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하여 좇아 가노라 (빌3,12-16)
본문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계실 때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으니 그 방 안에 향내음으로 가득했다고 했다. 그때 가롯 유다가 한 마디 했다. "그렇게 비싼 것을 왜 그렇게 허비하느냐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 더 좋왔을 텐데…" 여러분들은 마리야의 행동을 어떻게 보시는가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행동에대한 판단은 보는이마다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행동은 누구의 판단을 의식한 행동이 아니였다. 오로지 구원자이신 주님을 향한 그의 헌신이었을 뿐이었다. 이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각오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줌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으다. 예수를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보여 줌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에 분명한 푯대가 있는 사람의 생활을 보여주는 모습 이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고 있기는 있는데 너무 쉽게 다르려 아니 쉽게 아주 쉽게 예수를 따라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육신을 위하여는 시간적으로 물질적으 로 온갓 방법을 다 동원할 줄 알고 또 자신의 육신을 위하여 그렇게 바뿔 수가 없다.
그런데 자신의 영혼의 문제에 대하여는 너무 소흘이 여기며 또 너무 더딘 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으다. 자기 영의 사람에대한 목표 또는 푯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으다.
1,그리스도에게 잡힌바를 이루려고 오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시고 있는 사도 바울을이 어떤 삶을 사셨는가를 보면서 우리들의 삶을 비교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란다.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사도 바울의 삶은 한마디로 좇아가는 삶이였다. 좇아 간다는 말은 어떤 푯대가 있다는 말이다. 좇아 간다는 말은 누군가가 앞에 가고 있고 자기는 그 뒤를 바싹 추격하 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불러 주신 것은 사실이나 아직까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것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또 "내가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이 말의 의미는 아직 자기는 완성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완성되지 못한 인간이 바로 바울 자신이란 것이다. 저는 사도 바울을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사도 바울이 알고 있는 예수를 절반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 볼 때가 많이 있다. 그렇게 예수에대하여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많은 영적인 체험을 했으면서도 그렇게 많은 능력을 행했으면서도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하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저는 할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예수님에 대하여서 영적인 능력에 대하여서 영적인 은사체험에 대하여서 별것도 아니면서 남들 앞에 잘난체하면서 살아 왔던 것이 나라를 것을 알았을 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사도 바울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 보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 가노라" 고 했다. 나는 이렇게 한가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바울은 좇아 간다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 간다"는 말은 예수께서 저와 야러분을 세상에서 골라 뽑으사 구원의 백성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식을 삼으신 사건이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것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이렇게 예수 믿게된 것이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 간다고 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구원이 과연 무었인가 나를 하나님의 자식으로 삼아 주신 것이 무었을 의미하는가 내가 믿는다는 것은 무었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확실히 알고 싶었던 것이 사도 바울의 생의 푯대 였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알기 전에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예수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융곽을 어렴풋하게 찾게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라는 생의 분명한 푯대를 정하고 좇아 가다보니까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즉 자기가 누구란 것을 알게 되니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이란게 더 분명하게 느껴지고 깨달아 졌던 것이다. 조금씩 깨달아 지는 예수 조금씩 깨달아 지는 성령 조금씩 깨달아 지는 하나님을 더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믿고 싶어서 오늘도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좇아가고 있는 것이다.
2,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13절에 "형제들이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 간다고 했다. 12절의 말씀은 아직까지도 자신은 완성되지 못한 사람이란 것이다.
