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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빌4:4-7)

본문

한사람이 그의 신앙성장을 위하여 가지고 있어야할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 마음은 기뻐하는 마음이고 평안한 마음이다. 오늘 본문 말씀들이 이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면 ‘감사의 차원’이 다른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감사하라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평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왜, 어째서 감사하냐’를 물으면 우리는 별 할 말이 없다. 오늘은 이 문제에 있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장하는 문제에 있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근거이며, 얼마나 필요한 일이며, 그리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따져 보려고 한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어떻게 받은 것인가 ‘내가 예수를 믿어서 얻은 것인가’ 아니면 ‘예수가 값없이 구원을 나에게 준 것인가’ 나에게 생겨진 구원이라는 결과에 대한 이유나 원인이 나에게 없는데도 구원이 주어졌다면 누가 구원을 준 것인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나를 구원을 하신 것이다. 불교는 내가 ‘무엇이’되는 종교이다. 내가 나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완성의 자리로 가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내가 시작해서 완성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도와줘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해서 구원을 얻은 것일까 아니다. ‘무엇을 해서 얻지 않았다’는 말은 ‘예수를 믿으라’라고 하는 것인가 이는 ‘믿으라’는 말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나를 구원하시는 분으로 이 구원의 결과를 주신 분이다.’ ‘예수를 믿으라’는 말은 '믿음'이 아닌 '예수'란 말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에게 믿음을 주셔서 나를 구원하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무 것도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음의 말씀을 보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롬 6:1)” 구원은 전적인 은혜다. 우리가 구원문제를 은혜와 결부시키면서 가장 오해하는 점은 은혜로 말미암아 ‘어느 자리에서 어느 자리로 옮겨졌는가’는 잊어버리고 옮겨지는 과정과 방법이 은혜라는 것 때문에 장소적으로 신분적으로 ‘옮겨진 차이’를 망각하고 혼동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 은혜로 우리가 신분이 바뀌어졌다는 것, 그 방법을 은혜로 했다는 것 때문에 바뀌어진 신분의 차이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내가 열심을 내고, 내 방법으로 된 것이 아니고, 내 힘으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바뀌어진 신분의 차이를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시작하고 의도하고 계획하고 말미암은 방법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 능력으로나 본성으로나 갈 수 없고, 도달할 수 없는 자리로 그분이 도달시키기 위하여 오늘 내가 가는 길을 막으신다. 예수를 믿는 자 중에는 90%가 좋아서 믿기보다는 얻어맞고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우리는 구원이 취소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내가 저지르는 실수와 내가 저지르는 잘못으로 인하여 근본이 바뀌지 않는다. 이는 구원의 확실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구원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자답지 못하기 때문에 갈등한다. 이것때문에 우리는 불안하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완성의 자리로 이르고야 말 것은 내가 너를 은혜로 통치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은혜라는 단어가 가지는 집념이다. 과거에 '바람불어 좋은 날'이라는 한국영화가 있었다. 사실 바람부는 좋은 날이 아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날은 하루도 나쁜 날이 없다. 하나님이 내 삶을 주장하시는 한 비오는 날도, 눈오는 날도, 흐린 날도 좋은 날이다. 날마다 매일같이 좋은 날이다. 천국을 향해서 하나님이 이끄시는 날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탄절보다는 오히려 성탄전야를 즐긴다. 주일은 휴식의 끝이므로 주일보다는 토요일 오후가 더 좋다. 설레임과 기대감 때문이다. 목적지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극단적인 심리적인 차이를 아는가 이것이 신자들에게 필요하다. 우리가 도달할 길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자기 실패를 인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감사와 기쁨과 평안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목적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운명이 내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있기 때문에 은혜로 다스리겠다고 선언하신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제안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의 운명이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갖는 이 떳떳함을 모르면 늘 좌절감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우리는 기쁨과 감격의 초대를 받았다. 놓치지 않고 살기로 하고 승리하기로 결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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