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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사랑하는 공동체 (빌3:12)

본문

한 아이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폭이 넓은 인내와 그 만큼의 눈물이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헤아릴수 없는 수 많은 병의 위협 속에서 세심하게 예방하고 건강한 성장을 기도하며, 때론 병치레를 하며 고통을 당하는 아이를 보며 함께 아파하면서 안타까워하는 인내의 시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간이 더해 갈 수록 더 폭넓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 좌절하며 고민하면서 자라가는 한 인간의 성숙을 애절하게 기다리며 또는 기대하며 지켜보는 것입니다. 결코 이러한 “인고의 통로”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같이 한 사람이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과 여러 만남과 상황이 필요했던 것처럼, 그리고 숱한 아픔과 갈등을 만나야 했던 것처럼, 하나의 공동체가 자라며 성숙한 모습을 세워나가는 것에도 그 만큼의 인내와 고민, 다는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이 전제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낙골 공동체가 이제 아홉살이 됩니다. 짧지않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여러가지 실험을 했고 좌절하며 또한 사랑하며 서로를 세워왔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한마디로 평가하거나 결론지을 생각은 없습니다. “이러 이러해서 저러하다”는 정연한 논리적 평가가 우리에게 중요하거나 의미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숙해 가는 공동체에 대한 애절한 인내의 심정”입니다. 한 인격체의 성장과정을 바라보는 깊이있고 멀리 바라보는 “인고의 시각”이 우리에게는 절실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외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끝까지 확신하며 기대하며, 그리고 사랑하며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영웅담에 기대어 있을 이유도, 턱없는 미래의 허상을 가질 이유도 또한 없습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지금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다시말하면 “지금의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솔직한 태도”가 우선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 자신이 때로는 스스로를 속이며 스스로에게 속는 것은 “지금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허상에 자신을 묻어두어 공중에 붕 떠있거나 구름을 잡는 듯한 모습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애정을 갖는 일은 매우 현실성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 관념이거나 허구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아주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를 않을 때,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내용으로 땅에 발딛고 서있는 것이 아닐 때 사랑하는 것은 현실성을 잃습니다. 지금을 사랑하는 일은 일종의 책임의식 입니다. 그것이 강요된 어떠한 의무감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기자신을 받아들이고 발딛고 서 있는 삶의 자리에 대한 애정을 가진다는 것은 의무감만으로 그 내용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른 누구의 일이나 사건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사건이며 나 자신의 삶의 내용으로 받아들일 때 주어지는 “책임성”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을 사랑하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우리는 낙골공동체의 지금을 사랑하는 책임적이고 애절한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이렇게 함께하는 이들과 공동체를 살리는 기본적인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서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지금을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잘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4:12)” 이것은 이미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자만심으로 넉넉한 과거의 무용담을 즐기려들지 않는 긴박감으로 오늘 내가 서있는 땅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을 사랑하는 이러한 긴박성이 성숙한 사람의 특징”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느슨해진 마음은 언제나 문제가 됩니다. 긴장하지도 않고 문제의식도 없습니다. 출렁거리는 파도 앞에서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철저한 무책임으로 일관합니다. 지금을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도 조차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의 아홉번째 생일을 맞이하면서 서로에게 다짐해야할 것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지금을 살아가면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들, 끝까지 지켜내야할 것들에 대한 확신있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 대해서 책임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이러한 일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공동체의 신음”을 귀막고 눈감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것에 대하여 아무도 슬퍼하거나 아파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를, 무관심하고 냉담한 시각으로 일관해온 것은 아닌지를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내일은 4.19혁명일입니다. 지금을 사랑하고 모두가 함께 슬퍼하고 아파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그날의 함성을 기억해 볼 일입니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것들을 책임있는 걸음걸이로 우리안에 담아내야 합니다. “인고의 통로”를 거쳐 성숙한 삶의 내용을 담아낼 우리의 공동체를 내어다 보며 앞으로 만나게될 여러가지 예측할 수 없는상황들, 그리고 숱한 아픔과 갈등들 까지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지금을 사랑하며” 서로를 일으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아홉돌배기 낙골 공동체에 대한 저마다의 애정을 시각화하며 그 내용성을 진지하게 담아내는 오늘이 우리에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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