왜냐하면 뒤에 있는 것을 다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동시에 앞에 있는 푯대를 아직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네 속담에도 "두마리의 토끼를 좇으면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는 게 있다. 그렇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 두마리의 토끼를 좇는다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발상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란 푯대를 정한 다음부터는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일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버리기로 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선수가 많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운동장을 달린다고 가정을 해 보자. 영 달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달릴 수는 있다. 그러나 멀리까지 달리지는 못한다. 물론 정한 시간안에 목표지점을 통과하지도 못한다. 등수에 들지 못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등에 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 하나 던져 버리기로 했다. 3;8절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 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라고 했다. 바울이 배설물로 여긴것들이 다 뒤에 있는 것들이다. 예수 없는 족보도 예수 없는 지식도 예수 없는 명예도 예수 없는 출세도 다 뒤에 있는 것들이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도박하지 말라. 술마시지 말라. 담배 피우지 말라 라고 하는 것은 뒤에 있는 것들 중에도 까마득하게 뒤에 있는 것들이다. 말하기 조차도 부끄러운 것들이다. 사도 바울이 예수를 바로 알기 전에는 푯대가 참으로 다양했다. 앞에도 푯대 같은게 있었고 디에도 있었고 옆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오직 항 일 , 하나밖에 없다. 이제는 앞에 계신 대장 되시는 예수님만이 그의 유일한 푯대 였다. 13절을 다시 함께 보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잠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아멘. 13절에 사도 바울이 정해진 푯대만을 향하고 좇아가는게 아니다. 그 정해진 푯대를 잡을려고 좇아가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내 것이라는 확신이 설때까지 좇아가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있는 것으로 위안을 얻고 만족하지 말고 예수를 꼭 붙잡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란다.
3,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달음박질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듯이 그에 상응하는 상이 있게 마련이다. 14절은 사도 바울의 좇아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좇아가고 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즉 위에서 부르신 부름대로 좇아가고 있다. 사도 바울은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좇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우리들이 지금까지 살아 온 과거는 말하지 말자. 우리들의 과거는 바로 잡을 수도 되 돌릴 수도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앞으로의 남은 길을 잘가면 된다.
그런데 과연 우리들의 남은 날의 수치가 얼마나 될까 아무도 자기의 남은 날의 수치를 아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게 있다면 남은 날들이 너무 짧게 남았다는 것 뿐이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좇아가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않된다. 우리의 남은 날들이 짧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우리들이 이렇게 어슬렁 어슬렁 인생을 걷기에는 우리들의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자. 예수를 위하여 뒤에 것들을 버리자. 푯대를 내 손으로 꽉 잡을 때까지 힘차게 좇아 가자. 천국문에 상을 준비하시고 서 계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힘차게 좇아가서 여러분 모두가 다 영예의 대상들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란다. 천국문에서 예수님을 붙잡으시는 그 날 하늘의 천군천사들의 투표로 여러분 모두가 다 M.V.P.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런데 자신의 영혼의 문제에 대하여는 너무 소흘이 여기며 또 너무 더딘 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으다. 자기 영의 사람에대한 목표 또는 푯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으다.
1,그리스도에게 잡힌바를 이루려고 오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시고 있는 사도 바울을이 어떤 삶을 사셨는가를 보면서 우리들의 삶을 비교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란다.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사도 바울의 삶은 한마디로 좇아가는 삶이였다. 좇아 간다는 말은 어떤 푯대가 있다는 말이다. 좇아 간다는 말은 누군가가 앞에 가고 있고 자기는 그 뒤를 바싹 추격하 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불러 주신 것은 사실이나 아직까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갖추어야할 것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또 "내가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이 말의 의미는 아직 자기는 완성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완성되지 못한 인간이 바로 바울 자신이란 것이다. 저는 사도 바울을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사도 바울이 알고 있는 예수를 절반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 볼 때가 많이 있다. 그렇게 예수에대하여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많은 영적인 체험을 했으면서도 그렇게 많은 능력을 행했으면서도 사도 바울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하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저는 할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예수님에 대하여서 영적인 능력에 대하여서 영적인 은사체험에 대하여서 별것도 아니면서 남들 앞에 잘난체하면서 살아 왔던 것이 나라를 것을 알았을 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사도 바울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 보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 가노라" 고 했다. 나는 이렇게 한가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바울은 좇아 간다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 간다"는 말은 예수께서 저와 야러분을 세상에서 골라 뽑으사 구원의 백성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자식을 삼으신 사건이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것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이렇게 예수 믿게된 것이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좇아 간다고 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구원이 과연 무었인가 나를 하나님의 자식으로 삼아 주신 것이 무었을 의미하는가 내가 믿는다는 것은 무었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확실히 알고 싶었던 것이 사도 바울의 생의 푯대 였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알기 전에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예수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융곽을 어렴풋하게 찾게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라는 생의 분명한 푯대를 정하고 좇아 가다보니까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즉 자기가 누구란 것을 알게 되니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이란게 더 분명하게 느껴지고 깨달아 졌던 것이다. 조금씩 깨달아 지는 예수 조금씩 깨달아 지는 성령 조금씩 깨달아 지는 하나님을 더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믿고 싶어서 오늘도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좇아가고 있는 것이다.
