주 안에서의 기쁨은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대하며 온화하게 합니다. (요13:35)에 보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한 것처럼 사도 바울은 불 신자들이 신자들을 보고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사랑하는가 보라”고 말하게 할 것이었습니다. 성도의 서로의 사랑은 새 신자들을 믿음으로 이끄는 복된 수단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견해 차이를 더 이상 불화하지 말고 서로 관용을 베풀라고 합니다. 왜 “주께서 가까우시리라”기 때문입니다. (고전16:22)“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에 있는 (주께서 임하신다)는 이 말씀은 할렐루야가, 찬양할때 고정적으로 사용된 것과 같이.(주께서 임하신다)는 이 말씀은 ‘경고할 때 사용한 말로서’ 그당시에 교회에서 유행했음을 보여즘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권리만을 인색하게 강요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늘의 보고에 있는 금보다 더 귀합니다. (약5: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 우니라”
1.본장에서 바울이 성도의 생활에 대해 권면하고 있는 첫번째 사항은 무엇인가
⑴.그것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⑵.우리는 바울의 이러한 권고를 들을 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⑶.그러나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투옥도어 있는 절박한 형편에서 자신이 먼저 기뻐하는 생활을 나타내었습니다(2:17).
⑷.이처럼 그가 항상 기쁨 가운데 거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의 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르지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속에 임재하심을 체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참조,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⑸.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바울 사도처럼 자신의 삶에 어떠한 변화가 올지라도, 즉 잘못된 사람들의 비난을 받거나,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거나, 또는 세상의 핍박을 받거나, 죽음의 위협에 처해 있든지 간에 상관없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⑹.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슬픔이나 고난에 처하여 무감각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상황 가운데 서도 내적으로 평안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참조,롬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2.바울이 성도의 생활에 대해 권면하고 있는 두번째 사항은 무엇입니까(5 절)
⑴.그것은 ‘관용하라‘는 것이니다.
⑵.여기서 ’관용‘은 (에피에이케스) 당연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⑶.특히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동료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 심지어는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까지 포함 되어야 합니다(참조,마5: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⑷.한편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관용의 태도로써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주께서 오실 날이 가까와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⑸.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강림하셔서 선악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실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믿는 이상 우리들은 타인에 대해 관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론” 가장 참되며 영속하는 기쁨은 주 안에 있는 기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기쁨은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제로부터 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그리스도와 교제로부터 솟아남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알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은혜를 간구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람니다. (약5:7-9)“그럼으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그러므로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견해 차이를 더 이상 불화하지 말고 서로 관용을 베풀라고 합니다. 왜 “주께서 가까우시리라”기 때문입니다. (고전16:22)“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에 있는 (주께서 임하신다)는 이 말씀은 할렐루야가, 찬양할때 고정적으로 사용된 것과 같이.(주께서 임하신다)는 이 말씀은 ‘경고할 때 사용한 말로서’ 그당시에 교회에서 유행했음을 보여즘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권리만을 인색하게 강요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늘의 보고에 있는 금보다 더 귀합니다. (약5: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 우니라”
1.본장에서 바울이 성도의 생활에 대해 권면하고 있는 첫번째 사항은 무엇인가
⑴.그것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⑵.우리는 바울의 이러한 권고를 들을 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⑶.그러나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투옥도어 있는 절박한 형편에서 자신이 먼저 기뻐하는 생활을 나타내었습니다(2:17).
⑷.이처럼 그가 항상 기쁨 가운데 거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의 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르지 그리스도께서 그의 마음속에 임재하심을 체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참조,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⑸.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바울 사도처럼 자신의 삶에 어떠한 변화가 올지라도, 즉 잘못된 사람들의 비난을 받거나,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거나, 또는 세상의 핍박을 받거나, 죽음의 위협에 처해 있든지 간에 상관없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⑹.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슬픔이나 고난에 처하여 무감각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상황 가운데 서도 내적으로 평안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참조,롬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2.바울이 성도의 생활에 대해 권면하고 있는 두번째 사항은 무엇입니까(5 절)
⑴.그것은 ‘관용하라‘는 것이니다.
⑵.여기서 ’관용‘은 (에피에이케스) 당연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⑶.특히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동료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 심지어는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까지 포함 되어야 합니다(참조,마5: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⑷.한편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관용의 태도로써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주께서 오실 날이 가까와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⑸.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강림하셔서 선악간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실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믿는 이상 우리들은 타인에 대해 관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론” 가장 참되며 영속하는 기쁨은 주 안에 있는 기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기쁨은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제로부터 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그리스도와 교제로부터 솟아남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알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은혜를 간구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람니다. (약5:7-9)“그럼으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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