2,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13절에 "형제들이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 간다고 했다. 12절의 말씀은 아직까지도 자신은 완성되지 못한 사람이란 것이다.
왜냐하면 뒤에 있는 것을 다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동시에 앞에 있는 푯대를 아직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네 속담에도 "두마리의 토끼를 좇으면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는 게 있다. 그렇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 두마리의 토끼를 좇는다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발상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란 푯대를 정한 다음부터는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일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버리기로 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선수가 많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운동장을 달린다고 가정을 해 보자. 영 달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달릴 수는 있다. 그러나 멀리까지 달리지는 못한다. 물론 정한 시간안에 목표지점을 통과하지도 못한다. 등수에 들지 못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등에 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 하나 던져 버리기로 했다. 3;8절에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 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라고 했다. 바울이 배설물로 여긴것들이 다 뒤에 있는 것들이다. 예수 없는 족보도 예수 없는 지식도 예수 없는 명예도 예수 없는 출세도 다 뒤에 있는 것들이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도박하지 말라. 술마시지 말라. 담배 피우지 말라 라고 하는 것은 뒤에 있는 것들 중에도 까마득하게 뒤에 있는 것들이다. 말하기 조차도 부끄러운 것들이다. 사도 바울이 예수를 바로 알기 전에는 푯대가 참으로 다양했다. 앞에도 푯대 같은게 있었고 디에도 있었고 옆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오직 항 일 , 하나밖에 없다. 이제는 앞에 계신 대장 되시는 예수님만이 그의 유일한 푯대 였다. 13절을 다시 함께 보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잠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아멘. 13절에 사도 바울이 정해진 푯대만을 향하고 좇아가는게 아니다. 그 정해진 푯대를 잡을려고 좇아가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내 것이라는 확신이 설때까지 좇아가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있는 것으로 위안을 얻고 만족하지 말고 예수를 꼭 붙잡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란다.
3,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달음박질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듯이 그에 상응하는 상이 있게 마련이다. 14절은 사도 바울의 좇아가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좇아가고 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즉 위에서 부르신 부름대로 좇아가고 있다. 사도 바울은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좇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우리들이 지금까지 살아 온 과거는 말하지 말자. 우리들의 과거는 바로 잡을 수도 되 돌릴 수도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앞으로의 남은 길을 잘가면 된다.
그런데 과연 우리들의 남은 날의 수치가 얼마나 될까 아무도 자기의 남은 날의 수치를 아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게 있다면 남은 날들이 너무 짧게 남았다는 것 뿐이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좇아가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않된다. 우리의 남은 날들이 짧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우리들이 이렇게 어슬렁 어슬렁 인생을 걷기에는 우리들의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자. 예수를 위하여 뒤에 것들을 버리자. 푯대를 내 손으로 꽉 잡을 때까지 힘차게 좇아 가자. 천국문에 상을 준비하시고 서 계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힘차게 좇아가서 여러분 모두가 다 영예의 대상들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란다. 천국문에서 예수님을 붙잡으시는 그 날 하늘의 천군천사들의 투표로 여러분 모두가 다 M.V.P.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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